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동부연합

1 개요

보수에게는 악의 축 진보에게는 최악의 트롤러.

대한민국NL계열 정치집단. 흔히 경기동부경기동부연합이라고 불리는 집단이다.경동으론 안 줄인다. 그리고 경기남부나 광주연합, 울산연합등이 알려져 있으나 드러나지 않은 다를 조직들도 있었으리라고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리고 이런 조직은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일 뿐이다. 실제 배후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 행동이 일반 대중이 볼때 비합리적이다. 북한의 권력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조직의 생존과 전술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있게 되어있고, 점조직형태로 상부의 지시가 누구에게서 오는지 알 수가 없다.

이름의 유래는 NL세력의 전국통합조직이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줄여서 전국연합)의 지역지부 중 성남시 지역과 그 주변 지역을 근거지로 한 지부의 이름이 경기동부연합이었기 때문. [1] 정확하게는 성남시 중원구, 수정구가 본거지로, 이 지역에서 조직을 설립한 만큼 당연히(?) 조직력이 가장 강하다. 원래 명칭도 "성남"연합이었으나 영역확대(?)에 따라 97년경에 경기동부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깽판을 쳤다는건 안 자랑

엄밀히 말해 경기동부연합은 2008년 전국연합 해산과 함께 해체되었으므로 현재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깃발에 경기동부연합이라고 새겨서 운동을 하는 식으로 자칭하는 조직은 없다는 얘기. 하지만 조직 공식 해체 이후에도 이들은 진보운동 안팎에서 끈끈한 인적, 사상적 네트워크를 이루어 활동해왔기에 편의상 이들은 경기동부연합이라고 지칭한다. 운동권에서도 일반적으로 NL계열은 전국연합 당시의 지역조직을 기준으로 정파분류를 해 오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광주전남연합과 행보를 같이했기에, 광주전남연합을 포함하여 통합진보당 당권파(범경기동부연합)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국연합은 2001년 처음으로 충북의 군자산에 모여서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집회를 열고, 연방제 통일을 제1과업으로 설정하고 과업달성을 위해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언하면서, 향후 10년간의 자신들의 목표와 실천방안을 담은 9월테제(일명 군자산의 약속)을 발표한다. 그리고 9월테제에 담긴대로 NL운동가들은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하기 시작했고, 2004년 전당대회에서 NL계가 당권을 장악한다.[2] 사실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군자산의 약속 이전부터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해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민족해방파(NL)를 대표하는 집단이다. 경기동부연합에는 주체사상파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3] 북한의 지령을 직접 받아 활동했던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회(위원장이 바로 이석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주체사상파 성향은 NL중 거의 탑으로, 민혁당 영남위원회의 영향을 받은 울산연합과 쌍벽을 겨룬다. 참고로 울산연합의 리더격인 김창현은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경향신문을 상대로 절독운동을 펼친 바도 있다.[4]

안팎에서 이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이어지고 있지만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에 대하여 '실체가 없다, 이미 해산되었다며'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뒷 얘기가 있는데 2008년 비대위 무력화로 인해 민주노동당내에서 PD계가 대거 탈당을 감행하자 쇄신의 일환이라며 전국연합을 해산했다. 다만 단체가 해산되었다고 해서 그 밑에 있던 사람들도 흩어진 건 아니라서 실질적으로 계파형태로 남아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주요정당 내에 공식적으로 따로 단체를 설립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서로 계파를 구성하는 일[5]을 생각하면 된다.

믿기진 않겠지만 경기동부는 과거 NL 주류의 패권적 행태를 비판하며 떠올랐다. 당시엔 한총련의 강경파(전남의 남총련 등)나 범민련을 비롯한 NL의 주류는 현실 문제보다는 반미, 통일 문제에만 집착했는데, 경기동부연합은 광주 대단지 사건 이후 성남지역의 도시빈민운동,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민중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였다. 이는 학생운동권의 큰호응을 얻어 한총련의 혁신파(통합진보당 의원을 지낸 김재연이 외대 총학생회장 시절 혁신파를 대표해 한총련 의장에 출마하나 강경파에 밀려 낙선한다.)의 입장에 서서 사람사랑 학생회, 반미구국 노학연대선봉대(민혁당의 지도를 받았던 애국청년선봉대의 후신. 약칭 노선대. 서울대, 고려대 등이 중심이 되었고 이후 자본주의 연구회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등의 조직을 통해 경기동부지역과 서울지역 여러곳의 총학생회를 수권하고 학생운동의 주류로 올라선다. 이들은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이나 다함께(당시에는 '민주노동당 학생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등 범좌파가 주로 활동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장악하고, 이후 출범하는 한대련도 장악한다. 다른 운동권 정파들은 젊은 활동가가 씨가 마르는데, 여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

문제는 이들이 한국 진보진영에 참여하여 특히나 한 조직에 침투해서 해당 조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주도권을 빼앗은 뒤 공개되지 않은 지도부(소위 '비선')를 통해 조종하는 행위에 능숙하다는 것이다. 노동운동가들의 정당으로 출발한 민주노동당이 종북성향을 띄게 된 것도 이들 때문이며,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비민주적인 당 운영으로 인해 나머지 국민참여당, 진보신당계, 인천연합 등 다른 계파가 진보정의당으로 분당한 것도 이들 때문이라고 한다.

2012년 3월 21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측 선거본부에서 3월 17~18일 치뤄진 야권연대 서울 관악을 선거구 경선에 부정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것을 주도한 것이 경기동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실체에 세인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관련글

경기동부라고 부르는 명칭은 그들의 정식명칭은 아니며, 일종의 별칭같은 것이다. 그들의 행태는 마치 독재정권의 그것과 같은 승자독식 및 승리지상주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해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진보정치가 비민주적인 수구세력과 닮아서는 안 된다는 명제를 어겼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극좌 정치단체인 다함께(노동자 연대)에서도 까이고(#) 여타 운동권에서도 신나게 까이는 조직이다[6]. 무엇보다 민주주의나 평등,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는것이 아니라 이미 한물간 주체사상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는 점과, 결국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어떠냐 정권만 교체하면 그만이지라는 태도가 큰 비판을 받을만한 떡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다가 2010년대 경기동부 계열의 학생회가 한대련의 주류계파로 부상하면서 한대련과 학생이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대련이 2011년 반값등록금을 이슈화하며 호응을 얻었는데도 2012년 한대련이 수권한 학생회 수가 감소한 것도 학내 소통이 잘 안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링크 1링크 2에 들어가 보면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에 대해 정리된 글이 있다.

그리고 민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말에 따르면 경기동부연합은 단순한 껍데기일 뿐이고, 속을 장악하고 있는 건 당시 민혁당 사건에서 살아남았던 잔존세력이 대다수라고 한다(#).

그리고 북한에 민주노동당 당원명부를 넘겨주었다는 일심회에 참가한 조직원 다수가 경기동부연합 소속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뭐, 비례대표 부정경선건 때문에 역으로 고사당하게 생겼지만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에는 각 지역 진보연대, 청년회,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평화나비(예전부터 경기동부연합은 반일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등의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6년에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민중연합당김재연, 김선동 전 의원을 비롯해 일부 경기동부, 광주전남연합 출신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0.61%로 자신을 배척하는 정당인 정의당에게 앞도적으로 밀리는건 물론 녹색당에 조차 뒤지는것으로 나오며 영향력의 감소를 확인하였다. 물론 노동당에 비하면 더 많이 득표한 편이지만 노동당은 조직의 상당수가 정의당으로 이탈한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빈껍데기나 마찬가지이니 굴욕도 이런 굴욕도 없으며, 경쟁계파인 인천연합울산연합과 비교하면 더욱 처참한데 인천연합(정파)은 지역구에서 당선자는 못냈지만 비례대표에서는 당선자를 냈으며, 울산연합은 색체를 완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정의당, 노동당과의 연대로 지역구 의원 2명을 배출했는데 경동연합은 구미갑 선거구에서 38%의 득표를 확보한 후보 정도나 있는게 고작이며 이것도 일대일구도로 인한 어부지리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노동, 노동자, 사회주의, 고려연방, 해방과 같은 북한이나 공산주의 냄새가 나는 용어들은 점차 없어지고, 진보, 민주, 연구, 사랑과 같은 부드러운 용어를 사용하며 자신들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려하고 있다. 사실 통진당 해산 이후 유사 정당의 창당이 금지된 상황이라 대놓고 드러낼 수도 없다.

2 경기동부연합이 배후라고 의심되는 사건들

  • 민주노동당 시절 북핵 옹호 발언(진보정당들은 원래 기본적으로 반핵입장이다.), 2007 대선에서 본래 심상정과 노회찬이 대선후보로써의 지지율이 높았으나 이 둘이 분열한 틈을 타 권영길 후보를 대선후보를 내세웠고 거기에 선거운동만 잘했어도 상당한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을 뜬금없이(참고로 권영길 의원도 동의하지 않았다.) "코리아 연방"이라는 주요공약으로 내세워 참패했다던 2006년 지방선거의 10.2%는 물론이고 2002년 대선때의 3.9%에도 못미치는 3.0%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 때문에 심상정 의원이 주도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했으나 비상대책위원회가 일심회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당원을 징계하려 하자 이를 부결시켜 이에 열받은 PD계가 대거 진보신당으로 탈당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5년 뒤에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의 분당으로 반복되었다.
  • 이숙정 전 성남시의원 행패사건 당시 여론의 비난이 엄청나게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징계가 매우 늦어졌던 사례가 있었는데 이때도 이숙정 전 의원의 배후에 경기동부연합이 있어 징계를 추진하려던 당내 여론을 막아주고 있었다.(그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여론으로부터 제대로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욕만 더 먹었다.)
  • 심상정, 노회찬등이 중심인 PD파 계열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만들게 된게 이들 경기동부연합의 등쌀에 이겨내지를 못하고 결국 분당사태로 이뤄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이 창당될때 진보신당 독자파가 합당을 거부하고 잔류하게 된 이유도 경기동부 때문이다. 정확히는 경기동부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의 패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자유주의 세력(국민참여당)과의 연립정부 노선에 대한 이견 등으로 인한 것이다.
  • 통합진보당에서 서기호 판사를 영입하고 비례대표로 당선권에 두려고 방침을 정하자 이를 좌절시키고 당선권에서 먼 14번에 배치시키고 비례대표 당선권에는 모두 자신들 세력하의 인물들로 채워버렸다. 이 사건은 오히려 이정희 공동대표가 다른 공동대표들과 상의없이 영입했다가 서기호 판사만 새된 경우이다. 서기호 판사를 영입하려고 한 자리는 원래 촛불시위를 이끌던 박원석(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씨가 유력했던 상황이었다.(이건 시민단체쪽 영입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가 밀고 있었음) 비례대표 당선권까진 당권파가 차지한 것은 맞다. 이는 당원들의 직선투표의 결과다. 쪽수가 많으니까... (물론 현장 투표에서...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도 비례부정선거 문제로 인해 경기동부측 인사가 제명되면서 서기호 판사가 당선되었으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 유시민 공동대표가 통합초기 당무를 거부하는 사태가 있었는데 이때도 통합경선을 준비하던 시기에 이들이 개입하여 여론조작 및 경선개입을 하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당내경선 룰이 비당권파에 너무 불리하다거나 불공정한 당 선관위 운영 때문이었다. (여론조작과는 다르다.) 결과는 유시민의 판정승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2012년 총선의 비례대표나 지역구 선출 과정을 보면 판정승이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 경기동부의 핵심인 성남시 중원구 전략공천에 성추행 전력이 있는 윤원석 후보(경기동부연합의 기관지격인 민중의소리대표. 이석기도 민중의소리 이사 출신이다.)를 후보검증 당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통과시켰으며, 여론의 비난에도 꿈쩍않다가 윤원석을 사퇴시키고 옆동네인 수정구에서 출마준비중이던 김미희를 내세웠다. 그리고 김미희가 당선되고 국회의원이 되자 경기동부의 개입을 입증하면서 중원구민들의 분노를 사는 중이다. 그리고 나중에 정당 해산으로 실업자가 되고 말지만..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부정선거가 있었음국민참여당 출신 당원들이 문제제기를 하였다. 비례대표 공천을 위한 경선중에 온라인 투표 소스코드 유출, 경선투표 참가신청 명부와 경선현장에 비치된 경선투표 참가자 명부가 다른점에 투표결과조작, 부정선거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고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검찰에 수사의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대응 방침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 일의 배후를 '패권파'로 지목하였는데 사실상 '경기동부'를 지목한 것이나 다름없다.진상조사 내용 물론 여기에 더더욱 한심하기그지 없게끔 한대 맞고 두대 치는것도 아니고 당권을 줄테니 대충 넘어가자라고 뒷거래를 제안함으로서 점점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거기에 중앙위원회 때 폭력사태까지 일으키면서 막장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3 경기동부연합의 정치 테크닉 싸움의 기술

경기동부연합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들의 계파에 속하는 인물들을 마구 끌어다가 당권자나 위원장, 총선 후보로 꾸역꾸역 올리기 시작했다. 저글링러쉬 물량 공세에 질린 당 중앙위원들은 직장/집 주소로만 지구당을 선택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었다. 즉 자신이 사는 곳이나 회사 소재지에 지구당만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경기동부연합은 특정 지역에 유령회사를 설립한뒤 자신들의 계파에서 추천한 예비후보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도봉구에 살면서 중구에서 일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관악구에 유령회사를 설립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도 관악구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미는 예비후보 밀어도 되지? 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밀기 시작한 것이다(...). 력 쩐다

연속적인 보궐선거로 파악해볼때 조직에 지령에 따라 총 모을 수 있는 표는 35000~40000으로 추정되며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에 따르면 당장 다음 날 아침에 삭발인원 300명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위엄쩌는 것으로는 경찰들 무전기 주파수를 알아내서 미리 인원을 투입한다고 김선동 국회의원이 최루탄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가?

진성당원제가 진보정당의 근간인 것은 맞는데, 이쪽 사람들의 패권질에 이용돼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당내 권력을 잡기 위한 정파간 암투는 있을 수 밖에 없고 (설령 진보정당이어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룰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쪽수로 밀어붙이는 행태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그동안 공공연하게 알려져있는 통합진보당 내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과연 고쳐질까...아마 안될거야 - 사실 안되는 이유가 그뒤의 배후세력의 지령하에 모든것이 움직이기 때문임)

사실 이들이 쓰는 방법은 역사가 오래된 방법으로 NL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대학교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써먹은 방법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체코슬로바키아의 무혈 쿠데타와 같은 동유럽 공산화[7]나 러시아 혁명 이전과 당시의 볼셰비키[8]의 행태에서도 비롯된 부분이다.[9] 사실 서구에서는 French Turn이라고 해서, 한자어로는 "가입 전술"#일본위키이라고 하여 굉장히 오래된 전술이다.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사건이 밝혀지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경기동부'의 실세(이석기-실제는 경기남부 소속임)가 드러났고 이들의 비민주적인 행태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는 옹졸한 태도가 드러나면서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전국운영위원회의에 난입하여 회의진행을 막는 당권파들

4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

해당 문서 참조.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경기동부연합/보존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그래서 한때 거점 학교가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였다. 실제로 이석기를 비롯한 경기동부 핵심인물들이 모두 이쪽 출신이다.
  2. 군자산의 약속이 2001년 쓰여졌고, 거기서 3년 내에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고, 2012년에 공동연립정부 구성을 목표로 한다고 쓰여있다. 하지만 2012년 총선 공천과정에서의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의 여파로 인해 일이 꼬여버렸다.(...)
  3. 사실 정확하게는 개개인적으로 주체사상파가 아닌 사람들도 많지만, 조직운영이 상명하달식으로 이루어지는데다가 진영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다보니 조직자체의 정치성향이 주체사상파가 되어버린(...)것,
  4. 이 점에 대해선 과거 진중권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할 때 비판한 바 있다. 당연한것이 진중권은 상당기간 민노당원이었기 때문(...)인데다가 민노당내에 있었을때 NL계하고 민노당 게시판에서 키배를 벌였을정도로 반NL 정서가 강했기 때문.
  5. 예를 들면 새누리당내의 친이계, 친박계, 민주당내의 친노계, 비노계
  6. 비판받는 것은 다함께도 비슷하지만, 다함께는 일단 국제공산주의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해방 계열인 NL과는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
  7. 물론 이것은 당시 동유럽이 소련의 군사적 점령하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8. 다수파라는 의미의 볼셰비키라는 말을 쓴 것부터 원래 러시아 사회민주당 내의 소수였던 자파 세력을 다수인양 포장하기 위한 전술이 담겨 있었다.
  9. 하지만 꼭 좌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단 2차대전 전후 미국이 이탈리아 총선에 우파 진영에 자금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개입하기도 했고 뉴라이트 계열에서 대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자신들이 교육시킨 인원을 투입하여 그들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의혹이 있다. 결국 인력과 자금의 차이일뿐 극과 극은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