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당


일본국의 주요 정당
(괄호 안은 일본 중의원 / 참의원의 의석 수)
집권당자유민주당
(291 / 122석)
공명당
(35 / 25석)
야당민진당
(97 / 49석)
일본 공산당
(21 / 14석)
일본 유신회
(15 / 12석)
사회민주당
(2 / 2석)
자유당
(2 / 4석)
일본의 마음
(0 / 2석)
원기모임
(0 / 2석)
신당대지
(1 / 0석)
오키나와사회대중당
(0 /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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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明党
(こうめいとう)
영문 명칭Komeito[1]: KM
한글 명칭공명당
창당일1차 창립 : 1964년 11월 17일
2차 창립 : 1998년 11월 7일
주소도쿄신주쿠구 미나미모토마치 17
(東京都新宿区南元町17)
대표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간사장이노우에 요시히사(井上義久)
이념사회보수주의, 불교정치
스펙트럼중도우파
의석수(중의원)35석 / 475석 (7%)
의석수(참의원)25석 / 242석 (10%)
상징
공식 사이트홈페이지

1 개요

1964년 종교단체인 창가학회에 기반을 두고 중의원 진출을 위해 창립한 일본정당. 창립 당시에는 공명정치연맹이었으나, 1994년 노선 분열로 해체한 뒤[2] 1998년 자유민주당과의 연정을 위해 다시 공명당으로 창당[3]하였다. 이 이후 자민당의 1차 연정 파트너로, 대체적으로 자민당의 멀티 내지는 빵셔틀(...)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공명당의 지지기반인 창가학회의 세력이 일본내에서 꽤 큰지라 자민당도 대놓고 무시하진 못한다. 오사카고베 같은 칸사이 지역을 주요 연고지로 하고 있다.

2 노선

정치적 노선으로만 보면 보수주의를 따르고 창가학회의 종교적 교리를 따라 약자 구호와 복지에 특화된 정당이다. 다만 창가학회와 공명당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는 1970년에 창가학회가 공명당을 뒤에서 지원만 하고 공명당 내에 창가학회 고위직을 파견하지 않고, 창가학회의 교리를 지우는 등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없는 편이다. 물론 창가학회가 공명당에 조직표를 갖다주기는 한다.

자유민주당보다는 보수색이 옅고 특히 한국에 우호적인[4] 입장을 취해와서 그나마 자민당이 극우로 치닫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자위대의 국방군 재편 및 평화헌법 폐기를 반대하고 있어 자민-공명 연립정권에서도 극우 개헌의 최종 저지선을 지키고 있다.[5] 물론 일본 내에서도 창가학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단 노골적인 종교정당은 아니라서 막장인 일본 정당 중에서도 상당히 개념 잡힌 정당 중 하나.

또한 상기했듯이 지지기반인 창가학회의 영향력이 거대하다보니 공명당 없이는 자민당이 제대로 선거에 임할 수 없다. 이는 과대평가가 아니라 시민사회 자체가 형식적으로 변질된[6] 현재 일본 사회에서 대규모로 조직화 된 투표활동이 가능한 집단은 창가학회를 제외하곤 매우 드물기 때문. 일본 유신회도 그 영향력에 본진 오사카를 지키기 위해 선거협력하다가 관서지방을 제외한 지역구에서 참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민당은 2013년 7월로 예정된 차기 참의원 선거를 위해서라도 공명당과의 연립을 무슨 일이 있어도 유지해야하는 처지이며, 자민당이 연립을 깨고 2012년 12월 16일 중의원 선거 이후 부각된 일본 유신회와 정부를 구성하는 시나리오가 일각에서 제기되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일이 없다. 무려 연립여당이면서 지역구에서 3~4%만 공명당 후보를 공천하고 나머지는 후보를 안내면서 헌신적으로 자민당 표셔틀을 해주는데 자민당이 공명당과 연립을 깨면 바보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선거 전부터 자민당에서는 '공명당 이외의 다른 당과의 연립은 생각할 수 없다.'라는 말을 계속 했었고, 선거 당일날인 2012년 12월 16일, 결과가 발표되자 간사장을 보내 공명당의 간사장과 회담을 하면서 공명당과의 연정을 재확인했다.

2013년 8월, 헌법 개정에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본 골자는 기존 헌법을 그대로 두고, '자위대의 존재'에 대해 추가하여 UN 평화유지군 활동에 참가하기 위한 근거를 명기하고, 환경권 등도 새롭게 추가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2014년 4월 22일,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는 아베 내각 각료들의 야스쿠니 참배가 옳지 않다며 비판하고 별도의 추도시설 건립에 대해 다시 거론했다.#

2014년 5월 15일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내각회의 결정이나 자민당과의 협의 문제에서도 아베 내각의 우경화 행보를 견제하고 있다. 게다가 공명당을 구슬리려고 자민당이 타협안까지 내놨지만 공명당에서는 반대입장이 요지부동이라는 사실과 집단적 자위권이 아니더라도 개별 자위권과 경찰력으로의 대응체제 확립을 주장하고 있다. 기사.

공명당이 집단자위권 문제에 대해 자민당과 일단 대화에 나서면서도 신중론을 꺾지 않자, 조심스럽게 자민당-공명당 연정 해체에 대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집단적 자위권 관련 헌법 해석 변경에 합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올해 초 일찌감치 공명당이 '정책 차이로 연립 탈퇴는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 이 문제와 관련해 야마구치 나쓰오 현 공명당 대표가 당대표 사임까지 고려한 바가 있었음도 거론되었다. 공명당 나름으로는 무척 심각한 고민을 거듭한 모양.#

공명당이 이렇게 명목상 자민당과 아베 정권에 끌려가는 모양새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공명당이 '권력에 취했다', '평화의 당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대로 공명당이 존재했기에 그나마 아베 정권이 집단자위권 발동에 제한적인 조건이 가중되었음을 지적하며 공명당도 거수기 노릇만 한 건 아니라는 반박도 나오는 중.# 그렇지만, 특정비밀보호법집단자위권을 자민당과 함께 날치기로 통과시켜서 사실상 거수기 신세로 전락했다는 시각이 있다. 게다가 2015년 9월 안보법안 참의원 통과 정국에서도 자민당에게 협력했고 법안은 통과되었다. 이쯤되면 평화헌법 개헌에서도 자민당에게 협력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5년 11월 30일, 아베가 개헌을 반대하는 공명당과 결별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가 나왔다.# 자칫하면, 선거예측을 모두 수정해야할 가능성이 생길듯. 하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이 깨지면 공명당은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자민당은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그렇다면 공명당이 민주당과 연대하는지 등의 가능성이 너무 많기에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할 듯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명당이 없이는 자민당은 선거 치르기 매우 힘들다.[7] 혹여 선거를 치르더라도 목표로 하고 있는 개헌을 위한 의석확보는 매우 힘들다. 자민당과 선거전에 결별한다면 공명당은 어떻게든 개편될 야권과 연대할 수도 있고, 선거후에 결별한다면 이 경우는 말도 안되는 것이 이 상황이 현실로 일어나면 공명당은 자민당의 선거호구임을 만천하에 인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2당이 결별하는 일은 없었다. 일장춘몽

2016년 3월 4일 결국 공명당 역시 개헌 추진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사. 다만 아베가 구상하는 안과는 달리 "가헌(加憲)주의"를 내세우며 현행 헌법에 새로운 조문을 추가하자는 공명당의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즉, 전쟁포기를 명시한 평화헌법의 틀은 유지하는 대신 자위대라는 실재하는 조직을 헌법에 명기하는 방안을 주장한 것. 다만 이후로도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의 유들유들한 성격 탓인지 아베 총리에게 억지로 끌려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는 있다.(...)

3 선거

칸사이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만큼, 다른 칸사이 지역정당인 일본 유신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칸사이 지역의 현역의원들을 수성하였고,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구 의원을 배출함으로써 2012년 12월 16일 중의원 총선에서 21석에서 31석으로 의석을 늘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 선거에서 공명당은 지역구 후보 사표(死票) 0%를 기록했다.(지역구 후보 모두 당선)[8] 흠좀무. 사실 이건 공명당이 지역구 후보를 9명(지역구의 3%밖에 안된다!)만 공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9명 전원을 당선시킨건 대단한 거지만. 비례대표에서는 45명을 공천했고 22명이 당선되어 절반 정도의 생존률을 보였다.

2013년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는 연립여당 주제에 지역구 4명, 비례대표 7명만 공천하는 패기넘치는 공천을 보여줬으며[9], 목표는 11명 전원 당선이라 한다.(...) 127명 뽑는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23명을 공천해서 전원 당선한 것을 보면[10] 121명 뽑는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11명만 공천해서 전원 당선시키는 것은 가능한 모양. 그리고 실제 참의원 선거에서 전원 당선시켰다.

2015년 4월 12일 통일지방선거에서는 20년 동안 난공불락의 민주당 요새였던 홋카이도사이타마에서도 승리했다. 그것도 대기록 달성이었는데 169명 후보를 내서 전원 당선시켰다. 한마디로 공천하는 후보들은 몽땅 당선시키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제24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효고, 후쿠오카, 아이치, 카나가와, 사이타마, 오사카, 도쿄 7곳에 후보를 공천했다. 사실 전국적인 세를 가진 연립정당 주제에(창가학회 고정 시멘트표 13~14%) 지역구 73명 중에서 7곳만 공천하는 것도 부족하긴 하지만 예전에 참의원, 중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선거구의 3~4%만 공천하던 것에 비하면 거의 10% 가까이 공천하는 것이니 장족의 발전이다. 그동안 3번 연속으로 자민당의 표셔틀을 해준 대신 어느정도 당세확장(공명당이 공천을 안하면 자민당이 확실히 1석씩 더 추가할 여러 명 선거구)을 약속받은 딜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비례대표 후보는 이례적으로 17명을 공천했는데 전원당선은 힘들듯. 결과적으로 2016년 제24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공명당은 총 14석을 획득하였다. 지역구 출마 전원 당선시켰고, 비례대표 지지기반도 여전하다.
  1. 영문 구칭은 New Komeito(약칭은 영어 Party를 고려해 NKP)였으나 2014년에 그냥 Komeito로 수정.
  2. 이때 의원 상당수가 신진당으로 입당한다.
  3. 그래서 오랫동안 영문 표기가 New Komeito 즉 '신'공명당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영문명을 그냥 Komeito로 바꾸었다.
  4. 원래 창가학회, 더 나아가서 일본 불교의 일련종 교파 자체가 한국을 우호적으로 생각한다. 창가학회 항목을 참조할 것.
  5. 덕택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당(일본), 사민련 같은 혁신정당이랑 보조를 맞추며 자민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당과는 사이가 무진장 나쁜데, 1969년 공산당 의원이 공명당 관계자의 언론 출판물 방해사건 폭로를 했기 때문.
  6. 어떻게 보면 자민당의 자업자득이다.
  7. 자민당이 획득하는 지역구 표의 적어도 20~30%는 공명당의 표라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아래에도 서술되어있지만 공명당은 정당비례투표에서 13~15% 정도의 득표는 꾸준히 콘크리트로 획득하고 있는 정당이다.
  8. 주목해야하는건 공명당은 자민당에게 선거협력으로 <후보는 자민당 비례는 공명당> 방식으로 자민당에 풀파워버프를 건 상태라는 것.
  9. 지역구에서 나온 사람 중 한명은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다! 그러면 사실상 3명밖에 공천 안 한 셈.
  10. 참고로 6번 연속으로 기록했다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