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

國弓
한국인의 전통 궁술. 또는 전통 활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 이후엔 궁도라는 명칭으로도 부른다.

쏘는 모습의 움짤[1]
국궁을 쏘는 순서를 보여주는 GIF파일. 손을 크게 떼는 옛사법이 우아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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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박물관 소장 18세기 예궁 총 길이 247cm, 폭 8cm. 가장 거대한 유물이면서 국궁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사진은 기본적인 형태이며, 다른 국궁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C'자 → '3'자가 될 때까지 극단적으로 구부려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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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궁의 복원품을 만들어 부려놓은 모습. 예궁. 총 길이 2m 50cm. 탄력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국궁을 더욱 거대화했으며, 하늘에 제사를 드리거나 축제를 위하여 제작하고 발사하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높은 탄성을 유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각궁 유물. 길이 127cm. 폭 4cm. 특유의 탄성으로 인하여, 장력에 비하여 비거리가 뛰어나다. 전투용이 아닌 습사용으로서, 조선후기의 간소화 된 국궁 양식을 보여준다. 현대의 활터에서도 사용한다. 사진출처

1 국궁의 역사

한반도에 대한 기록은 고대 중국의 기록에서도 '맥궁'이라고 기록되어 있을정도로 오래 되었다. 국궁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와도 같이 긴 편인데, 군주들 중에도 명궁이 많아서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2], 조선을 세운 이성계[3], 그리고 정조도 명궁이었다고 전해진다.[4] 심지어 후삼국 시대의 폭군 궁예도 활을 잘 쏜다는 이름일 정도인 걸 보면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활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주변국가들의 전술을 설명할 때 '중국, 일본은 , 한국은 '이라고 했을 만큼 발달한 무기였다.[5] 활을 쏘는 옛날 이야기에서도 지나가던 선비들이 활쏘기로 괴물들을 사냥한다.

활을 쏘는 자세와 놀이 방법은 조선시대의 고등학교 과정인 소학에서도 잘 기술하고 있다. 선비들은 놀이이자 수신 항목으로 활쏘기를 즐겼다. 민간에서도 유희용으로 발달하여 어린아이들도 활쏘기를 즐겼으며, 방태기 활, 탄궁, 교자궁처럼 다양한 민간용 활이 존재했다.

현대의 국궁은 19세기 이후 전해지는 각궁을 이용한 스포츠를 의미하지만, 옛날 군인들은 여러 종류의 활을 목적에 맞게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다. 목제 복합궁은 북방 기마민족의 활과 비슷하며 사정거리가 짧은 대신 관통력이 우수했다. 육량궁은 크고 무거운 활로 온몸을 앞으로 달리듯 하여 쏘았다. 각궁은 한반도에서 자생한 C자형 활을 거꾸로 구부려서 극단적인 탄성을 지닌 활이며 국궁의 대표로서 언급된다.

1.1 고대의 국궁

우리나라는 고대에도 중세와 흡사한 개념의 합성궁/복합궁을 사용했다.[6] 하지만 처음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합성궁을 사용한 것은 아니며, 극소수 발견되는 삼국시대 이전의 유물 중에는 단순 목궁도 많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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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환목궁(신창동 저습지 출토), 삼한시대 목궁. 두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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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는 소갈비뼈를 사용해 만들기도 했다. 위 사진이 고구려 골제 활고자(긴것 4개)와 줌통(짧은 것 2개).평양 영화9년명 고분 출토품으로, 일반적인 고자와 달리 길이가 길어 활채까지 이어진다. 저 길이와 형태 때문에 학계 일각[7]에서는 활고자가 아닌 궁간(弓幹)으로 보고 있으며, 고분벽화 그림에 근거해 활 중간중간 마디에 탄성력 강화를 위해 추가로 다른 부재를 덧붙였다고 보고 있다. 사진출처

1.2 조선시대의 국궁

조선시대에도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에는 평민들까지 활쏘기를 즐겼다. 활쏘기는 유교의 육예[8] 중 하나였기 때문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 보았다. 또 군사적으로도 갑오개혁 이전(1894년)까지 군대의 제식무기였다. 따라서 무과시험에서도 멀리쏘기와 기사(騎射;말을 타고 활쏘기)가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서 첫 실패를 경험한 과목도 기마사격이었다.

구한말 외국인의 기록에는 어린아이나 여자들도 활쏘기에 능했다고 적고 있다. 기록에는 활터에서 활쏘기로 돈내기를 자주 했다.[9] 중국의 기록에서도 한민족은 활을 잘 다룬다고 평했으며, 조선 말기에는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조선사람들은 활을 잘 쏜다는 기록을 남겼다. 미국에서는 조선 병사가 활을 쏘는 그림이 그려진 우표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의 후손들이 올림픽에서 양궁을 잘 하는 것도 선조들의 덕이라는 말이 있다.[10]

전투용 활의 맥이 남아 있었던 17세기 이전의 국궁은 연사속도, 사정거리에서는 화약무기를 앞서기도 했다. 특히, 병졸들의 승자총통보다는 조선 무관들이 쓰는 각궁의 성능이 우수했다. 물론 조선군에서도 화승총을 빠르게 받아들였는데, 활의 중요성이 감소한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활은 숙달하는 데에 평생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2. 총의 살상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하다.
3. 활을 숙달한 군대를 만들고 관리하는 비용이 더 비싸다.
4. 각궁의 재료인 물소뿔이 비싼 수입품이었다.[11] 영국 롱보우도 재료인 주목이 딸려서 총으로 전환했을 수준이었다. 물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각궁의 숫자는 충분히 많았지만 도리어 그런 만큼 국가의 재정에 악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조선초기부터 승자총통류의 핸드캐논조차 국궁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국궁은 보편무기로서 평가함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에 종종 퍼져있는 국궁을 조총에 대한 보조용으로 사용하는 사법은 활의 중요성이 감소한 조선후기의 방법이며, 이때는 직접적인 살상력에 집착하기보다는 무예로서의 편의성을 강조하는 편이었다.

화포가 발달한 이후에도 국궁은 기본적인 무예로서 중시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중후반기에는 치안을 핑계로 전통 궁술의 맥이 위협받기도 했으나, 고종이 세운 '황학정' 등의 활터에서 꾸준히 활쏘기가 계승되는데 성공했다. 허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단체의 이름과 공식 명칭이 대한궁도협회궁도로 바뀌었고, 국궁계도 사회의 격동을 견디지 못하고 중구난방하여 일본의 궁도처럼 통일된 규격을 가지지 못하고 분열되었다.

2 국궁의 재료

국궁의 초기 재료는 나무, 대나무, 뼈 등이었다. 삼국시대에는 목재 합성궁, 뼈를 이용한 합성궁이 사용되었다. 한반도 특유의 C자형 각궁은 고대의 맥궁으로부터 이어진 합성궁 제작기술이 조선시대에 극단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활들이 공존했을 가능성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시대 이후 단순궁 형태의 활은 민간에서만 사용되었다.

국궁은 각궁, 특히 물소뿔로 만든 흑각궁을 중시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물소가 없다. 이 때문에 재료를 중국, 일본, 류큐에서 전량 수입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조선을 견제하려고 수량을 제한했고, 류큐 왕국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사츠마 번에게 점령당했으므로, 일본에서만 수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중국과 일본의 물소를 남부지방에서 번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기후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참고로, 물소 뿔은 약재나 화각공예품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어찌되었든, 흑각궁은 조선후기에도 많이 만들었는데, 후기의 활 보유량에 대한 기록을 보자. 물소: 얼마나 많은 물소뿔을 활로 바꾼거냐! / 조선: 네놈은 매년 수천개씩 만드는 군수품의 갯수를 기억하나? / 물소: !!!

하지만 각궁은 장마철에 약화되거나 심하면 망가지기도 했다. 따라서 장마철은 총이나 말을 다루기에도 좋지 않은 계절임에도, 국경으로 침입하는 유목민족들에게 유리한 계절로 인식되었고, "마누라는 윗목에 재워도 활은 아랫목에 재운다" 라는 말이 궁사들에게 있기도 했다.[12] 그래서 조선시대 궁사들은 여름을 대비하여 합성장궁, 철궁, 간각칠궁[13] 등을 준비해두고 있어야 했다. 관련 융원필비 기록 링크.

3 국궁의 종류

3.1 시대/재료별

  • 맥궁: 역사 항목에서도 가장 먼저 확인되는 고구려 시대의 각궁.
  • 단순궁/환목궁: 한반도에서는 선사 이전에 확인되며, 삼국시대 이후에는 주력으로 쓰인 일이 적다.
  • 죽궁/목궁: 민간용 단순궁. 일명 방태기활. 전투시에도 이걸 사용할 정도면 "정말 막장이다" "졌다"라고 생각했다는 기록이 있다(...). 보편적으로 단순궁은 사낭용, 습사용, 유희용이었다. 전투용으로는 힘줄을 대거나 하는 식으로 각궁이랑 비슷하게 강화한 목제 강화궁이 쓰였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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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극환 궁장이 복원한 조선시대 동개활.(출처) 목궁임에도 복원 결과 100파운드가 넘는 궁력이 나왔다.

  • 합성궁/각궁: 대표적인 국궁이다. 재료와 형태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가 존재했다.
  • 복합궁/목제장궁: 최근 연구로는 우리나라에서도 목제 복합장궁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기병들이 중요했던 고려시대와 조선초기에는 만주활과 비슷한 복합장궁이 많이 쓰였다. 조선시대에도 180cm 만주활에 버금가는 복합장궁들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일반적인 각궁이랑 비슷한 성격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교자궁 항목 참조.
  • 철궁: 쇠를 구부리고 열을 가해서 가공한 활. 장마철 대비용으로서, 무게에 비하면 비효율적이었다고 한다. 놋쇠. 철제 유물
  • 철태궁 : 일반 각궁과 비슷하나 활몸 부분(간幹)만을 금속으로 만든 활이다.
  • 동궁/칠궁: 동궁은 빨간 도료, 칠궁은 검은 옻을 칠해서 방수성을 높인 활이다. 굳이 이런 분류를 나눈 것은, 계절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활을 번갈아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3.2 용도/명칭별

  • 예궁: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에 사용한 예식용 활. 엄청나게 체격이 큰 무관이나 기계를 써서 당겼다. 지배자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한 활이었다. 육군박물관에 소장한 18세기 예궁의 유물은 247센티미터라는 엄청난 길이를 자랑한다. 참조링크
  • 교자궁: 민간용 강화궁의 대표. 조선후기에는 활의 중요성이 감소하여 군에서도 교자궁을 주력으로 편성했다. 한때 인터넷에는 우천시 사용한 목궁으로 보는 주장이 퍼졌지만, 교자궁 관련 기록 1, 기록 2들을 참조하자면, 이러한 복합궁도 각궁이랑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다. 교자궁 뉴스
  • 탄궁 : 돌 탄환을 쏘는 활. 민간에서 사냥용으로 썼다. 놀이용으로도 많이 쓰였다.
  • 동개궁: 길이 100cm 가량. 가장 작은 활. 기병들의 무기라는 말이 알려져 있지만, 처음에는 사냥용 활이었던 것을 강화하여 사용했다. 현대에는 스포츠용 동개궁들이 전래되지만, 전투용으로 개조했던 것들은 위력이 상당했다고 한다. 크기가 작은 만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서, 정확성과 사정거리를 100%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에는 일반인들이 배우기가 편해서 많이 사용한다.[15]
  • 육량궁/정량궁 : 길이 165cm 이상. 전투용 각궁 중에서 가장 크다. 국궁의 탄성 때문에 달려나가면서 쏘았다는 웃기는 기록이 많다. 이유는 육량궁을 무관시험에서 왕의 관료를 뽑는 용도로도 사용했기 때문이다.[16] 활이 큰 만큼 무거운 화살도 발사할 수 있었다. 특히 육량궁으로만 발사할 수 있는 육량전은 너무 무거워서 비거리가 50m 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방패와 갑주를 부수기 위한 근접사격에는 비거리가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발달한 특색이다. 보편성을 강조한 다른 국궁과는 달리, 애초부터 체격이 맞는 무인들을 위한 활이다.
현대의 정량궁 재현품도 보자. 매우 두껍다

4 외국의 활들과의 비교?

활의 장력만으로 따지면 국궁보다 강한 활은 많다. 세계최고의 활로서 자주 언급되는 터키 각궁은 130파운드, 영국의 잉글리시 롱보우는 150파운드를 넘기는 무시무시한 유물들이 떼거지로 발견되었다. 동유럽에서는 헝가리의 각궁도 유명하다. 또한 중국과 유목민족들의 복합궁은 재질, 제작법, 사용법이 다르지만 한반도와 유사성이 있다.[17]

일본의 화궁도 무사들이 사용했던 종류는 약하지 않았다. 무로마치 말기~에도시대 나온 궁태궁(弓胎弓, 히고유미[18])이나 중등궁(重藤弓, 시게토 유미[19])은 우리나라 활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물론 이런 활들은 당시 일본에서 멀리까지 활을 쏘는 유행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활이지만 합성궁만이 뛰어난 활이 아니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하지만 일부 궁술단체들은 그렇게 믿는다.

국내에서는 일본 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심한 편이다.# 일본활은 활의 상단을 늘리는 방식으로 다양한 보완점을 얻었으며, 소형화에는 실패했지만, 중세 이후에는 위력을 늘리는데 국궁보다 유리한 면도 있었다. 또한 일본활의 특성은 현대적인 아름다움으로도 계승되었기에, 현재 전해지는 민간용 국궁의 성능에만 안주해서 외국의 활을 욕하는 행동은 국궁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라도 옳지 못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화和궁에 대한 오해는 종종 출신지인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20]


최고의 활을 꼽을 때 언급되는 터키 각궁. 시위를 당긴 모습도 검색해보자. 시위가 없을 때의 독특한 모양이 유명하다. 시위를 걸면 명나라 장궁과 비슷한 선을 그리고, 당기면 우리나라의 각궁처럼 탄성이 높은 모양을 보인다. 활을 자주 쓴 민족답게 이밖에도 다양한 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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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유목민족의 각궁. 가까운 한국, 중국, 몽골의 활보다 크고 두꺼워 내구성은 높지만, 탄성이 약해서 비거리가 짧은 편이다.

만주활은 유목민족의 활 중에서 가장 거대하며, 비거리는 짧지만 저장되는 운동 에너지(J)가 높아서 무거운 화살을 쏠 수 있었다.[21] 조선시대의 국궁은 약간 작지만 부려놓으면 만주활과 비슷한 형상이 되며, 고려시대의 국궁은 만주활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특히, 한반도에서 기병의 편성비중이 높은 시대일수록 닮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국궁은 만주활과는 정반대로 고탄성 활이라는 차이점이 있었다.

목숨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도 외국의 활을 연구하는데 열을 올렸다. 특히, 조상들은 만주 지방의 활을 비교한 예시가 많다. "만주 활들은 너무 투박해서, 크기에 비하면 성능이 웃음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습기에는 우리나라 활보다 훨씬 강하므로 단점만 보면 안 된다. 우리도 장마철에 쓸만한 활을 만들려면 본받을 점이 많다." 라고 비평과 반성을 하고 있었던 점을 알 수 있다.

만주활은 궁기병에게 중요한 짧은 Draw Length와 파괴력을 중시했고, 한반도의 국궁은 탄성이 높은 재료를 이용하여 비거리와 연사력을 중시했다. 즉, 국궁은 극단적인 탄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탄력이 매우 낮은 만주활과는 정반대의 특성을 지녔지만, 목재 복합궁은 쌍둥이처럼 닮은 거대한 장궁을 병용해서 만들었기에, 서로 밀접한 교류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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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등궁. 사거리는 중등궁은 180~200m, 궁태궁은 200~250m미터 가량이다. 우리나라 국궁이 무과에서 멀리쏘기 시험시 박두(고도리살, 혹은 목전(木箭))을 쏠 때 시험에 통과되는 기본 제한선이 240보(약 300m)#인 것과 비교하면 그리 압도적인 차이는 없다. 이런 활들은 원목 위에 잘게 쪼갠 대나무 가닥들을 모은 뒤에 아교로 각 부품들을 붙인다. 즉 일본식 활도 접합시 아교를 사용했기에, 습기가 많으면 각궁처럼 박살나지는 않아도 영 좋지 않았다고... 최근에 발견되는 우리나라의 복합궁 기록에도 이런 단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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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죽궁. 출처는 국궁신문. 2007년 국내에서 열린 세계민속궁축전에서 한국 각궁과 더불어 120m 떨어진 과녁을 맞추는 데 성공한 유일한 활이었다. 대나무 재질인데도 뛰어난 성능[22]을 보여줬는데, 이것은 부탄 지역의 특수한 대나무 덕분이다.

당시에 참석한 현대의 몽골, 터키, 헝가리 각궁은 부탄 죽궁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는 부탄에는 근대까지도 전투용 활의 맥이 남아있었으며, 현대까지도 활이 스포츠로서 발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활은 사용자와 필요성이 갖추어져야 발전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재질이나 형태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활의 성능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도 준다.

5 국궁의 현대적인 분석

국궁에도 재미있는 특색이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국궁은 에너지 생성량이 매우 뛰어난 활이라고 한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탄성에 의지하는 만큼, 무거운 화살을 발사할 경우에는 장궁보다 불리하다. 또, 시위의 속력 에너지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화살을 걸지 않고 빈 활을 쏘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일본의 화궁 명인의 글에 따르면, 145미터 거리의 한국 활터 비거리는 세계적으로도 먼 것이라 한다.

현대 전문가들이 분석한 국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높은 경량성과 휴대성.

2) 극단적으로 작은 몸체가 되돌아가면서 발생하는 폭발적인 에너지 생성량.
3) 'C'형 → '3'형으로 탄성이 집약된 활대가 에너지를 거의 손실하지 않고 전방으로 집중시켜줌.
4) 작은 크기로 인하여 외국의 활보다 다양한 지형과 방향을 이용가능.
5) 전방을 향하여 굉장히 빠른 조준 및 연사가 가능함.

단점은 다음과 같다.

1) 습기에 약해서 장마철에 쓰기 힘듬.

2) 활에 시위를 올릴 때 상당한 시간이 걸림.
3) 파운드가 낮은 만큼 살상력을 내기 위한 Draw Length를 길게 당겨야함.
4) 내구도가 약해서 지속적인 관리와 휴대시 주의가 필요함.
5) Draw Length가 길기 때문에 기마사격 시에는 오히려 단순궁보다 즉발 사격시에 불리할 수 있음.

즉, 국궁은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최강의 활이었다기보다는, 중세 기준으로 섬세한 기술을 집약하여 만든 활에 가깝다. 특히, 고무줄에 가까울 정도로 휘어버리는 활대를 완벽한 "C" → "3"자 모양으로 변형할 수 있는 국궁의 탄성은 중세 기준으로 놀라울 정도의 연구가 집약된 것이다. 탄성 밖에 모르는 바보

국궁의 특성은 고구려 시대부터 각궁을 극단적으로 소형화했던 성향과 맞물린다. 국궁은 2개의 손가락을 이용하는 속사형 단궁의 장점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약점은 상쇄하는데 투자한 활이라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세계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소형화에 성공하면서, 컨트롤의 폭이 넓으면서도 비거리가 길고, 전방을 겨냥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현대까지 전해지는 국궁의 특성이다.

종합하면, 국궁은 다른 활을 사용하는 궁수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으면서,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분배하여 화살이 매우 멀리 날아가며, 빠르게 연달아서 조준이 가능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활이라고 볼 수 있다.[23]

현대의 컴파운드 보우식 양궁이 달성한 기술에는 못 미치는 분야도 있지만, 국궁의 장점은 위와 같은 '가볍고 뛰어난 에너지 생성'이라는 특성을 고대와 중세의 재료만 가지고 실현했다는 점에 있다. 또한, 현재 전해지는 국궁은 습사용이라서 군사용보다 활이 가늘고 약해져서 많은 기술이 손실되었는데, 전투용 국궁은 활대를 길고 굵게 만들어서 장력을 키웠으며 이를 제대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예:정량궁, 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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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뭐라고?에 보관중인 조선시대 전투용 활. 특별 전시회를 할 때 공개된 것으로, 큰 표지의 원군(元軍)이라는 글자는 해당 구역 전시물이 원의 일본침입 당시와 관련된 것이고, 활 바로 앞에 조선궁이라는 하얀 이름표가 있다.출처 활 안팍이 시꺼먼 것은 겉에 옻칠을 해서 방수성을 높인 간각칠궁(間角柒弓)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일본 정창원에 소장중이라는 최영의 신궁(神弓)이나 유인촌이 진행하던 역사스페셜에서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을 소개하는 에피소드에서 나온 고려시대 활들은 180cm가 넘는 장궁이었다.참고. 초기에는 전통적인 각궁보다 터키나 유목민족의 각궁과 유사한 장궁들이 발견되는데, 이 시대의 국궁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편이다. 조선시대 국궁조차 연구가 덜 한참 모자라니.

아래는 현대의 스포츠 국궁과 양궁(롱보우)으로 금속판을 관통하는 영상. 영국 장궁은 실제 전투용으로도 사용되었던 85~110파운드, 국궁은 활터에서 쓰는 습사용으로서 40~50파운드다. 다만, 영상에서 사용된 국궁은 전투용 활의 기준이었던 60~77파운드에 미치지 못하는 성능이므로 직접 비교가 어려우니 재미로만 보자.

스포츠 양궁 vs 스포츠 국궁 영상도 있다. 해설자 김캐리의 만담이 웃긴다 스포츠 양궁은 장력이 10파운드 수준으로 매우 낮으며, 보정기를 장착하여 정확한 사격을 보여준다. 반면에, 스포츠용 국궁은 근세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조준이 어렵지만 강력하다. 일부에서는 이 영상만 가지고 국궁과 양궁의 특성을 나누려는 경향도 있지만, 만담에 가까운 재미로 보는 영상이니 주의하자.

6 현대의 국궁

전국 체전. 육사배 국궁대회, 전국대회는 아직 존재하지만 일부 국궁 매니아들만 즐기는 마이너한 스포츠가 되었다. 국궁신문의 일본 규도장 견학문 중에 저자의 모교에도 국궁장을 도입하자고 건의했다가 "양궁을 수련하면 실력에 따라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아시안 게임, 올림픽 게임에도 나갈 수 있으며, 성적이 좋으면 국가로부터 평생 연금도 받으며, 양궁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대우를 받는데 아무 전망도 없는 국궁을 수련하여 세월을 낭비할 학생들이 있겠는가?"면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씁쓸한 얘기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24] 물론 우리나라 학교 중에 국궁을 가르치는 곳이 전무하지는 않지만[25], 마이너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현재 국궁인구는 국궁신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3만 5천여명 가량으로 전국적으로 월에 1~2회정도의 대회가 개최되고 지역대회까지 감안하면 매주 경기가 열릴정도로 상당히 열성적인 취미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같은 계열의 양궁과는 달리 일반인의 취미로써의 접근성 자체는 더 좋은편이라 아무래도 이쪽이 취미영역으로는 더 발전하기도했다.

다만 상술했듯 일제시대의 민족분열과 각종 근현대사의 풍랑으로 인해 통일된 규격을 갖춘 국궁의 표본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며, 각 활터마다의 전통이 모두 다르다. 현재 각종 단체, 수련의 방향이나 노선의 차이로 심하면 키배가 벌어질 정도로 분열이 심한 상태다. 대표적인 것은 사법 논쟁과 대한궁도협회의 부패 문제. 마음수양이 된다는 활을 배우는 기반 잡힌 성인들이 많은 단체에서 키배 벌이는게 의외로 무시무시하다

7 배우는 단계

국궁을 배워보고 싶다면 각 지역마다 꼭 하나씩은 있는 국궁활터를 찾아가면 된다. 서울, 수도권부터 지방까지 웬만한 구,군 단위마다 의외겠지만 활터가 존재한다. 이렇듯 배울만한 곳은 꽤 있지만... 실제로 쏘는 데에는 상당한 숙련이 필요하다. 보통 200m 사로에서 쏘기에 장력이 몇 십 파운드는 되기 때문에 의외로 힘과 기술을 많이 요하기 때문. 세상에 안 힘든 일 없다지만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입문했다가는 생각보다 만만찮은 활에 좌절할 수도 있다...[26]

다음 그림은 국궁의 각부 명칭이다. 알아두면 좋다.


복잡해 보이지만 크게 나누면 손으로 쥐는 줌통, 줌통을 시작으로 한번 커브를 트는 오금, 다시금 커브를 틀어 활시위를 올리는 부분인 고자네?가 있다.
발사직전까지 화살을 올려두는 부분인 출전피가 붙은 쪽이 윗장, 아랫쪽이 아랫장이다. 사진에서 빠진 부분이 있는데, 활시위 중앙에 화살을 매기는 부분을 절피라 한다.

  • 집궁
처음 활을 잡는 것을 국궁 용어로 집궁이라 한다. 집궁례를 치르는 활터도 있지만 보통은 생략하는 듯.
집궁을 한 신사[27]는 우선적으로 활줄 매기와 풀기 등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과 [[궁도구계훈|]][28], [[집궁제원칙|]][29] 등 국궁의 기본부터 배우고 시작한다.
  • 빈활 당기기
본격적으로 초보자용 활(대략 20 ~ 30파운드)을 사용하여 빈활을 당기는 단계를 시작한다. 아마도 시위를 끝까지 당기지 못하고 팔이 떨리는 자신을 보며 옛 궁수들의 마음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팔만을 써서 당기는 것이 아닌 하반신의 지지와 등근육, 뱃심 등 포괄적으로 힘이 들어가야 하기에 더욱 힘들다. 여하간 이런 식으로 겨우 궁력(활을 당기는 힘)이 길러지면 단계적으로 더 강한 새로운 활 (40 ~ 50파운드)을 써서 다시 이 단계를 밟는다. 신사들 대다수는 이런 강행군에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카더라.
어느정도 궁력을 완성시켰다 판단될 때, 사범[30]님의 허가를 통해 주살을 내는 단계에 들어간다.
  • 주살내기와 첫 습사
주살이란, 줄+살의 합성어로 줄을 매달아 회수하기 편하게 만든 화살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사대에 오르기 전에 주살을 내게 되는데, 최초로 살을 매겨 쏴봄으로서 사대에서의 두려움을 줄이고 완전히 당겨 활시위를 놓는 연습을 하는 일종의 트리거 훈련 방식이 되기도 한다. 한번 쏘고 나서 회수가 편리하기 때문에 진짜 화살을 쏘게 된 때에도 자세 연습을 위해 한번쯤 쏴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주살연습을 어느정도 끝내면 드디어 첫 사대에서 습사(習射)를 실시할 수 있다.
충실하게 자기 훈련을 한 뉴비라면 빠르면 몇 개월 안에 이 과정까지 올 수 있다.
  • 자기수련
이후 습사를 시작하여 평균 1순[31] 중 2발정도 맞추게 되면 자신과의 싸움 단계가 된다. 국궁은 대련이고 뭐고 없는 철저히 1인 무예기에 좀 외로울 수도 있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마음을 다스리며 호흡도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며, 결국에는 계속 쏴보면서 연습하는 게 제일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사다성(多射多省)이라 했다.
그래도 한계의 벽에 부딪혀[32] 나아갈 길이 없다면, 선배 접장[33]님들이나 사범님께 여쭈는 편이 좋다. 경험자의 말을 따른다는 점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은 남이 보는 눈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연습하여 1순을 전부 명중시키게 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드디어 몰기[34]를 한 것이다. 몰기한 신사는 접장이 되어 승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35]활 수련에 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7.1 국내 사극에서의 잘못된 사법

국궁은 기본적으로 몽골리안 사법이기에 깍지를 엄지 손가락에 끼고 사용하며,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의 쌍분(雙分)을 통한 균형의 힘을 갖춘 활쏘기 방식이다. 하지만 서양식으로 검지와 중지 사이를 이용해 활을 당기는 우리나라 사극이 아주 많았고, 지금도 종종 보인다. 더불어 시각적인 부분에서는, 쏠 때 사수의 몸통이 활을 따라 비스듬함을 이루면 잘못된 자세다.[36] 제대로 배운 국궁의 경우, 겨냥 시 상체가 조금 앞으로 쏠리되 사수의 몸통이 정면을 향하며, 활과 사수의 양어깨가 삼각형을 이루는 모양새가 된다.

주몽이나 추노 등에서는 깍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몽골리안 사법을 나름대로 표현하려는 노력은 보였다. 이후 방송된 천추태후에서는 각지와 검지 보호대까지도 완벽히 갖춘 궁시일습을 묘사했고,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사극에서 성균관 유생들이 깍지를 끼고 정조 앞에서 활을 쏘는 장면이 등장했다. 발여호미라는 전통 사법의 특징 묘사도 이 사극에서 등장한게 최초인 듯.

마침내 최종병기 활에서는 적병의 육량전을 노획해 쏘는 장면에서 숫깍지를 사용하는 장면마저도 등장하게 됐다.[37]

7.2 국궁장비와 각종 가격 일체

  • 활 / 화살 : 국궁을 하는데 빠져서는 안 된다. 카본 등 합성섬유로 만든 개량궁과 전통의 각궁'이 있으며, 대한궁도협회 공인 4단 이상부터는 대회에서의 각궁 사용이 의무화되며, 대회에서 동일 점수가 나올 경우 각궁/죽시 사용자를 우대한다. 각궁 산업의 시망을 막고자 함이라나? 마찬가지로 화살 또한 카본 개량살과 대나무살(죽시)이 있다. 가격대는 각궁/죽시 쪽이 넘사벽으로 비싸다. 개량궁/살은 각각 20만원/8천원대지만 각궁/죽시는 대략 65만원/2만원선. 개량궁의 경우는 공장제지만 각궁 메이커는 개인제작인 경우가 많기에 가격대와 퀄리티가 아주 다양하다. 활을 한 장 사면 메이커마다 다르지만 보통 활가방, 활을 싸는 궁대[38], 줌통피, 추가 활시위 등이 죄다 따라온다.
  • 깍지 : 역시 국궁에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 엄지손가락에 껴 엄지에 집중되는 활의 압력을 줄이고 손가락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가격대는 대략 1만5천원 가량. 손에 끼는 물건이기 때문에 전국대회장 같은 곳에서 파는 깍지를 직접 껴 보고 맞추어 사는 것이 좋다.[39] 깍지 수급이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에[40] 신사들이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의외로 있다. 깍지의 종류는 깍지 참조.
  • 과녁 : 현대에는 거대한 과녁이 유명하다. 과거에는 나무 사이에 천을 걸거나, 가죽을 씌우고 동물 모양의 그림을 그려서 썼다고 한다. 연구기사 당연히 국궁장으로 가면 설치되어 있다. 습사용이라고는 해도 국궁은 장력에 비해서 탄력이 상당하므로 아무데서나 과녁을 놓고 쏘려고 하면 안된다. 절대로.
  • 입회비 : 국궁장에 입회할 때도 대한궁도협회에 등록비 겸해서 내는 입회비가 있고, 국궁장 사용료로 내는 월회비 등이 있다. 국궁장 자치로 운영되고 있기에 회비는 각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8 현대 국궁의 논쟁거리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근현대사의 풍랑 속에서 버텨낸 것이 신기한 국궁계는 현재도 중구난방으로 각종 논쟁을 쏟아내는 상태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8.1 대한궁도협회 관련 문제

대한궁도협회는 전국의 국궁장(사정)을 관리하는 국궁계 최고위 기관으로, 궁시 장비의 공인이나 국궁 대회 주최 등 거의 모든 실권을 관리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일으킨 병크 중 유명한 것이 공인 궁시 변경궁시 가격 제한이다. 이외에도 많은 병크가 있어 기성 활터를 혐오하는 국궁인들이 따로 떨어져나오는 경우도 속속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 공인 궁시 문제
갑작스러운 공인 궁시의 변경으로 엄청나게 국궁계가 시끄러웠었다. 공인장비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장비로, 원칙적으로 공인필이 없으면 대회 출전을 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공인장비의 규격을 갑작스럽게 국궁인의 대다수 장비와 안 맞는 듣보잡 메이커에 맡겼다는 것. 궁시는 자주 바꾸기 힘든 고가품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번 쓰면 평생을 갈 수도 있다. 이러한 처사는 전국 국궁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 궁시가격 제한 문제
대한궁도협회는 앞장서서 국궁장비 가격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개량궁은 20만원, 각궁은 60만원으로 못박아둔 상태.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이러한 행태는 공산당과도 같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제도다. 가격이 올라도 좋은 활을 쓰고 싶다는 이들의 욕구도 충족을 시켜줘야 국궁계가 발전이 있는 것이 아닌가?[41]

8.2 사법 논쟁

고대-근대의 사법을 현대에 복원시키려는 고전사법 사용자와 현대의 사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논쟁도 대표적인 토론거리다. 이 논쟁은 정사론[42]이라는 옛 무인이 쓴 책에도 나올 정도로 대표적인 논쟁거리며, 지금도 국궁신문 홈페이지에 관련 기사가 자주 나온다.
요점은 현대의 국궁 사법과 고대-근대의 사법 중 어느 것이 정통이냐 하는 내용. 이는 수많은 논쟁을 낳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옛 사법이 멋이 난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인듯. 주몽 이후의 사극에선 거의가 뒷손을 크게 떼는 옛 사법을 사용한다.사극에서 현대 사법을 쓰는게 더 이상한거 아닌가?

9 국궁을 이용하는 대회

국궁만을 사용하는 대회로는 전국체육대회의 궁도 종목, 육사배 국궁대회, 전국대회 등이 있다. 다른 대회는 추가바람.

대한궁도협회 주도로 세계민족궁협회(World Traditional Archery Federation·WTAF)이란 단체가 설립됐는데, WTAF는 2005년부터 세계민족궁대축전(World Traditional Archery Festival)이라는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1회 축전에서는 국궁을 포함해 각국의 전통 활을 시연하는 정도였지만 2회 이후로는 각국 선수들이 자국의 전통 활과 전통 복장을 가지고 대결을 펼치는 대회가 되었다고 한다. 외국 선수가 한국 국궁을 가지고 와서 경기를 치른다든가, 경기가 끝난 뒤 한국 국궁을 사서 귀국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기사(騎射, 말 타고 활 쏘기)를 전문으로 하는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43]라는 단체에서는 세계기사연맹(World Horseback Archery Federation, WHAF)라는 국제 단체를 설립했는데, 이 WHAF는 2004년부터 세계기사선수권대회(World Horseback Archery Championship)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각국에서 활동하는 기사 수련자들이 대거 참가한다고. 이 대회 역시 선수들이 한국 국궁(단 크기가 작은 동개활 사용) 등 자국의 전통 활을 가져 와서 쓴다.

10 관련 항목

  1. 출처는 이곳.
  2. 주몽은 이름 부터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구려 건국 때 비류국 송양과 활쏘기 시합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
  3. 이지란이 먼저 동이를 이고 아는 아낙의 동이를 맞추어 구멍을 내면, 이성계가 이어 화살촉에 솜을 감은 살을 쏴 그 구멍을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밖에 철새 20마리를 쏘아맞췄다는 뻥 같은 찬양이 많지만, 창업군주로서 숭배받은 기록을 제외해도 역사상 손꼽히는 명궁이자 인간흉기였다.
  4. 정조가 활을 쏜 기록에서 보면 50발 중 41발, 45발, 46발, 47발 등 기록이 계속 늘어나다가 이후 49발이 10번 정도 나오는데, 일부러 50발 다 안 맞췄다고 한다. 이는 신하들 기 죽을까봐 그랬다는 말도 있고, 자만심을 막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화성에서 활쏘기를 하는데, 부친에 대한 예로 50시 중 한발을 일부러 안 맞췄다는 이야기도 있다.
  5. 90~00년대 신문이나 책이나 인터넷에서 사설을 통해 번진 말이지만 옛날 사람들이 남긴 말인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각 나라에서 어떤 무기를 보편무예로서 중시했는지를 나타내준다.
  6. 합성궁과 복합궁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복합궁은 다른 종류의 나무들을 합쳐서 만든 활, 합성궁은 목재 외의 다른 재료를 추가로 사용한 활을 의미한다.
  7. 동북아역사재단 저,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참고.
  8.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9.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말단 무관들이 술내기를 하다가 수백발을 겨뤘다는 기록도 있다. 10발을 쏴서 더 잘 맞춘 이가 승리하는 내기로 시작했으나, 양쪽 모두 계속 적중하는 바람에 승부를 낼 수가 없으니, 그때마다 술 한 잔 더하고 다시 10발을 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술 마시고 활을 쏘는데도 양쪽이 모두 수백발을 명중시켜서 승부가 안 났더라는 이야기.(...)
  10. 한국 양궁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비인도적일 정도의 빡센 훈련 덕분이다.(...) 실제로 외국에서 한국 양궁을 따라해보려다가 훈련과정을 보고는 고개만 젓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외국으로 코치와 선수진이 수출되고 나서는 이전처럼 압도적인 양상도 줄어들었다고. 해외에서 돈을 더 주니깐 어쩔 수 없지.
  11. 이해가 안된다면 나무위키 각궁의 2번 한국의 각궁으로 가보자. 조상님들이 별별수를 써서라도 대체용품을 만들려고 머리를 굴린것이 느껴진다.
  12. 거의 모든 시대의 국궁들은 장마기간에 대하여 주의하는 내용이 많다. 위화도 회군 당시에도 이성계가 장마철에는 아교가 풀어서 활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4불가론 중의 하나로 들었다. 이것은 비단 각궁 뿐만 아니라, 목제 복합궁도 아교로 고정했기에 습기에는 취약했음을 드러낸다.
  13. 겉에 옻칠을 여러 번 하여 내수성을 부여한 활.
  14. 이런 식으로 섬유를 대어 강화한 강화궁은 이누이트 족 활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의외로 흔하게 볼 수 있다.
  15. 특히 궁술 체험 코스, 무예24기 관련 조직에서 자주 사용한다. 다양한 무술 시범을 배우거나 직업 때문에 바쁜 사람들에게는 가장 배우기 쉬운 활이기 때문이다.
  16. 단순히 당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대략 300m를 쏘아야했다. 현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먼 거리다. 당연히 체격이나 궁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모두 탈락했다. 장력이 강한 활에 무거운 화살을 쏘는 극단적인 궁력 시험이었으므로, 이 과정에서 몸을 다치는 사람이 많아 후대로 갈수록 기준이 완화되었다. 정부에서도 멀쩡한 장사들이 무과에 응시했다 다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난감했을 것이다.
  17. 고려시대의 복합식 장궁 유물도 만주나 몽골식에 가까운 형상이었다. 따라서, 한반도의 활은 고구려시대부터 이어진 C자형 활에서 여러나라의 양식을 연구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 연구될지는 미지수. 중국애들이 먼저할것 같다.
  18. 에도시대에 등장한, 일본의 활 중에서는 가장 발달된 형태다.
  19. 전국시대의 상급 무사들이 자주 사용했던 활이다. 하급 무사들이 주로 사용했던 사방죽궁(四方竹弓, 시호다케 유미)과는 달리, 겉에 옻칠을 하고 등나무 껍질을 씌워 내수성과 강도를 보강한 활.
  20. 다만 유의할것은, 댓글에서 인용된 색스턴 호프 교수의 책(HUNTING with the BOW & ARROW)에서 비교되는 활들은 제대로된 국가보단 아프리카나 알레스카, 아메리카 등지의 원주민들의 전통 활을 다루고 있어 이것으로 일본활이 타국가의 활에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건 어폐가 있다. 오히려 영국이나 일부 원주민들의 활에 밀리는 모습만 보여줄뿐. 사실 이 책에 대한 언급 자체가 날조와 과장이 횡행하던 인조이재팬의 일본인에게 나온 자료다.
  21. 기마사격에는 비거리가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발달한 특색이다. 궁기병들은 속력을 이용하여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목표물을 정확히 쏘고 지나치는 공격 이탈 능력, 무거운 화살을 이용하여 일격으로도 확실히 살상력이 보장되는 '빠른 단발 사격'이 가능한 활을 선호했다. 한반도에서도 기마병을 많이 편성했던 시대에는 투박한 만주활을 닮은 국궁이 사용되었다.
  22. 본문 하단
  23. 특히, 국궁을 단련한 사람은 Target을 정조준하는 속도를 단축하기가 매우 쉽다. 활을 쥐고 끝까지 당기면, 전방의 타겟을 정조준할 수 있도록 매우 겨냥이 쉽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동북아시아식 깍지 덕분에 재조준과 연사도 빠르다.
  24. 근데 사실 양궁 항목에 나오듯이 양궁의 대접도 좋지많은 않다. 그나마 성공하면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25. 대표적으로 민족사관고등학교. 이 곳 외에도 클럽활동으로 하는 곳이 극소수 존재한다. 최근 구리 인창고등학교의 국궁동아리 활동 또한 지속적으로 홍보대고 있다.
  26. 물론 활터에 찾아가 처음 찾아왔다고 하면 요식으로 30여 분 간단히 쏘는 법을 가르쳐 준 뒤, 실제 화살을 걸고 쏠 수 있게 해주는 곳도 더러 있다. 그러나 처음을 잘못 배울 경우, 자세가 잘못 되어 손목 안쪽이 피멍투성이가 되는 등 금세 흥미를 잃을 수 있으므로 도전해보고 싶다면 인내를 갖고 배워보도록 하자.
  27. 新射. 지역 국궁장에 입회한 신입회원을 의미한다.
  28. 4자성어로 이루어진 9가지 원칙이다. 습사시엔 입을 열지 말것, 남의 활을 당기지 말것 등 예절 위주의 내용이다.
  29. 유명한 문구이며 최종병기 활에도 등장한 전추태산 발여호미라는 말이 여기 들어있다. 활을 잡았다면 어떻게 해야 바른 자세로 과녁을 맞출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다.
  30. 보통 5단 명궁으로 구성되는 국궁장에서 유일하게 신사를 가르칠수 있는 지위를 가지는 직책. 일본식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국궁인도 있다 카더라.
  31. 국궁에서의 1세트는 순(巡)으로, 5발을 1순으로 한다
  32. 이쪽 용어로 "활병"이 난다고 한다. 보통 자의식 과잉이나 자세 불량 등으로 인한 한계점이 생기는 경우가 잦다.
  33. 동학당의 포접제에서 온 말로, 첫 몰기를 한 궁사에게 주는 명예 호칭. 처음 뵙는 국궁인들끼리 예의상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34. 무과 시험에서 1순을 모두 명중시킨 것에서 온 말로, 1순 5발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킨 것을 의미
  35. 승단을 하는 데 별다른 제한은 사실상 없지만 이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승단에 용이하다.
  36. 양궁에서 보는 예의 그 자세.
  37. 제작 단계부터 대한궁술원의 자문을 받았고 감독부터 주조연배우들이 최소 1회 이상 궁술원 주최의 습사에 참여한 바 있다. 심지어 문채원까지도.
  38. 활을 싸서 보관하는 용도로도 쓰이고, 작은 주머니가 달려있어 깍지 등 필요물품을 보관할 수도 있다. 활을 쏠 땐 허리에 매어 화살 1순을 고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39. 손가락은 인체 말단 부위기 때문에 아침의 굵기와 저녁의 굵기가 약간 다르다. (심하면 플라스틱 깍지 1호 정도). 또 뿔 깍지는 날씨에 따라 사이즈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크기를 약간 달리해서 여러 개 갖춰두는 것이 좋다.
  40. 손가락에 맞춰봐야 되는데 대회 때가 아니면 살 수도 없고, 대회는 맨날 하는것도 아니므로
  41. 다만 2011년 충주무술축제에 전시된 송무궁의 각궁은 120만원이었고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비공인 궁방의 각궁으로 비공인 궁방은 궁도협회의 가격에 매이지 않는 것으로 대회에 들고 나갈 수 있는 공인 궁방의 각궁은 여전히 55만원으로 동결되어 있다. 그러니 대회따위 관심없다면 비공인 궁방에서 본인에게 맞는 제작을 웃돈을 주고서라도 제작하는 것이고 대회에 관심이 있다면 공인궁방으로 가서 맞춰야 할 것이다.
  42. 내용은 대략 선비들이 활을 쏴 무인의 전투활쏘기가 실전되고 있다는 데 개탄하는 내용
  43. 이 단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무예도보통지 항목 내 '현대의 무예도보통지' 단락을 참고할 것. 서술이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