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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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게오르게 하지 (Gheorghe Hagi)
생년월일1965년 2월 5일
국적루마니아
출신지서첼레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170cm
프로 입단1982년 파룰 콘스탄차 입단
소속팀파룰 콘스탄차(1982~1983)
스포르툴 스투덴체스(1983~1987)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1987~1990)
레알 마드리드 CF(1990~1992)
브레시아 칼초(1992~1994)
FC 바르셀로나(1994~1996)
갈라타사라이 SK(1996~2001)
감독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2001)
부르사스포르(2003~2004)
갈라타사라이 SK(2004~2005)
폴리테니카 티미쇼아라(2006)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2007)
갈라타사라이 SK(2010~2011)
비토룰 콘스탄차 (2014~ )
국가대표125경기 35골[1]

1 소개

루마니아의 전 축구 선수. 현 비토룰 콘스탄차 감독
루마니아의 영웅
A매치 125경기 출전 35골. 클럽 경력 22년 483경기 236골.
등번호 10번. 별명 발칸의 마라도나, 루마니아의 축구 대통령. 지도자로썬 돌종훈급 그리고 피파 온라인 3의 본좌

1988~1989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 - 16강전 아르헨티나를 3:2로 격파(하지 결승골)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
2000년 UEFA컵 우승

2 클럽

1990년대 축구계의 화두였던 '플레이 메이커' 가운데도 몇 안되는 천재 소리를 들은 슈퍼스타. 탁월한 드리블 실력과 예측을 불허하는 플레이 센스, 정교한 왼발 프리킥과 슛을 자랑했다.

15살인 1980년 루마니아 청소년팀에도 들어가 당시 수많은 해외 클럽의 러브콜을 받았던 하지는 16살인 1981년에 성인 무대에 데뷔하며 서서히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1983년 스포르툴 스투덴스크 부쿠레슈티로 이적한 하지는 네 시즌(1983~87)동안 107경기 58골을 기록하며 매년 부쩍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1984-85, 1985-86 시즌에서 2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고, 1985-86 시즌에는 31경기 31골, 경기당 1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 기록을 과시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 덕에 하지는 18살 대표팀에 발탁된 뒤 20살인 1985년에 대표팀 주장을 맡는 저력을 보여줬다.

결국 스포르툴 스투덴스크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하지는 1986년 루마니아 최고 명문 슈테아우아 부크레슈티로 이적했다. 여기에서도 하지의 진면목은 계속 이어졌다. 1987-88 시즌에 31경기 26골로 득점 3위를 차지하더니 1988-89 시즌에는 30경기 31골, 경기당 1골을 넘는 기록을 세우며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가 지휘하는 슈테아우아 부크레슈티는 자국리그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맹위를 떨치며 전성기를 달렸다. 리그 5연패 뿐 아니라 리그-FA컵 동반 우승(더블) 3연패, 유러피언컵 준우승도 경험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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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월드컵 이후 레알 마드리드 C.F.FC 바르셀로나를 모두 거치면서 전성기를 보내지만 기대치에는 미치지는 못한다.[3]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나름 주전으로 제법 활약했지만, 브레시아로 이적한 뒤의 바르셀로나에서의 모습은 하지 커리어 역사상 가장 부진했던 시기. 물론 그 와중에도 중요한 경기에서의 활약을 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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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터키갈라타사라이 SK로 이적하면서 은퇴할 때까지 5시즌 동안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운다. 다소 나이 든 베테랑 선수들만 줄기차게 모은 갈라타사라이가 UEFA컵에서 아스날 FC를 꺾고 우승하면서, 당시 변방에서 볼 좀 차는 애들(...) 취급에 불과했던 터키 축구는 일약 유럽 무대의 강자로 재조명받는다.

갈라타사라이로 옮기자마자 하지는 한풀이를 했다. 레알 마드리드-브레시아-FC 바르셀로나로 이어진 빅 리그에서 활약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한풀이하듯 하지는 1996-97시즌 30경기 14골을 넣으며 5년 만에 두자릿수 득점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리그 우승을 이끌며 명성을 드러냈다. 이때가 회광반조의 시작이었다.

이후 갈라타사라이는 1997-98, 1998-99, 1999-2000 시즌까지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동안 하지는 107경기를 뛰며 48골을 넣었다. 전성기를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999-2000 시즌에는 리그, 컵대회 우승과 함께 사상 첫 UEFA컵 우승을 거두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UEFA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끼리 맞붙는 UEFA 슈퍼컵에서도 하지는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레알 마드리드를 따돌리고 우승을 이끌었다. 3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거둔 최고의 성과였다. 갈라타사라이에 있는 동안 하지는 127경기를 뛰며 59골을 집어넣고 경기당 0.5골에 육박하는 골 기록을 세웠다. 그를 추앙하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마지막 시즌에서도 9경기 8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으로 팬들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그는 정말 보여줄 걸 다 보여줬다.

주목할 사항은 당시 갈라타사라이 우승 이후 다른 베테랑 선수들은 빅 마켓 클럽으로 이적을 했는데, 하지는 유독 꿋꿋이 갈라타사라이를 지키며 은퇴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갈라타사라이는 마지막 무대를 빛낸 구단이라며 애정을 보였기에 갈라타사라이에서도 명예 선수로 기리고 있다.

3 국가대표

하지의 국가대표 활약상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최고수준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견인한 하지는 본선 조별경기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루마니아를 1승 1무 1패를 거두는데 제 몫을 다 하며 첫 16강 진출까지 이끌어냈다.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에서의 마라도나와의 맞대결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승부.

그리고 4년 뒤인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하지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조별 예선에서 2골 2어시스트를 넣으며 2승 1패로 16강 진출을 성공시킨다. 특히 첫경기인 콜롬비아전에서는 남미 최고의 선수인 발데라마와의 플레이 메이커 대결을 펼치며 하지는 1골 2어시스트를 하며 팀의 3대1 승리를 이끈다. 후술하겠지만 이날 하지의 로빙 장거리 슛은 월드컵 역사에도 길이 남을 명장면.

하지는 16강에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만나 1골 1어시스트 팀의 3-2 승리를 이끌며 자국을 사상 첫 8강행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아르헨티나의 중원과 수비를 시종일관 헤집어 놓으며 마라도나가 약물파동으로 결장한 아르헨티나를 유린한다. 8강에서는 스웨덴에 막히며 탈락하나 하지는 팀의 중요한 막판 동점골인 라두치오유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자기 진가는 발휘한다. 이렇듯 이 당시의 하지는 루마니아의 영웅이자 발칸 반도의 사령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활약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하지는 노장으로서 제 몫을 다 했고 콜롬비아전과 잉글랜드전에서 각각 어시스트를 하며 또 한 번 팀의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비록 신흥 강호 크로아티아에 져서 더 이상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루마니아 축구가 최전성기를 달리는데 하지가 해낸 몫은 실로 대단했다. 그리고 유로 2000에서 말년을 불사르며 하지의 플레이메이킹으로 또다시 팀을 대회 8강으로 이끌었다. 강호 이탈리아에 졌지만 하지는 골포스트를 맞추는 등 마지막 투혼을 사르는 활약을 한다.

FIFA가 2004년 발매한 DVD 'FIFA FEVER'에, 1994년 월드컵 콜롬비아전 하지의 장거리 슛이 Top 10 Solo Goal 가운데 5위에 올랐다.


UEFA 50주년 기념 '유럽 최고의 스타 50인' 팬투표에서 28위[4]를 차지했다.

'1999 월드사커 선정 20세기 위대한 축구선수 100인'에서는 25위를 차지했다.

4 기타

현재 루마니아 사람들은 게오르게 하지가 은퇴한 이후로 루마니아의 축구 실력이 많이 죽었다고 생각 한다고 한다. 그만큼 하지가 잘했다는 소리.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루마니아 축구 몰락을 가져온 건 게오르게 하지가 대표팀 감독을 하면서부터였다.(...)

이후로 갈라타사라이의 감독을 맡아 FA컵 우승을 이끌기도 하다가 조국으로 와서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 감독도 역임했다. 2010년 10월 21일 다시 한 번 갈라타사라이 SK의 감독으로 재계약했는데...전임 감독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7위에 머물렀다고 해임했더니만 하지 감독 체제로 17라운드째 10위권 바깥에 머물자 결국 그도 해임당했다. 감독으로서는 이래저래 안습이었던 셈.

그의 아들인 이아니스 하지역시 축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으며 현재 ACF 피오렌티나 소속이다.,
  1.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득점 공동 1위 기록. 아드리안 무투와 동률.
  2. 다만 80년대는 아직 유럽의 빅리그와 중소리그, 유럽 리그와 남미 리그 간의 격차가 크지는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3. 그래도 바르셀로나에서는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나 로날드 드 부어와 함께 팀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다.
  4. 당시 현역인 피구, 반니, 델 피에로보다 높은 랭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