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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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1 개요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舊 계산동2가 71-1)에 있는 성당.[1] 계산오거리 매일신문사 옆에 있다.

정식명칭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계산 천주교회지만 통상적으로 계산성당이라고 많이 불린다.

본당의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성모. 1898년에 본당이 세워졌다

계산성당에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까지 이르는 골목길이 대구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대구에서 3.1운동이 일어난 곳이 이 골목으로, 당시 대구보통고등학교, 계성학교, 대구신명학교 학생들이 이곳에서 3월 8일날 만세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바로 옆에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이상화의 고택이 있다.

주교좌성당이라 그런지 주일 미사가 매우 자주, 늦게까지 있다. 가장 늦은 미사가 일요일 오후 9시 30분. 판공성사 기간의 마지막 주일에는 고해소 줄이 꽤 길어지니 최후의 보루로만 이용하자(...)

2 역사

건립 당시 현 위치와 서편 동산[2] 전체 사이에 고민하다가 노인 신자들의 요청으로 현 위치에 성당을 건립하기로 정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한옥이었지만(강화성당과 비슷한 구조였다고 한다) 화재로 1901년에 전소되고 새로 고딕식 성당을 지었다.

설계는 명동성당을 건축하고 전주 전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맡았고, 외부공사나 벽돌 조달은 청나라 인부들이 맡았으며, 부지공사나 벽돌공장 건설 등은 일반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같은 것들은 프랑스에서 산지직송, 즉 직접 공수했다. 1901년 2월 성전 부지정리작업을 시작하여 1902년 12월 1일 외부 공사를 완료하고, 1903년 11월 1일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3] 주교에 의해 축성식이 이루어졌다.

초창기 스테인드 글라스는 12사도와 성당 제대 뒷편에 위치한 성인상 그리고 성당 입구에 있는 장미창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1991년 보수공사 때 한국 순교자들과 4복음 사가 스테인드 글라스가 추가되었다.

참고로 이 성당은 영남권에서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성당이다.

이후 1911년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설정되면서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1918년에 증축 공사를 시행했다. 1991년에는 대대적으로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마루바닥을 대리석으로 교체하고 함석지붕을 동판으로 교체했으며, 스테인드 글라스 역시 이때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계산성당이 주교좌 성당 역할을 하기엔 좁은 측면이 있어서,[4] 제2주교좌 성당으로 2016년 범어동에 대구대교구 설정 백주년 기념 주교좌 범어성당[5]을 지었다..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의 문화재청의 관리를 받으며, 가끔씩 유지 보수를 위한 공사도 실시된다. 2016년 7월 현재 성당 북편 벽[6]에 습기가 차는 현상이 나타나 배수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대구대교구 측에서도 교구의 성지 보호를 명목으로 여러 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1. 일부는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걸로 오해한다. 인천 계산동에는 '계산동' 성당이 있다.
  2. 동산의료원개신교 선교사들 주택 새로 지은 제일교회가 있는 그 자리
  3.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
  4. 보통 교구 주교좌 성당은 주교 서임식이나 사제, 부제 서품식, 성유 축성 미사 등 교구행사를 치뤄야 한다. 당장 천주교 서울대교구명동성당 위상을 보라.
  5. 가톨릭 신자인 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1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오오 감동님
  6. 자비의 문 반대방향 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