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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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의 모습


현재의 경교장 UP?

京橋莊
Gyeonggyojang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부지 안에 위치해 있는 문화재. 서대문역 근처에 있다. 1945년 해방 후 백범 김구가 생전에 사용했던 개인 사저(舍邸)이자 김구가 암살당하여 사망했던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며 현재 삼성그룹 계열인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되었다가 2009년 경교장 전체 복원화가 결정되어서 2013년 3월 2일 일반에 개방되었다. 이승만이화장(梨花莊), 김규식삼청장(三淸莊) 등과 함께 건국활동 3대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였는데 특히 이승만김구의 관계가 해방 이후 상호간 대립관계에 있게 되면서 이화장과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200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29호, 2005년 사적 465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 이었는데 본래 금광(金鑛) 갑부로 불리웠던 최창학(1891 ~ 1959)의 개인소유 자택이었지만 최창학이 성격상 친일(親日) 성향이 있었던 편이라 해방 이전까지는 친일파 호화자택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2 역사

일제강점기 때인 1938년 금광(金鑛)을 통해 수익을 얻었다는 친일파 기업인 최창학이 관리했던 곳이자 그의 개인 소유 자택으로 본래는 '죽첨장(竹添莊)'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이었으며 당시 최창학의 성격상 친일(親日) 성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친일파 소유주 건물로 등록되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인 1945년 백범 김구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귀국하게 되면서 분위기를 파악한 최창학이 잽싸게 헌납을 하게 되고 김구와 임정요인들의 거처지로 지정됨에 따라 김구의 개인 사저로 바뀌게 되었다. 이름도 왜색(倭色)적인 분위기가 짙은 죽첨장[1]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경교(京橋)는 '경구교(京口橋)' 라는 서대문 근처에 있었던 다리의 줄임 명칭이다.

특히 김구이승만과 정부수립 문제로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승만에 맞설 민족 진영의 집결 장소로 부상하게 되었고, 이승만의 사저인 이화장과 사실상 쌍벽을 이루었다. 그와 뜻을 같이하였던 김규식의 삼청장(三淸莊)과는 상호 간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1949년 6월 김구가 경교장에 찾아 온 안두희의 총에 맞아 숨진 후 소유주가 다시 최창학에게로 돌아왔다가 1948년 대한민국중화민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후에[2] 서울에 있었던 주한(駐韓) 중화민국 대사관이 이 곳을 인수함에 따라 당시 주한 타이완 대사가 소유주로 있었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중화민국 대사관이 철수 및 폐쇄함에 따라 당시 서울에 상륙했던 미군 특수부대가 작전 벙커로 사용하게 되면서 이후에도 주한 월남대사가 소유주로 있는 월남대사관으로 변경되는 등 여러 번이나 소유주가 바뀌었다. 1967년 삼성그룹 계열의 삼성재단이 이 곳을 인수하고 고려병원(現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함에 따라 강북삼성병원이 공식 소유주로 있었다가 2013년 서울특별시로 이관되었다.

2005년에 강북삼성병원이 경교장 일부 중 당시 백범 김구가 생전에 사용했던 집무실이자 암살당했던 장소를 복원함에 따라 김구 기념실로 별도 운영하고 있고 2009년에 경교장 전체 복원이 결정되었다. 2013년 3월 2일 복원이 완료되어 무료개방 및 관람으로 일반입장을 확정하였다.

3 시설

  • 경교장 상영관
  • 응접실
  • 귀빈식당
  • 백범 집무실(백범 암살현장)
  • 경교장 전시관
  1. 단순히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죽첨(竹添)은 갑신정변 당시 일본 공사였던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즉 죽첨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다케조에가 된다.
  2.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단교하여 현재 양국간 주(駐) 일반대표부로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