가짜 이강석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합니다. 불법적이거나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포함할 수 있으며, 일부 이용자들이 불쾌할 수 있으니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제 사건·사고를 설명하므로 충분히 검토 후 사실에 맞게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틀을 적용하시려면 적용한 문서의 최하단에 해당 사건·사고에 맞는 분류도 함께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분류 목록은 분류:사건사고 문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cb437714e8ea197579b0e2cc2af61de9.jpg
'가짜 이강석' 행세를 하고 다니다 붙잡힌 강성병이 재판장에 선 모습

1957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

이강석이기붕의 아들이었는데, 이기붕은 이승만 사후의 후계구도를 확실히 붙들기 위해서 아들을 이승만의 양자 입적시켰다. 1957년 3월 26일, 이승만의 83번째 생일에 양자 선언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8월 30일, 경주에 갑자기 자신이 이강석이라고 하는 청년이 나타났다. 이 청년은 경주 경찰서에 들어와 "아버지의 밀명으로 풍수해 피해 상황과 공무원들의 기강을 알아보려 왔다"라고 말했고 대통령의 아들이 왔다는 소식에 경주 경찰서장은 물론 연락을 받은 경주 군수까지 버선발로 뛰어와서 새파랗게 어린 자식뻘 청년에게 "귀하신 몸이 여기까지 왕림하시니 광영이옵니다"라면서 극존칭을 써가면서 극진히 대접했다.

경주 경찰서장은 이 청년을 극진히 대접하고 경호차까지 내서 경주 일대를 둘러보게 했다. 그 다음날에는 경주 옆의 영천으로 갔고, 영천에서도 영천 경찰서장을 비롯한 인사들이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어 안동으로 이동해서 지역 유지들을 만났는데 지역 유지들에게 수재의연금좀 내라고 눈치를 주자 알아서 갖다바쳤다고 한다.

이 청년은 사흘째 되던 날, 경북도청 소재지인 대구에 도착했다. 경북도경 사찰과장이 직접 나와서 안내했고 경북도지사 관사에서 머무르게 했다. 그러나 경북도지사 이근직은 이강석과 안면이 있던 사이라 이강석을 자칭하는 이 청년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 자신의 아들을 불러 확인하게 했다. 이강석과 이근직 도지사의 아들은 동창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지사의 아들이 이강석이 아니라고 확인해주자 청년은 도지사 관사 뒤뜰에서 경찰에 바로 체포되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이 청년의 진짜 이름은 강성병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출해서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이강석과 닮았다고 하는데에 자신감을 얻어서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경찰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위신 문제라 이 사건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덮으려고 했다. 그러나 매일신문의 기자가 대구 경찰서에서 뭔가 묘한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고 뒤를 캔 끝에 이 사건을 알게 되어 만천하에 까발려 버렸다.

당시 이강석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명목으로 권세를 휘둘렀고 심지어 애국지사의 아들이란 명목으로 서울대 법대에 편입하려다가 서울대생들의 강력한 반발에 법대 편입을 취소한 일도 있었을 정도라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이강석은 온 천하의 조소와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진짜 이강석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가족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이강석을 사칭한 강성병도 3년 후인 1963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한 심리학자가 강성병의 심리를 유추하며, 자신은 장난 정도로 생각하고 한 짓이었지만 파장이 너무 크고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에 심적 부담을 느낀 것 아니겠냐고 추정했다.

한마디로 가짜 드미트리 사건의 대한민국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사건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2011년 11월 13일자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