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훅/스트레이트 등의 펀치 기술에 대해서는 복싱 기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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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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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3초에 11번의 펀치를 꽂는 장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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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알바레즈(홍) vs 플로이드 메이웨더(청)

boxing, 拳鬪

격투기의 한 종류. 체중별로 체급을 나눠 동급끼리 사각 안에서 손에 글러브를 끼고[2] 오직 상대방의 상반신만[3] 주먹으로 공격하는 스포츠.

2 특징

과거부터 현재까지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여, 지금은 주먹을 사용하는 격투기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투기종목에서도 복싱의 기술을 도입한 예가 많으며 종합격투기 계에서도 복싱은 모든 파이터들의 필수과목이다.

복싱 기술스트레이트, , 어퍼, , 이렇게 4가지 밖에 없어 단순한 무술로 볼 수도 있지만, 기술이 적은 만큼 반복훈련이 많고, 그냥 내지르고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몇 수 앞까지 생각해서 공격할 루트를 정해야 하는 복잡한 무술이기도 하다.

다른 무술에 비해 직관적이기에 복싱의 실전성은 매우 높아 길거리 싸움에서도 복서가 시비 거는 상대를 가볍게 농락하는 동영상이나 gif 등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이런 이유는 길거리 싸움의 특징에 있는데 발차기는 배우지 않으면 능숙하게 쓰는 게 불가능하고 그래플링은 아예 일반인들은 시도할 생각조차 안한다. 그러면 결론은? 당연히 단순 주먹싸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주먹만으로 싸우면 제일 강한 무술이라고 할 정도로 특화된게 복싱이다. 그렇다고 싸움실력 늘리겠다고 복싱을 배우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마음을 닦고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재미있게 즐기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스포츠이지 쌈박질이나 하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 현대사회에서는 법으로 서로 상해를 입히는 상황을 금지하였고 도덕적으로도 바람직한 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

주먹만 쓰는 무술이다 보니 다른 투기종목 진출시 발차기에는 취약하다거나 잡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애초에 권투가 주먹만 이용하는 스포츠기 때문인데, 만약에 킥에 능한 상대나 그래플러를 만났을 때 복싱기술만으로는 대처가 힘들다. 단, 인간이 가장 많이 쓰는 신체부위중 하나인데다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나오는 부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한마디로 주먹만 이용하는 무술로는 복싱이 최고다.

3 역사[4]

고대 벽화에 따르면 BC 4000년 무렵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당시 왕의 군대가 무술 훈련의 하나로 권투를 익혔음이 판독되었다. BC 20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부조도 있다. 이후 이집트나 에티오피아에서의 권투가 크레타섬을 거쳐 그리스로 건너갔고, BC 688년 제23회 고대올림픽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복싱의 초기 형태에 관한 기록은 서기전 2500년 경부터 나타난다. 그리스에서는 복싱(πυγμαχία(퓌그마키아))[5]은 물론 판크라티온(pankration)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MMA 경기와 비슷한 것 까지 실시되었다. 이 경기는 기원전 776년 제우스신을 경배하기 위하여 열린 고대올림픽의 한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직업적인 권투선수가 등장하여 생사를 판가름하는 잔혹한 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아예 너클을 끼고 상대방을 패죽이는 것도 다반사. 이러다보니 기록상으로 혼자서 18년동안 2천여명을 때려죽인 선수까지 있었다. 그리고 처벌은 커녕 잘 먹고 잘 살고 부유하게 살다가 갔다고... 그러다가 404년 로마황제 호노라스가 기독교를 믿으며 검투와 더불어 이를 금지시키기도 하였으나 비공식적으로는 계속 행해졌다.

근대 영국에서 현대 권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이즈 파이팅(prize fighting)이 등장했다. 이 시기의 권투는 레슬링이 허용되었으며, 맨주먹으로 싸웠다는 점에서 오늘날보다 실전지향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하층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었고 음주와 도박 등으로 물의를 빚었기에 상류층에서는 빈번히 금지하곤 했다. 돈을 거는 경기는 금지되었지만, 상류층에서도 호신 목적으로 권투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6] 중상류층의 복싱 클럽을 중심으로 점차 권투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7]
근대 복싱의 탄생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검술과 곤봉술로 이름이 난 제임스 피그(James Figg)가 1718년 런던에 복싱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제자들에게 복싱을 가르쳤다. 당시는 맨손으로 싸웠으며, 승자는 상금을 받았으므로 복서를 프라이즈 파이터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프로복서의 전신이다. 그뒤 피그의 제자 잭 브로턴이 처음으로 스포츠화하였다.

1786년에는 당시 아마추어스포츠협회 임원인 J.G.젬버에 의해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권투의 후원자인 퀸즈베리(Queensberry) 후작의 이름을 따서 ‘퀸즈베리 룰’이라 불렀다. 이것이 현대 권투규칙의 기반이 되었고 19세기 말부터는 체급별로 경기를 하였다.

이후 펜싱의 풋워크를 응용해 권투에 접목시켰고, 권투글러브의 도입으로 손가락 부상을 우려해서 주먹을 세워 치던 '베어너클 복싱'에서 주먹을 뉘여서 치는 현대 복싱으로 변화하였다. 20세기 초만 해도 정말 막싸움 수준이었지만 "펀치는 맞히는 것보다 떼는 것이 중요하다"란 명언을 남긴 슈가 레이 로빈슨과 풋워크의 극한에 달한 무하마드 알리 같은 선구자들 덕에 현재에 이르렀다. 보통 1970~80년대 정도부터 현대 복싱이 완성되었다고 본다.

레슬링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선 주먹을 쓰는 타격계 무술이라면 본 이름보단 무슨무슨 복싱하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무에타이를 '타이 복싱'이라고 부른다거나 쿵푸를 '차이니즈 복싱'이라고 부른다거나. 사바트를 'boxe française'라고 말한다던가. 인도의 타격무술인 '무스타 유다'를 '무키 복싱'으로, '프라달 세레이'를 '캄보디아 복싱'이라고 부른다거나.

4 규칙

세계 어떤 격투기도 권투만큼 규칙과 규정이 복잡한 격투기는 없다. 아무튼 간에 뭐만 했다 하면 권투는 무조건 반칙 처리다. 권투 룰북에서 가장 두꺼운 부분은 반칙 부분이다. (이와 반대로 무에타이 룰북에서 가장 얇은 부분이 반칙 부분.) 못 믿겠으면 격투 기술 관련 정보에서 '권투에서 반칙인 기술'을 한 번 세어보자. 80%가 반칙이다. 주먹 빼고 싹 다 반칙 심지어 주먹도 오픈 블로로 치면 반칙이다

디시위키에선 12라운드동안 주먹을 주고받다가 뜬금없이메이웨더가 판정승을 하는 것이라고 써져있다(...).

물론 이 여러 규정 안에서 어떻게 하면 게임을 재미있고 유리하게 풀어나갈까를 구경하는 세련된 맛이 있다.

4.1 체급

복싱도 극 초창기에는 체급 개념이 따로 있지 않았지만 1800년대 초반부터 체급이 분화되기 시작했고, 1900년대 초반 기본 8체급(헤비-라이트헤비-미들-웰터-라이트-페더-밴텀-플라이) 체계가 갖춰졌다. 이후 그 사이 사이에 중간체급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1980년대에 현재의 17체급 체제[8]가 완성되었다.

(WBA 기준[9])

  • 라이트 미니멈급 102 lbs.(46.266 kg.) 이하 [10]
  • 미니멈급 105 lbs.(47.619 kg.) 이하
  • 라이트 플라이급 108 lbs. (48.979 kg.) 이하
  • 플라이급 112 lbs. (50.793 kg.) 이하
  • 슈퍼 플라이급 115 lbs. (52.154 kg.) 이하
  • 밴텀급 118 lbs. (53.514 kg.) 이하
  • 슈퍼 밴텀급 122 lbs. (55.328 kg.) 이하
  • 페더급 126 lbs. (57.142 kg.) 이하
  • 슈퍼 페더급 130 lbs. (58.956 kg.) 이하
  • 라이트급 135 lbs. (61.224 kg.) 이하
  • 슈퍼 라이트급 140 lbs. (63.492 kg.) 이하
  • 웰터급 147 lbs. (66.666 kg.) 이하
  • 슈퍼 웰터급 154 lbs. (69.841 kg.) 이하
  • 미들급 160 lbs. (72.562 kg.) 이하
  • 슈퍼 미들급 168 lbs. (76.190kg) 이하
  • 라이트 헤비급 175 lbs. (79.365 kg.) 이하
  • 크루저급 200 lbs. (90.718kg) 이하
  • 헤비급 200 lbs. (90.718 kg.) 이상

4.2 올림픽 복싱

권투는 올림픽의 정식 종목 중에 하나로 프로복싱의 12R[11]와는 달리 3분 3R만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는 올림픽의 특성상 경기주기가 짧아 한달도 못되는 기간에 여러번 경기를 가지므로 과로방지 차원에서 경기당 라운드를 최소화 한 것이다.

더불어 올림픽 권투는 3,4위전이 없다. 즉, 준결승에 올라가기만 하면 무조건 동메달.# 그래서 동메달이 2명 있는 종목이다.

프로복싱과 달리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더 두꺼운 권투글러브를 낀 채로 시합한다. 2013년부터 남자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다시 헤드기어가 없어졌고 올림픽에서는 2016년부터 적용된다. 2012년 신설된 여자복싱에서는 유지 중.
이 때문에 올림픽 복싱만의 테크닉 위주의 복싱이 사라지고 붕붕훅이 난무하는 등 아마추어 복싱의 맛이 없어졌다

5 위험성

일반인과 선수의 차이가 매우 크다.

경기중 뇌출혈로 인한 사망자가 상당히 많다. 골고루 맞는 다른 타격기와 달리 대부분의 공격이 머리로 집중되는 특성 때문. 장비를 착용하고 스파링을 해도 맞을때 충격이 그대로 머리에 전해지니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기도 한다.

복싱이 위험하다는 지적은 계속되어왔다. 김득구 선수의 사망 이후에는 세계 대회에서 대대적인 룰 개정이 이루어질 만큼 그 충격이 컸으며, 최요삼 선수는 경기는 이기고도 부분의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김득구의 사망이 15회제가 폐지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세계챔피언전은 12라운드로, 논타이틀전은 10회제로 축소되었다.

다만, 이것은 선수의 이야기이고, 일반인에겐 격투기 통틀어서 가장 안전한 축에 속한다. 풋워크를 통해 하반신을 많이 쓰지만 직접적인 공격 부위는 아니니 무에타이처럼 킥을 차다가 햄스트링을 다치거나 발목이 나가는 경우가 없고, 타격기라 주짓수처럼 관절이나 인대에 근골격계 손상을 입을 걱정을 안해도 되며 밴디지와 글러브로 공격부위인 주먹을 보호하며, 스파링시에는 머리를 보호하는 헤드기어와 마우스피스를 착용하니 부상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펀치드링크도 일반인이 그걸 겪으려면 생업 때려치고 매일같이 하루종일 스파링만 해야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이어트를 위해 배우는 경우는 처음부터 세세한 교정이나 스파링보단 특유의 운동량으로 살 빼는데 집중하니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 관장이나 코치가 항상 주시하고 있고, 안전장비도 모두 착용하고 서로 합의하에 대련을 하는 것이라 일상 스포츠중 가장 안전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축구만 해도 동네축구에서도 태클을 잘못 맞거나 넘어져서 여기저기 부러지는 경우도 많고 다른 구기종목들도 마찬가지. 반면 복싱은 스파링중에 코뼈가 부러진다거나(...) 탈골되는식의 부상이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6 현황

6.1 기구

한국에선 싸잡아 세계 챔피언이라고 칭하지만 그 중에서도 듣보잡도 있고 메이저가 있다.

  • WBA(World Boxing Association, 세계권투협회)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지닌 권투기구. 1921년 NBA(National Boxing Association : 미국권투협회)를 전신으로 하는 단체. 1962년 8월 WBA(World Boxing Association : 세계복싱협회)로 개편을 단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벨트 남발과(챔피언 외에 슈퍼 챔피언, 잠정 챔피언을 편성하기도 한다.) 부실한 운영 때문에 프로모터 사이에서 평판이 떨어져 WBO 등에 밀리는 추세.
  • WBC(World Boxing Council, 세계권투평의회)
1963년에 창설된 기구. 동명의 야구대회와는 관계 없다. WBA에 반발해서 중남미와 제3세계가 주축이 되어 발족시킨 기구로 WBA에 이은 세계 2위의 기구. 하지만 3위와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이 두 기구 챔피언이라면 어딜 가도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1, 2번은 양대 기구로 인정하는 세계기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회장인 호세 슐레이만이 장기집권하면서 현재 입지가 좀 좁아진 상태. 아시아 시장 개척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최근에는 권투인기가 타격받으면서 이 명칭은 월드야구클래식 명칭으로 더 익숙한 현실.
  • IBF(International Boxing Federation, 국제권투연맹)
1983년 창설된 역사가 짧은 기구로 초창기에는 2류 기구로 갖은 무시와 괄시를 당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세계 3대 기구로 올라서있다. 80년대 초창기에 한국 선수들이 세계 챔피언이 많았는데 주로 IBF 출신으로 박종팔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수준이 낮았고 기구의 네임밸류를 올리기 위해 유명한 챔피언에게 벨트를 그냥 선사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당시 챔피언들은 별 인정을 못 받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한국은 탈퇴한 상태지만 해외에선 메이저로 인정받는다. 최근엔 IBF로 복귀했는지, 2015년 IBF 총회가 한국에서 유치 될 예정이다.
  • WBO(World Boxing Organization, 세계권투기구)
1990년 출범한 신생기구로 초기에 역시 괄시를 당했으나 이제는 약진하여 세계 4위의 복싱기구로 인정받고 있으며 5체급을 석권했던 골든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도 첫 타이틀이 WBO 쥬니어 라이트급 타이틀이었다.(이 때문에 호야의 6체급 석권이 제대로 인정을 못 받기도 하지만) 현재는 3대 기구의 챔피언과 동등한 입장에서 통합타이틀매치를 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해외에선 4대 메이저로 꼽히지만 한국은 IBF 때문에 함께 마이너 취급이다. 그러나 프로모터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고 흥행성있는 빅매치를 잘 잡아 최근에 와선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구로 성장했다.


그외 WBU, IBC, WBF, GBA(?) 등등 많은 기구가 있으나 대부분 수준낮은 3류 단체들이다. 한때 케이원 출신으로 권투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단 떡밥으로 유명했던 매트 스켈톤은 WBU 챔피언이었는데 이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연방 기구일 뿐이고 실제 세계 랭킹에선 4 ~ 50위 수준이다. 최근 몇 년간 설립된 기구가 많은데 이 때문에 세계 챔피언이 난립하게 되었단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 랭킹 100위 안에 간신히 드는 복서들조차 타이틀을 딸 수 있을 정도. K-1이나 UFC 등에 세계 챔피언이랍시고 오는 선수들은 대부분 이런 기구 출신이거나 오래전에 은퇴한 퇴물들이다.(레이 머서라든가, 제임스 토니라든가.)

최근 추세는 '링'지 같은 언론에서 선정하는 P4P 랭킹이 더 영향력이 있다. 현세대 최고의 스타 매니 파퀴아오는 P4P 1위를 2회 차지한 바가 있다. 축구처럼 확실한 통합 기구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기구들이 난립해도 제재를 가할 수 없어서 점점 기구의 영향력은 떨어지는 추세. 올드 팬들 사이에선 여전히 메이저 기구를 따지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선 확실히 기구 중심보단 스타 선수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6.2 인기

세계적으로 보면 투기스포츠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으며, 선수층 또한 가장 두텁다. 세계적으로 복싱 인기가 떨어졌단 말이 있는데 대형 스타가 없어서 정체되긴 했어도 한국과 달리 인기가 떨어진건 아니다.[12] 세계적으론 여전히 복싱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다. 2010년 5월에 열린 웰터급 챔피언전에 관람을 온 스타들만 해도 머라이어 캐리, 윌 스미스, 아널드 슈워제네거, 제이미 폭스 등.

미국에선 인기가 하락하여 인기 스포츠 순위 9위까지 내려앉았지만 의외로 그 외의 국가에선 오히려 인기가 올라간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필리핀에는 매니 파퀴아오의 등장으로 국가 전체가 복싱 붐[13]이고 종합격투기가 절대적 강세였던 일본에서도 최근에는 다시 시청률도 역전했고 경기도 거의 매일 열리고 있다.[14] 인기 챔피언은 경기당 대전료가 2억엔에 달한다.

유럽에서의 인기는 조 칼자게[15]나 클리츠코 형제 등 유럽 복서들의 약진으로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올라갔다. 영국은 여기서도 훌리건들이 판치고 독일은 유럽 최대의 시장으로 인기 선수들의 경기는 시청률이 50%에 육박할 정도이다.슈퍼미들급과 헤비급을 비롯한 몇몇 체급에선 오히려 미국에서 유럽으로 원정을 가는 경우도 잦다.

몇 년간 끼리끼리 헤비급을 나눠먹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클리츠코 형제는 독일에서 활동 중인데, 경기할 때마다 시청률이 50%를 넘나들며 거대한 축구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수퍼스타들이다. 2011년 7월 2일 개최된 데이비드 헤이와의 통합 타이틀전에서는 시청률 67%, 시청자 수 1550만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 전세계 150여개 국에 중계됐다. 물론 한국은 한 치의 관심도 없었고

중국 역시 아마추어 복싱에서 엄청난 진전을 보이며 프로 복싱 역시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리키 해튼 VS 메이웨더전은 중국 내에서만 5천만 명이 넘는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라이트플라이급 올림픽 2연패를 기록한 쩌우스밍은 매니 파퀴아오를 관리하는 밥 애럼 프로덕션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아랍이나 그 외 가난한 나라도 제법 시장성이 있고 선수들의 수급이 이뤄진다. 종교로 막장이던 탈레반조차도 인정하던 정말 얼마 안 되던 스포츠였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잡을 때 아시안 게임이라든지 국제경기 나가는 선수들에게까지 수염을 밀지 못하도록 해서 국제권투계가 아프간 선수들을 출전하지 못하게 하자 결국 국제경기를 보이콧해버렸다. 2010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취재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바로 권투였다고 한다. 훈련장과 경기에서만은 그녀들도 히잡을 벗을 자유가 허용된다. 탈레반 시절이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이 나라는 아직도 극렬 보수적 종교 신앙이 가득한 곳임을 생각하면 권투의 인지도를 알 수 있는 대목.

넬슨 만델라도 젊은 시절 권투선수였으며 차별과 탄압에 시달리던 남아공 흑인들에게 권투가 축구와 더불어 현실의 아픔을 잊게 하던 스포츠였다고 한다.

과거 리비아독재자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권투가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국가적으로 금지시켰던 적이 있었다. 과거 아프리카 내에서도 알아주는 권투 강국 중 하나였던 리비아는 독재정권이 무너져 민주화가 되자 다시 권투가 활성화가 되기 시작했다. 기사

이런 인기 덕에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경기 당 대전료가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중량급의 인기 있는 챔피언이라면 순수 대전료만 500만 달러 이상을 받고 오스카 델라 호야 같은 인기 챔피언은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16] 막대한 돈이 오가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스펙을 가진 선수들이 몰린다.

서양 유머 중 이런 것이 있다. 유명 프로 복서가 강도를 만나 20달러가 든 지갑을 털렸는데, 기자가 그를 인터뷰하면서 "맞서 싸웠다면 한 방으로 쓰러뜨렸을 텐데 왜 그냥 지갑을 빼앗겼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고작 20달러 대진료를 받고 싸우란 말이오?" 실제로 실력 좋고 흥행성 좋은 프로 복서들은 내지르는 주먹 한방마다 1만불은 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진료가 상상을 초월한다, 도리어 전성기의 호야같은 최고의 인기 복서는 아마 펀치당 1만불로도 부족할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 타이슨 VS 마이클 스핑크스와의 경기서 타이슨의 주먹 한방의 가격은 73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억 2천만원이 넘는 펀치였다. 환율과 그때의 가치까지 같이 고려하여 계산한다면 한방당 15억이 넘어가는 펀치라는 말이 된다.

프로 선수만 해도 (몇몇 비인기 체급을 제외하곤) 체급 당 만 단위에 이르며 아마추어까지 가면 선수층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또 아마추어에서 활약하는 복서들의 전적을 보면 전적이 200전이 넘어가는 선수들이 허다하다. 어지간한 전적으로는 월드랭킹에 명함도 못 내밀 정도고 그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선 지역 챔피언만 해도 수입이 상당하다.[17]

일본의 경우는 여전히 복싱이 큰 인기를 끌고 있고,(시청율에서도 2009년도부터 다시 종합격투기를 역전했다.) 인기 상위 랭커들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만큼 다른 양상도 있고 한국이든 일본이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드라마 등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경량급에선 여전히 세계 랭커들이 여럿 포진돼 있고, 간간이 세계 타이틀전도 갖고 있다.

최근 챔피언이나 올림픽 성적에 대해서는 영어 위키백과 참고.

미국뿐만 아니라 중남미 , 유럽 , 중앙아시아 출신들도 많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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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순위가 우즈베키스탄 , 쿠바 , 프랑스 , 카자흐스탄 , 러시아 , 영국 미국 순이었다. [6]

합계순으로보면 중국도 꽤 선전은 했다

6.2.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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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6일 한국 타이틀전 포스터. 1971년이 아니다. 포스터만 봐도 한국 권투의 현실을 알 수 있다. 포스터에서 언급된 80년대 복싱스타 유명우, 장정구, 박종팔 선수가 현역일때도 이수준은 아니었다.

파일:Attachment/권투/boxing 2 Wladimir Klitschko David Haye.jpg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vs 데이비드 헤이 전의 권투 포스터.

파일:8582310148d640be74e86031f2b863f2.jpg
그리고 3년이 지난 2014년 8월 30일 KBA 주최 경기 포스터. 3년 동안 오히려 퇴보했다.킹오파 캐릭 선택창 같다

한국에선 7~80년대 수많은 챔피언을 배출하면서 국민 스포츠로 떠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무하마드 알리 방한 당시엔 나라가 들썩거렸고 TV에서 생중계를 했었을 정도.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 역시 알리의 팬이라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경량급에선 세계 챔피언도 몇번씩 배출했었고. 지금은 믿겨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복싱 타이틀전은 온 가족을 TV 앞으로 몰려들게 만드는 흥행 프로그램이었다. 리즈시절에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났는데, 80년대 복싱 슈퍼스타 장정구[18]의 1년 수입이 당시에 2억 4천1백만원이나 됐다.

참고로 당시 프로야구 선수는 장명부, 김일융 같은 거액의 돈으로 온 재일교포 선수들이 8000만원대였고, 최동원이 7천만원으로 국내선수 연봉 1위였다. 축구는 그 당시 가장 잘나갔던 허정무, 조광래가 3천만원 조금 안되는 연봉이었다.

올림픽, 아시안 게임에서도 양궁, 레슬링과 함께 한국의 메달을 책임지는 주요 종목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으나 올림픽에서는 1988년 김광선, 박시현 이후 금메달이 없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함상명 단 한명만 출전하였다.
지난 2009년에는 장정구 선수가 권투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2013년에는 유명우 선수가 뒤이어 명예의 전당에 헌액.

하지만 현재는 처참하게 인기가 낮아져 몰락한 상황이다. 60년대부터 불어온 복싱 붐은 수많은 세계챔피언들을 배출하여 한국을 복싱강국으로 만들었지만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지나 사회의 빈곤이 점차 줄어들자 복싱은 축구나 야구 같은 타종목에 밀리고 시작했고 위험하고 고단한 스포츠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어려운 시절에는 두 주먹으로 싸워 대박을 터뜨리는 매력을 주었지만, 먹고사는 것이 나아지자 복싱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달프게 보였기에 인기가 저조해졌다. 마지막 세계챔피언은 김지훈 선수로 2009년 IBO 슈퍼페더급 타이틀을 획득하여 2010년 1월에 메이저 기구 진출을 위해 반납하였다 IBO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마이너 기구였기에 국내 유일의 세계 챔프임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 많지 않았다. 메이저 기구의 마지막 챔피언은 지인진이다. 올림픽, 아시안 게임에서 효자 종목으로 불린 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다. 게다가 현직 챔피언이었던 선수가 생활고의 이유로 종합격투기계로 진출했다는 것만 생각해봐도 권투위와 프로모터의 문제가 얼마나 심한가를 알 수 있다. 기존 권투위 상황이 막장[19]이라 국내에서도 기구들이 갈라지는 중. 기존의 한국권투위원회(KBC#)에 더해 한국권투연맹(KBF#), 한국프로복싱연맹(KPBF#), 한국권투협회(KBA#) 등 4개 기구가 활동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팬층은 비교적 두터운 편. 생활체육 기반도 두꺼운 편이다.

최근에는 여성들에게도 권투가 개방되면서 한국 여성 챔피언들도 많이 등장하고, 지금 한국 권투계에선 권투위든 프로모터든 여자 권투계를 상당히 밀어 주고 있다. 하지만 선수가 여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남성 경기에 비해 재미가 떨어져 협회에서 챔피언을 만들기 위해 태국이나 미국에서 4, 6라운드를 뛰던 듣보잡 선수를 데려와 세계 타이틀전에 세우거나, 김주희 선수가 세계 5대기구를 석권했다 하나, 해외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20][21]

이런 문제를 제외하고도, 계속해서 비리 사건이나 편파판정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는 한국권투위나 관계자들도 상당히 문제가 심한 편이며, 올드 팬들의 텃세 역시 팬덤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많다.

한 마디로 한국 권투는 망했다. 한국에서 종합격투기가 권투의 인기를 추월한 것이 아니라 그냥 권투 자체를 아무도 안 하고 아무도 안 보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허영만은 <식객> 11권(도시의 수도승)에서 시장통에서 권투를 해도 사람들이 안 볼 정도라고 안타까워했다. 70년대에 권투만화이던 <무당거미>를 비롯한 작품을 연재할 당시 권투선수들을 찾아가 자문을 얻던 추억을 경험한 그로선 더더욱 느낄 듯. <식객>을 연재하면서 다시 찾아간 예전 그 선수들에게 '그 때와 너무나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한탄을 듣었다고 한다. 정히 프로복싱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가까운 일본이라도 가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지경이다. 심지어 이런 소식도 있다.[22][23] 게다가 메이웨더 vs 파퀴아오의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복싱인기가 식어가는 바람에 안그래도 침체되고있는 한국의 복싱은 더욱더 침체되고 있다.(...)

짱구는 못말려팬픽 만화인 짱구는 못말림에서도 이러한 국내 권투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 몇몇 있다.

안 그래도 척박한 권투계에서, 그것도 새터민 출신 여성 복서의 대전료를 주지 않았다가 피해자 복서가 고소하는 사건도 있다.#

아이러니한 건 프로복싱은 잡초도 못 자라날 정도로 멸망했는데, 아마추어 복싱 환경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낫다는 것. 미국만 해도 복싱 지망생들이 투잡을 뛰면서 복싱을 수련하는 게 당연시되고, 챔피언에 올라 영광을 얻기 전까지는 경기당 몇 백, 기껏해봐야 몇 천만원의 대전료를 감수하면서 링에 오르는데 국내 아마복싱은 소속팀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며 세계대회에서 실적을 냈을 경우엔 억대연봉도 가능하다. [취재파일 복싱 신종훈 '태극마크 포기', 누구의 책임인가?]

위 기사에 실린 신종훈의 경우, 인천시청 소속으로 연봉이 8천 만원에 우수선수 지원금과 각종 수당을 합쳐 연봉 1억원도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눈에 띄는 실적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복싱 금메달 정도로, 이 정도 실적으로 1억의 대전료는 미국 프로복싱계에서도 절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도 1년에 몇 번 안 열리는 각종 빅매치의 언더카드급(즉 방송중계가 되는) 경기의 대전료가 5천~2억 내외이다.

이렇게 아마복싱의 보상이 후하다보니 아마복싱이 전업 프로복서가 되기 전 입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이 전업 아마복서로 남는 길을 택하다보니 세계 복싱과의 주류와는 더욱 더 뒤떨어지고 있다. 애초 3라운드 짜리 아마복싱과 10/12라운드짜리 프로복싱은 다른 경기가 될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 아마추어 복싱 조차도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1명도 못 얻을 정도로 몰락했다. 남자부뿐만 아니라 그나마 낫다는 여자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외국 선수 한명이 출전을 포기함으로써 와일드카드로 1명은 가까스로 출전할 수 있게 되었으나 16강에서 탈락. #

실패한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계속 운영하는 게 문제다. 본격삽질 프로그램.

복싱선수의 경우 한 지도자에게 꾸준히 지도받아야 하는데[24] 우리나라는 태릉에 입소하여 훈련하는시스템이다. 또한 가르치는 국가대표 감독[25]의 전문적인 선수 지도 역량이나 열의도 의심받고 있다. 한번 금메달 따기도 힘들다는 전국체전에서 8연패중인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1등 했어도 참관하지 않는 등...

참고로 한반도 권투 선수 중 처음으로 링에서 사망한 선수는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김득구가 아니라 김정원(金正源, 1910~1930)이다. 코바야시 노부오(小林信夫)라는 일본명으로 활동한[26] 김정원은 1930년 9월 1일 고시엔 테니스 코트의 특설 링에서 필리핀의 보비 윌스에게 9회 KO패 당한 후 사망하였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반면 일본에서는 자국(일본통치기니까.) 권투 최초의 사망사고 사례로 오히려 우리보다 더 크게 다루고 있으니... 참 비운의 선수다.

사실 잘 했다는 1990년대 이전에도 국가대표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건 딱 3번뿐이었다. 1984 LA 올림픽에서의 신준섭 , 한국 홈에서 열린 1988 서울 올림픽에서의 박시헌 , 김광선. (여담으로 박시헌은 로이 존스 주니어를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한건데 편파판정 논란이 있다)
역대 올림픽 복싱 성적은 이렇다 [7] 한국은 금메달순으로는 19위 , 토탈 합계순으로보면 14위 정도 된다.

7 나무위키에 등재된 선수들

8 그 외 주요 선수들

  • 데이비드 헤이 : 크루저급에서 활동하다 헤비급으로 전향한 뒤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에게 당한 만장일치 판정패와 과거 어이없는 TKO패 한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를 이긴 본격 콩라인 헤비급의 강타자 중 한명이다. 비록 클리츠코에게 패하긴 했지만 헤비급 타이틀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강타자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나, 같은 영국 출신의 데릭 치소라를 꺾고 WBO 챔피언에 오른 뒤 3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졌다. 의사가 은퇴를 권고하는 등 부상이 많아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꾸준히 재활에 전념했고, 최근 복귀전을 KO승으로 장식하며 헤비급 전선에 복귀했다.
  • 래리 홈즈 : 알리와 같은 체육관에 알리의 스파링 파트너 출신으로 알리 이후 타이슨의 등장 전까지 헤비급을 주름잡았던 강자. WBC 헤비급 타이틀을 16차 방어까지 성공했지만 기량과는 별개로 알리 이후 헤비급 선수들의 스타성이 예전같지 않을 때라 그다지 높은 평가를 못 받는 선수다. 커리어 후반에 타이슨과 대결해 4라운드 KO패를 당하기도 했다.
  • 레녹스 루이스 : 1990년 타이슨의 패배 후 90년대 헤비급을 사실상 평정한 강자. 타이슨이 레녹스 루이스를 피한다는 이야기가 왕왕 나왔었으며, 타이슨을 8라운드 KO로 정리했고 홀리필드와는 1승 1무를 거뒀다. 2003년 비탈리 클리츠코를 6라운드 닥터스탑 TKO로 패배시키고 은퇴했는데, 클리츠코는 그 이후 10년 넘게 헤비급을 지배했다.
  • 레이 맨시니 : 김득구와 1982년 WBA 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을 치른 복서. 그 경기 중 김득구가 사망하고, 이는 라운드가 15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줄어드는 계기가 된다.
  • 리카르도 로페즈 : 최경량급의 최강자. 1990년 WBC 미니멈급 타이틀을 획득한 뒤 2001년 9월까지 타이틀을 지키며 51승 1무로 은퇴했다. 더 파이팅리카르도 마르티네스의 모델.
  • 리키 해튼 : 45승 3패 32KO를 기록한 영국 출신의 2000년대 후반 주니어웰터급의 강자. 강력한 펀치력을 자랑하는 강타자였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스챠 추를 TKO로 꺾을 정도의 강자였으나, 웰터급으로 상향한 뒤 플로이드 메이웨더에게 10라운드 TKO로 패했으며, 다시 주니어웰터급으로 내려갔지만 매니 파퀴아오에게 2라운드 KO로 패했다. 평상시에는 똥배 나온 아저씨 체형으로 활동하다가 경기 앞두고 감량하는 타입이라 별명이 리키 패튼(Ricky Fatton)이다.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매니 파퀴아오에게 패한 이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우크라이나의 강타자인 비야체슬라프 센쳰코에게 또 다시 KO패를 당한 뒤 은퇴했다. 은퇴 이후 우울증 치료에 전념했고, 현재는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 문성길 :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벤텀급 금메달,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벤텀급 금메달, 1986년 리노 세계복싱선수권 벤텀급 금메달. WBA 벤텀급/WBC 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등 2체급을 제패했다. 보통은 나이먹고 한 체급을 올리는 데 오히려 한 체급을 내려서 세계를 제패한 것이 특이한 점. 미국에 이 선수의 이름을 딴 인디밴드가 있으며, 이 밴드는 미국 땅에서 유명을 달리한 김득구를 추모하는 노래를 부른 바 있다.
  • 미구엘 코토 : 슈퍼 라이트급 - 미들급 전선에서 활약한 푸에르토리코의 강자. 전적은 40승 5패로 검은별이 꽤 많지만, 그 때마다 심기일전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2008년 7월의 안토니오 마가리토와의 경기는 마가리토가 석고 밴디지를 했음이 나중에 들통났다. 사실상 흉기로 타작당한 셈. 2009년 11월에는 매니 파퀴아오게 12라운드 동안 또다시 매타작을 당하며 12라운드 TKO로 패했다. 2012년 5월에 메이웨더에게 12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은퇴가 유력했지만 2014년 6월 미들급 챔피언 세르히오 마르티네즈를 10라운드 레퍼리 스탑으로 꺾고 커리어 말년에 챔피언 벨트를 하나 더 수집했다. 미들급 리니얼 챔피언 게나디 골로프킨과의 대결을 피하고 2015년 11월 사울 알바레즈와 대결해 12라운드 판정패로 타이틀을 상실.
  • 미키 워드 : 전적 38승 13패. IBF 슈퍼라이트급 타이틀전에 한 번 도전했었지만 3라운드 TKO로 패한 평범한 복서. 하지만 아르투로 가티와의 트릴로지가 정말, 정말 유명하다. 그 중 1차전#은 복싱 문외한도 한 번 보면 빠져들 정도의 혈투. 전적에서 앞서는 가티의 초반 공세를 견뎌내고 8~9라운드 가티에게 치명적인 레프트 바디샷을 먹이는 장면, 그리고 10라운드 마지막 혈전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경기이다. '더 파이터'가 미키 워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인데 애석하게도 가티와의 경기는 다루지 않았다.
  • 버나드 홉킨스 : 미들급/슈퍼미들급/라이트헤비급을 제패한 복서. 미들급을 지배하며 펠릭스 트리니다드, 오스카 델 라 호야를 KO로 눕힌 전성기적 경력도 경력이지만, 라이트헤비급으로 증량 후 40대 후반에 라이트헤비급을 정복했다. 켈리 파블릭, 장 파스칼 등 젋은 복서들을 노련한 기술로 요리했고, 채드 도슨에게 바디슬램을 당하고도 패하기도.[28] 2014년 11월 동유럽의 돌주먹 세르게이 코발레프에게 12라운드 판정패를 당하고 라이트헤비급 리니얼 챔프 자리를 내줬다.
  • 살바도르 산체스 : WBC 페더급 챔피언. 70년대 후반 강자들이 명멸했던 경량급에서 페더급 10차 방어에 성공했다. 23세에 교통사고로 요절해 복싱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선수.
  • 세르히오 마르티네즈 : 복싱이 그리 인기있는 국가가 아닌 아르헨티나 출신의 미들급 복서. 97년에 데뷔했지만 2006년까지는 라티노 챔프전 정도를 뛰는 비인기 복서였는데, 삼십대 후반 커리어 말년에 빛을 본 선수다. 2010년 켈리 파블릭을 잡고 WBC 미들급 챔피언에 올라 매튜 매클린, 마틴 머레이 등의 강자를 잡아냈으며, 2014년 6월 미구엘 코토에게 패하며 챔피언 자리를 넘겨준다.
  • 슈거 레이 로빈슨 : P4P(Pound 4 Pound : 체급이 다른 복서들의 실력을 동등한 기준으로 놓고 비교할 수 있게 하는 개념)를 만들게 한 전설적인 웰터급 - 미들급 복서. 현재도 역대 최고의 복서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1940년 데뷔 후 40승 무패였다가 41전째에 1패를 기록했는데, 그 선수가 영화 분노의 주먹의 주인공인 제이크 라모타이다. 총 전적은 173승 6무 19패. 커리어 후반에 반타작 복서가 되기 전 미들급에서 경쟁했을 때 까지의 기록이 131승 2무 2패로, 한마디로 복싱계의 레전설.
  • 쉐인 모슬리 : 슈거 레이 로빈슨, 슈거 레이 레너드에 이어 '슈거'라는 별명을 이어받은 '슈거' 셰인 모슬리. 라이트급, 웰터급, 슈퍼웰터급에서 활동하며 굵직굵직한 경기를 여럿 만들었다.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웨더를 상대로 경기 초반 굵직한 펀치를 꽂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가는 등 스피드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수였고, 오스카 델 라 호야와의 2연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바 있다. 훗날 모슬리가 델라호야 프로모션 소속이 되자 모슬리와 호야가 자신들의 2연전을 이야깃거리 삼아 개드립을 주고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
  • 아르투로 가티 : IBF 슈퍼페더급 챔피언, WBC 라이트웰터급 챔피언을 역임한 복서. 펀치를 많이 내뿜는데다가 컷이 잘 나서 유혈이 낭자한 경기를 만드는, 팬들과 평론가들이 좋아할 만한 선수라서 링매거진 선정 Fight of the Year에 세 번이나 선정됐다. 그 중 두 번은 미키 워드와의 1~3차전.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라이트웰터급 챔피언전을 가져 패하기도 했다. 은퇴 후 2009년에 브라질의 한 호텔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는데 와이프에게 살해당했다는 의혹이 있다.
  • 알렉시스 아르게요 : 1970년대 페더급/슈퍼페더급/라이트급 3체급을 제패한 경량급 챔프. 4체급 제패에 도전했지만 실패 후 은퇴했다. 고국인 니카라과의 수도인 마나과 시장을 역임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윌프레도 베니테즈 : 17세에 WBA 슈퍼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한 천재 복서. 자기 관리에 실패해 롱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F4 바로 아래 정도로 평가되는 강자다. 로베르토 두란을 15회 판정으로 잡아내기도 했고. 헌즈와 레너드에게는 각각 1패를 기록. 말년에 심각한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 유명우 :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동 타이틀을 17차까지 방어했으며 18차 방어에서 이오카 히로키에게 빼앗긴 후 다시 재도전하여 타이틀을 되찾고 1차 방어를 성공한 뒤에 은퇴했다. 12라운드 끝까지 활화산처럼 내뿜는 펀치세례가 인상적이었던 선수로, 사실상 한국 복싱의 전성기 끝자락을 장식한 선수다. 장정구에 이어 한국선수 중 두 번째로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 은퇴 후에는 개인사업을 하다가 체육관, 각종 국내복싱기구 운영 등 복싱계로 돌아온 상태이다.
  • 이벤더 홀리필드 : 타이슨, 레녹스 루이스와 더불어 90년대 헤비급을 주름잡은 선수. 타이슨의 핵이빨 사건의 피해자로 더 유명하지만, 라이트헤비급 출신으로 헤비급까지 정복한 위대한 선수다. 라이트헤비급 한계체중은 175파운드, 헤비급 최저체중은 200파운드로 25파운드 차이가 나는데 체급으로는 달랑 두 체급 차이지만 실제 체중차이는 아래 체급 기준으론 최소 4~5체급 이상이 나는 수치. 은퇴후 사업가로서 상당히 성공했다.
  • 잭 존슨 : 1900년대 후반부터 191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헤비급 챔피언으로 최초의 흑인 헤비급 챔피언이다.(이 사람 이전의 흑인은 'Colored Heavy weight Champion'이라는 인종차별적 개념을 따로 두고 세계 챔프는 백인만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무척 불우하게 살았고 교통사고로 1946년에 68살로 세상을 떠났다.
  • 제임스 J. 제프리 : 잭 존슨과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인 백인 복서. 둘의 대결은 당시, '세기의 대결'로 불리었다고 한다.
  • 조 루이스 : 1937년부터 1949년까지 헤비급 타이틀을 보유한 '갈색 폭격기'. 독일의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막스 슈멜링과의 대결이 유명하다. 결과는 1승 1패. 1936년 양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1차전은 12라운드 KO로 패했는데, 1936년 링매거진 올해의 경기에 꼽혔다고 한다. 1950년 록키 마르시아노에게 패하고 은퇴.
  • 조 칼자게 : 슈퍼미들급에서만 활동하며 46승 무패로 은퇴한 영국의 복서.
  • 지인진 : WBC 페더급 챔피언. 2006년 1월 3차 방어전에서 패해 타이틀 상실 후 2006년 12월 17일 다시 타이틀을 되찾고 은퇴했다. 은퇴 후 2007년 K-1으로 진출. 최용수에 이어 K-1으로 진출한 두 번째 복싱 챔피언이다.
  • 최요삼 :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2007년 12월 25일 WBO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1차 방어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후 쓰러져 뇌사에 빠졌다가 2008년 1월 3일 사망했다. 최요삼의 사망은 지인진/최용수의 K-1 진출과 더불어 한국복싱의 숨통을 끊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럴 때 쓰라고 모아뒀던 한국권투위원회의 건강 기금이 운영진의 횡령으로 텅 비었음이 드러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리쌍의 노래 <챔피언> 은 최요삼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며, 실제로 최요삼에게 복싱을 배운 바 있는 길성준무한도전 복싱편 도중 최요삼의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쏟으며 대한민국 복싱 환경의 열악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 최현미
  • 카오사이 갤럭시 : 낙무아이 출신 레전드 복서. 1980년대 슈퍼플라이급의 지배자로서 타이틀을 19회 연속 방어한 후 은퇴했다. 전적은 49승(43KO) 1패. 1999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이는 1995년 헌액된 일본의 파이팅 하라다에 이어 동양인 복서로는 두 번째이다.
  • 홍수환 : WBA 밴텀급,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1974년 WBA 밴텀급 타이틀전 승리 후 전화로 어머니에게 외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와 "1977년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전 당시 헥토르 카라스키야에게 2회 4번 다운되고도 3회 KO승을 거둔 4전 5기 신화가 유명하다. 2014년 한국권투위원회장으로 선출됐으나 1년도 안가 직무정지된 바 있다.
  • 황충재
  •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 : 턱 분쇄기. 이 쪽도 13살에 데뷔해 만 17세에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한 멕시칸 천재복서다. 강렬한 레프트훅으로 도전자 두 명의 턱을 날려버린 후 Jawbreaker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었다. 11차 방어까지 성공했지만, 토마스 헌즈에게 2라운드 KO로 패한 뒤 하락세에 빠져 반타작 복서가 돼 버린 뒤 은퇴. 헌즈와의 경기#는 헌즈의 사기성을 잘 보여주는 경기다.

9 관련 용어

10 관련작품

전통적으로 인기도 있었고 인식도 나은 편이기 때문에 한일 가리지 않고 만화 등의 소재로 잘 쓰이는 편. 한/일 양국 모두 복싱이 인기를 끌던 때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기 때문인지, 헝그리한 스포츠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소재로도 잘 쓰인다.

10.1 소설

  • 복스

10.2 만화, 애니메이션

10.3 영화

10.4 게임

10.5 에로게

10.6 픽션에서 권투가 유파인 캐릭터

10.7 대전액션게임에서 권투가 유파인 캐릭터

  1. 참고로 현역 시절 무하마드 알리는 헤비급이다.
  2. 글러브를 끼지 않고 하는 베어너클 복싱이라는 것도 있긴 하다.
  3. 하반신은 킥복싱
  4. 네이버 지식백과를 기본으로 하여 작성됨
  5. πυγμή(주먹)와 μάχη(싸움)의 합성어로서, 문자 그대로 권투라는 뜻이다.
  6. 이는 귀족들의 특권이 사라져 가면서 노상에서 하층민들에게 두들겨 맞고 체면 구겨서는 안된다는 필요성과, 이른바 기사도를 비롯한 귀족들의 상무전통이 스포츠화 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복싱은 의외로 귀족들이 선호했던, 그리고 지금도 선호하는 스포츠다.
  7. 유럽의 뿌리깊은 결투문화가 권투로 대체된 성격도 있다. 근대 시대에도 스포츠와 같은 개념으로로 검술, 사격 대회가 성행했고, 지역마다 챔피언이 있었다.이 분야의 챔피언 급인 사람은 결투를 신청하는 상태이건, 받는 상태이건, 상대를 총이나 칼로 죽이고 싶도록 열받아도 챔피언의 체면 때문에 제 실력을 다해 아마추어를 상대 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동네청년 A가 전성기 올림픽 금메달 사격리스트와 원한을 샀다. 그래서 메달리스트에게 사격으로 결투 신청한다고 하자, 메달리스트는 최선을 다해서 싸워서 죽이면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결국 상대가 쏘는 헛방을 보고 억지로 웃으면서 용서해 주고, 챔피언답게 한수 가르쳐주면서 훈훈히 넘어갈 수 밖에... 결국 이런 고수들이 상대를 죽이지도 못하지만 패고는 싶을 때 대안으로 택한게 권투이다. 권투는 스포츠로 여겨져서 대결해서 패한다고 해도 (대부분) 죽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상대가 아마추어라고 마구 두들겨 팬다고 비난 받지 않았기 때문, 물론 초창기 시절 이야기 이다
  8. 여성부에만 있는 라이트 미니멈급까지 합하면 18체급
  9. 기구에 따라 체급명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계체중은 모두 동일하다
  10. 여자부에만 있다.
  11. 김득구선수가 레이 맨시니 선수와 시합하게 되었는데 14R에서 TKO당하고 그대로 사망했다. 이 사건 때문에 프로권투의 룰은 기존 15R에서 12R로 변경되었다.
  12. 미국UFC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곤 해도 2012년 이전까지는 공중파 vs 지상파라는 넘사벽 수준이었고 2012년 들어서야 FOX와 방영권 계약을 맺은 상황이니 전체적인 관점에서 복싱의 인기가 떨어졌다고 보는건 어폐가 있다.
  13. 필리핀은 아시아 최초의 권투 세계 챔피언이 나온 나라로 프란치스코 구일레도(Francisco Guilledo)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식민지배 시절인 1920년대 당시 판쵸 빌라(Pancho Villa)로 나온 프란치스코 선수는. 1923년 6월 18일 월드 플라이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고 이후 2년이나 타이틀을 유지했지만 안타깝게도 24살인 한창 나이에 병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다.
  14. 일본의 종합격투기가 망한 탓도 있다.
  15. 영국 웨일즈 출신의 무패복서. 모션을 최소화한 짧은 펀치를 빠르게 수십대씩 뻗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성기가 조금 지났으나 여전히 쉽지만은 않은 상대였던 로이 존스 주니어를 일방적으로 두들기며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고, 압도적인 유효타 횟수를 앞세워 다운을 한차례 빼앗겼음에도 버나드 홉킨스를 상대로 2:1 판정승을 거둔 뒤 무패로 은퇴했다. 다만 몇차례의 TKO승을 거둔 경기에서 칼 프로치를 비롯한 영국 복서들이 늘 휘말리는 광속 레프리스탑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으며, 현재 슈퍼미들급과 라이트헤비급을 호령하는 안드레 워드세르게이 코발레프에 비해서는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6. 종합격투기에서 최정상급 선수들의 대전료가 PPV 수당을 제외하면 최대 60만 달러, 포함해도 최대 600만달러(양쪽 모두 앤더슨 실바의 기록)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준.
  17. 여기서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다른 격투기로 옮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권투 팬들은 각 종목에서 톱레벨의 선수가 나온다면 권투가 최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타 격투기 선수 VS 복서 떡밥은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는 한창 떡밥이었다.
  18. WBC 명예의 전당까지 들었다.
  19. 故 최요삼 사망 이후에 선수들이 대전료에서 떼어가던 보험금 같은 돈까지 마음껏 여기 간부들이 써먹어서 최요삼 선수 장례비조차 없다는 게 언론보도되면서 전현직 선수들 모임에서 소송제기하며 분노했을 지경이다.
  20. 한국 여자 권투의 실태를 알 수 있는 글. 읽어볼 만 하다.
  21. 물론 전 여성복서 이인영 같은 예외도 있다. 한국 최초 여성 세계 챔피온으로, 2003년 열린 일본 복서와의 경기에서 압승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으나 알콜중독 때문에 아쉽게도 선수 생활을 곧 그만 두어야 했다. 참고로 남자와도 싸워서 져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프로 복싱 협회에서는 "이인영이라면 남자 선수하고도 경기를 해볼 만 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그런 이인영조차 멕시코의 여성복서인 마리아나 후아레스에게 패배를 당하며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
  22. 요약하자면 일본 챔피언인 가메다 고키에게 국내 복서인 손정오가 떡밥 격으로 던져졌는데, 시합장소가 국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과 업무를 협력할 만한 파트너가 없어서 일본측이 시합 개최의 전 과정을 주도한다는 이야기. 홈에서 경기를 열어도 홈 어드밴티지도 못 챙길 정도로 몰락해버린 셈. 야구로 치면 잠실에서 한일간에 WBC 결승전이 열리는데 심판이 다들 일본인으로 채워진 격이다.
  23. 위 경기에서 가메다 고키에게 떡밥 격으로 던져진 손정오 선수는, 2013년 11월 19일 제주에서 열린 경기에서 챔피언에게 다운을 뽑아내는 등 선전 끝에 2:1 스플릿 디시전으로 아쉽게 판정패했다. 홈필드 어드밴티지가 있었다면 이변도 충분히 가능했던 경기였다.
  24. 물론 예외도 있지만, 자신의 성향에 맞는 트레이너 밑에서 꾸준히 수련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프로 레벨에서도 트레이너 잘 만나서 커리어가 확 핀 선수들도 수없이 많다. 마이크 타이슨과 커스 다마토, 매니 파퀴아오와 프랭크 로치처럼 명선수 옆에 명트레이너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25. 로이 존스 주니어와 대결했던 박시헌 감독이다.
  26. 일본어 위키백과의 小林信夫 항목에는 출신지가 함경남도라고만 나오고 본명과 조선인이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1982년 5월 11일 보도 내용(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과 비교해보면 둘이 같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27. 로베르토 듀란, 마빈 해글러, 토마스 헌즈와 함께 1980년대를 풍미한 'fabulous 4'의 일원으로 넷 중 상대 전적이 가장 좋다.마빈 해글러와의 대결은 논란이 있었지만
  28. 복싱스타일 때문에 판정에 손해를 많이 본 선수인데, 이 당시 판정도 그런 케이스. 엄살을 부리는 것 같다는 이유로 심판이 패배를 선언했다.
  29. 이 녀석의 경우 합기도팔극권도 취득하고 있다.
  30. 필요에 따라 발차기도 사용한다.
  31. 설정상 인파이터가 사용하는 스킬은 신격원이라는 교단에서 사사하는 근접격투술로 직접적으로 복싱을 유파로 하지는 않으나, 더킹 스웨이와 같은 스탭을 기본으로 파생되는 파이팅 스타일은 아웃복서의 격투 스타일에서 직접적인 모티브를 가져왔으며, 스킬 명과 여러 스킬 모션들도 복싱 및 복싱을 직접적인 모티브로 사용한 캐릭터들에게서 가져왔다. 좋게 말하면 참고한거고 안좋게 말하면 베껴온 스킬들
  32. 블러디 로어 2에서 설정이 프로복서이다.
  33. 파이널 파이트 시절에는 오프닝에서도 복싱 체육관에서 등장하며, 파이팅 스타일도 권투였으나, 스트리트 파이터 시절에는 폭력사범으로 체포되면서 인생 막장 테크에 접어든 영향인지 막싸움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