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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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사용한 방수용 모자.
기름종이로 만들어졌는데, 접으면 부채처럼 되고, 펼치면 꼬깔모자처럼 된다. 별로 무겁지도 않아서 비가 오겠거니 하면 허리춤에 차고 나가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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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찍힌 사진을 보면 갈모의 크기가 작다. 이 시기에는 갓 자체가 작아졌기 때문에 갈모 역시 작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사이즈로는 비를 제대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짚으로 만든 도롱이를 걸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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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록화가 가장 적절한 예라고 하겠다. 믈론 이것도 완전히 비를 막아주진 못한다.


이 갈모와 관련된 일화로 영정조 시절 명재상인 정홍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정홍순은 비가 오지 않아도 갈모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준비성이 좋았는데, 하나도 아니고 두 개를 갖고 다녀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다. 두 개를 갖고 다닌 이유가 하나는 자신이 쓰기 위함이고 하나는 남에게 빌려주기 위함이었다.
어느날 동대문 근방에서 어가 행렬을 보다가 비가 왔는데, 준비성이 좋았던 정홍순은 아무 염려가 없었다. 그런데 곁에 있는 선비가 갈모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의 집이 회동 근처여서 박홍순의 집과 가는 길이 겹쳤기에 동행하는 동안 빌려주기로 했다. 회동에 이르러 갈모를 돌려받으려 했으나, 집에 가는 동안 쫄닥 젖겠다 싶었던 선비는 "기왕에 빌린 거 집까지 쓰고 가겠습니다. 내일 자택에 찾아가 돌려드리죠."...라고 해서 정홍순은 자기 집 주소를 알려주었고, 혹시나 해서 선비의 집도 알아두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선비가 갈모를 돌려주지 않자, 화가난 정홍순은 직접 그의 집을 찾아가 갈모를 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선비는 "갈모 하나 얼마 한다고 이걸 돌려받으러 오나? ㅉㅉㅉ" 하며 정홍순에게 빈정거렸다.

세월이 흘러 정홍순이 호조판서가 되었는데, 새로 호조좌랑이 된 인물이 찾아와 문안인사를 했는데, 그때 만난 선비였다.
이에 정홍순은 "남의 갈모 하나도 돌려줄줄 모르는 신의를 가진 자가 어찌 나라돈을 만지겠는가? "...라고 엄히 꾸짖었고, 결국 호조좌랑은 갈모 하나 때문에 벼슬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