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에 사키히사

近衞前久
1536 ~ 1612

센고쿠 시대의 공가. 관백.

관백 겸 태정대신 고노에 타네이에의 아들이다. 아버지 타네이에는 관백 겸 태정대신이면서도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를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돌아다닌 기묘한 인물이었다.[1] 1540년 4세의 나이로 원복(...)하여 초명을 하루츠구라고 하였다.[2]

이후 내대신, 우대신을 거쳐 1554년 관백 겸 좌대신이 되었고, 1555년 태정대신까지 받으며 관백 겸 태정대신이 되었다. 그러며 이름을 사키츠구로 바꾸었다.

1559년 우에스기 켄신이 상경했을 때 그와 친분을 쌓았고, 급기야는 켄신과 함께 하향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름도 사키츠구에서 사키히사로 바꾼 그는 간토에서 머물렀으나 켄신의 간토 평정이 늦어지자 좌절하고 1562년 상경하였다.[3]

1565년 에이로쿠의 변으로 요시테루 쇼군이 살해당했다. 사건 뒤 사키히사는 자신의 누이(쇼군의 정실)을 보호한 것을 이유로 하여 미요시 요시츠구를 지지하였다. 이로 인해 오다 노부나가의 도움으로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쇼군위를 얻은 뒤 교토에서 추방당했다. 그 뒤에는 혼간지 켄뇨를 의지하다 요시아키가 노부나가에게 쫓겨나자 교토로 돌아갔다. 그 뒤 노부나가와 친분을 쌓았다. 노부나가의 요청으로 규슈에 하향하여 시마즈, 오토모 등의 규슈 가문들을 중재하려 하기도 했고, 이시야마 전쟁의 종결을 부른 평화 협정을 중재하기도 하였다. 1582년 카이 정벌에도 종군하였다. 같은 해에 태정대신이 되었지만, 사임하였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죽자, 출가하여 호를 류잔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케치 군이 사키히사와 협력했다는 오해를 사 하시바 히데요시오다 노부타카 등과 적대되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의지하고 하향하였다. 그 뒤 오해가 풀리고 이에야스가 중재함에 따라 교토로 귀환하였고,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뒤 히데요시를 양자로 삼아 태정대신과 간파쿠에 오를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뒤에는 은거하여 편히 살다가 1612년 사망하였다.
  1. 사실 요시하루와 고노에 가문은 관계가 있다. 타네이에의 누이, 즉 사키히사의 고모가 요시하루의 정실이었다.
  2. 이름 자 하루는 고모부 요시하루에게서 받았다.
  3. 사키히사의 하향은 덴노였던 오기마치나 사촌이자 매부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책략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조정과 막부의 재흥을 위해 켄신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