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계첩

1 개요

耆社契帖. 조선 숙종 46년인 1720년에 당대 유명 궁중화가들이 1719년 4월 17일 ~ 18일에 열렸던 기로회(耆老會)의 행사장면들과 그 당시 연회에 참여했던 대신들의 초상화를 모두 그려 모아놓은 궁중기록화첩.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홍완구(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638호, 제639호, 제92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1719년 4월 17일부터 18일까지 양일간 기로에 대한 효와 감사의 마음을 널리 알리고 나라를 위해 청춘과 정년을 다 바친 70세 이상 노인분들과 퇴직 관료들을 위하여 나라에서 기로연을 열어준 후 그 행사장면 및 노인들의 초상화를 김진여(金振汝), 장태흥(張泰興), 박동보(朴東普), 장득만(張得萬), 허숙(許俶) 등의 궁중화가들이 그려 남긴 궁중기록화첩이다.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경현당사연도(景賢堂錫宴圖),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등 기로연의 행사과정을 그린 여러 기록화들과 강현(姜鋧), 김우항(金宇杭), 김창집(金昌集), 신임(申銋), 이선부(李善溥), 이유(李濡), 임방(任埅), 황흠(黃欽), 홍만조(洪萬朝), 정호(鄭澔) 등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170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궁중기록화첩으로, 예술성과 작품성이 매우 뛰어나고 작품들의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여 가치가 매우 큰 한국의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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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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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당사연도(景賢堂錫宴圖)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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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任埅)초상과 신임(申銋)초상 출처 : 네이버 캐스트

3 바깥고리

4 보물 제638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기사계첩(耆社契帖)>은 70세 이상의 노신들을 우대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기사의 모임 장면과, 그들의 초상 등으로 꾸민 화첩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있으며, 가로 76㎝, 세로 59.5㎝ 크기 이다.

숙종 45년(1719)에 왕과 기로소 신하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임방의 서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왕의 시문, 전체내용을 요약한 김유의 발문과 참석명단 및 행사장면의 그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화첩에는 이유·임방 등 참석자 10인의 반신상 초상과 스스로 쓴 축시 및 화원의 명단 등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 12권인데, 한 권만 기로소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 소유하였다.

김진여 등 여러 화원이 참여하여 숙종 46년(1720)에 완성한 이 화첩에서의 초상은 반신상이며 화법에 있어서 18세기 초의 전형적인 초상화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같은 종류의 화법 중에서 시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5 보물 제639호

홍완구(개인) 소장본

<기사계첩(耆社契帖)>은 숙종 45년(1719)에 있었던 소속이 같은 문인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풍류를 즐겼던 모임인 계회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글과 그림으로 만든 화첩으로, 크기는 가로 53㎝, 세로 37.5㎝이다.

70세 이상 대신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왕의 시문, 전체 내용을 요약한 김유의 발문과 참석자 명단, 행사장면의 그림 등 50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사계첩은, 보물 638호와 거의 비슷하지만, 김창집을 비롯한 계회참석자 10인의 초상화에서 평소 집무복인 단령의 모양이나 색채가 다르며, 조선 후기 문신인 홍만조의 축시제목이 없는 점 등으로 두 기사계첩을 대조하여 연구해 볼 수 있다.

임금의 초상을 그렸던 박동보·장득만·허숙 등의 화원들이 초상화를 그린 이 기사계첩은 보물 제638호로 지정된 기사계첩과 거의 같으나, 보물 제638호가 1974년 2면을 1면으로 붙인데 반해 이 화첩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작품으로 10여 명의 초상화와 자필로 쓴 축시, 화원 명단이 들어 있어 당시 화풍과 서체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6 보물 제929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숙종 45년(1719) 4월 17일과 18일에 열린 70세 이상의 퇴직관리들의 모임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참석자들의 초상화와 모임 장면을 비롯해 축시와 회원 명단이 들어있는 화첩으로 모두 50면으로 이루졌다.

가로 36㎝, 세로 5㎝로 장태흥·허숙 등이 그림을 그리고, 이의방이 글씨를 썼다. 숙종 때에 12부를 만들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3부이다. 이 화첩에 그려진 반신상의 초상화는 정장관복의 차림으로 18세기 초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계첩은 보존상태가 좋고 원형이 훼손되지 않아 당시의 기사계첩 형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