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밑줄은 도청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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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興郡 / Goheung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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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高興郡 / Goheung County
국가대한민국
면적776.33㎢
광역시도전라남도
하위
행정구역
2 14
시간대UTC+9
인구68,161명 [1]
인구밀도95.49명/㎢
군수박병종
3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군화동백꽃
군목유자나무
군조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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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읍사무소군청. 주소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흥양길 40(舊 옥하리 200-2). 보다시피 작고 노후된 군청사를 신축한다고 한다. 기사

청년 없는 지붕 없는 미술관

1 개요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한 . 면적은 807.34㎢. 지리적으로 매우 불리한 입지임에도 한때 10만 명이라는 상당히 많은 인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4년 10월 기준 인구는 69,736명으로 7만 명 선이 붕괴되었다. 그 중 농가 인구가 절반을 차지하는 농촌 도시이다. 현재 2읍 14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역사

고려 초기 고이부곡(高伊部曲)[2]이라 불리다가, 1285년 고흥현(高興縣)으로 개칭되어 '고흥'이란 명칭이 최초로 등장하였다.

조선 초기에 고흥반도에 왜구가 들끓어 잠시 현재의 보성군 조성면[3]으로 관아를 옮겼다가(고흥반도는 잠시 보성군에서 관할하게 된다), 1441년에 고흥반도로 복귀하고 흥양현(興陽縣)으로 개칭하여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흥양'이라 불렸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흥군(高興郡)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1896년 돌산군의 성립으로 거금도, 나로도, 거문도, 초도 등 부속도서를 돌산군에 내주었다가, 1914년 돌산군이 다시 여수군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거금도, 나로도 등이 고흥으로 돌아왔다. 거문도, 초도 등 현 여수시 삼산면 지역은 그대로 여수에 남았다. 동시에 보성군 남면(현 벌교읍)의 일부를 가져왔다. 1979년 고흥면이 고흥읍으로 승격되었다. 당초 낙안군 땅이었다가 돌산군에 편입되고, 돌산군 폐군 때 고흥으로 넘어온 장도는 1983년에 보성군 벌교읍으로 편입되어 제자리를 찾았다.

1966년에는 인구가 234,592명에 달해 여수시와 맞먹는 수준이었지만 30만 명 수준에서 인구가 정체된 여수와 달리 인구가 아주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보성군보다 인구가 많다.

3 지리

인구밀도가 적은 전라남도에서 또 돌출되어 있는 반도 지형인데다가 군 자체 면적도 상당히 광활해서 타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불편하다. 고흥읍내에서 보성군 벌교읍까지 나가는 데만 해도 30km다. 순천까지는 53km. 그래서 인구 유입은 거의 없지만 인구 유출은 상당하다. 나간 사람은 많지만 들어온 사람은 적단다. 특히 대학이 없고 일자리도 부족하기 때문에 젊은 인구의 유입이 드물며, 고령화율이 무려 36.7%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고를 기록했다.[4] 쉽게 말하면 3명 중 1명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예전부터 인구가 많아서 지금도 주변 군들에 비해선 인구가 많은 편이다.

반도 지형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또 하나의 신기한 점이 있다. 육로로 고흥에 가려면 반드시 보성군을 거쳐야 한다. 특히나 십중팔구는 벌교읍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고흥과 벌교는 교류를 자주 한다. 아니, 지형상 교류를 할 이웃동네가 벌교밖에 없다(...). 이걸 잘 나타내주는 사례가 있다. 그동안 고흥군 학생들 사이에서 벌교고의 인기가 상당히 많아서, 벌교고 학생 3할이 고흥군 출신인 적도 있었다. 거기에 2014년 말에는 고흥 출신 벌교고 학생이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수시 합격했다는 현수막이 보성군 전역에 걸린 바가 있다(...).그리고 벌고 놈들은 그걸 또 70리나 떨어진 보성읍에다가 걸어놓을 생각을 했지 다만 2015년에는 고흥고가 거점고 지정 버프를 받아 학생들을 많이 끌어모았다고 한다.

영남면에서 여수 섬들을 거쳐 여수로 잇는 77번 국도가 2017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중이다. 이 공사가 완료되면 고흥반도 대부분에서 여수시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상술했듯 고흥군의 유일한 교류 대상은 고작 벌교읍정도고, 좀 큰 도시로 나가려면 순천시밖에 답이 없는데, 여수시와 직접 연결이 된다면 순천시보다는 가까운 여수시와의 교류가 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순천시까지는 왕복 4차선 국도로 도로가 잘 닦인 부분 때문에 연륙교까지 별도로 도로가 신설되지 않는 이상은 여수시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남부지역이라 기온은 따뜻하지만 바다가 가까워 바람이 습하면서 차다. 그 때문에 실제 기온은 영상인데 체감온도가 영하를 찍는 날이 많다. 또한, 바다가 가까워 눈이 오는 날이 드물다. 눈이 오면 그날로 고흥은 아비규환. 실제로 2004년 1월 고흥읍 모 고등학교에서 겨울방학 보충학습 중 타지에서 출근을 하던 교사들이 아침에 내린 눈으로 출근을 못 하여 학생들이 5교시까지 자율학습만 하고 가던 일도 있었다. 사실 윗동네인 보성만 해도 눈 왔다 하면 선생님들이 못 내려간다고 징징댄다.

한센병원이 있는 소록도가 이 지역에 있다. 가보면 당시 한센인들의 처참했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과거 수용 인구가 수천 명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나 현재는 1000명 이하의 환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오후 5시까지만 입장이 되니 참고할 것. 2009년에 소록대교가 완공되어, 지금은 버스로도 방문할 수 있다. 그 전에는 편도 500원인 배를 타고 들어갔다.

나로호의 발사기지인 나로우주센터도 이 곳에 있다. 이미 3차례의 발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나로우주센터가 알려졌기 때문에 군에서 홍보 차원으로 많이 써먹는다.

영조 때의 기록에 따르면 장사가 많이 나온다고 하며, 실제로도 고흥 출신은 왠지 모르게 힘이 센 것 같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지성김태영마스크맨 김일. 송영길인천광역시장 더불어 미쓰라진 또한 힘 좀 쓸 것 같이 생겼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보여준 파이팅 포즈도 예사롭지 않다... "여수에서 돈 자랑, 순천에서 인물 자랑, 벌교에서 주먹 자랑 하지 마라"의 바리에이션 중에 고흥에서 힘 자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고흥 류씨(高興 柳氏)의 본관이고 실제로 류씨들이 많이 거주한다. 그 외로 여산 송씨(礪山 宋氏), 고령 신씨(高靈 申氏), 나주 정씨(羅州 丁氏)도 많이 거주한다.

4 교통

철도는 없다. 반도라는 지역 특성상 실질적으로 고흥 밖으로 이어지는 길은 하나라고 보면 된다. 순천완주고속도로 개통의 간접적인 수혜 지역인데, 서울과의 소요 시간이 약 30분 가량 단축되었다.

영남면과 여수시 화양면을 잇는 연륙교 사업이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중이다.

5 특산물

전국에서도 일조량이 많고 따뜻하기로 알려진 기후를 적절히 이용한 농업이 발달하였다.

  • 두 말할 것 없이 유자가 가장 유명하다. 고흥의 유자는 일본과 중국에 대부분 수출되며 내수는 적다. 고흥 = 유자라는 공식이 심해져서 해남이나 완도 등지에서 자란 유자가 고흥농협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 석류의 인기에 따라 재배가 늘어나고 있다(유자를 관리하기가 너무 힘든 탓이기도 하다). 석류는 원산지가 이란이며 조선 초기에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신맛이 나는 석류와 단맛이 강한 종자가 있으며 특별히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지는 않는다.
  • 일본에서 들여온 부지화가 제주도에서 한라봉이라는 브랜드로 팔리는데, 고흥에서는 하나봉이라는 이름으로 재배/판매하고 있다.
  • 고흥 북부,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마늘이 유명하다.
  • 고흥 북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꼬막이 생산되며, 이 꼬막들이 고개 너머 벌교로 건너가서 벌교꼬막이란 이름을 달고 팔리고 있다. 장도가 고흥에 있었을 적에는 거의 이름만 벌교꼬막이고 대부분의 물량을 고흥에서 책임졌지만, 장도를 벌교에 넘겨준 뒤로는 보성 관내에서 생산되는 진짜 벌교 꼬막이 비교적 늘어났다. 사실 동강면의 실제 생활권이 벌교긴 하다
  •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 고흥 유자, 한우, 석류, 마늘, 미역, 다시마, 이 등록되어 있다. 총 7품목으로 전국 최다이다.
  • 2012년 이후부터 시작하여 커피 재배 농가가 늘었다. 국내 최대 규모라 써붙인 고흥 '커피마을'이 대표적인데 직접 생산하고 로스팅까지 한다.

6 정치

고흥군15대16대고흥군-
보성군
17대18대19대고흥군-보성군-
장흥군-강진군
20대
박상천/3선
새정치국민회의
박상천/4선
새천년민주당
신중식/초선
열린우리당
박상천/5선
민주당
김승남/초선
민주통합당
황주홍/재선
국민의당

국회의원은 보성군과 함께 뽑는데. 지금이야 이렇지만 제헌의회 총선에서는 선거구가 고흥갑고흥을로 나뉘어 있었다.리즈시절 그리고 보성군과 함께 뽑는다지만, 오히려 고흥의 인구빨로 보성군을 짓누른다. 실제로 보성과 고흥이 한 선거구로 묶인 회차의 총선 중에서, 보성 출신이 고흥보성 선거구에서 당선된 선거는 전부 중선거구제 시절의 선거로 고흥 출신과 동반당선되었고, 소선거구제 실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고흥-보성 선거구가 인구미달로 조정 대상이 되었는데, 서쪽의 해안선을 따라 장흥, 강진과 같이 묶이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총선, 고흥군에서는 어김없이 고흥 출신인 신문식이 과반의 지지율을 차지했으나, 강진 출신인 황주홍 후보가 자신의 본래 지역구에 속하는 강진과 장흥뿐 아니라 이번에 합쳐진 보성, 특히 고흥과 바로 맞닿아있는 벌교읍에서도 1위를 달리면서 당선, 고흥 천하가 막을 내렸다. 해당 지역 출신 거물 정치인으로는 서민호, 신형식, 이대순, 박상천 등이 있다.

20대 총선 정당투표 결과에서 정의당2.98%[5]라는, TK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아니, 그 TK에서도 고흥보다 낮은 득표율을 보여준 지역은 단 3곳(울릉군, 의성군, 영덕군)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전국에서 뒤에서 4등(...). 반대로 민중연합당전농의 성원에 힘입어 1.35%를 받아 전국 평균보다 높았으나, 이것도 전남 22개 시군 중 뒤에서 5등. 녹색당은 0.44%를 받았는데, 전국 평균보단 낮았지만 전남 평균과 비교하면 중간 수준이었다.

여담으로, 소록도가 있는 도양읍 일부 투표소(13, 14투표소)서는 민주당 계열보다 새누리당 계열 정당 득표율이 훨씬 더 높다. 이는 호남 지역 투표소 중 최고 수준. 전라도 출신이 아닌 외지에서 온 고령 환자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는 점,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았으며 그의 딸 박근혜도 찾아 육영수의 향수가 남아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실제로 2012년 18대 대선박근혜문재인을 득표수로 제친 유이한 투표소가 바로 이 곳. #

새누리당 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보수정당 경합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경합 지역각 당 경합세 득표율진보정당 경합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더불어민주당 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
고흥읍65%
도양읍71%
풍양면69.5%
도덕면65.5%
금산면72.5%
도화면64.5%
포두면62%
봉래면61%
동일면69%
점암면64%
영남면66%
과역면73.5%
남양면62%
동강면65.5%
대서면59%
두원면65%
  • 위 표는 지방선거의 광역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이나 기초비례대표 정당지지율 +α 가 되는 지방선거의 광역선거, 총선, 대선등의 1:1구도 내 각 양대 정당의 양자구도 시의 대략적 평균 지지율을 나타낸 것입니다. 실제 선거에서는 후보나 각종 변수, 구도, 후보 등의 변화에 따른 크고b작은 득표율 오차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기 바람

7 행정구역

고흥군/행정 문서 참조.

8 기타

여순사건 당시 지리적 위치로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 중 하나다.

고흥의 전화번호는 국번이 83X(1998년까지만해도 3X)으로 시작하나 도양읍, 도덕면, 금산면은 84X국으로 시작한다. 여담으로 거금도(금산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완도군 금당면도 면사무소 빼고는 다 84X국 전화번호를 사용한다.

9 출신 인물

이전부터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유명한 인물들도 많이 나온 편이다. 대부분이 정치인이거나 운동선수다

  • 동초 김연수(1907~1974) : 판소리 명창이며 일제강점기 당시 임방울과 함께 판소리의 양대산맥이었다. 고흥문화회관에 가면 그의 기념비가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김연수관'이 있다.
  • 강기정 : 정치인
  • 김선동 : 정치인.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통합진보당의 김선동이다. 흑역사 1
  • 김수
  • 김승남 : 제19대 국회의원.
  • 김영광 : 축구선수.
  • 김태영 : 전 축구선수. 해당 항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나름 공인을 받은 장사(!)다.
  • 김일 : 전 프로레슬러.[6]
  • 김현웅 : 現 법무부 장관.
  • 목일신 : 누가 누가 잠자나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딸이 재불 작가 목수정이다.
  • 미쓰라진 : 가수.[7]
  • 박상천 : 변호사, 정치인.
  • 박종석 : 경륜선수. 피겨선수 박소연[8]의 아버지. 현재는 귀향해서 고향 영남면 금사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한다고.
  • 박지성 : 출생은 서울에서 하였다. 그러다 아버지의 고향인 고흥군 도덕면 덕흥마을로 이주하여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다시 수원으로 이사가서 그 곳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고흥군에 박지성체육관도 있고 해서 일단은 가로줄을 치는 방식으로 올린다.
  • 박철웅 : 교육자, 정치인. 민립대학 조선대학교를 사유화하였던 천하의 개쌍놈. 아래에 언급되는 이홍하[9] 의 선배격이다. 흑역사 2
  • 백인철 : 전 WBA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 박종팔, 유제두 등과 함께 한국에 몇 안되는 중량급 챔피언 중 한 명.
  • 서민호 : 정치인.
  • 손문경 : 정치인.
  • 손영춘 : 배우. 현재는 성함은 다소 잊혀졌지만 '순심이'라는 드라마에서 연기한 '칠득이'는 바보의 대명사로 아직도 널리 알려져 있다.
  • 송기석 : 정치인.
  • 송언종 : 초대 민선 광주광역시장.
  • 송영길 : 정치인. 전 인천광역시장.[10]
  • 신선호 : 기업인. 전 율산그룹 회장, 전 센트럴시티 의장. 자세한 내용은 센트럴 시티 참조.
  • 신문식 : 정치인.
  • 신진식 : 전 배구선수.[11]
  • 신중식 : 정치인. 밑의 신형식의 동생이다.
  • 신형식 : 정치인.
  • 우오현 : SM그룹 회장.
  • 유제두 : 前 WBA 슈퍼웰터급 세계챔피언. 김일과 함께 고흥에 장사가 많다는 속설을 실제로 입증하는 세계구급 장사다.
  • 이대순 : 정치인.
  • 이동섭
  • 이홍하 : 서남대학교 등을 설립한 사학비리로 악명높은 천하의 개쌍놈. 흑역사 3
  • 장성민 : 방송인, 정치인. TV조선에서 장성민의 시사탱크를 진행하였다.
  • 장세동 : 하나회 출신 중 극히 드문 非영남, 특히 호남 출신으로 제5공화국(전두환)의 핵심 요인(심복)까지 오른 인물. 흑역사 4[12]
  • 장용호 : 전 양궁선수.
  • 주승용 : 정치인. 단 정치적 기반은 여수시이다.
  • 천경자 : 화가, 꽃과 뱀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명하다.
  1. 2016년 7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2. '고이'는 고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역대 문헌을 보면 '묘부곡'(猫部曲)이란 표기도 보인다.
  3. 고려시대 보성의 속현, 조선시대에는 폐현된 옛 조양현의 읍치가 있었다.
  4. TV조선에서 관련 취재를 한 적이 있다. 30년 뒤 우리의 모습? 국내 최고령 지역 고흥을 가다
  5. 소숫점 위치를 잘 보자. 29%가 아니라 2%다!
  6. 거금도 출신. 박정희 대통령이 김일 선수에게 무슨 큰 걸 해주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보라고 해서 김일 선수가 고향 거금도에 전기를 놓게 해달라고 했다고. 그래서 거금도에 낙도 치고는 1970년대에 일찌감치 전기가 들어왔다.
  7. 거금도 출신. 성장은 경기도 광명에서 하였다. 같은 에픽하이 멤버인 타블로의 부모님도 역시 거금도 출신이다. 그리고 바로 옆의 완도 금당도에는 거미(가수)가 나왔으니... 거미 어머니가 녹동 출신이다. 어째 거미가 에픽하이와 절친인 이유가 있었다
  8. 박소연 선수 자신은 나주시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 박종석씨는 박소연을 고흥 출신으로 알려지길 바란다고.
  9. 실제로 이홍하는 사학 운영 방식에서 박철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0. 재미있는 것은 위의 강기정과는 고향 선후배임에 동시에 고교(광주 대동고) 선후배이기도 하다. 송영길이 선배.
  11. 성장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해서 거기서 배구를 시작했다. 고향에 남아있었으면 벌교상고에서 배구를 하였을지도
  12. 안기부장 시절에 고흥지역 원로들이 장세동을 만나려고 했었다가 그가 끝까지 거부하여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장세동이 대선에 나왔을 때 윗동네 벌교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함께 벽보가 뜯겨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