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1 개요

劍道. 검술을 수련하기 위한 연습 방법인 격검(撃剣)을 경기 스포츠화시킨 격기 종목이다.

2 역사

1895년에는 검술, 궁도 등의 일본 전통 무술을 통괄하는 단체로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가 창립되는데, 학교에서 격검을 정식 교과로 채용할 정도로 무술 진흥 무드가 일어났다. 1906년 대일본무덕회에서 무덕회류검술형(武德會流劍術形)을 제정하고, 1912년에는 대도(大刀) 7본과 소도(小刀) 3본인 대일본제국검도형(大日本帝國劍道形)을 만드는데, 이는 경시청류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1] 전후 전검련이 발족하면서 일본검도형(日本剣道形), 간략히 검도형으로 칭하고 있다. 이것을 한국에서는 '검도의 본'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일본무덕회는 1920년 여태까지 검술이라고 불리던 것을 검도(剣道)로 명칭을 고친다. 유술(柔術)을 유도(柔道)로 변화시킨 강도관(講道館)의 사례를 본받은 것인데, 이전에도 검술을 검도라고 부르는 경우는 간간히 있기는 했으나 검도라는 단어가 이토록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대일본무덕회의 검도 보급 때문이다.

2차대전 이전의 검도는 사족의 무사가 아닌 서민의 학생이 쉽게 검술을 익히도록 하면서 동시에 무사도 정신을 고취하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때문에 1945년 패전 후 미국의 점령기간 동안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에서는 일본의 비군사화의 일환으로 학교 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에서 무도로서의 검도를 금지시켰다. 또한 대일본무덕회가 전쟁 수행에 기여했으므로 단체를 해산할 것을 명한다.

전후 미군 GHQ(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 점령 기간 동안, 검도 애호가들은 어떻게든 검도를 부활시키고 싶어서 여러가지 수를 내어본다. 1950년에는 무도로서의 검도가 아닌 경기 스포츠로서의 성격을 강조해서 전일본요경기연맹을 창립하는데, 요경기(撓競技)라는 것은 펜싱마스크 비슷하게 만든 방어구와 죽도를 사용하는 검도 비슷한 스포츠였다. 즉 검도가 아니라 펜싱 비슷한 스포츠라고 변명하기 위해서 검도의 경기적 측면만 강조한 변형이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미군의 점령이 끝나고 주권회복을 하자 검도 금지령도 무효화된다. 1952년 전일본검도연맹이 설립되어 본래의 검도 역시 부활하며, 검도의 사회체육 제한이 해제됨에 따라 1954년에는 요경기연맹과 검도연맹이 연합하여 전일본검도연맹(全日本剣道連盟, 줄여 전검련)으로 하나가 된다. 전일본 검도연맹은 이때 검도의 성격을 민주적 스포츠로 실시할 방침을 내세웠다. 전후 민주화된 일본에서 무사의 전유물이었던 검술을 특정 계급이 아닌 대중적 스포츠로 만들려고 했던 것. 다만 이후 무도적 성격도 강조되면서 검도는 스포츠인가 무도인가 하는 논쟁이 생기게 되었다.

1970년에는 국제검도연맹(FIK)이 세워지는데, 각 국가별 검도 기구를 통괄하는 세계기구로서 만들어진 것으로 3년마다 세계 검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IOC 공인 단체인 GAISF(국제경기연맹연합)에 가맹해있으며, 검도, 거합, 장도를 세계에 보급하고 IOC 승인 국제 경기단체가 되어 검도의 올림픽 경기화를 꾀하고 있다.[2] 일본 전검련과 대한검도회 모두 국제검도연맹 소속이다.

참고로 일본에 '검도'라는 명칭을 쓰는 단체가 전검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검도협회(日本剣道協会)는 스포츠화하는 전검련에 반대의견을 가진 쪽의 협회인데, 죽도 공격 뿐만 아니라 몸싸움 격투와 다리걸기도 인정하는 단체. 전전 검도와 전후검도의 차이라면 이 유술기가 있는가 없는가라고 볼 수 있다. 그밖에도 신켄도등이 있다.

2.1 어원

검술을 가리키는 다른 단어. 검도(劍道)라는 단어는 중국한서예문지(中國漢書藝文志)에 '검도삼십팔편(劍道三十八篇)', '수박육편(手搏六篇)'이란 최초의 표현이 있다. 즉, 일본에서 기원한 단어가 아니며, 한자 문화권의 공통된 표현이다. 한 예로 일본식 검도를 배우지 않아도 검도라는 명칭을 쓰는 무술 단체가 있다. 그러니 검도라는 표현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무술인 검도를 뜻하는 경우와 검을 쓰는 보편적인 무술로서의 검도라는 두가지 용법이 있다. 여기서는 일본에서 근대에 만들어진 무술로서의 검도만을 다룬다. 간혹 검도를 대한검도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다른 검도 단체와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쓰이는 표현으로서 원래 정확한 명칭은 그냥 '검도'이다.

하지만 한반도 한정, 검도라는 용어가 쓰인 경우는 거의 없다. 검술이나 검법, 격검은 몰라도 검도라는 용어가 확고하게 자리잡힌건 일본의 검도가 일제시대에 들어와 정착되기 전까지는 용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즉, 첫 문장의 서술은 일본의 검도도입에 대한 왜색빼기와 한민족 전통 무술로 둔갑을 위해 역사왜곡 일환으로 왜곡될 소지가 다분하다. [3]

2.2 한국

현재 한국에서 "검"으로 익히는 무술 중에 한국 전통의 역사적 근거가 명확한 것은 정조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검법 뿐이다. 이 페이지는 "일본 무술인 검도의 한국 역사"에 대한 페이지이며, 검술과 검법에 대한 페이지는 아니다. 한국 검술에 대한 부분은 생략한다.

현대의 검도는 검술의 학습과정을 체계화하고 스포츠화 시킨 일본에서 만든 것이며, 한국에서 배운 검도도 일본에서 도입된 것이다. 즉, 한반도에서도 자생적인 검술이 당연히 있었지만, 현대에 대한검도회를 통해 보급과 수련되고 있는 "검도"는 일본에서 도입된 일본의 무술인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한검도회 조차 검도가 한국 고유의 전통 무술임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무술한다고 매국노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이런 말도 안되는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작태가 한심할 따름이다. 유도는 그렇다 쳐도 검도의 보급과 시작은 일본에서 왔지만 어느나라에나 그 나라 고유의 검술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맥을 끊어 놓은 우리나라 검술을 '조선세법'을 기반으로 복원해 나가는 것이 문화 자립이루고 고유한 정체성을 이어나가는 길이다. 대한검도회의 행보가 자랑스럽다.

1896년 경무청에서 경찰훈련용으로 격검 도구를 구입하고 훈련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이때부터 검도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있다. 1908년 경무청 주관으로 한일 양국 순사격검시합을 개최하기도 했다.
학교 검도의 시초는 1916년 사립오성학교에서 격검 시설을 갖추어 일반청년층에 지도한 것이 최초이고, 사설 도장은 1921년 조선무도관에서 가르친 것이 최초다. 일제 강점기 기간 동안에 중학교 체육 종목으로 검도가 채택되기도 했고, 일본인들이 좌지우지하는 조선체육협회에 반발해서 조선인의 기관인 조선체육회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광복 후 검도는 일재의 잔재로 인식되어 상당히 쇠퇴했다. 이에 검도계의 높으신 분들의 모임 재경유단자회를 1948년 서울에서 개최, 이때 대한검사회(大韓劍士會)를 설립한다. 대한검사회를 전신으로 하여 1953년 대한검도회(大韓劍道會)를 창립하고 대한체육회에 가입한 것이 대한검도회의 시작이다.

대한검도회는 1970년 국제검도연맹(I.K.F)의 창립과 동시에 회원국이 되고 일본에서 열린 제1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도 참가했다. 1994년에는 대한체육회 산하단체 중 제일 먼저 사단법인으로 전환하였다.

즉 한국에서 검도의 시작은 구한말과 일본 식민지기에 일본에서 검도를 배운 사람들에게서 기인하며 일본 검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일본 관서대학 출신, 오사카 부 검도부에서 활약하다가 패국후 경기도 경찰국 도조교로 임명된 서정학 선생, 도쿄농대에서 보성전문을 거쳐 경기고보 교사로 있던 이종구 선생, 국내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수로 1941년까지 있었던 고야좌삼랑의 수도학원을 필한 조선무도관의 장인 강낙원 선생, 일본 후쿠오카 현에서 검도수업을 하다가 귀국한 후 검도를 위하여 경찰계에 몸담고 있던 김영달 선생, 일제부터 경찰 검도계에서 활약하던 故 호익룡 선생. 상당수가 일본에서 검도를 배운 사람이나 일제 시대 경찰 검도계 출신이다. 일본에서 영향받았다 정도가 아니라 일본 검도 맞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일본이 만든 국제검도연맹에 가맹국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게 일본 무술이 아니라 한국 전통 무술인지 말이 안된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반일 정서 때문에 이전까지는 일본을 입에 담지 않고 조용히 묻어가려던 방침으로 지내왔었다. 그러나 해동검도와의 분쟁이 두드러지는 등 풍파를 겪고, 또한 대한검도회의 창립 세대가 교체되고 일본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협회 내부의 이견으로 방출되면서 한국형 검도파가 대세를 잡았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일본 검도와 다른 독자성을 띄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내 룰에서 여러가지 규정의 변화를 주고[4], 요판 도복을 금지하고 호구도 개량해보며[5], 조선의 고유 검술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한국 검도에 대한 고유 역사를 '만들고[6], 그러한 연구를 통해 조선세법과 본국검법 같은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있다. 현재는 조선세법으로 '검도의 본'을 대체하려는데, 이는 '검도의 본'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다. 본디 '검도의 본'은 여러 고류유파들이 모여서 '검도'를 만들 때, 진검의 마음을 잊지말자는 취지에서 각 유파의 기본적인 기술을 뽑아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검도형은 고류와 죽도검도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본의 효용이란 잔심, 기검체일치 등의 유명한 검도의 마음가짐 외에도 상황에 따라 변하는 칼을 잡은 손의 강도나 상대방과의 간합, 죽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목도를 받을 때의 묵직함 등의 여러 실전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조선세법이나 본국검법은 중국의 투로나 일본의 거합 형식으로 혼자서 정해진 길에 따라 연습을 하는 것이고, 복원 무술[7]이다보니, 역사적 사료로서야 의미가 크지만 그게 검도의 수련과정하고 연계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한국 검도계의 현실때문에 해외에서는 이미 한국 출신 검도인들이 진출하여 차린 검도 도장은 kumdo dojang이라고 하고, 한국계가 아닌 모든 검도는 kendo dojo라고 하여 둘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을 지경이다. 그래봐야 일본검도가 한국검도로 둔갑하는 일은 없을 거고 차라리 태권도를 본받아 틀과 이름을 완전히 뜯어 고친 후 전통 무술 타령하는게 훨씬 한국검도로 팔아먹기 좋을 듯 하다. (이미 해동검도나 기타 전통팔이 짝퉁 검도단체들이 하고 있는 짓거리 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검도와 대한검도회 검도가 다른건 아니다. 대한검도회는 전검련과 나란히 국제검도연맹에 최초로 가입한 나라이기도 한 꽤나 원로 국가이다. 다만 그 안에서 독자행보를 하고 있는것이다. 한국은 검도라는 것을 스포츠 룰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국제 무대에서는 룰을 준수하면서 한국에서는 독자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셔널리티가 강한 무도 스포츠에서 이런 행동은 좀 미묘한 짓이긴 하다. 이러한 kumdo 명칭, 요판 도복 금지, 청백기 사용 같은 독자 행보로 대한검도회와 국제검도연맹과의 분쟁이 있었으나 산하 단체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한검도회의 행보를 묵인하는 상태다. 과거 한국 내 가라데 단체를 대거 흡수하고 올림픽 종목 후 입지를 굳힌 태권도의 경우를 들며 독자 명칭 고수와 올림픽 종목화에 적극적인 한국 검도(kumdo) 측이 일본 켄도(kendo)를 장악 할지 모른다는 음모론스러운 우려도 종종 일본 내에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대한검도회의 회장이자 국제검도연맹의 부회장인 이종림은 '검도의 기원은 한국이다'라고 명확히 하고 있는 상황(참고).

한국은 검도세계선수권대회 (World Kendo Championships) 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종주국 일본 때문에 만년 콩라인이었지만, 2006년에는 일본이 미국한테 당한 틈을 타 우승하기도 했다. 흠좀무. 사실 최근 미국이 강하긴 하고 그 덕에 한 일 미 세 국가가 검도 3강으로 꼽히지만, 미국이 3위에 든 것은 바로 전 대회인 2003년이 처음이다. 일본과 일본계(미국)가 서로 싸우다가 자멸한 틈에 한국이 미국을 꺾고 올라선 것이다.[8][9] 미국입장에서 보면 조낸 죽을 힘을 다해 검도 최강자 일본과의 대결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미국은 다음 경기에서 거짓말처럼 한국에게 참패를 당했다(...). 미국이 강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본계의 후손들이 팀의 핵심을 꿰차고 있기 때문인 이유가 크다.[10]

3 시합

경기장은 한 변이 9m 또는 11m인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이고, 경계는 흰 테이프로 표시한다. 시작시 서는 위치도 테이프로 표시한다.

복장은 상하의 모두 감색 또는 백색 도복 또는 상의 백색 하의 감색 도복에 호구를 착용하고 판정을 위해 호면 뒤에 홍색과 백색의 띠(한국은 청색과 백색)를 맨다. 한국에서는 한국형 도복이라 하여 상하의 백색에 하의 옆면에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도복을 착용하기도 한다. 맨발로 경기하나 개인 사정에 따라 발가락에 테이핑이나 발목 및 뒤꿈치 보호대를 착용하기도 한다. (단, 대회시 덧신 착용은 금한다.) 경우에 따라 가능하기도 하다.

항상 1대1로 싸운다. 단체전도 마찬가지로 1명씩 나와서 차례로 싸운다. 세판 겨루어 2판 선승한 선수가 승리하지만, 경우에 따라 단판승부도 인정.

시합장에 두걸음 들어가서 인사 후, 세걸음 더 들어가서 준거(쭈그려앉기)를 하고[11], 심판의 신호에 따라 일어나서 싸운다. 한 시합은 5분, 연장전은 1포인트를 먼저 획득하면 승리.

격자부위(타격 가능한 부위)는 손목, 면(얼굴), 면의 목 정면을 찌름, 동(몸통)의 좌우 옆구리를 치는 것[12]이 있다. 원래는 동의 가슴찌르기도 존재했는데, 상대가 상단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때만 한판을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이도류의 경우만 가슴찌르기를 인정하다가, 현재는 상단 자세의 활성화를 위해서 가슴찌르기를 그냥 인정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한판의 판정은 기세와 자세를 보고, 죽도의 타돌부로 정확히 타격했는가를 살핀 다음, 잔심이 있는지를 확인하여 한판을 인정한다. [13]

심판은 주심 1명 부심 2명으로 3명이 홍백기로 판정을 한다.[14] 2인 이상이 유효타돌을 판정하거나 1명이 유효 판정, 2명이 판정을 기권하면 한판이다. 장외로 나가거나, 죽도를 떨어트리면 반칙.

4 기타

한국에서 대한체육회가 '검도'로 인정해주는 것은 대한검도회 뿐이다. 대한검도협회, 한국검도회, (전)대한검도회, 대한검도연맹, 거합검도, 한국정통검도협회, 화랑검도, 본국검도, 해동검도...등등 검도라는 단어가 들어간 단체가 많고 훈련체계를 비롯한 모든 것이 사실상 대한검도회와 동일한 단체도 있지만 그들은 전부 대한체육회에 가입해있지 않다.

다만 혹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공공 기관에서 해동검도의 단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ROTC는 2007년부터 해동검도 자격증을 별다른 검증 없이 무도 단증으로 인정했고, 2012년 7월 경찰청의 신임경찰선발에서도 대한해동검도협회 경력은 무도분야 단증가산점으로 인정했다.

일본에 근원을 둔 여타 무술과 마찬가지로 맨발로 수련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견이 존재하는데, 습한 일본의 기후 탓에 맨발로 수련하는 문화가 생겼다는 의견과, 나무 마루 위에서 정교한 발의 움직임을 가져가려면 맨발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둘 다 맞다. 검도에 있어 타격보다 중요한 것이 발의 움직임이라 말한다. 유단자 중에서도 특히 발을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발가락의 꼼지락거림 하나까지도 경기운영에 활용한다. 이 때문에 무언가를 신은 상태보다는 맨발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유도나 가라테 등 일본에서 시작된 무술은 공통적으로 맨발 수련의 모습을 보이는데, 기후 탓에 한국과 중국처럼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실내에선 맨발을 유지하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리 깨끗하게 매일 마루를 청소해도 새까매지고 수시로 찢어지고 물집 터지는 수련자들의 발바닥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인 셈.

체급이 없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힘 좋은 서양인들이 간혹 강력한 파워로 두각을 드러내거나 이도류[15]를 구사하며 대회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만약 FIK가 원하는대로 검도가 올림픽 스포츠화 되어 리치와 탄력, 반응속도를 갖춘 흐긴 검도가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온다면...하는 생각도 있으나, 무기술은 체급 차이의 영향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당장 펜싱만 보더라도 체급이 없고 대대로 전일본 검도대회 우승자들이나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검도가들을 보면 체격이 크지 않은 선수들도 많다. 특히 한국선수들은 신장이 큰 선수들이 많고 일본의 경우에도 큰 선수들이 있지만 그들이 다 압도적으로 유리한것은 아니다. 어쨋든 한국은 검도의 올림픽 스포츠화를 찬성하는 입장이며 체급을 나누자는 말을 했지만, 일본 전검련은 올림픽 스포츠화를 반대하는 입장이며 체급을 나누는 것을 검도에 대한 몰이해라고 생각하며 지극히 싫어한다. 종주국인 일본이 반대하므로 올림픽 스포츠가 되기는 어려워보인다.

초심자의 경우 판정을 잘 이해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에 나오듯이 즉 타격부위를 힘차게 치면 한판이 아니라, 타격하러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세가 검리에 올바른가, 타격이 끝난 다음에도 방심하지 않았는가까지 따진다. 한마디로 심판의 재량이다. 검도가 펜싱 처럼 전자판정 방어구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16] 물론 이것의 의도는 좋다. 검술에 능하고 안목있는 심판이 '지금의 공격은 진검이었다면 자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상대를 확실하게 격살할 수 있다'고 판정해주는 것은 검술의 본질을 생각하자면 이치에 합당하다. 문제는 무술적 관점에서는 좋지만 시합이란 것은 판정에 대해 양쪽이 납득할 수 있어야 시비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판정하는 이상 객관적 기준이 있어도 판정이 어려운데 검도는 이렇게 기준이 주관적이니 판정에 대한 견해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당장에 지역 대회같은 경우 그 지역 검도회에서 한 자리 차지한 사람의 도장 출신이면 유효타가 아니어도 유효로 인정해 준다거나 하는 일이 간혹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본선수들은 판정시비가 일어도 그냥 내 잘못이다 하는 오심에 대한 매우 훌륭한 해결책 경우가 많은데,[17] 한일전 같은 국제 경기가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런 이유로 세계검도대회같은 경우 자주 판정 논란이 있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일본의 검도 문화를 볼때 판정 시스템의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4.1 호신술

검도 유단자가 막대기를 잡으면 싸움에 유리하다. 물론 무술을 익힌 적이 없는 일반인이 막대기를 잡아도 싸움에 유리하다.

4.1.1 한국

당신이 언제나 목검이나 삼단봉을 가지고 다닌다는 전제 하에 최강의 호신기 총도 없어 당신이 패왕이다.
법적으로 매우 위험한 짓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맨손도 아닌 '흉기'를 보유했다는 것 자체로도 얼마든지 경찰/검찰/법원에서 조지고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선빵보다 끝나고 나서 누가 누구에게 중한 '피해'를 입혀 전치 몇 주를 만들었냐가 더 중요한 대한민국법을 감안해 볼 때, 아 망했어요. 정당방위 항목 참조. 무술 유단자를 가중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서 작성이나 심리, 재판 등에서 죄질을 나쁘게 몰아갈 좋은 구실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일반적인 검도장내에서 자제하는 기술인 찌름[18]을 잘못날리거나 어쩌다 들고있는 흉기가 상대방의 목에 걸려 그대로 체중이 실려버리는 경우에는[19] 곧바로 폭행이 아니라이미 손에 뭘 들고 사람때려서 입건된다는거 부터가 노답인 상황이다 살인으로 죄질이 격상될 수 있으므로 호신용으로 검도를 배울 생각은 안하는게 좋다.

한편 한국은 교도소 직원 같은 교정직 공무원이나 경찰의 경우 검도를 익힌 사람이 꽤나 많다. 4단 이상인 경우엔 별다른 시험이 없이 특채로 뽑아간다고 한다. 경찰청장기 전국 일반 검도대회에서 우승하면 바로 경찰이 될 수도 있다.[20] 진압봉을 휴대하고 다니는 업무 환경상 웬만한 무술보다 더 도움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21]

참조로 대구대학교에서는, 매년 전국 고교검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해서 우승자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검도부 감독이 대구대 역사교육과 동문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본인이 참여하는 모든 동문 행사에 죽도가 경품으로 나왔다... 검도 안 하는 사람은 뭐에 쓰라는거냐 높은 데 있는 물건 꺼내기 유용하다. 소파 밑에 들어간 물건 꺼내기도 유용하다.

4.1.2 외국

외국 국가에서는 캐슬 로(자기 집을 지키기 위한 살상력의 동원이 허용되는 법, 또는 관습) 개념이 강한 곳이 있다. 캐슬 로가 인정되는 지역에서는 자기 집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무력을 동원해도 정당방위로 인정된다.(지역에 따라서는 캐슬로 인정되려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한국은 그런거 없다.

물론 미국 같은 총기가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당연히 샷건이 좋은 무기지만, 총을 사용하기 힘든 국가도 있다. 예를 들어 호신용 총기를 구매하는 라이센스가 극도로 까다롭지만 도검은 장식품 취급해서 자유롭게 구매하고 가정 호신용으로 쓸 수 있는 지역이라거나(예를 들어 스페인), 총기의 소유는 허락하지만 총기와 탄약을 분리해서 캐비넷 안에 넣어서 보관해야만 하기 때문에 빠르게 사용하기 힘든 국가(예를 들어 캐나다)가 있다.

캐나다의 예를 들면, 총이 있어도 총을 꺼내기 위해 잠금장치가 되어있는 총기 금고로 달려가서 비밀번호 다이알 돌려서 문 열고, 총에 추가로 설치된 트리거락(방아쇠 잠금장치)나 피딩램프락(탄창 잠금장치)을 풀고, 권총의 경우 권총 케이스 잠금장치도 풀어야 하고 볼트액션 소총이라면 볼트를 해체해서 따로 보관해야 하므로 그걸 다시 조립해야 한다. 이 삼중 잠금장치를 해제한 후 총을 손에 쥐었어도, 총알을 총과 함께 보관하는건 금지이기 때문에 총알을 찾아 다시 움직여야 한다. 이 전체 과정이 빨라봐야 1분 이상 걸릴텐데, 이런 경우에 칼든 강도가 들어왔다면 총 꺼내러 가는 것보다 차라리 바로 옆에 손에 잡히는 야구방망이나, 공구 따위로 후려치는게 빠르다. 이런 지역에서는 도검류는 총기에 걸리는 제약을 받지 않아서 도검 또한 가정 호신용 무기의 일환으로 고려할 수도 있다. 당연히 검도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무기술 커리큘럼으로 가치가 재조명 된다. 문제는 이 동네 정당방위법이 한국이랑 '똑같아서' '사람을 죽이면 감옥 간다.'(...) 그러므로 검도를 써먹으려면 진검이 아닌 막대기를[22] 들어야 되며 상대의 머리와[23] 목은 공격할 수 없는 셈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그림 야구방망이 VS 단검 이 나오는데 참고하자.

실제 사례로는 2009년 9월,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존스 홉킨스 대학교 학생이 일본도로 집에 침입한 도둑을 베어 살해한 사건이 있다.# 이름은 구글에 johns hopkins student sword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참고로 이 학부생은 정당방위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4.2 검술

현대 한국인이 검도의 실용성 운운하는 경우는 대부분 검도 유단자가 개화기 이전의 검객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식의 논리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24] 현대에는 검을 든 사람들끼리 실제로 싸우는 경우가 없으니까[25] 검도가 검술로서 우수한지 따져봤자 소용 없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다.

4.2.1 단점

검도는 검술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

일단 검도에서는 십년을 해도 진검 한번 못잡아 본 사람이 흔하다. 애초에 검도에는 진검 커리큘럼이 없다. 고단자가 되면 가끔 진검 베기 같은 걸 좀 배우긴 하는데, 베기에 관심이 있다면 검도 대신 해동검도이 경우는 실전을 배제한 경우에만나 거합도를 배우는 것이 낫다.

검도의 본은 진검을 상정한 것이고 검도가 과거 검술 훈련 체계의 일부로서 간합을 익히고 순발력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긴 한데 실전과는 괴리가 있다보니 검도에만 익숙해지면 진검술에서는 상상도 못할 못된 버릇이 든다. 예를 들어... 상대와 '직접' 싸우는 검도가 최강이며 고류 따위는 칼춤에 지나지 않는다며 거만해진다.

  • 경기에서는 유용하지만 진검 싸움에서 소용없는 회피 동작을 한다. 일례로 머리를 치려고 하면 고개만 까딱해서 피하는 것이 있다. 검도는 특정 부위에 격자할 때만 인정해주기 때문에, 머리를 내려치는 공격이 오면 고개를 옆으로 까딱여서 어깨로 칼을 받아내는 짓을 한다. 스포츠인 검도에서는 이런 편법이 용납되지만, 진검으로 싸울 때 그 짓하면 단칼에 어깨가 잘려갈 것이다.(…) 특히 진검싸움은 제대로 방어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맨손 무술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란 개념이 통용되지가 않고 절대적으로 안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 도장에서는 이런 동작을 지양하도록 가르치지만 대회 앞두고는 그런거 없다. 단, 관장님이 원칙에 충실한 어르신이라면 대회든 아니든 호되게 야단맞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합식의 보기 안좋은 방어법에 대한 반발과 검도의 정신적 측면을 강조해서 회피나 막는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검술적 측면에서 보자면 좋은 경우는 아니다. 수련의 효과를 생각하자면 계속 막고 피하는것 보다는 공격하는게 낫긴 하지만. 이건 수련의 효과를 위해서 그런건지. 회피나 막는 동작이 나빠서 그런것이 아니다.
  • 격자 인정은 되지만 진검 싸움에서 소용 없는 공격기를 쓴다. 대표적인 예가 사시멘. 사시멘과 작은 머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는데, 사시멘은 칼을 최소한만 들어서 멘(머리)을 치는 편법이고 작은 머리는 큰 머리의 동작을 작게 구사해서 치는 정법이다. 작은 머리는 진검 기술에서도 지향하는 실전적 기술의 하나이며 큰 머리에 비해 동작의 노출이 적고 인체를 살상할만한 위력은 충분히 낸다. 하지만 사시멘은 머리 격자부위를 톡 건드려서 득점하기 위한 기술이며, 당연히 진검을 썼을때 제대로 된 살상력이 나오지 않으며 검도 고수들은 이런 것 하지 말라고 누누히 강조한다. 주로 학생검도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고 고단자 대회로 갈수록 칼이 커지는 성향이 있다.
  • 다른무기에 압도당한다. 간격과 격자 부위가 낯설기 때문이다. 간혹 격자 부위가 제한되어 있으면 다른 곳은 못 때리지 않을까 하는데 사실 때리기는 쉽다. 로우 킥을 한 번도 안 차본 태권도 선수도 규칙이 바뀌면 로우 킥은 잘 찬다. 문제는 방어법이다. 동네 아줌마가 나기나타로 다리를 후리면 십년 경력의 검도 고수도 압도당하는 것을 드물잖게 볼 수 있다. 검도가 다른 무기나 장병기에 대한 대항 수단을 가르치지 않는 죽도끼리의 운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 몸싸움에 약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검도에는 유술이 존재했지만 현재의 검도에는 유술은커녕 몸싸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보니 상대가 몸싸움을 걸어올 경우 대처하기 힘들다. 현대 검도에서 유술이 없어진 것은 유술이 필요없기 때문이거나 검도가 고도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쟁전에는 수련중에 유술기가 있었고 공식시합에서는 유술기를 쓰지 않았다. 다만 전후에 검도가 금지되고 다시 복귀되는 과정에서 요경기의 영향과 검도보급등의 문제로 유술기가 빠져버린게 아닌가 추정된다.
스포츠화된 검도에만 익숙한 현대 검도인들은 몸싸움에 대해서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고[26] 코등이 싸움이나 몸받음을 몸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두 가지는 많이 다르다. 진검에는 코등이 싸움이 없다. 진검끼리 싸울 때는 날이나 코등이끼리 서로 밀면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상황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두 진검이 맞닿은 시점에서 약간만 밀어주면 칼날이 상대의 얼굴과 어깨를 파고들어가게 된다. 그러니까 칼끼리 맞붙은 순간에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재빠르게 다음 행동으로 이행해야된다.
  • 상격의 문제 진검 싸움에서는 칼을 맞을 경우 피해가 크므로 회피와 방어가 중요하지만 검도는 양쪽 다 공격받았을 경우 먼저 유효타돌을 이룬 쪽이 이긴다. 실제 진검 승부라면 둘 다 죽을 확률이 있다. 물론 저지력의 측면에서 보자면 먼저 친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지만. 키리오토시같은 카운터가 아니라 상대의 칼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같이 치는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내 칼이 반드시 먼저 닿으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검이라면 상대가 공격하는데 무작정 같이 치는건 나올 수가 없는 동작이다.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검술에서 불확실성은 굉장히 위험하다. 목숨걸고 도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또 손목같은 경은 같이 치면 무효가 나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상대가 손목을 치면 방어하거나 회피하는 게 아니라 같이 손목을 쳐서 상격을 만들고 연타로 머리를 쳐서 득점을 하는 진검으로 보자면 황당한 전술도 있다. 회피하거나 방어하면 자세가 나빠지니까 도장에서는 상대가 때리면 '피하거나 막지 말고 상대보다 먼저 공격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운동화된 검도의 입장을 고려하면 훈련 방식으로서는 나쁜 말은 아니지만[27]
  • 검도의 경우 검리의 습득을 위해 검도형이 있는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 검도형은 근래의 일본에서도 승단 심사를 위해서만 연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경시되고 있으며, 검도형의 경쟁이 연무 시합이라는 형태[28]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검도형을 재검토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입문자에게 기존의 검도형이 난이도가 있다는 이유로 간략화된 별도의 형을 보급하고 있다. 「木刀による剣道基本技稽古法(목검에 의한 검도 기본기 계고형)」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진검형이 아니라 멘(머리), 코테(손목), 도(허리), 츠키(찌름)의 실제 검도 기술에 초점을 맞춘 형이다. 영상 현재의 운동화된 검도의 형편에 맞춘 형이기 때문에 소도형 없이 대도형 9개 만으로 구성되며, 기술도 모두 중단형이고, 교전 중에서는 밀어걷기 위주로 구성된다. 이 기본기 계고형이 현재 시합 검도의 기술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시합이라면 모를까 현피에서는 실력이 별 의미가 없다. 선빵에 성공하면 무조건 이긴다. 검도는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기의 파괴력이 맨몸보다 높다는 점을 상기하자. 선빵으로 단 한방에 보낼 수 있다면 검도 사범이 상대라도 이긴다. 주먹이나 발차기는 단련해야 강해지지만 쇠파이프 정도만 되어도 아무나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강한 위력을 낸다.

죽도와 호구를 갖춘 수련이 도입되던 시기 고류 유파들이 죽도를 까던 이유가 죽도 수련에 익숙해지면 죽도와 진검의 차이 때문에 진검술, 실전과 괴리가 생기기 때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주류 검도는 과거의 수련 방식을 가져왔지만 운동으로 바뀌었다. 진검술을 익힐 생각으로 발을 들이면 분명히 실망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검도 vs 고류 논쟁이 일어나면 검도의 시스템은 고류 검객들이 만든 것이고, 고류 유파 중에서도 죽도 계고를 중시하던 성공적이며 강력한 유파들이 있으니 검도의 타당함을 설파하기도 한다. 또한 서두에 말했듯이 이런 비판 자체가 옛날부터 있어왔던것이고 격검의 운동화는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다. 애초에 죽도 수련이 널리 퍼진 건 안전하게 유파들끼리 시합이 가능한 게 한 몫했다.
옛날에도 규칙의 빈틈을 노려서 하체 공격을 전문으로 하는 유파가 두각을 보인다거나 긴 죽도를 써서 이긴다든가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고류에서의 죽도 수련이란 기본적으로 검술 수련의 한 방편이란 것이다. 죽도 계고를 중시하던 고류, 신류 무술들도 결국은 진검 싸움을 전제로 죽도를 훈련 방편의 하나로 쓴 것이다.[29] 죽도술만 독립하는 순간 검술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즉 검도가 검술로서 부적합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검도에 매몰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검도는 전전 검도에 있던 유용한 기술들이 빠지고 안전한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유용함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30] 더욱이 시합화가 많이 된 현대 검도는 과거 죽도를 썻던 유파들이 수련 과정에 얻을 수 있었던 실전적 면모[31]를 경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검거일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고, 해방 전에 전전 검도를 배우고 대한검도회를 만든 서정학 범사가 해방 후 검을 배운 후배들이 옛날 검도와 현대 검도의 차이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괜히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32]

4.2.2 장점

  • 간합 감각, 대련 경험 기르는 데 좋고 운동량이 크다. 진검과 목검을 이용한 슨도메 훈련 만으로는 격렬한 실전에 가까운 경험을 쌓기가 힘들지만, 죽도와 호구를 이용하는 대련은 실전에 준하는 경험치를 빠르고 안전하게 쌓아준다. 이는 죽도를 도입한 고류 신류 유파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 검도 대회의 경험으로 고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을 장려한다. 스승이랑 제자랑 산속에서 둘이서 바둑을 두면서 스승님이 세계 최고 바둑 고수, 나는 두번째 바둑 고수 해봤자 누가 인정하겠는가? 도장에서 대련할 때 최강자라 할지라도 전국 대회에 한번 나가보면 세계의 넓음을 깨닫고 겸허해진다.어느 대회가 안 그러겠냐만은 대련보다 형의 수련을 중시하는 타입의 고류 검술에서는 기술의 누출을 막기 위해서 외부와의 교류를 꺼렸으며, 실력이 될 때까지 문하를 타 유파와의 시합에 절대 내보내지 않았고, 그 실력이 되는 수준까지 가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게다가 현재의 고류 도장들은 전부 영세하고 작아서 유명 유파가 아니면 도장 이을 후예도 부족할 지경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큰 물에서 좋은 경험을 해볼 기회가 정말 얻기 힘들다. 반면 검도는 무수한 대회를 통해 매우 많은 경험을 제공한다. 더 많은 경험이야말로 무술이 지향하는 바에 합당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검도 대회라는 이점은 확고하다.
  • 나이를 들어 서도 할 수 있고, 부상의 위험도 크지 않다. 다른 격기가 젊어서 한 때 하거나 부상 위험이 따르는 것에 비해. 검도의 경우 상대적으로 긴 시간 수련 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부상이 적은 편이기도 하다.다만 그렇다고 사람끼리 싸우는거니 안다치는건 아니니 주의가 필요하다.
  • 기부림을 통해 일종의 일탈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검도의 기합은 타격 부위를 외치는 것으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반적인 기합도 괜찮다. 꼭 머리 손목 허리 찌름이라고 또박또박 발음하지 않아도 된다. 시합 시작과 중간중간에 내는 기부림은 검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주민신고 들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내키는 대로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뒷산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해도 민원 들어온다. 그런데 검도장에서는 기합 크게 지르면 일단 칭찬받는다.
  • 검증되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스템 자체는 고류의 고수들이 만들었고 검술 훈련 시스템으로서의 우수함이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되었다. 아무리 검술을 창시한 시조가 강자였다 해도, 그것을 물려받아 가르치는 기술이 필요한데 검도는 오랜 기간 동안 도장으로 전해내려오면서 교습 체계가 완성되었고, 핵심을 가르쳐준다. (제대로 된 도장이라면) 사범이 머리 대주면서 키워준다는 걸 생각하면 교습 체계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 그 모든 것을 갖춘 도장이 여러 곳에 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제아무리 일본 고류가 진짜 칼싸움 하던 칼잡이들의 실전 비결을 계승한다고 해도, 그거 배우려고 일본까지 비행기 타고 가는 건 취미로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국 현실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고류를 배운다고 해서 진검만 들면 싸움에서 무조건 이길만큼 강해지지는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고류 검술은 전통 문화 개념으로 형태를 보존하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둔다. 그래서 카타에 집착하는 것도 옛날에 까였다. (...) 이래도 까이고 저래도 까이고 다만 검리라는 면에 있어서 검도보다는 고류가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진실이다. 검도의 보완으로 고류나 거합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죽도와 대비되는 진검이란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고 사실 이런 검술들은 죽도술을 아주 배제한 검술이라 배우면 양쪽이 따로 노는 현상이 발생할 수가 있다. 예를들어 거합도에서 배운대로 상대방 머리에 죽도를 끝까지 내려치면 당장 욕을 한 사발 먹을 것이다. [33] 또한 유파에 따라서는 보법이나 중요시 하는 기술체계가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다. 그런면에서는 검도의 뿌리가 되면서 죽도검술을 수련했던 일도류 계열이나 기타 유파들이 죽도술을 사용한 검술습득에 있어서는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접근성이 엄청나게 좋지 않다는 것.

일본에서는 전검련에서 검도, 거합도(이아이도), 장도(조도) 세 종목을 겸하여 다루고 있다. 검도는 죽도로 하는 겨루기 종목이고, 거합도는 진검술이며, 장도는 진검과 유사한 형태의 막대기(목검)를 다루는 기술로 막대기를 이용한 호신술 정도에 해당한다. 본을 포함해서 위 세 가지를 겸하면 위에서 지적된 죽도 대련만 할 경우 부족한 부분이 상당히 해소된다. 우선 거합도를 통해서 진검을 들었을 시에 느끼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손의 감각 그리고 격자 부위 치기만으로 부족했던 가사베기나 잔심 등의 검리와 검을 든 마음을 익힐 수 있다. 장도의 경우, 장도를 다루며 장병기를 다루는 기술과 더불어 장병기에 대한 대처도 어느정도 익힐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검도, 거합도, 장도 세 종목을 모두 익혀야 막대기를 들어도 진검을 들어도 상당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죽도 검도만 인정하고 있고 거합도는 왜색이 짙다 하여 금하는 대신, 자체적으로 조선세법과 본국검법을 복원해서 실시하고 있다. 한국 전통 검술을 배운다는 점에서 나름 긍정적으로 볼 면도 있다. 하지만 조선세법, 본국검법의 경우 거합도와는 달리 중간에 맥이 끊겨 서적을 보고 복원한다는 한계가 있는데다가 제대로 복원이 되었다고 해도 애초에 검도와는 다른 검술이다. 게다가 대한검도회의 복원은 일본 검도의 검리에 꿰어맞춰 복원하였다는 비판이 있어서 전통 검술을 살린다는 의도에도 문제가 있다. 또한 검도의 승단 심사에 본국검법이 필수과목으로 들어가는데 수련자들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가는 면이 있다. 성악 시험을 보러갔는데 한국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판소리를 하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그래도 일본에서 직접 수련하고 온 검사들이 도장을 연 거합도는 소수나마 존재한다. 거합도는 말 그대로 거합을 수련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진검으로 연습한다. 간혹 위험하다고 가검으로 연습하는 곳도 있지만 대다수는 "진검의 무게를 모르면 검을 우습게 안다"라며 진검으로 시작한다. 그러기에 관원들 대부분이 성인이다. 요즘에는 다행히 가토리신토류북진일도류 등의 고류 유파나 영신류 등의 거합 유파가 한국 지부를 내기도 하는 등 죽도시합 일변도에서 숨이 좀 트이고 있으니 진검술을 찾는다면 그쪽을 찾아봐도 좋다. 장도는 일본에서 검도를 배워온 검도계의 초기 원로들은 나름대로 할 줄 아는데 죽도 위주의 커리큘럼 때문에 후대에 전수가 되지 않으면서 한국 주류 검도계에서는 완전히 잊혀졌다.

4.2.3 수련


머리! 머리! 머리!

처음에는 사범이 1:1 방식으로 가르치는데, 맨 처음에 파지법과 밀어걷기를 배운다. 그 다음엔 밀어걷는 동작에서 머리, 손목, 허리를 공간치기로 배운다. 이것은 일반적인 공격이라기보단 타격부위의 개념을 체득하는 단계다.

어느정도 숙달이 되면 이어걷기를 배우는데, 이어걷는 동작에서 나가는 머리, 손목, 허리를 배우면 작은동작(작은머리, 작은손목)까지 배우는데, 이것이 검도의 가장 일반적인 공격이다. 이걸 공간치기 혹은 타격대치기로 배운다.

어느정도 숙달이 되면 '빠른머리치기'[34]와 '연격'[35]을 배우면서부터 호구를 쓰게 된다. 여기까지 과정이 빠르면 1개월 늦으면 6개월정도가 걸린다. 호구를 쓰기 전까지 반복동작이 많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36] 검도 입문자 중 반 이상이 이 과정에서 그만두곤 한다. 즉, 주변에 한때 검도 배워봤다고 말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호구도 못 써본 1~3개월 이하의 수련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때부터 대련을 하게 되면서 초짜를 졸업하고 보통 검도인의 훈련 일정을 따라간다. 묵상→스트레칭→공간치기→빠른머리→(자세 연습 혹은 타격대 치기)→연격→대련→묵상이 보통이다. 여기에서 대련은 점수제로 가는 대련이 아니라 개별 동작부터 상호연습(모의 겨루기 혹은 자유대련)까지 포함하는데 보통은 후자를 가리킨다. 도장에 따라 요일을 정해서 정규 일정 대신 본국검법과 본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도 빠른머리를 하긴 하고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더 지독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37]

호구의 가격은 최소 3-40만원에서 최대 수천만원까지 나간다. 더욱이 호구란 공격을 받아내기 위한 갑옷이며 장기적으로 봐서 소모품이다. 대부분의 물건이 그렇듯이 가격이 올라갈수록 얻을 수 있는 성능의 향상은 적어진다. 그리고 호구라는 것이 천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죽 부품이 있는 관계로 관리가 까다롭고 위생 유지에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38] 그러니 초보라면 그냥 싼 것을 사는 것이 좋다. 부위별 명칭과 관리 방법은 일어 실력이 좀 된다면 일본 웹 사이트들을 참고. 전일본무도구협동조합 호구 업체

죽도의 경우 저렴한 것은 자루당 2-3만원 하지만 일제 고급 죽도의 경우 한 자루당 10만원이 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급 죽도든 싸구려 죽도든 내구성의 차이는 없으며 (다만 무게라든가 쥐는 감 등 다른 성능이 좋다는 의견은 많다.) 치다 보면 깨지는 건 마찬가지라 진지하게 검도를 파려면 고급 죽도 살 돈으로 싸구려 죽도를 몇 개를 세트로 사는 게 훨씬 이득이다. 다만 대회용으로 고급 죽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죽도가 깨졌다고 하는건 보통은 대나무 살이 부러지거나 가시가 튀어나왔을 때인데 깨진 죽도 들고 대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39] 호면 사이에 들어가거나 도장 바닥에 조각이 떨어져 안면 또는 족부에 심한 부상을 입힐 수 있다. 다만 죽도가 깨졌다면 전체를 버리지는 말고 멀쩡한 살은 따로 보관해두자. 다른 헌 죽도의 멀쩡한 살을 모아 조립할 수 있기 때문. 검도용품점에서는 병혁부터 등줄까지 죽도 부품을 팔기도 한다. 조립 말고도 죽도에 기름을 바르거나 사포질로 문대는 등 다른 관리 방법은 많다. 죽도가 상하는 게 싫어서 카본계 죽도를 사는 경우가 있지만 대련 때 쓰면 노답 취급 당한다. 너무 단단해서 상대방의 죽도나 몸이 상하기 때문이다.

호구와 죽도를 쓰기 때문에 별로 부상을 입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부상이 많다. 맞아서 드는 부상은 목 옆부분이나 팔뚝같이 주로 호구가 없는 부위를 맞았을 경우에 입는다. 하지만 너무 세게 맞으면 호구를 쓴 손 같은 부위가 다치기도 한다. 또 체격차가 큰 상대에게 몸받음을 받았을 때도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그리고 혼자 다치는 경우가 많은 게 함정이다. 특히나 많이 다치는 게 다리 부분으로 아킬레스 건 부상은 늘 조심해야된다. 그밖에 마루에서 맨발로 운동하기 때문에 발가락과 발바닥이 까지거나 죽도 파지시 손에 물집이 잡히는 건 기본적으로 초보때는 다 경험한다고 보아야한다. 아무리 안전한 운동이라 해도 대련을 하다보면 부상이란 게 따라 올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검도는 비용도 비용이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편이라 그런지 인구 연령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재미있는 건, 주짓수나 무에타이와 함께 성인관원의 비중이 높은 무술이다보니 월요일금요일에는 출석률이 현저하게 낮은 경향이 있다.

유단자에게도 찌름을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가슴 찌름이 없어졌지만 목을 노리는 한손 찌름, 두손 찌름은 남아 있다.[40] 그렇다고 해도 '목을 노리는 기술'이라 상대방에게 매우 위험하다![41] 때문에 당구에서 300 이하에겐 맛세이를 금지하듯이 2단 이하는 찌름 자제라는 불문율이 있다. 근데 이건 한국에만 해당되고 일본에선 초심자에게도 찌름을 가르친다. 애초에 찌름 자체가 유효 부위가 가장 작고(호면의 목보호대) 빈틈이 많은 기술이라[42] 겨루기에서 보기가 어렵다.

상단이나 이도 매력적인 방식들이긴 하지만 인구가 별로 없다. 배가본드 보고 혹해서 사범에게 가르쳐달라고 말하면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중단이나 잘 하라고 할 확률이 높다 한국의 경우 이도를 전문으로 수련한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일본 비디오 자료를 구해 독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대회에서 이도를 쓰는 사람들의 실력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다만 상단은 어렵지만 위력적인 방식으로 여겨지는 터라 고단자들 사이에서 종종 볼 수 있다한때 가슴 찌름이 인정될때에는 전멸했었지만 최근들어 없어진 이후 다시 보이고 있다. 이도는 과거에 방어에만 전념해서 비기는 수를 쓰는 일이 많아서 학생 검도에서는 이도가 금지되었고 이도에 한해 가슴 찌르기가 인정되는 핸디캡이 있는 관계로 인구가 준 것이다이도가 우주방어를 시전할 경우 초심자도 고수를 상대로 무승부를 이끌어낼 수가 있다. 진짜로 배운 사람은 일도를 그냥 썰고 다닌다. 이건 이도가 흔치 않아서 대응방식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때문. 검도 규칙 상 이도가 일도에 대해 압도적인 이점은 없다보니 흔히 보기는 어려웠으나, 최근 공식 시합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인구가 적기 때문에 (상단보다 더 적다) 독학을 하거나 알음알음 이도 모임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배워야 한다.

4.2.4 승단

급은 9급부터 1급까지, 단은 초단부터 9단까지 있다.[43][44] 4단 사범(師範) 5, 6단 연사(鍊士) 7단 교사(敎師) 8, 9단 범사(範士) 라는 또다른 명칭이 있다. 처음 입문하면 무급이고, 2달에 한번씩 보는 심사를 통과한 후부터 급이 생긴다. 초등학생까지는 9급, 중고등학생은 7급, 성인은 5급부터 시작하고 1급에서 3달이 지나면 초단 승단 심사 자격이 생긴다. 그다음 2단은 초단에서 1년이상, 3단은 2단에서 2년이상... 이고 8단과 9단은 각각 7,8단에서 10년 이상 지나야 심사를 볼 수 있다. 나이제한은 초단이 만 14세 이상이고 8단 만 48세, 9단 만 65세 이상이다. 다만 만 10세~12세까지는 1급에서 6개월을 수련한후 소년 초단 승단심사 신청이 가능하고, 만 11세~13세까지는 소년 초단에서 1년 수련 후 소년 2단 승단심사 신청이 가능하다. 소년 초단은 만 13세, 소년 2단은 만 14세가 되면 자동으로 초단, 2단으로 전환이 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각 단 별 심사 내용은
  • 초단~5단-실기, 본국검법, 검도의 본, 학과
  • 6,7단-실기, 본국검법, 검도의 본, 학과, 심판능력
  • 8단-실기, 본국검법, 검도의 본, 논문
  • 9단-심사회에 의한 서류심사

5 관련 항목

5.1 인물

5.1.1 실제

5.1.1.1 한국
  • 강상훈 ㅡ 연사 6단. 제13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김경남 ㅡ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2회(6,7회).
  • 김완수 ㅡ 연사 6단. 제15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준우승.
  • 박병훈 ㅡ 5단. 제14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준우승.
  • 박상섭 ㅡ 교사 7단. 제10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박중채 ㅡ 제3회 국제소년검도대회 개인전 우승.[45] 제6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서병윤 ㅡ 범사 8단. 대한검도회 이사.
  • 서정학 ㅡ 前 범사 9단. 前 대한검도회장. 검선도 창시자.
  • 오길현 ㅡ 연사 6단. 제13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이강호 ㅡ 연사 6단. 제14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이종림 ㅡ 범사 8단. 대한검도회 회장. 제2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임근배 ㅡ 교사 7단. 제12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장만억 ㅡ 4단. 제16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조승룡 ㅡ 범사 9단.
  • 홍성수 ㅡ 교사 7단. 제11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5.1.1.2 일본
  • 니시카와 키요노리(西川 淸紀) ㅡ 범사 8단.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3회 우승.
  • 미야자키 마사히로(宮崎 正裕) ㅡ 교사 8단. 헤이세이의 초인.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6회 우승(2연패 2회), 준우승 2회. 제10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
  • 미야자키 후미히로(宮崎 史裕) ㅡ 교사 8단. 마사히로의 친동생.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우승 1회, 준우승 1회. 제10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준우승.
  • 에이가 나오키(榮花 直輝) ㅡ 교사 8단.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우승 1회, 3위 2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11회), 3위(9회) 각 1회.
  • 우치무라 료이치(内村 良一) ㅡ 연사 6단.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우승 3회, 준우승 3회.
  • 이시다 토시야(石田 利也) ㅡ 교사 8단.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우승 2회. 제10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치바 마사시(千葉 仁) ㅡ 범사 8단. 상단의 치바. 상단에 대한 득점으로 가슴 찌름이 인정되던 시대에 3회 우승을 달성한 것이다.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3회 우승. 경시청의 사범으로써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가 스승이 가져야 할 자세로서 언급한 말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제자를 키울땐 꽃을 키우는 것과 같이 키워라. 키우면서 뽑지도 말고 밟지도 말고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물을 주어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스승의 도리다. 나중에 꽃이 자라 나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본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억지로 나를 바라보게 하지 마라. 자연스럽게 맘속으로 우러나서 나를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스승이다.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지만 나 또한 제자에게 배워야 한다. 체벌과 수직적 관계로 어릴 때부터 억압되어 교육받는 체육계 뿐만 아니라 사제관계 일반에도 큰 교훈을 준다.
  • 타카나베 스스무(高鍋 進) ㅡ 교사 7단. 머리치기의 달인.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우승 2회(2연패), 준우승 1회, 3위 1회. 제15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
  • 타케노우치 유야(竹之内 佑也) ㅡ 4단. 최연소(21년 5개월. 그전 기록은 21년 9개월이었다.)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우승자. 제16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준우승.
  • 테라모토 쇼지(寺本 将司) ㅡ 교사 7단.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우승 1회, 제14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
5.1.1.3 미국
  • 크리스토퍼 양(Christopher Yang)
연사 7단.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학창시절부터 부모의 지원 아래 방학 기간 동안 일본에서 일본 학생검도선수들과 합숙하면서 수련하였다.[46] 세계검도선수권대회도 10회부터 16회까지 꾸준히 참가하였다. 11회 대회 때는 일본의 미야자키 마사히로와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두번 맞붙은 에토 요시히사를 개인전 토너먼트에서 꺾었다. 특히 13회 대회 때는 미국대표팀으로 출전하여 단체전 준결승 부장전에서 일본 선수를 2대 0으로 제압하여 합계 3대 2로 일본을 꺾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지금도 시간이 허락하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경찰선수들과 같이 운동을 하고 있다. 세계대회에서 한국선수에게는 패한 적이 없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탑클래스의 선수이다.[47] 원래 직업은 변호사이며,[48] 현재는 도요타 자동차의 북미지부 법률자문을 맡고 있다. 부인이 한국 여자검도 국가대표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대니얼 양(Daniel Yang)
6단. 크리스토퍼 양의 친동생으로 미국 대표팀 멤버이다. 11회부터 16회까지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였다. 13회 대회 단체전 준결승에서 2위로 출전해 일본의 다카나베 스스무를 2대 0으로 제압해 형과 함께 일본의 독주를 저지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49]14회 대회 때 또 다시 다카나베 스스무와 단체전 부장전에서 맞붙었는데 득점없이 무승부를 기록하였다.[50] 현재 Okaya USA라는 회사에서 판매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51]

5.1.2 가상

5.2 창작물

  1. 물론 경시청류의 카타와 현재의 검도의 본에는 차이가 있다. 경시청류의 경우 10가지 검술 유파에서 한 가지씩 기술을 채용해서 만들어졌다. 이게 잘못 전해져서 일본검도형도 기술을 하나씩 채용한걸로 아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 검도형은 어느 형에 어느 유파가 들어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일본 검술의 정수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검도형은 중등학교 교육용으로 기본적인 기술 습득을 목표로 만들어진 것이다.
  2. 다만 전검련은 검도의 정식종목화에는 반대하고 있어서 이 부분의 노선은 서로 다르다.
  3. 사실 다분한 정도가 아니라 저런 용법으로 유구한 한민족 검술로 둔갑한지 오래다. 잡탕찌게화 된 해동검도회나 온갖 사이바 검도 단체 뿐만 아니라 일본 검도가 분명한 대한검도회 조차 이런 사기극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4. 앞서 말한 준거 금지, 홍백기 대신 청백기 사용.
  5. 신소재 개량 호구는 일본에서도 연구되고 있는 부분이긴 하다.
  6. 일본에서 만들어진 현대 검도와는 관계 없던 것을 검도에 끼워넣는 셈이라 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다. 거기다가 쯔르기라는 말이 찌르기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삼국시대 건너건 검술이 일본의 검술이 되었다는 헛소리도 시전하고 있다. 다분히 역사 왜곡의 의도가 있다.
  7. 조선세법과 본국검법 모두 무예도보통지의 그림과 원문을 해석하여 재현한 것이다.
  8. 16회 대회까지 개최되는 동안 단체전, 개인전을 통틀어 유일하게 일본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경우이다.
  9.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미일전 준결승 영상을 보면 이시다 토시야, 미야자키 마사히로, 에이가 나오키가 선수강화위원으로서 해당 경기를 나란히 참관하는데, 부장전부터 대장전까지 그들의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10.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대표팀 선수 중엔 한국이나 일본처럼 전업 검도 선수가 없다. 변호사, 증권 트레이더,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말 그대로 자기 시간을 최대한 내어 수련을 한다. 그럼에도 입상을 하고, 심지어 13회 대회에서 일본을 꺾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11. 대한검도회에서는 왜색을 뺀다는 이유로 준거가 없다. 그냥 중단만 서고 시작.
  12. 다만 일본 룰에서는 상대의 왼쪽 허리를 치는 것은 판정이 비교적 짠 편. 지역이나 심판에 따라서는 왼쪽 허리에 대한 타격은 절대로 한판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진검승부의 실전이라면 왼쪽 허리에 소도를 한자루 더 차는데다 칼집까지 있는지라 제대로 타격을 입히는게 어렵기 때문이라고.
  13. 방송이나 영화에서 검도 장면이 나오면 대련 끝에 한쪽이 넘어지고 승부가 가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넘어지는 건 판정과 큰 상관이 없다. 약간의 굴욕감만 있을 뿐. 검도를 배워본 적이 없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타돌부를 치는 것보다 넘어지는 것이 극적 임팩트가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연출하는 듯 하지만 제대로 친 역허리 같은 공격은 넘어지는 것보다 임팩트가 몇 배는 강하다. 90년대 중반 검도 붐을 일으킨 드라마 모래시계 3회에서는 우당탕탕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호쾌한 받아허리로 도장 씬을 갈무리했다. PD들 보고있나?
  14. 한국은 왜색을 빼기 위해 청백기를 사용한다.
  15. 캐나다 대표팀의 매튜 레이몬드라는 선수가 대표적이다. 단체전 경기에서 일본의 명검사 에이가 나오키와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16. 사실 안될 건 없다. 전적으로 전자판정에 의지하지 않고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로 올림픽 진출도 반대하는 일본 검도계에서 전자장비를 호구에 부착시킬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17. 제47회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에서 미야자키 마사히로 선수와 에이가 나오키 선수의 대결이 그런 경우였다. 후에 에이가 나오키 선수는 자신이 명백히 득점했음에도 미야자키의 승리를 인정하였다.
  18. 검도의 기본자세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자세에서 그대로 몸을 날려 목을 찌르는기술, 선수들은 당연히 연마하는 기술이지만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도장 내에서는 부상위험을 이유로 상호간 찌름을 자제시키는곳이 많다
  19.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검도의 기본자세가 죽도를 상대방의 목을 향하도록 하고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도대련시 실수로 상대방의 목에 부상을 입히거나, 지도자들이 수련생이 다치지 않는선에서 기본자세의 중요성을 교육하기위하여 일부러 목에 죽도를 걸어버리는 일이 많다
  20. 그래서 이런 직군의 경우 검도나 유도와 같이 시장이 큰 무술의 고단자들은 그들 간의 인맥이 생기는 효과도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이점 또한 있다. 그러나 그런 인맥이 유익하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서둘러 친해지지 말고 주의하자. 검도 경기 중 간합 조절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21. 엄밀히 말하자면 경찰이라고 해서 진압봉을 누구나 항상 휴대하는 것도 아니고 죽도와 진압봉은 규격 차이가 커서 용법이 많이 다르다.
  22. 그것도 휴대가 불편할 정도로 긴 것. 죽도는 진압봉보다 훨씬 길어서 용법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23. 검도 교육에서 제일 강조하는 타격 부위
  24. 당시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검을 더 잘 다룬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당시 사람이 노다치 든 검도 유단자를 와키자시로 압도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에도 평화기에 진검으로 싸우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진짜 실전을 치른건 전국시대고 이때도 검은 보조적 위치였다. 물론 극강으로 보이는 소드마스터급들이 몇몇 존재하긴 하지만 평화기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검사는 실전한번 안치룬 경우가 태반이다. 유파가 동일하다는 전제하에서라면 실전 경험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체격도 훨씬 좋은 요새 검사보단 강하단 보장은 없다.
  25. 간혹 단검을 들고 싸울 일은 있지만 단검은 일반 검도에서 다루지 않는다. 일본에는 단검도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단검도 시장이 없다고 보면 된다.
  26. 펜싱도 마찬가지로 레이피어 검술 시절에는 호신술이었으나, 일부 계층에게만 도검 휴대가 용납되면서 스몰 소드 검술이 되었다. 이 때까지는 그래도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으며 목숨을 건 실전을 상정했으나 펜싱 포일이 등장하고 이에 특화된 운동이 되어 실전 검술의 흔적이 없어졌다.
  27. 훈련 방식으로만 보자면 저 말은 고류-검도 가릴 것 없이 지극히 올바른 말이다.
  28. 어느쪽이 더 매끄럽고 뛰어나게 연무했는가, 즉 칼춤을 예쁘게 추었는가를 겨루는 시합. 대결이 아니라, 우슈에서 화려하게 칼춤 추는 것을 체조 점수 매기듯이 채점하는 것과 같은 형태다. 일본에서는 현재 전일본검도연무대회가 있다.
  29. 기본적으로 죽도 유파라도 형, 죽도술, 거합 이 3가지의 수련을 행하였다. 또 여기에 추가로 유술이 들어간다. 거합을 빼고 죽도술과 형은 있지 않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형도 문제가 되는게 북진일도류에서 최대한 줄인 게 43본이었다. 대도7본은 너무 간략화된 면이 있다. 실제로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검도의 형을 경전시 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서술이 적혀 있다.
  30. 전전 검도를 현대 검도와 비교하면서 옛날의 실전 검도처럼 보는 시각도 있는데 다른 면도 있긴 하지만 전전 검도도 문제가 없던것도 아니고, 유술기를 제외하면 그렇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예를들어 위에 보면 긴 죽도를 써서 이긴다던지 하는등 승리에 집착하는 모습은 이미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다.
  31. 풀 컨택트 수련이 가지는 장점인 실전에서의 공격성에 대한 적응, 검도의 본을 통한 검리의 학습 등
  32. 사실 현대 검도는 기술이라기보다 수양으로 많이 바뀐 모습이다. 특히 단이 높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33. 실제로 해동검도를 배우고 검도를 하는 사람들이 초기에 이런 도끼칼을 써서 상대를 아프게 하는 경우가 많다
  34. 통칭 빠른머리. 상대의 머리를 치고 뒤로 다시 돌아오는걸 반복함으로써 지구력과 공격속도를 늘려주는 훈련. 권투로 치면 줄넘기와 같은 위상인데, 보통 검도 수련 시작에 몸풀기로 적어도 100개는 기본으로 한다. 검도 사범이 수련생들 굴리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좀 지독한 경우엔 이걸 PT체조처럼 시키거나 아예 바리에이션으로 빠른손목 빠른허리 빠른머리손목 빠른손목허리 등등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머리를 치고 앞으로 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35. 호구 연습의 가장 기초로, 상대의 좌우머리를 연속으로 타격하는 연습을 뜻한다. 앞으로 이어걷기로 한번 크게 치고 밀어걷기로 좌우로 머리를 치고, 그 다음에 뒤로 물러서면서 밀어걷기로 좌우로 머리를 치고 다시 앞으로 이어걷기로 크게 친다. 여기에서 치는 쪽은 보통 공격과 함께 뒤로 물러서서 치는 '퇴격'을 배우고, 받는 쪽은 칼을 방어하는 쪽을 배운다. 물론 치는 쪽부터 배우며, 받는 쪽이 초심자를 배려해서 머리를 내주는 암묵의 룰이 존재하긴 한다.
  36. 일본 사무라이 만화에 심취해 검도를 시작한 오타쿠의 비율도 높은 편인데, 이러한 기초 과정을 못참고 '비천어검류 언제 가르쳐주시나요?'라고 질문해 관장과 사범을 벙찌게 만든 사례도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검도인들 사이에 돌았던 이야기다.
  37. 주로 선수 출신 관장들이 선수용 커리큘럼을 일반 수련자에게까지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배운 커리큘럼 그대로를 활용하는건데, 선출이 아닌 일반인들은 그저 죽을맛이다.
  38. 깔끔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도 호구 관리 방법은 젖은 수건으로 닦고 그늘에서 말리는 정도가 고작이다. 일반 호완(장갑이라고 보면 된다.)은 냄새가 심해지는 부작용도 있어서 세탁을 안 하는 편이 낫다! 손등 바깥 부분을 가죽 대신 손목 부분처럼 섬유로 만들어서 세탁 가능한 제품들도 있다. 오리사시 호완이 일례. 사실 수명 생각 안 하면 호구를 세탁해도 상관은 없다. 호면(헬멧이라고 보면 된다.)의 경우 면금을 둘러싸고 있는 부분(멘 부치)이 물에 불면 모양이 흐트러져서 못 쓰게 된다카더라.
  39. 끝이 갈라진 시위용 죽창이 왜 위험한 무기인지 생각해보자. 최악의 경우 상대방이 실명할 위험이 있다.
  40. 이도 선수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인정하는 것으로 최근에 규정이 바뀌었다.
  41. 급소에 해당하는 부위로는 성기와 명치 외에도 똑바로 서있을 때 그림자가 지는 부위들 대부분이 있다.
  42. 잽 쓰듯이 견제용으로 쓰는 것은 경고 사유이고 진짜 공격을 위해서 써야 한다. 찌름이 사정 거리가 가장 길긴 하지만 (특히 한손 찌름) 중단에서 가장 읽히기 쉬운 기술이라, 막히면 머리를 내 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상단과 하단에겐 찌름이 효과적이다.
  43. 일본검도엔 10단이 존재했으나 2008년 9단과 10단을 폐지해서 8단까지 존재한다.
  44. 2013년 조승룡 9단의 별세 이후 현재 한국엔 검도 9단이 한 명도 없다.
  45. 한국이 유일하게 가진 세계대회 개인전 우승기록이다. 한국선수의 우승 이후, 이 대회는 폐지되었다.
  46. 이때 일본의 고교시합에도 참가했는데, 800여명이 출전한 대회에서 16강에 들었다.
  47. 첫 출전한 세계대회 때 그는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에이스였던 양진석 선수와의 단체전 시합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48. 학부는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전공으로 우등 졸업하였고, 츠쿠바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 졸업하였다.
  49. 다카나베는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으로 이 경기를 꼽았다. 이 때의 패배가 없었다면, 전일본 우승은 물론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거라고 한다.
  50. 당시 다카나베는 상술했듯이 2010년과 2011년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 2연패를 한 선수다. 직업으로 검도를 하는게 아니라 틈틈히 쌓아온 수련이란 걸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51. 학부는 UC 어바인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일본의 츠쿠바대학에서 국제학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52. 호노카와 우미 둘 다 코믹스 설정 한정으로 같은 검도부다. 다만 호노카의 경우엔 검도 설정이 다른 매체에서 삭제된 반면, 우미는 특기에 당당히 검도라고 설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