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랑(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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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본명이 "김사랑"이다

대한민국 뮤지션. 1981년 12월 3일 생. 록밴드 前 청년단체의 보컬리스트였으며, 18살에 첫 앨범을 발매함으로써 모두를 놀라게 했던 뮤지션. 그러나 운이 안 따라줘서인지 항상 앨범 발매 때마다 여러모로 묻히는 비운의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이름의 김사랑보다 많이 묻히는 경향이 있다. 김사랑 노래 듣는다고 하면 김사랑이 노래도 하냐고 되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중퇴라는 학력코스와 원맨 밴드의 음반작업 등으로 서태지와 많이 비교되며[1] 제2의 서태지라 불려졌으나 본인은 부풀려지고 포장되는 것이 싫다며 비교를 꺼려했다.[2]

17살 수원시 유신고등학교 1학년이던 김사랑은 홍대 앞 밴드 청년단체 3기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주로 재머스, 롤링스톤스 같은 클럽에서 활동했다고 하며, 가끔 드럼도 연주했다고 한다. 그 시절부터 이미 홍대 앞에서는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그 후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인해 음악활동을 병행할 시간이 부족했던 김사랑은 부모님을 설득하여 고등학교를 자퇴했다(1997년). 학교 성적도 상위권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설득하는데는 시간이 걸렸다고 하나, 아버지는 선뜻 아들의 선택을 허락했다고 한다. 그 후 청년단체 활동 중 음반관계자의 눈에 띈 김사랑은 1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1999년 11월, 만 18살(한국나이 19살)의 나이로 첫 솔로 앨범인 「나는 18살이다」를 발표한다. [3]를 발표한다. 이미 중학생 시절 부터 자작곡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기존에 만든 곡은 편곡을 하고 새롭게 몇 곡을 더 작곡하여 1집 앨범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Mojorida. 18살의 나이에 작사, 작곡, 편곡에 세션(기타, 드럼, 베이스 등)까지 전부 혼자서 해냈다. 원맨 밴드인 셈.[4] 앨범 뒷면에 쓰인 전체 김사랑 이 압권이다. 처음부터 먼치킨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천재'의 칭호를 얻었으며 국내의 수많은 음악평론가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대중들에겐 "Feeling"과 포카리스웨트의 CM으로도 쓰였던 "Dream"으로 유명하다. 여담으로 1집 당시 가수 박지윤과 외모가 많이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당시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얘기이긴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앨범을 듣지도 않은 많은 이들에게 폄하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Feeling' : 공연에서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노래' 라고 하였던 바 있다.

2년 간의 공백을 깨고 2001년도에 발매한 2집 앨범 타이틀은「nanotime」. 당시 서태지가 워낙에 큰 판을 벌여놓은 지라 방송에서 거리낌없이 뉴메틀 밴드가 나돌았던 때에 무난히 맞춰 타이틀 곡 "무죄"로 활동. 항간에 "서태지와 똑같다"라는 평이 나돌았으나 얼마안가 수그러들었다.[5] 그러나 실은 1999년 1집 앨범에서 이미 '4D'라는 하드코어메탈곡과 히든트랙에서 인더스트리얼 성향의 연주곡을 발표했으며, 김사랑이 10대 때 활동하던 '청년단체'라는 밴드는 하드코어메탈, 랩메탈 밴드의 성격이 강했다. 김사랑의 4D는 메인스트림에서 서태지보다 앞서 나온 유일무이한 하드코어메탈 곡이라는 평도 있다. 그 후 김사랑은 몇 달 안되는 짧은 2집 활동을 접었다. 그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치고 2집앨범을 발표한지 6년이 지나 2007년 3집 「U-Turn」 앨범을 발매, 타이틀곡 "위로"로 5년만에 컴백을 하였다. 활동 중 케이블 방송에서 <팝 매거진>이란 프로그램에서 메인MC를 맡기도 했다.

'위로' : 어쿠스틱으로 불렀다.

2009년 EP앨범 <Behind The Melody>를 발매 후 타이틀 곡 <취중괴담>으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엔 7월 21일 디지털 싱글 Goodbye를 발매하였다. 그리고 2013년 8월, 장장 6년여만[6]의 4집 앨범 <Human Complex Part.1>을 들고 복귀하였다. 2014년 8월 4집 앨범의 나머지 절반 <Human Complex Part.2>를 발매하였고, 2015년 7월 <Human Complex> Part 1, 2를 합친 통합본이 출시되었다. "기억나"라는 신곡이 추가되었다.

'ICU' 뮤직비디오

2016년까지 바닐라 어쿠스틱, 김지수 등과 함께 쇼파르뮤직에 소속되어 있었다. 1년에 한두차례씩 꾸준히 소극장 공연 및 음악 축제 등에 참여하며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공연에서는 그의 의외로 괜찮은 입담을 들을 수 있다. 무수한 여성팬을 가지고 있어, 공연에서 남녀비는 1:9 그 이상인 듯 하다

2016년 11월 27일 복면가왕가왕 돼서 만나요 제발~ 복면스타라는 이름으로 출연했으나, 도전! 무한패션왕에게 밀려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017년 1월 소속사를 쇼파르뮤직에서 우보네트웍스로 이적했다.

2 평가

음악적인 색깔은 정규 앨범마다 바뀌는 편. 1집에서는 락이라는 큰 장르 아래서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했다면 2집은 굉장히 무겁고 헤비한 사운드를, 3집에서는 모던락 장르 아래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주로 들려주었다. 몽환적이면서도 무거운 느낌이 드는 곡이 앨범마다 들어있는 편. 2014년 Mnet에서 어쿠스틱 콘서트를 가지면서 했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1집부터 '백화점식 중구난방'이었다고 표현하였는데 그 표현처럼 그의 음악세계는 특정 장르에 국한 되지 않으며 하드 락에서 일렉트로니카까지 그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고 해서 넓고 얕은 형태가 아니라 각 분야의 음악 어법에 상당히 숙련된 모습과 함께 형식 안에서 진일보한 크고 작은 파격과 실험정신을 같이 보여주고 있으며 내놓는 결과물 역시 완성도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큰 음악적 특징은 끊임없는 실험정신 속에서도 변함없이 기저에 깔려 있는 그 특유의 서정성이다.

음악적 역량에 비해 대중과의 교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면은 있으나, 그 재능과 음악성에 대해서는 음악인들과 대중들 공히 이견 없이 인정하는 편이다. 다행히 이 천재소년은 거품이 아니었어 한편으로는 어린나이에 경험한 대중들의 관심과 화제성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지키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을 해왔기 때문에, '스타'의 자리와는 인연이 없었어도 뮤지션으로서의 생명력은 더욱 견실하게 다질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천재는 사라지지 않았고 꾸준히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3 그 외

웹진 IZM 과의 3차례 인터뷰가 있었다. 재밌게 읽을 수 있다. #

4 디스코그래피

발매일타이틀비고
1999.11.23나는 18살이다정규 1집
2001.06.18Nanotime정규 2집
2007.08.21U TURN정규 3집
2009.09.01Behind the MelodyEP
2010.07.21Goodbye싱글
2013.08.05Human Complex Part 1
2014.08.08Human Complex Part 2
2015.07.01Human Complex Integrated정규 4집
  1. 서태지는 서울북공업고등학교 1학년 야간 중퇴.
  2. 매 앨범마다 다른 장르에 도전하고 또 그 장르에 대한 이해와 표현도 충분하다는 부분이 서태지와의 공통점이라고 할 만 하다. 그러나 김사랑의 경우 작곡 편곡은 물론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 등 모든 악기를 한 개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연주 후 레코딩 하기 때문에 진정한 원맨밴드라는 평도 있다.음반의 모든작업을 혼자 하기 때문인지 시간이 많이 걸려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주기도 비슷하다
  3. 이걸로 당시 서비스 중이었던 018 한솔텔레콤(훗날 KTF에 인수)의 018 CF를 찍었다.
  4. 두 곡(FEELING, PROMISE)은 당시 1,2집의 제작자였던 윤명선, 그의 아내였던 가수 정혜선이 가사를 써 주었다. 외부 작사가가 아니라, 제1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나의 하늘'로 은상을 수상하며 2장의 정규앨범을 발매하였다.
  5. 전 곡을 뉴메탈 계열의 곡으로 채운 서태지 6집과 달리 김사랑의 2집에는 일렉트로닉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곡들도 많이 있었다.
  6. 정규앨범은 6년 만이고,중간에 EP <Behind The Melody>와 디지털 싱글 <Goodbye>를 발매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