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이름구본무(具本茂)
출생1945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진주시
본관능성 구씨
가족부인, 슬하 2녀
직업기업인

1 소개

한국의 기업인. 현 LG그룹 회장으로 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며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 하지만 중요한 것은 LG 트윈스 전 구단주.

2 야구 관련

재계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 이재용 부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과 더불어 소문난 야빠로 알려져 있다. 럭키금성그룹은 야구팀 LG 트윈스MBC 청룡을 인수한 첫 해인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자 1995년 그룹명을 LG로 고쳤으며, LG 트윈스 출범 초기부터 구단주를 맡아 팀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손해를 감수하고 한국 내 최초 돔경기장 건설에 의욕을 보인 것도 구 회장이었는데, 1997년 외환 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LG는 2000년대 초에 잠실을 떠나 뚝섬 돔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삼았을 것이다.

현재는 동생인 구본준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줬지만[1] 야구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식지 않아 지금도 1년에 몇 경기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직관을 온다고 한다. 매년 막대한 돈을 투자를 해도 성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LG 트윈스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투자로 인해 2009년 디시인사이드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구느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름자에서 DTD를 예언하고 있다는 드립이 있다. 구본무에서 모음만 남기면 ㅜㅗㅜ가 되는데 그게 마치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형상이라고...

3 여담

  • 2014년 KBS 시사기획 창의 보도에 따르면 손자, 손녀 4명이 미국시민권자라고 한다.
  • 다음 LG 우승 때의 MVP에게 선물할 최고급 명품시계[2]와 선수단과 같이 축배를 들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수제 아와모리 소주를 공수해 준비했었지만 아직까지 명품시계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고 술은 부질없이 익어가고 있다. 둘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에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시계는 1998년에 구본무 회장의 해외출장 때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 2013년 LG 트윈스 프런트에 따르면 이 두 물건은 아직도 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술이 식초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오는 중. 참고로 이 아와모리는 장기간 묵혀서 마시는 쿠스(古酒)인 데다가 40도가 넘는 꽤 독한 술이라 식초가 되려면 그래도 5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팀이었으면 식초가 2번 됐을듯
  • 한국의 멀티 엔터테이너 구본승과 이름이 비슷해서 친척관계로 착각할수도 있으나, 구본승은 LG 구씨일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항렬이 같을 뿐이다. 다만 햇갈리는 사람이 제법 있는지 '구본승 LG'가 자동완성으로 뜨긴 한다(...) 사실 1990년대 중반에 구본승이 LG패션(현 LF)의 모델이었던지라… 본이 같으니 사실 아예 무관한 것은 아니다. 물론 구본범과도 관련이 없다. LG그룹 회장가인 능성구씨 가문에 본자를 항렬자를 쓰는 사람들은 주변의 구씨 중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거다. 그 사람들이 대부분 LG그룹 회장가와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 2004년에 동생 구본능의 장남인 구광모를 양자로 받아들였다. 이유는 구본무가 딸만 3명인데 그룹의 대를 이으려면 아들이 필요해서라고.[3] 구광모는 2016년 현재 차기 CEO 수업을 받고있다. 정확히 말하면 구본무에게도 양자로 들인 구광모 외에 딸만 있던게 아니라 구원모라는 유일한 친아들이 있었는데, 1994년 6월 불의의 사고로 19세의 나이로 급사했다. 이 때 아들을 잃은 구 회장은 다시 아들을 얻기 위해 1996년 51세의 나이에 늦둥이를 보게 되었으나, 또 딸이었다고.
  • 사실, 이런 가십거리보다 더 중요한 건 온후한 이미지와 달리 독한 면도 있다는 거다.
    • 첫 번째 사례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주도한 기업 간 빅딜[4]에서 외국계 컨설팅 기관의 편파적인 평가[5]로 인해 LG그룹 전자사업군 내에서 알토란 같은 기업이었던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야 하자 이러한 빅딜 안을 낸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반발하여 LG그룹 사옥인 트윈타워에서 5분 거리인 전경련을 1999년부터 2013년 11월까지 근 14년 동안 발길 한 번 안 준 것이다.
    • 두 번째 사례LG전자가 남용 부회장이 저지른 갖가지 삽질로 인해[6] 대차게 곤두박질친 걸 만회하기 위해 수십년 만에 친정 체제를 선포[7], 자신의 둘째 동생 구본준[8]을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보내고 무려 1조 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한 것이다. 그것도 뼈대 있는 능성 구씨 아니랄까봐[9]재벌들이 많이 써먹는 감자 후 유상증자가 아니라 공모 형식의 무감자 유상증자를 말이다! 이로 인해 (주)LG의 LG전자 주권율이 30%대 초반으로 뚝 떨어지면서 간신히 지주회사로서의 자격을 유지했지만, 그 덕분에 LG전자는 남용의 대삽질로 인한 내상을 이겨내고 지금 수준으로 올라왔다. 그야말로 회장님의 뚝심이 드러난 에피소드.기왕 지르신 거, 지주회사도 증자해서 SK하이닉스까지 지르셨으면 잭팟이었는데...쩝쩝......역시 사업가의 피는 못 속이는 듯하다.
  1. 그런데 구본무 회장의 또 다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KBO총재가 되면서 다른 사람에게 구단주대행을 시켰다.
  2. 롤렉스 시계로 자세한 모델은 불명이나 구입 당시 시가 8~9천만원을 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그룹 경영에 여성을 참여시키는 삼성, 현대와 달리, 유교적 성향이 짙은 LG그룹은 그룹 경영에 여성을 참여시키지 않는다.
  4. 주력업종 지정으로 인한 기업 교환
  5. 당시 이 컨설팅 회사에서 해당 업무를 맡은 한국인 컨설턴트 한 명이 LG반도체보다 역량이 부족했던 현대전자를 더 높게 평가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넥센 팬들이 빌리장석이라고 칭송하는 이장석이다.이때부터 호구의 역사를 쓴 LG그룹ㅠㅠ
  6. LG전자의 글로벌화를 한다며 외국인 임원들을 많이 뽑았는데 한국 직원들과 말이 안 통하니(...) 직원들의 협력은 고자가 되어버렸다. 이건 그렇다 쳐도 진짜 큰 문제는 컨설팅 회사 맥킨지 제안을 너무도 잘 따랐다는 것. 전문 상담사의 조언을 참조하는 것은 좋은 경영 방법 중 하나이지만 문제는 2010년 당시, 스마트폰은 곧 망할테니 LG가 기존에 하던대로 피처폰에 투자를 한다라는 참으로 신박한 선택을 한 덕에(...) MAXX 같은 고성능 피처폰 개발에 힘을 쏟았다. 결과는 상상 이상. 삼성이 윈도우 모바일을 택한 옴니아를 재빨리 쓰레기통에 갖다버리고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갤럭시를 내놓아 S2부터는 아이폰의 진정 대항마로 꼽히게 되고 2016 현재까지도 HTC, 소니, 모토로라 등이 무너지는 와중에 여전히 아이폰의 대항마로 꼽히는 반면 LG는 휴대폰 사업부가 증발할 뻔했다.
  7. 그 전까지 LG전자는 구본무 회장 체제 하에서 오너가 방향 제시에 관여했던 삼성전자와 달리 전문경영인 체제를 쭉 유지하고 있었다. LG 반도체의 경우에는 정말 중요한 사업이라 오너 일가가 챙기긴 했지만.
  8. 구자경 명예회장의 삼남으로, LG트윈스의 구단주를 역임하였다. 빅딜 당시에는 LG반도체 사장이었다. 형제 아니랄까봐 큰형인 구본무과 정말 많이 닮았다.
  9. 실제로 능성 구씨는 조선시대에도 고위직을 많이 배출한 명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