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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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도지삽니다 네.남양주 소방서입니다.

역대 대한민국 경기도 도지사
31대 손학규32~33대 김문수34대 남경필

1 생애

도지사의 노이즈 마케터 아이콘.[1] 1951년 8월 27일 경상북도 영천군 출생.[2] 전 국회의원이자 경기도 도지사였으며, 국회의원은 부천시 소사구에서 15대부터 17대까지 지냈고, 경기도지사는 32회, 33회를 지냈다. 본관은 경주 김씨이다.

학력은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군대중이염을 이유로 병역 면제받았다.#[3] 훗, 간단하군.

1.1 정치 입문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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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의 운동권 시절 모습[4]

흥미롭게도 본래는 극좌파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이었다. 실제로 아직 사회구성체 논쟁이 나오기도 전에, 대학 제적 후 스스로 공장에 위장취업하여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면서 밑바닥부터 노동운동을 한 인물이다.[5]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설립에 기여했는데, 1986년 김문수가 인천 5.3 운동으로 체포되자, 그 뒤를 이은 인물이 현재 정의당의 당대표 심상정이었을 정도다! 심상정 대표의 결혼을 주선해 준 사람도 김문수였고 김문수가 고문을 받으면서도 심상정 대표의 위치를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유시민 전 장관과 티브이 토론을 하러 나와서 서로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과거 서로를 동지로서 보호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덕담을 나누기도 했었다. 이 시절 안기부에서 고초를 겪은 이야기는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최민희 의원의 연설 중에 짤막하게 언급되기도 했다. 김문수의 1980년대 행보는 위키백과에 등재된 김문수 항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일종의 전향을 하게 되는데, 이재오 전 의원과 함께 '민중당'이라는 당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잘 안되자, YS에게 영입되어 보수정당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으며, 이후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도 지내면서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의 대표적인 대권 잠룡으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전향에 대해 본인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공산주의권 국가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당장의 급진적 사회주의보단 성장에 자원을 집중하되 복지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온건론으로 노선을 선회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김문수 입장에서는 70년대까지 자신이 해왔던 학생운동의 경력이 끝나고, 80년대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이 학생운동의 주류가 되었으니 전향을 하는 것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가 다 갈때까지, 김문수는 현장중심의 노동운동가였다. 소위 말하는 PD 계열이었고,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이 깨진 이후에는 이러한 운동이 방향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노동 및 부정 부패는 비단 진보 진영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보수 진영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인용구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전향에 따른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고 아직까지도 김문수는 진보쪽 인사들에게 "노동운동을 배신한 변절자"라고 불리우는 경우도 많다. 같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김문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도 많았건만, 그 김문수가 지금은 자신이 맞서 싸웠던 민정당계 정당이며 독재정권의 후예나 다름없는 새누리당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에 대해선 당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3당 합당 이후 김영삼에 의해 독재정권 인물들이 죄다 쫓겨나가면서 한번 물갈이된 당이나 다름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김영삼이 전두환-노태우의 당과 합당한 후, 그쪽 인물들을 숙청하고 경상남도 출신들, 민주화 동지들, 상도동계들로 채워넣었다. 이 때문에 신한국당 자체는 독재정당의 역사를 공유하지만, 노태우가 3당합당으로 끌어들인 김영삼에게 잡아먹혀 물갈이가 된 상태라는 점. 하지만 탄핵 정국 이후 뉴라이트 세력이 기득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속칭 상도동계, 소장파들은 대부분 전 군부세력으로 전향했고 일부 소장파들은 탈당해서 열린우리당으로 들어갔다.

어찌되었든, 김문수 이외에도 PD운동권 중에는 90년대 초에 소련이 무너지는 걸 보고 충격받아 활동을 접어버린 사람이 꽤 있었으며, 러시아 혁명 자체도 너무 미화되었다고 보거나 폭력적인 '혁명' 이라는 방식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끼는 등 여러 분파로 나뉘어진건 사실이다. 다만 그 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김문수가 거물급이니 유명세를 탄거다. 이런 온건파 출신 중엔 "87년 이전이면 모를까 민주화가 된 이후엔 이런 호전적인 운동권 마인드가 오히려 도움이 안될 수 있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므로, 김문수와 연관된 여러 행보가 비판 사유가 될 순 있어도, 그가 운동권 성향을 떨쳐냈다는 이유가 비난 사유가 되기는 힘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문수가 비록 지금은 보수 성향의 새누리당 소속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잘 살펴보면 민주 투사이자 야당 인사였던 김영삼이 운동권 출신 김문수를 끌어들여 자신의 당인 민주자유당-신한국당으로 영입시킨 것으로, 그 당이 현재 새누리당으로 존속하고 있는 것이니, 정치 입문 당시에 보수적인 색채를 띄었다고 보기보단 시간이 흐르며 당의 방향에 따라 운동권 색을 버리게 된 모습이 강하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김영삼이 당시 당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대다수가 야당 인사(상도동계)이거나 민주화에 협력하던 사람(손학규, 이재오, 노무현[6], 김문수 등)이었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보수정당으로 간 뒤에도 개혁파로 남아 보수정당의 각성을 추구하던 사람들과 달리, 우익적 발언도 서슴치 않으면서 우익층의 환심을 사려는 것을 볼때 개혁보단 공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고 김문수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1.2 정치 입문 이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자유민주연합 박규식 후보, 김대중의 심복인 새정치국민회의 박지원 후보 등을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3 도지사 도정

그의 도지사 도정 중 가장 큰 성과로 거론되는 것은 수도권 통합 요금제 도입이다. 2004년 서울시 대중교통 체계 개편 이후 2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것을[7] 2006년 7월 취임 후 곧바로 재협상에 나서서 수도권 통합 요금제가 마침내 1년 만인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게 하였다.[8]

그는 애초 대중교통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진 인물로 알려져있었는데, 서브컬쳐계에선 예전부터 그가 철덕(...)이라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또 택시 기사 체험을 전국 각지에서 하고 다니며[9]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고자 하는, 속칭 택시법에 대해 찬성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과거 PD파, 즉 노동운동권에 있으며 이런 대중교통에 관심을 가졌고 연장선상으로 택시 기사 체험이란 파격을 선보인 것이란 추측이 많다. 후술되어있듯 정치적 행보는 논란이 많지만 어쨌든 대중교통에 있어서만큼은 주민 친화적인 행보를 보인 것.

하지만 이런 공적에도 불구하고 김문수는 그의 도지사 재임 시절 대표적인 흑역사를 찍게 되는데, 바로 2011년 12월 19일에 있었던 그 유명한 레전드 도지삽니다(...) 사건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참고로 이 사건은 김문수를 완전히 꼰대의 전형처럼 추락시켜버린 현재진행형 흑역사다.

1.4 도지사 활동 이후

2014년 경기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서 도지사 활동은 마감하게 되었고, 남경필 후보를 지지하며 당 차원에서 활동을 벌여갔다. 퇴임 직후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을 맡게 되었으며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소리소문없이 지나가고 2016년 20대 총선이 다가오자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는 더민주의 다크호스 김부겸 전 의원과 빅매치를 벌이게 되었다. 대권잠룡으로까지 거론되는 양반이 험지가 아닌 텃밭에 출마한다는 것에 비판을 가하는 당내 기류도 있었으나, 김문수 본인은 수성갑이 험지라며 절대 쉬운 지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김문수는 영천 태생-경북중(현 경운중)-경북고, 김부겸은 상주 태생-대구중-경북고 출신으로, 둘 다 대구 인근 출생-대구에서 성장-타지에서 정치생활-대구에서 재도전 코스를 밟았다. 김문수가 김부겸의 고등학교 5년 선배이다.

수성갑은 험지 사실이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한구 현직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해당 지역구에서 오랫동안 지역주의에 맞서 도전해 온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고 만다. 그것도 무려 3만표 이상인 25%p차 대패를 하며(...) 김부겸에게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최초의 민주당계 대구 국회의원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김문수 본인이 험지출마론을 거부하고 선택한 보수 초강세 지역인 대구에서 참작이 불가능한 대패를 당해, 대권 잠룡으로서의 위상은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아예 정계 복귀 가능성 자체에 대해서 걱정해야 할 상황으로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있다.

특히, 대구광역시가 새누리당의 텃밭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처참하게 개박살난 후보는 김문수 후보가 유일한데 다른 새누리당 낙선자들은 무소속에게 패한 것이지만 이들 무소속 후보들은 거의 전부가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임을 감안해야 한다. 결국 김문수만 유일하게 텃밭인 TK에서 야당에게 개박살난 새누리당 후보인 셈이다.[10] 꿈꿔오던 대선 이제 안녕...

물론, 김부겸에게 패배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대구에서의 지역 기반이 없다시피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김문수 본인은 경북 영천 출생, 경북고등학교 출신으로 대구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대 총선과 제6회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오랫동안 지역 표심을 다진 김부겸에 비해 김문수는 국회의원 지역구도 모두 경기도 부천이었고 경기도지사를 2번 연임하는 등 경기도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사실상 반쯤 경기도 사람이었고, 거기에다 당시 수성갑 현역인 X맨 이한구가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지역구 관리를 포기하고 이미 2년전에 짐싸고 경기도로 이사를 가버린지라(...) 지역에선 비판여론이 팽배해있어서 오히려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는 것이 패널티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도지삽니다 사건 역시 낙선과 전혀 무관하다고 보긴 어렵다.

결정적으로 김문수는 도지사 시절 대표적인 수도권 규제 완화론자였다. 경기도는 서울을 끼고 있다는 것 때문에 지방 균형발전 정책의 일환으로, 또 수도 서울의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서 수많은 규제를 당하고 있다. 당연히 경기도는 이런 규제에서 벗어나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고 역대 경기도지사를 비롯해서 경기도 자치단체장은 수도권 규제 완화론자였다. 고로 김문수가 지낸 경기도지사는 낙수효과 이론에 입각한 수도권 규제완화를 외치면서 당연히 수도권 규제완화로 투자가 수도권으로 몰리게 되면 간접적 피해를 입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는 으르렁거릴 수 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대구와 아무런 관련도 없을 뿐더러 뭘 해주긴 커녕 오히려 수도권으로 뺏어가려한 양반이 그저 학연, 지연, 당이란 뒷배경만 믿고 텃밭 대구에 출마했으니, 이러한 모습은 대구사람들에게 큰 모욕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와 더불어 20대 총선 직전 새누리당 내의 공천파동이 터지면서 대구에서의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은 사상 최고치를 찍게 된다.

그런데 범새누리당 계열 이외의 인물로 찍을만한 후보를 낸 두 지역구인 북구을과 수성갑, 그 중에서도 김부겸이라는 인물이 19대 총선부터 기반을 다져온 수성갑에 출마하겠다는 것은 수성갑 주민들에게 "날 좀 떨어뜨려주십쇼."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선거 기간 내내 김부겸 후보의 압도적인 여론조사 우위가 나타났고, 물론 여론조사와 달리 막상 선거 당일에는 그래도 새누리당 찍을 것이란 추측이 상당히 많았지만 현실은 반대로 나왔다.

전반적으로 20대 총선 결과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 중 하나인데, 경기도권에서 출마했으면 그런데로 자기 기반을 갖고 있으며, 공약면에서도 2선 도지사라는 경력을 내세워 지역주민들에게 친화적이고 선도적인 공약을 내세우면서 수도권의 전문가로써 자기 이미지를 부각할 수 있었다. 그 놈의 도지삽니다 사건에도 불구하고 2선이라는 것에서 보여지듯이 지역기반의 지지가 있는 만큼 최소한 대구만큼 차이로 낙선하는 수모는 모면했을 것이며, 지더라도 진짜 험지에서 싸우다 진 것이니 책임도 덜하고 험지에서 분투한 것만으로 욕은 덜 먹었을 것이다.

만약에, 경기도권에서 출마하고 당선이라도 되었다면 경기도와 서울특별시의 수도권 야권 돌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만으로 충분히 차기 대권 도전이 가능할 정도로 가치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아성이나 다름없는 대구에서 참패하게 되면서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끊어지게 되었다. 정치인은 패배하더라도 미래를 바라보면서 다음 기회를 바라보고 져야 되지만,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딱히 차별화가 된 공약이나 좋은 모습들은 사라졌고 네거티브에다 지하철 역에서 엎드려서 비는 모습(...) 등 굴욕적이고 안좋은 모습만 남으면서 이제는 경기도로 복귀하는 여론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한편,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첫 행보로 당대표 출마를 적극 고려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나 친박-비박 양쪽에서 "이 양반은 갑자기 왜 나오느냐?"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깨갱하면서 불출마 선언을 했다. 사실상 국회의원 낙선에 이어서 또 다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모양새다.

이후 2016년 8월부터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개인방송을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를 명확히 해달라던가, 사드 배치에 찬성을 하는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본인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9월 7일, SBS 뉴스브리핑에 출연하여, 경기도에서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던 그가 대구로 내려와 총선을 도전했던 이유, 당대표 출마 시사 후 불출마 선언 등에 대하여 본인의 심경을 밝혔다.

2016년 10월, 외교안보전문가 초청 안보특강에서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 회고록 논란으로 불거진 문재인 전 대표의 북한 인권 결의안 기권 논란을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비서실장, 김만복 국정원장을 반역자라고 거친 언어로 맹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떨어진 위세를 반영하듯 별 관심을 못받았다(...) 거 대구에서 떨어진 양반 이름이 뭐요 어허 이름이 뭐냐니깐 대답을 안해?

2 기타

2009년 도지사 시절 신년 인사회에서 "일제 식민지가 안 됐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 힘들었다"는 전형적인 식민사관 인식을 드러내 큰 물의를 빚은바 있다. 이에 대해 김 도지사 측은 앞뒤문맥 짜른 꼬투리 잡기라고 반박했다.#

2011년 터진 도지삽니다 사건이 하도 임팩트가 커서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원래 김문수는 과거 "따먹문수"(...)로도 악명이 높았다.# 그냥 듣기에도 심상치 않은 해당 이명의 유래는 김문수 본인이 공식석상에서 춘향전을 보고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얘기"라고 한 데서 시작된다. 사실, 춘향전 내용을 자세히 보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내용 전개상 이몽룡성춘향을 꼬시는 내용인 것도 사실이고, 변사또가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협박을 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표현이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나 떠들법한 저질스런...공식석상엔 도저히 안어울리는 표현이라서 문제였을 뿐.(...) 아무튼 이런 이유로 한동안 '따먹문수'라고 불렸다. 도지삽니다가 어찌보면 나을지도.. 설마 노렸나

2011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띄우기 위해서 "이승만, 박정희, 세종대왕, 정조대왕 다 합쳐도 이명박만 못하다" 라는 아부성 발언으로 이목을 끌었다.(...)

2012년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는 "박근혜는 불통 대통령이 될 것이다" 라고 하며 거세게 비판했다. 5.16 쿠데타에 대한 박근혜의 애매모호한 태도도 딴지를 걸었는데, 이 때쯤 만난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담화에서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박근혜는 칠푼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실제로 김문수의 정치 입문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당권이 친박 손에 넘어가자 태도가 돌변해서 2014년 12월 2일 서강대 강연에선 위와는 대조적인 발언으로 박근혜에게 열심히 딸랑 아부를 떨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 강연에서 "박 대통령이 여러분 동문 아니냐. 박정희의 딸이라고 동문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 같으면 당연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창피하냐?" 등의 발언을 했다. 그 놈의 공천권이 뭐길래...

이후로도 친박근혜적인 태도를 보이며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2015년 10월 29일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새누리당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리고 대한민국도 박근혜 대통령 중심으로 뭉쳐야 된다. 일본은 아베를 중심으로, 중국은 시진핑을 중심으로, 심지어는 북한 같은 경우도 김정은을 중심으로 뭉쳐야 그 나라가 살아나간다.”라고 발언을 했다. (출처) 이 발언이 왜 문제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전체주의 항목을 참고하면 된다. 굳이 문서 볼 필요도 없이 마지막 김정은 관련 발언만 봐도 문제 있는 것 같은데

상술했듯 2016년 20대 총선에서 수성갑에 출마하였는데, 경쟁자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후보에게 여론조사상 계속 지는 결과가 나오자 불안했는지, 본인이 운동권 시절에 그렇게 투쟁했던 당사자인 전두환이 참가한 동창체육대회까지 가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함께 사진을 찍는 굴욕샷(...)을 연출하고, 지역신문에선 존경하는 대통령이 이승만과 박정희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명박은 어쩌고? 그럼에도 지지율이 계속 뒤지자 선거 몇일전엔 석고대죄까지 하면서 "부디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십시오"라는 친박 코스프레(...)까지 하는 등 처절한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결과는...망했어요.

진보진영에서는 그래도 한때 운동권의 거물이던 사람이 "배신하고 전향했으면 잘 살기라도 하지, 어쩌다 저렇게 됐냐?"라면서 냉소하는 반응도 나왔고, 더 비참한 것은 친박도 김문수는 버리는 카드였던지 김문수 캠프에서 선거기간 동안 지원유세를 요청했는데 생깠다는 안습한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제일 뼈아팠던건 "대통령 지켜달라기에 주민들은 안 지키실거 같아서(...) 김부겸 후보한테 투표했습니다."라는 지역민들의 목소리. 그야말로 안습.

2016년 2월 6일 대구에서 택시기사 체험을 해놓고 사납금으로 19만 2천원을 냈더니 봉급은 8만원만 받았다며 사납금을 문제삼으려는 듯 싶더니, 뜬금없이 감차를 해야 한다는 망언을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택시 기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납금은 기본적으로 불법이다. 불법 퇴치는 언급도 안하고 택시기사를 줄여서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나와 논란이 된 것. 출처 기사 다만, 대구 택시의 경우 90년대부터 택시허가를 양산하다시피 한 전력이 있는지라(...)[11]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경기북도 분도와 과천/광명 서울 편입에 반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다만 경기도지사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으로 쉽게 풀이하면 '니 팔 자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수준의 주제이므로 저런 답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5번)민중당483,041(3.75%)낙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소사구)
신한국당33,446 (39.2%)당선 (1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소사구)
한나라당47,101 (61.6%)당선 (1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소사구)
한나라당50,418 (52.9%)당선 (1위)2006년 4월 24일 사퇴
(경기도지사 출마)
2006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한나라당2,181,677 (59.6%)당선 (1위)
2010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한나라당2,271,492 (52.2%)당선 (1위)민선 최초 경기지사 연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구 갑)
새누리당51,375(37.7%)낙선(2위)
  1. 이게 근데 농담으로 보기만도 뭐한 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나 어린애들은 도지사의 존재 자체를 몰랐는데, 도지삽니다 사건 이후로 도지사라는 직책이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2. 김범일이 직속선배인데 재밌는건 학과까지 같다. 물론 경북고 출신.
  3. 여담으로 링크에 들어가서 보이는 사진이 군대 안간 정치인의 표본거리가 되어버렸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시켜야 하는데, 저렇게 쏘다가는 눈 나간다.
  4. 이 사진으로 굴욕을 겪기도 했다. 단순 네티즌 반응이 아니라 주간 경향의 기사라 첨부함.
  5. 본격적으로 대학생들의 위장취업이 시작되는 시기가 80년대다.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김문수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6. 다만 여긴 케이스가 좀 다른게 1990년 3당합당 때 이미 민정당이랑 손잡기 싫다고 반대해서 나갔다.
  7. 이 때 경기도의 행태가 참 가관이었는데 서울버스와 경기버스에 대해 각각 서울시-경기도가 적자 보전을 하자는 서울시의 주장에 대해 경기버스를 서울시민들이 이용할 수도 있으니, 경기버스에 대해서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라는 개소리를 했다. 그렇게 따지면 경기도 운행 서울시내버스는?
  8. 당초 서울시의 제안및 상식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타당한 서울버스/경기버스 각각 서울시와 경기도가 100% 부담하기로 했고, 수도권 전철에 대해서는 경기도가 60%를 부담하기로 했다.
  9. 당연히 택시 면허를 보유.
  10. 범위를 야당이 아닌 야권인사까지 넓힌다면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 컷오프 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대구 북구을 당선자 홍의락 의원이 있었다.
  11. 동대구역만 해도 동대구역(도시철도)에서 코레일 동대구역까지 택시가 한 줄로 가득 들어차 있다.(...) 그 정도로 대구 택시는 공급 과잉인 상황. 알고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