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트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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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에

에우제비우와 함께 유러피언 골든부트를 수상하다
F.C. 바이에른 뮌헨 II 수석코치
게르하르트 "게르트" 뮐러
(Gerhard "Gerd" Müller)
[1]
생년월일1945년 11월 3일
국적독일
출신지바이에른 주 뇌르들링겐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장176cm
소속 팀TSV 1861 뇌르들링겐 (1963~ 1964)
FC 바이에른 뮌헨 (1964 ~ 1979)
포트로더레일 스트라이커즈 (1979 ~ 1981)
국가 대표62경기, 68골
지도자 경력FC 바이에른 뮌헨 II 수석코치 (1992~ )
1969 Ballond'or
수상
잔니 리베라
2위
루이지 리바
3위
게르트 뮐러
1970 Ballond'or
수상
게르트 뮐러
2위
보비 무어
3위
루이지 리바
1972 Ballond'or
수상
프란츠 베켄바워
2위
게르트 뮐러
3위
귄터 네처
1973 Ballond'or
수상
요한 크루이프
2위
디노 조프
3위
게르트 뮐러
1970 FIFA 월드컵 득점왕
게르트 뮐러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제프 마이어
(1977~1979)
게르트 뮐러
(1979)
한스-게오르그 슈바르첸벡
(1979~1980)

1 개요

Der Bomber (폭격기)
축구 역사 이래 올타임 No.1 스코어러
FIFA 월드컵, UEFA 유로컵, UEFA 챔피언스리그 에서 우승과 득점왕을 모두 차지한 유일한 선수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 득점자


골잡이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2 일대기

2.1 데뷔

1945년 11월 3일, 독일 뇌르들링겐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항상 축구를 했죠." 그리고 그는 항상 1.FC 뉘른베르크에서 뛰고 싶어했다고 한다. 솔직히 거기 안 간게 다행이다 그리고 그는 출신 지역 팀인 뇌르들링겐에서 1963년 데뷔했는데, 데뷔하자마자 31경기 51골(...)을 기록했다.

2.2 FC 바이에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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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합 사기 캐릭터 3명이 모두 같은 팀이다.[2]

그리고 1964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카우터가 그를 스카웃해갔다. 그 팀은 다름 아닌, 당시까지는 분데스리가 신흥 강호로서 팀 몸집을 불리고 있던 FC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그리고 그는 팀에서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는데, 그 친구들이 다름 아닌 프란츠 베켄바워(...)제프 마이어(...). 독일 역대 최고의 공격수, 수비수, 골키퍼가 함께

시즌클럽리그FA컵대륙대회통산
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64/65Bayern München2633103235
1965/66Bayern München33154613916
1966/67Bayern München3228647984543
1967/68Bayern München3419744874630
1968/69Bayern München30304573537
1969/70Bayern München33381034203842
1970/71Bayern München322214710874739
1971/72Bayern München34401665854850
1972/73Bayern München33368576124455
1973/74Bayern München343010451084843
1974/75Bayern München33231532754330
1975/76Bayern München2223367653435
1976/77Bayern München25284411453344
1977/78Bayern München3324734644232
1978/79Bayern München1990242113
총합Bayern München453398118

공격 포인트 조차 끝판왕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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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바이에른 뮌헨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팀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리그 우승이 1번 밖에 없었던 바이에른 뮌헨은 1970년대 이후 독일 축구의 왕으로 등극한다. 당시 분데스리가는 지금과는 달리 세계 최고의 리그였다. 강력한 경쟁자로는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유프 하인케스, 귄터 네처 등의 버티는 최강의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에서 4번, DFB - 포칼에서 4번 우승하는데, 이 때의 주역은 분명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였다. 프란츠 베켄바워의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반복된다. 이 경기에서 프란츠 베켄바워가 잘했다. 그리고 게르트 뮐러가 결승골을 넣었다.(반복, 반복, 반복...) 그야말로 게르트 뮐러가 없었다면 바이에른 뮌헨은 이러한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프란츠 베켄바워, 울리 회네스, 칼 하인츠 루메니게, 파울 브라이트너, 제프 마이어 같은 동료들이 모두 인정한 부분. 그야말로 바이에른 뮌헨의 구단 역사에서 최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 & 독일 올해의 선수 2회로 당시 유럽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를 완전히 평정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정신나간 조합"을 내세운 바이에른은 1970년 들어 마침내 유럽무대를 정복한다.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우승. 그것도 3연패(1974, 75, 76).[3]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은...득점왕 4회로 설명이 끝난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클럽이 3연속 우승했던 때에 맞춰서 득점왕 역시 당시 전무했던 3연패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4]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을 포함한 유럽 클럽대항전에서만 때려넣은 골이 69골. 2010년 말에 라울 곤살레스필리포 인자기가 경신하기 전까지 확고부동의 1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미라면 유러피언 골든슈 2회. 특히 1972년 수상 당시에 세운 기록이 바로 그 유명한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 55골.[5] 이렇게 날아다녔으니 발롱도르를 받아야겠지. 발롱도르 포디움에도 4번이나 들었다. 사실 한번밖에 못받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이게 다 두 놈 때문이다. 3인자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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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전설에게

리오넬 메시는 게르트 뮐러의 기록을 경신하고 그에게 자신의 사인과 게르트 뮐러에게, 저의 존경을 담아'라고 적힌 유니폼을 보내며 경의를 표했다. 현재 이 유니폼은 바이에른 뮌헨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게르트 뮐러는 리오넬 메시의 기록 경신은 대단히 축하하면서도, 그의 유일한 단점은 바이에른 뮌헨 선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라며 유머를 던지기도. 독일식 유머

2.3 국가대항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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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페인보다 훨씬 이전에 메이저대회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던 팀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유로 1976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졌다.

당시의 독일 대표팀은 람바참바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이는 유럽의 삼바 축구라는 뜻으로 역대 최강 팀인 1970년의 브라질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붙혀진 별명이다. 1970년대 바이에른 뮌헨처럼, 1970년대의 서독도 역대 최고의 축구 팀을 얘기할 때 반드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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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이탈리아와의 4강전이 끝나고, 지아친토 파케티와 함께

1970년 멕시코 월드컵
1경기 vs 모로코 2:1승 결승골
2경기 vs 불가리아 5:2승 해트트릭
3경기 vs 페루 3:1승 해트트릭
8강 vs 잉글랜드 3:2승 연장 결승골
4강 vs 이탈리아 3:4패배 연장에서만 두 골
5경기 10골로 득점왕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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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1972, 소련과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한 게르트 뮐러

유로 1972 우승의 일등공신

4강전 vs 벨기에 2:1승 2골
결승전 vs 벨기에 3:0승 (선제 결승골 + 마지막 쐐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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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들어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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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서독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한 게르트 뮐러 수비수 자세가 요염하다

내가 앞으로 달려가는데, 네덜란드 수비수 3명이 나를 마크하러 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살짝 뒤로 빠졌고, 공을 받아 구석으로 꽂아 넣었다. 뭐 그게 다다.

게르트 뮐러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 월드컵에서 게르트 뮐러는 7경기 4골로 뮐러 치고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뭐라고? 하지만 또 다시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독일의 월드컵 우승의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1974년 월드컵 결승은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와 프란츠 베켄바워의 서독간의 대결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작 1분만에 16번 공을 돌리던 네덜란드는 요한 크루이프에게 공을 패스했고, 요한 크루이프는 무서운 스피드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PK를 얻어냈다. 1분만에 요한 네스켄스가 PK를 성공시켰고, 이후 네덜란드는 서독을 농락시키며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독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자신들이 PK를 얻어내며 파울 브라이트너가 PK를 성공시켰고, 게르트 뮐러가 결국 환상적인 역전 결승골을 꽂아 넣었다. 사실 게르트 뮐러는 후반에 한 골을 더 추가했다. 분명 명백한 골인데도 오프사이드 판정이 선언되었지만 게르트 뮐러는 항의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렇게 심판이 오심을 하더라도 항의하지 않았다. 어차피 난 또 넣을 수 있어 아무튼 이렇게 월드컵에서 우승하여 진정한 커리어 끝판왕이 되었다.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보다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펠레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6]

호나우두 등장 이전 월드컵 최다 득점자이다. 월드컵에서만 13경기 14골로, 2014년 현재로는 클로제의 16골과 호나우두의 15골에 이어 3위다. 당시 월드컵 경기수가 지금보다 적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기록과 단순비교하기엔 더욱 가치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호나우두가 뮐러의 기록을 32년만에 드디어 경신했다고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걸 생각하면 74년 월드컵 우승은 부록이다.[7]

2.4 미국으로

1978/79 시즌 이후 바이에른 뮌헨에서 떠나게 된다. 당시 감독과의 불화가 있었고 전성기에서 내려오던 시점인 게르트 뮐러는 떠나기에 적절한 시기였다고 판단한 것 같다. 사실 FC 바르셀로나에서 그를 강력하게 원했다. 계약서까지 준비되며 사실상 입단이 확정되었지만, 무려 독일 정부에서 이적을 막았다. 그리고 FC 바르셀로나는 그의 대체자로 영입한 사람들이 요한 크루이프요한 네스켄스... 영입 안 하길 잘했다.

시즌클럽리그
경기득점도움
1979F. L. Strikers271917
1980F. L. Strikers36168
1981F. L. Strikers1750
통산F. L. Strikers80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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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파견된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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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 만난 인생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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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서 적으로, 미국에서도 그의 기록적인 득점 행진은 이어졌다.

결국 미국의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로 이적한다. 처음 5경기 동안은 무득점이어서 많은 비판을 들었으나, 6번째 경기에 4골을 꽂아넣으며 폭격기는 다시 임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에서도 2경기 1골이라는 놀라운 노익장을 과시하고 은퇴한다. 이 당시 조지 베스트와 함께 뛰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시너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르트 뮐러는 조지 베스트가 자신을 시기한 것 같다고 말한다. 조지 베스트는 스타가 되기를 즐겼으며 항상 팀의 중심이 되기를 원했다. 그런 상황에서 게르트 뮐러라는 스타가 있는 것은 조지 베스트에게는 성에 안 차는 일이었을 것이다. 조지 베스트는 게르트 뮐러에게 절대로 패스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조지 베스트는 적응하지 못하고 곧 팀을 떠나야 했다.

2.5 은퇴 후, 현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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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를 마치고 평화롭게 착륙한 폭격기

그는 프란츠 베켄바우어나 요한 크루이프처럼 쇼 비즈니스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어요. 그는 슈퍼스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삶을 선호했고, 가족들과 조용히 살고 싶어했죠. 사람들은 그가 거칠고 무뚝뚝한 사람일 것이라 예상하지만, 아니에요. 그는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만약 단 한 명의 절친한 친구가 필요하다면, 게르트 뮐러로 충분합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충직한 사내입니다. 그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져요.

- 파울 브라이트너

우리는 그를 옛 뮌헨 공항에서 만났는데,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라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 울리 회네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해서 논의했고 바로 다음 날 그를 보드진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했다.

- 칼 하인츠 루메니게

그는 완전히 자신의 삶을 되찾았어요. 그는 정말 훌륭한 인간이고, 그와 우리의 관계는 정말 강합니다.

- 울리 회네스

은퇴 후에 사망할 위기까지 갔다. 동료들은 미국 진출이 큰 이유였다고 말하는데, 언어는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진출한 것이 실수였다는 것이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간 수치가 무려 2,000에 달할 정도로 사망 직전까지 갔으나, 그의 곁에는 프란츠 베켄바우어, 울리 회네스, 칼 하인츠 루메니게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의 보드진이 된 그들은 게르트 뮐러를 구원하기로 하고 그에게 1992년 팀 코치직을 주었다. 그렇게 1군 팀에서 몇 년 코치를 하다가 2015년 현재까지 2군 팀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이것이 그의 저평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도 꽤나 모습을 자주 드러내고, 광고도 찍으며, 인터뷰도 한다. 물론 다른 전설들만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자주 소식을 들려 주고 있다. 1992년 이후로 술에 입도 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옥토버페스트 같은 행사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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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후계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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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빠와 아들 뚜비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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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광고도 찍었다. '뮐러 우유'라고...(실제 이름이다.)

3 플레이 스타일

전 수비수가 언제 실수를 할지, 아니면 언제 긴장을 풀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제 안의 누군가가 지시를 내려요. ‘뮐러, 이쪽이야!’ ‘뮐러 저쪽으로!’인사이드 아웃?

게르트 뮐러

게르트 뮐러가 주워 먹기 공격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로 아니다. 물론 그의 위치 선정이 큰 장점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 현재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하고 있는 리오넬 메시 같이 엄청난 스피드와 드리블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완성형 스트라이커였으며, 스트라이커로서의 모든 능력을 다 가지고 있었다. 완벽한 트래핑, 번개 같고 정교하게 이를데 없는 슈팅력[8](단거리나 중거리나 가리지 않았다.), 지칠줄 모르는 체력[9], 역도 선수같은 하체에서 나오는 완벽한 밸런스, 그리고 양발을 완벽하게 자유자재로 썼다. 테크닉도 대단해서 중거리슛, 발리슛, 심지어 로빙슛까지 못하는게 없었다. 위치선정 능력이 아니여도 그는 최정상급 스트라이커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골을 집어 넣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에 쉽게 주워 먹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위의 스탯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시스트도 상당히 많이 찍었는데, 이게 바로 연계가 안 된다는 말에 반박하는 증거다. 이타적인 플레이어였던 게르트 뮐러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훌륭한 원 터치 패스와 센스 있는 패스로 어시스트를 상당히 많이 찍었다. 사비 에르난데스처럼 완벽한 패스를 뿌려야만 훌륭한 연계인가? 다시 말하지만 게르트 뮐러는 스트라이커다. 스트라이커는 공격 포인트를 위한 포지션이다. 한 마디로 그는 스트라이커라는 역할을 그 어떤 선수보다도 잘 소화해낸,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이다.

그는 아까 말했듯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 메이킹에는 능하지 못한 선수였다. 게르트 뮐러보다 위에 뽑히는 선수들은 모두 플레이 메이킹에 능한 선수들이다. 이를 퍼포먼스적인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게르트 뮐러가 스트라이커로서 보여준 퍼포먼스도 이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게르트 뮐러보다 나은 플레이 메이킹을 보여주며 경기를 지배하며 게르트 뮐러만큼 훌륭한 커리어나 공격 포인트를 쌓은 선수들은 더 나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위에도 설명했듯이 그야말로 경기를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게르트 뮐러보다 나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퍼포먼스라면 측면에서 게르트 뮐러가 부족했기 때문에 폄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의 공격 포인트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스트라이커로서 그런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스트라이커가 해야 할 임무를 가장 훌륭하게 수행해낸 선수인데 퍼포먼스가 부족했다고?

그는 굉장히 겸손한 선수로 유명한 데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자가 "현대 축구에도 당신이 통할 것 같냐" 라고 묻자 "요즘 축구는 오히려 나에게는 좋은 환경이다. 내가 뛰던 시절에는 스트라이커만 수비하는 수비수가 무조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며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이는 곧 자신 있다는 뜻 되겠다. 그리고 실제로 또다른 뮐러가 그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겸손한 태도, 그리고 언론에 노출되는 걸 즐기는 스타성이 없어서, 저평가 된다는 측면도 있다.

또 그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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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골은 같다. 골 라인을 넘어가면 골인 것이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개인기나 기술이 아니라 순간적인 재치와 판단력이다.
공을 나에게 줘, 그럼 내가 알아서 할게!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런 그의 명언을 훌륭하게 대변했다.

아무튼 그가 등장하고, 은퇴한 이후 골에 관련된 기록은 모두 그가 가지고 있었다. 세월이 가면서 하나 둘씩 깨져가긴 했지만, 정말 대단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그냥 스탯을 보자. 봄버(Bomber)의 위엄 앞에 무릎 꿇어라!

파일:AmzO2Tk.jpg

커리어 통산 855경기 803골

클럽에서 555경기 486골

국가 대표로서 62경기 68골

월드컵에서 13경기 14골

시즌클럽리그FA컵대륙대회통산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63/64TSV Nordlingen33463346
1964/65B. Munchen26333235
1965/66B. Munchen3315613916
1966/67B. Munchen322847984543
1967/68B. Munchen341944874630
1968/69B. Munchen3030573537
1969/70B. Munchen333834203842
1970/71B. Munchen3222710874739
1971/72B. Munchen344065854850
1972/73B. Munchen3336576124455
1973/74B. Munchen3430451084843
1974/75B. Munchen332332754330
1975/76B. Munchen222367653435
1976/77B. Munchen2528411453344
1977/78B. Munchen332434644232
1978/79B. Munchen199242113
1979F. L. Strikers27192719
1980F. L. Strikers36163616
1981F. L. Strikers175175
총합53343862687466

그렇게 넣은 골이 바이에른 뮌헨의 리그 경기에서만 453경기 398골. 바이에른 뮌헨 클럽 역사에서 최다골은 물론이요 분데스리가 역사상 통산 최다골이다. 경기당 0.87골. 분데스리가 지난 40년 역대 최고의 공격수 선정의 내공은 이 정도다.

말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80경기 40골.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2경기 1골이라는 스탯을 쌓고 있었다. 이쯤 되면 사람인지가 의심된다.

결국 국내 컵대회와 유럽컵대회, 미국 시절 등을 합하면 클럽에서는 통산 669경기 572골을 넣었다.

국가대표로 나가면 한술 더 뜬다. 62경기 68골.[10] A매치에서 1경기 1골 이상 기록을 세운 선수들은 역대로 따져봐도 쥐스트 퐁텐느의 21경기 30골, 코치시 샨도르의 68경기 75골이다. 100년이 넘는 유럽 축구사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수준인 것이다.

사실 축구선수 중에 흔치 않게 스탯으로만 선수의 설명이 가능한 경우이며 그래서 그 위엄이 더욱 절실하다. 여기에 미미하긴 하지만 클럽 월드컵의 전신인 인터컨티넨탈컵이나 슈퍼컵까지 포함하면 골 수가 늘어나긴 한다. 특히 금방 취소돼서 정식 커리어로는 인정해야 되느냐 마느냐 다툼이 있지만, 분명 클럽 차원에서 참가했던 리그컵까지[11] 포함하면 뮐러의 커리어는 더욱 무시무시해지는데, 이 경우 뮐러의 시즌 최다 골기록은 53경기 62골이 된다...이 무슨 우주괴수...[12]

4 게르트 뮐러에 대한 말, 말, 말

케르트 뮐러는 독일 대표팀에서 뛴 61시합에서 68득점. 70년과 74년 두번의 월드컵에서 통산 14득점을 올렸다. 그 위대한 펠레조차 4번의 월드컵에서 12득점이니까 게르트 뮐러의 뛰어난 득점력은 이 숫자로 증명이 되는 셈이다.

데트마르 크라머

우린 매 경기 자신감에 차 있었어요. 축구가 쉽게 느껴지면서도 뭔가 웃겼어요. 경기가 아무리 안 풀려도 그가 딱 한 순간, 한 번만 공을 건드리기만 하면 골이 터질 거라는 느낌이 있었죠. 게르트 뮐러가 팀에 있다면 전술이란 게 필요 없어요. 그가 없다면 전술적으로 완벽한 경기를 펼친다고 해도 승리할 수 있었을지, 아니 최소한의 도움은 되었을지 의문이네요. 우리 팀의 성공을 위해선 게르트 뮐러가 필요했고, 우리에게는 그가 있었죠.

파울 브라이트너

아니요. 제가 보기엔 게르트 뮐러 본인도 자신의 비밀을 모르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궁금함조차 사라졌죠. 독일에서는 그냥 게르트 뮐러에게 ‘제 7의 감각’이 있다고 해요. 그는 수비수가 공을 어디로 걷어낼지 그 수비수보다 먼저 알고 있었죠.

파울 브라이트너, 게르트 뮐러의 득점력에 관한 비법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

그가 사는 이유는 승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못하다고 하지만, 그는 분명 ‘뛰어난 기술을 지녔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뮐러는 굉장한 선수였어요. 완벽한 선수였고, 특히 헤딩은 더 뛰어났죠.

파울 브라이트너

그는 사람들의 편견과는 다르게 훨씬 더 기술적인 선수이다. 만약 누가 실수를 한다면 그는 그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가 갖고 있는 퀄리티는 분명하게 믿을 수 없을 정도였고, 그는 박스 안에서 앞을 내다 볼 수 있었다. 그는 빨랐고 그는 박스 안에서 다른 누구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르센 벵거

우리가 성취한 그 모든 것들은 게르트 뮐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프란츠 베켄바워

처음엔 그저 볼품 없는 공격수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그는 전술이 통용되지 않는 선수였다.

요한 크루이프

나는 그가 세계가 봤던 그 어떤 스트라이커 중에서도 최고라는 것을 확신한다.

칼 하인츠 루메니게

그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다. 나와의 호흡도 정말 훌륭했다. 내가 그를 돕고, 그가 골을 넣었다!

우베 젤러

그가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울리 회네스

그의 믿기지 않는 기록은 영원할 것이다.

루디 푈러

게르트 뮐러에게, 제 존경심과 동경, 그리고 포옹을 담아 보냅니다.

리오넬 메시, 게르트 뮐러에게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경신한 이후 보낸 자신의 유니폼에 적은 문구.

5 경력

5.1 대회 우승

파일:Ukad6nk.jpg
그야말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 커리어 끝판왕.

  • FC 바이에른 뮌헨 (1964/65 - 1978/79)
    • 독일 분데스리가 (4) : 1968/69, 1971/72, 1972/73, 1973/74
    • DFB-포칼 (4) : 1965/66, 1966/67, 1668/69, 1970/71
    • 독일 레기오날리가 (1) : 1964/65
    • UEFA 유러피언 컵 (3) : 1973/74, 1974/75, 1975/76
    • UFEA 컵 위너스 컵 (1) : 1966/67
    • 인터콘티넨탈 컵 (1) ; 1976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1974 FIFA 서독 월드컵 우승
    • 유로 1972 우승

5.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 1970년
  •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 1967년, 1969년
  • 분데스리가 40년 역사상 최고의 선수 : 1963 – 2003
  • 분데스리가 득점왕 : 1967년, 1969년, 1970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8년
  • 유러피언 골든부트 : 1970년, 1972년
  • FIFA 월드컵 득점왕 : 1970년
  • UEFA 유로 득점왕 : 1972년
  •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 1973년, 1974년, 1975년, 1977년
  • FIFA 훈장 : 1998년
  • FIFA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00인 : 2004년
  • FIFA 선정 20세기 최다 득점자 1위 : 803골
  • FIFA 월드컵 베스트 팀 : 1970년
  • UEFA 유로 베스트 팀 : 1972년
  • Bravo Otto 1위 : 1973년, 1974년
  • Bravo Otto 2위 : 1975년
  • Bravo Otto 3위 : 1972년, 1976년
  1. 독일어 발음으로는 "게어트 뮐러"에 더 가깝지만, 독일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r는 '르'라고 적는다. 흔히 '쉬얼레'라고 부르는 선수의 원칙적인 표기가 안드레 쉬를레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2. 우습게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이런 구도가 나왔었다. 공격에 미로슬라프 클로제, 미드필더에 미하엘 발락, 골키퍼에 올리버 칸이라는 막강한 3조합이 있었다만, 이때는 저 셋을 제외하고는 미묘하였기에 셋이 꾸역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게르트 뮐러-프란츠 베켄바우어-제프 마이어 때의 독일 3조합은 동료들까지도 장난 아니었다. 그러니 역대 최강이라 불릴 만한 조합이다.
  3.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 전신)을 3연패한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AFC 아약스에 이은 3번째이고, 그 후로는 2연패 조차 쉽지 않은 판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기록이다.
  4. 챔스 득점왕 3연패 기록은 30년이 넘도록 누구의 접근도 허용치 않다가 어떤 루저에 의해 마침내 경신되었다.
  5. 2010-11시즌에 호날두나 메시가 기록 깨겠다고 날뛰다가 결국은 못 다다른 그 기록이다(...). 하지만 결국엔 2012년 4월 1일에 메시가 56호골을 넣으며 성공했고, 호날두 또한 11/12 시즌 이후 3번이나 성공했다.
  6. 아직 커리어가 바뀔 수 있는 현역들을 제외하고 이들을 능가할 수 있는 커리어를 가진 선수는 사비 에르난데스정도가 있다. 8번의 리그 우승과, 4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그 중에서 두 번은 트레블이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메이저 대회 3연패 등 커리어로서는 베켄바워나 뮐러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
  7.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은, 호나우두나 클로제가 최소 3번 이상 월드컵에 나가 세운 기록인 반면, 이 인간은 딱 2번(1970, 1974) 나가서 세운 기록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1번 나가서 13골을 기록했다.
  8. 근거리에서 때리는 폭발적인 슛팅 때문에 Bomber로 불리운다.
  9. 기자가 비결을 물었을때 한 대답이 어머니의 감자 샐러드. 역시 어머니는 위대하다.
  10. 국가 대표로서는 조기 은퇴를 했기 때문에 경기 수가 적은 편이다.
  11. 당시 국제 경기가 독일에서 개최되는 바람에 줄어든 경기수를 벌충하려고 실시했던 것이니 인정해야 된다는 말에 근거가 있다. 남들 다 참여한 시합이니까...
  12. 게르트 뮐러가 보유한 한 시즌 유럽 최고 골 기록은 2011/12 시즌 리오넬 메시가 60경기 73골을 기록하면서 경신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