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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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고은(高銀), 본명 고은태(高銀泰)
출생1933년 8월 1일
출생지전라북도 군산시
첫 작품폐결핵 (1958)
최근작무제 시편 (2013)
종교불교(법명 : 일초)
제3회 만해문학상 수상
천승세
(1975)
고은
만인보
(1988)
황석영
(1989)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상

1 소개

高銀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1933년 8월 1일, 전라북도 군산부에서 출생.

한국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고등학생들이라면 그의 작품인 '머슴 대길이'를 알고 있을지도... 대표작으로는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집필된 연작시인 '만인보'가 꼽히고 있다. 단국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예창작과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1]

군산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6.25 전쟁이 발발하여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그 어떤 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았다. 자서전을 보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무성영화의 변사(당시의 성우 및 나레이터)를 하려고 했으나 처음 상영회에서 너무 떨어서 잘렸고, 그 후 인맥을 통해 중학 교사를 잠시 하다가 독경 소리에 나름의 깨달음을 알게 되어 입산했다고 한다. 1952년 입산하여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동국사에 들어가 불교의 승려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참선과 방랑을 거듭하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스승은 초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기도 한 효봉 스님.

1958년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시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내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시들은 허무의 정서, 생에 대한 절망, 죽음에 대한 심미적인 탐닉이 주를 이룬다.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부터 고은은 시대상황에 대한 비판과 현실에 대한 투쟁의지를 적극적으로 담는 저항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등단 초기에는 같은 시인인 미당 서정주와 매우 친밀한 관계였으나, 1970년대 이후 저항시를 쓰면서 멀어졌고,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서정주가 노골적인 정권 찬양을 하자 완전히 연을 끊고 죽을 때까지 보지 않았다고 한다. 서정주를 향해 "미당은 권력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하였고, 미당이 사망하자 "시의 정부가 스러졌다."라고 비판하였다.

술을 굉장히 좋아한다 하며[2]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라고 한다. 일례로 예전에 한 대학에서 강의하던 고은이 강의 시간에 10분 지각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밝히길 "술 한잔 하다가 늦었다!" 라고 당당하게 둘러대었다고 한다(…). 그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 듯하다.

문학작품 이외에 이상 평전, 한용운 평전을 쓰기도 했는데 평이 좋지 않다. 공통적으로 별 근거도 없이 악의적인 중상만 가득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민주, 진보 진영과의 관계

1970년대 이후 본인의 작품 세계도 그렇고, 특히 1980년 5.18 광주 항쟁 당시에는 신군부의 지목을 받아 옥고를 치른 적도 있었기에 민주, 진보 진영과는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상당히 각별했는데, 1998년 그의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어 찬시를 헌정하기도 했고김대중 정권 취임식과 관련된 고은 시인의 기사과, 당시 김대중 정부의 정책이었던 햇볕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방문했을 때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타계하자, 추모시 <당신은 우리입니다>를 썼다. 이 시는 서울 국립현충원의 김 전 대통령 묘지 곁에 세워진 비석에도 세겨져 있다.

보수주의 대표문인 이문열은 진보진영에서 존경받는 원로시인이 사실은 썩은 위선자였다는 <사로잡힌 악령>이라는 소설을 쓴 바 있다. 그런데 입산을 즐기고,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등의 세부경력 설정이 고은 시인을 연상시켜 '고은 시인을 비방하는 소설'이라는 의심을 강력히 받았다. 일단 이문열 작가는 "특정인물을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부인했지만, 논란이 커지자 출간 단편집에서 제외했다. 때문에 이 작품은 1994년 출간된 중단편집 '아우와의 만남' 초판에서만 볼 수 있다.

3 노벨상 후보 거론

20여개국에 시가 번역되었고 오리엔탈리즘과 민주화 운동 경력같이 서양인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많아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데, 매년 여러 나라에서 그를 초청을 하며, 2007년 영국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이명박 대통령, 가수 비와 더불어, 그리고 한국 문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이 올랐던 것이 그러한 점을 보여준다.

특히 북유럽에서 그의 시는 꽤 높은 대접을 받는다. 노르웨이에서는 자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을 기린 비에른손 훈장을 수여했고, 스웨덴에서도 자국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뤼 마르틴손을 기리는 상인 동시에 동아시아권 문학에 주는 상인 시카다(Cikada)상을 수여하였다. 스웨덴의 한 언론매체 기사에서는 그를 군산의 왕(Kungen av Kunsan)이라 칭할 정도였다. 그러나 기실 그에 대한 한국 문단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박하다. 원로라서 대접을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문학적 담론이나 평론의 대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지도 않을 뿐더러 일반 대중에게도 대표작으로 기억될 만한 작품이 없다. 학교 교과서나 참고서에는 간간히 나오는 작품이고 이에 따라 수업시간에 다루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무렵에 나오는 뉴스기사 이외에 순수 문학작품으로 고은 시인을 접한 사람은 적은 편이다. 미당 서정주와 그 제자들이 주류인 한국 문학계에서 비주류로 밀려있다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무렵부터 문단계의 원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노벨상 수상에서 계속 탈락한 데다가 2011년 수상자는 스웨덴시인인지라, 근 몇년간 시인이 해당되지 않아서 앞으로 시인 수상이 유력할 거라는 가능성도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돌려 말하면 가까운 해 안에는 시인이 수상할 가능성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지라 추후 고은의 수상 확률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2012년에도 또 후보에 올랐다고 했지만 수상자는 중국의 모옌(莫言)이었다.

참고로 노벨상 후보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매년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노벨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서 순위권에 들었다는 것이다. 즉 후보 운운하는 것부터가 어떻게 보면 김칫국. 다만 래드브록스의 신뢰도는 제법 높은 편으로, 2006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수상을 맞춘 이력이 있다.

2013년 수상을 앞두고 본인은 "노벨상에 대한 내 소감은 12년도 넘게 한번도 없다." 란 인터뷰를 남겼다. 결국 2013년에는 캐나다 여성 작가 앨리스 먼로가 수상하였다.

헌데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말은 저렇게 해도 은근히 신경을 쓴다고 한다. 하기야 10년 넘게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네 안받네 모든 언론과 문학계에서 말이 많으니 당연히 신경쓰일수 밖에 없겠다. 때만 되면 방송국 기자들이 고은 시인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어 집에서 나가기도 힘들다고 하니 신경 안쓰이는게 비정상. 이렇게 언론에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다는 점에선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하다. 물론 하루키는 세계적인 관심이고 고은은 국내 언론의 설레발에 가깝지만.

2016년 래드브록스가 노벨문학상 예상 후보를 발표 했는데 11위를 기록했다. 1위는 일본의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다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된 것은 2000년대부터인데, 마침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또다른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때 인터넷의 전국적인 보급시기와 맞물려 오프라인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이름이 고은이었다. 이때부터 교과서나 모의고사에 출제되는 빈도가 늘었으며, 본인의 저서가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북유럽쪽으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2000년 말 미당 서정주의 죽음과 맞물려(문학적 성취에선 비교가 되지 않음에도)그 자리를 대신하는 수준의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통틀어, 자신들과 정치-이념적으로 동질성이 높은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지원하려는 정책적 안배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후 노벨 문학상은 줄곧 다른 이들이 수상했고, 성향이 반대되는 이명박 정부 이후론 몇년간 물먹은 것도 있고해서 이전보다는 노벨상에 대한 기사나 언급이 줄어든 편이다. 그러나 이미 벌려놓은 게 있는지라 지금까지도 매년 노벨상 수상 시즌이 되면 뉴스기사를 통해 꾸준히 수상 후보로 언급되며 고은 시인의 집앞에는 기자들이 많이 찾아와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2016년 10월 노벨 문학상 수상 시즌이 돌아왔고, 래드브록스 등 배팅 사이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이 유력하다고 일컬어지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고은 시인 또한 유력한 후보라고 발표해 또 다시 주목받았지만, 2016년에는 미국의 포크가수 밥 딜런이 선정되었다.

2017년 또한 노벨상 수상 시즌이 되면 다시 언론을 통해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고은 시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언론에 이야기가 나온 이후 매년 노벨상 수상 시즌이 되면 단골처럼 나오는 소재였으니...

4 수상 경력

1974년 - 한국문학작가상
1988년 - 만해문학상 (시집 만인보)
1991년 - 중앙문화대상
2002년 - 은관문화훈장
2005년 - 노르웨이 국제문학제 비에른손 훈장
2006년 - 스웨덴 동아시아 문학상 시카다상

5 작품 목록

5.1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 (1960)
<해변의 운문집> (1964)
<신 언어의 마을> (1967)
<새노야> (1970)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1974)
<부활> (1975)
<제주도> (1976)
<입산> (1977)
<새벽 길> (1978)
<고은 시선집> (1983)
<조국의 별> (1984)
<지상의 너와 나> (1985)
<시여 날아가라> (1987)
<가야 할 사람> (1987)
<전원시편> (1987)
<너와 나의 황토> (1987)
<백두산> (1987)
<네 눈동자> (1988)
<대륙> (1988)
<잎은 피어 청산이 되네> (1988)
<그 날의 대행진> (1988)
<만인보(萬人譜)> (연작: 1986~2010)[3]
<독도> (1995)

5.2 소설집

<피안앵(彼岸櫻)> (1962)
<어린 나그네> (1974)
<일식(日食)> (1974)
<밤 주막> (1977)
<산산히 부서진 이름> (1977)
<떠도는 사람> (1978)
<산 넘어 산 넘어 벅찬 아픔이거라> (1980)
<어떤 소년> (1984)
<갠지스 강의 저녁노을> (1986)
<화엄경> (1991)
  1. 전 서술에서는 석좌교수에서 내려온 것처럼 서술되어 있었으나, 2008년부터 아직까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2. 신년목표를 하루에 소주 100잔 마시기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성공해서(...) 하루에 200잔을 목표로 잡았다는 일화도 있다.
  3.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집필된 30권 4001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작시로, 고은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만인보'는 만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으로 고은 시인은 "반만년의 한국사에 명멸한 인간 군상의 부침과 영욕을 담아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