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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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성식(金成植)
출생일1958년 12월 16일
출생지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
본관강동 김씨 [1]
가족부인과 슬하 1녀
종교개신교
학력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정당국민의당
지역구서울 관악갑
경력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
경기도 정무부지사
안철수 진심캠프 공동선거대책본부장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국민의당 최고위원
제 18, 20대 국회의원(재선)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
공식 사이트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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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울 관악갑 국회의원(재선),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전병헌과 함께 친게임파, 경제통 정치인으로 꼽히며 손학규와의 인연으로 범손학규계로도 꼽힌다. 2012년 부터 시작된 안철수와의 결합과 이별을 거듭한 인연으로 일명 안철수의 남자로 불리기도 했다.[2]

야권의 빅텐트론에 맞서 이제는 안철수의 상징이 된 제 3 정당론을 처음으로 주장했고 20대 총선에서 안철수를 제외하면 국민의당에서 유일한 수도권 당선자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정치인이다.

2 이력

3 생애

3.1 정치활동

부산고등학교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77학번)하고 최전방 제15보병사단에서 육군병장으로 만기제대 하였다. 대학 재학 중 한번, 졸업 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재직시 두번째로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위반 등으로 징역5년, 자격정지 5년형을 선고받고 투옥 되었으나 노태우 정부시기 사면복권되었다.[3] 이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사단법인 나라정책 연구원 정책기획실장, 기독교방송 시사자키 평론가, 금융연구회 등을 거쳤다.

1991년 민중당 소속으로 서울 동작구에서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고 제정구, 이부영, 김부겸 그리고 노무현이 있던 통합민주당에서 서울 동대문구을 지역구에 출마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통합민주당이 선거에서 15석을 얻는데 그쳐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고 이후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통합추진회의 소속 정치인들은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게되면서 분당 수순을 밟게 되었다. 남은 잔류파는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만들게 되었고, 김성식은 빈민운동을 했던 제정구 전 의원을 따라서 함께 한나라당에 합류하게 되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당시 원외에 있었음에도 경제 및 예산 관련 7개 국회 상임위원회를 관장하는 한나라당 제2 정책조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손학규 경기도지사에게 정무부지사로 발탁되었고, 이후 손학규 대선캠프 정무특보를 역임했다.

3.2 제 18대 국회의원

세 번의 낙선 끝에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지역구에서 현역 국회의원인 통합민주당 유기홍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였다.

관악구 지역이 이해찬 전 총리가 관악을 지역에서는 5선을 하기도 하고 호남 출신 이주자 비율이 서울 내에서 가장 높다 카더라는 말이 있고 저소득층 또한 많으며 청년층의 인구비율도 제법 높은지라 전통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이러한 정치성향 때문에 '서울의 호남' 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며 민주당 지지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그야말로 민주당의 텃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깃발을 들고 꾸준히 출마해 지지율을 올리며 당선되었기에 극한지인 대구와 순천에 밀려서 그렇지지역주의 타파를 견지하는 노선을 꾸준히 밟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국회 입성 이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3선급 초선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부자 추가감세 철회, 대학등록금 경감, 청년창업 등 일자리 예산증액, 보육지원 정책 강화,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사회 보험료 지원 정책, 비정규직 차별해소 정책 등을 주도했다. 또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으로 활동하며 이명박 정부의 기업 법인세 인하 움직임을 막고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일명 재정3법을 주도적으로 처리해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그러한 의정활동을 토대로 18대 국회 4년간 의정평가 종합 1위, 국회 백봉신사상 베스트10 4년 연속 수상등의 기염을 토했다. 이 당시 낸 '재정위험 관리 및 세출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과제'(총 243쪽 분량)와,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 전환과 과제'(총 298쪽)의 두가지 의정보고서는 역대급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국감 스타' 남들이 사진 찍히려 튀는 행동할 때 이 사람은 500쪽 정책 보고서 내놨다

3.3 탈당, 신당합류, 근신

당내 개헌논의에 반대하는 등 개혁소장파로 분류되었고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민본21의 간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2011년 12월 13일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요구하며 한나라당 동료 의원인 정태근 의원과 탈당하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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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서울특별시 관악구갑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 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참고로 이 때 새누리당측에서는 김성식 의원을 배려해 공천을 안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정권 심판론이 결집했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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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 공동선거대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이후 2014년 1월 22일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다시 한 번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였으나 3월 2일 새정치연합민주당과 통합 이후 신당(가칭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을 발표하자 합류를 거부하고 근신에 들어갔다. 꿈을 마음에 묻으며

전날인 3월 1일 JTBC 밤샘토론에 출연해서 새정치연합독자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한 이후에 발표된 통합이기에 개인적인 성향을 차치하더라도 신당 합류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3.4 국민의당 합류

2016년 2월 1일 안철수 의원이 주도한 국민의당에 전격 합류했다.# 윤여준 창당준비위원장이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국민의당 창당 이후 당직을 맡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 김성식 전 의원이 합리적 보수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2월 2일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지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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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2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지역에 다섯번째 출사표를 던졌다.거대양당 나눠먹기 이제 끝내야... 관악구 갑 지역구 현역인 유기홍 의원과 1승2패의 전적을 가지고 있고 최근 수도권에서 지지율에 열세를 보이고 있는 국민의당의 핵심인사이면서 꾸준히 출마해 득표수를 올려왔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종합해보면,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중에서도 드물게 진보성향이 강했던 인물이다. 물론, 출신 자체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을 했고 삼김시대 반대를 내세운 꼬마민주당이었다는 점에서 별로 놀라울 것은 없었다.

3.5 제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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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재선에 성공했다. 출구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후보에게 1.3%P차로 뒤졌으나 실제 개표 결과는 0.8%P(1239표)차로 신승하여 수도권 1석을 추가함은 물론 국민의당 돌풍에 화룡점정을 찍으며 생환했다.

특히 당선가능성이 있다던 새정연 출신 현역 의원들이 불과 수십표차로 아깝게 낙선한 문병호 후보를 포함해서 모조리 금뱃지 획득에 실패한 상황에서 안철수 대표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수도권에서 국민의당 의석을 추가하며 높은 비례 득표율과 함께[5] 국민의당의 호남정당화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사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김성식 후보가 유기홍 후보에게 10% 포인트 뒤지고 있는 결과가 대부분이었고 새누리당 원영섭 후보는 과거 한나라당 출신이었던 김성식 후보의 표를 잠식할 수 있다는 예상이 많았다. 이러한 3자 구도에서 현역 유기홍 후보는 지역에서 평가도 좋고 의정활동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졌기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일찍부터 관악구 갑지역은 유기홍 후보가 낙승할 거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가 선거기간 막바지엔 거의 매일같이 지원을 오고 천정배 대표도 호남에서 올라와서 지원유세를 했다.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도 선거유세를 도왔다. 거기에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던 장하성 교수까지 지원유세를 해줄 정도로 수도권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의당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경기도지사-정무부지사 때 인연을 맺은 손학규 전 대표는 직접 오지는 않았지만 개소식 부터 본 선거기간 까지 여러 차례 측근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송태호 이사장[6]을 통해 지지 메세지를 보냈고 송 이사장이 지원유세를 도왔다. 2000년에 관악갑 지역에서 맞붙었던 민주당 이훈평 전 의원이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으며 지원했고, 관악구의회의 더불어민주당 출신 이성심 구의장(4선)과 새누리당 출신 임춘수 구의원(4선)은 탈당까지 결행하며 국민의당에 합류하여 김성식 후보를 지지했다.

이러한 지원과 함께 국민의당의 호남발 녹색 바람을 등에 업고 인물론을 바탕으로 선거판을 흔들었고. 출구조사에서는 1.3%차로 뒤졌으나 개표가 진행되면서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리드했고 행운동, 신림동, 낙성대동, 남현동[7]과 사전투표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에서 앞서면서[8] 실제 개표 결과 0.8%P(1239표)차로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기적같은 승리. 이를 통해 유기홍 후보와의 전적을 2승 2패 동률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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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후 서울 강북구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56주년 4.19 혁명 기념식에 부산으로 내려간 안철수 대표를 대신해 국민의당을 대표해서 참석했다.사진이 무슨 대선주자 같이 절묘하게 잘 나왔다 쓸데없이 박원순 서울 시장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부부같은 건 덤출처

인터뷰등을 통해 20대 국회에선 "기재위 외 다른 상임위는 의미가 없다고 까지 말하며 상임위를 기획재정위원회로 배정받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거기에 10년 단위로 복지와 재정 문제를 논의할 정책협의회가 필요하다며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본인의 의지 뿐 아니라 국민의당 내에서도 채이배 비례대표 당선자와 장병완 정책위의장과 함께 자타공인 경제와 예산 전문가로 꼽히고 있고 당론으로 정한 법인세 정상화, 또 박근혜정부의 '증세없는 복지' 기조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김성식의 기재위행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4월 27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국민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원내대표로 추대된 박지원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에 만장일치로 합의추대되었다. #

5월 18일 제 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금지되고 행사가 졸속으로 진행되자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故윤상원 광주 시민군 대변인의 묘비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

6월 13일 국회 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선출이 완료되고 원구성이 되면서 기획재정위원회로 배정받았고 국민의당 간사로 선임되었다.

3.6 그 밖에

셧다운제를 강제하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토론에 나서 수많은 겜덕들의 마음을 울렸다. 국가가 규제를 시행할 때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부분을 제공한다.

당시 여당 의원임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당시 국가보훈처 차장에게 극딜을 시전 임을 위한 행진곡의 당위성에 대해 역설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본 선거기간 동안 신세계의 SSG 광고를 패러디해 본인을 SSK이라고 밀었다.손발이 오그라든다 이색 선거유세로 공중파도 탔는데, 중요한 표심으로 여겨지는 2030 젊은층의 이목을 끌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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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후 김성식 트위터
김성식 최고위원 100분 토론 영상

저희에 대해서 우려하시는 부분도 있으시지만, 뭐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유명한 정치소설에 보면 양 웬리가 이런 말을 하지요.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공존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민주주의의 정수라고 말을 합니다.'

2016년 4월 19일 100분 토론에 출연해 은하영웅전설 양 웬리의 어록 중 하나를 인용했다. 동시에 놀랍게도 '공중파 생방송'에서 PGR21홍차넷을 언급하고 이후에는 PGR21 정회원임을 밝히기도 했다. MLBPARK불펜 눈팅도 하고있다고... 걱정마시게 전병헌 의원

김성식 페이스북 홍차넷 운영진 Toby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고 한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구 을)통합민주당12,177 (13.5%)낙선 (3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구 갑)한나라당30,206 (29.9%)낙선 (2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구 갑)한나라당47,701 (35.6%)낙선 (2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구 갑)한나라당48,133 (46.7%)당선 (1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구 갑)무소속52,808 (41.6%)낙선 (2위)한나라당 탈당후 무소속 출마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구 갑)국민의당54,933 (38.4%)당선 (1위)

5 수상

  • 2012 18대 '국회의원 4년 의정활동 평가 종합' 1등
  • 2010, 2011 '국회보좌진 선정 올해의 의원상' 1등
  • 2011 '법률소비자연맹 국회의원 3개년 종합의정평가 '국회헌정대상' 1등
  • 2011 '여야의원이 뽑은 일 잘하는 의원' 1등
  • 4년 연속 '국회 백봉신사상' 베스트 10
  • 4년 연속 ' NGO 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09 '국정감사 베스트 오브 베스트'
  • 2010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최우수의원'
  • 2012년 조선비즈 경제분야 의원평가 베스트 1위

6 저서

통계로 풀어보는 서울시행정, 1991년

한국경제의 새 틀을 찾아 : 위기를 넘어 체질강화로 : 2009년 저서
국회의원? 뭐하는 사람이야! : 2011년 저서

7 관련문서

추가바람
  1. 평양직할시 강동군, 그러니까 이북 성씨다.
  2. 이러한 계파구분에 대해 본인은 측근정치는 배격하고 한 적도 없다며 단호히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3. 이 때에 지급된 민주화 유공자 보상금을 수령거부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이 당시의 심경을 인터뷰한 프레시안 기사.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적대적 공존을 깨라
  5. 관악구 국민의당 비례대표 투표 득표는 관악구 갑, 을구의 지역구 후보들의 득표수 보다 더 많은 81,681(31.14%)표로 관악구 정당득표 1위를 달성했다.
  6.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손학규 전 대표의 싱크탱크로 알려져있다. 총선기간 동안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김성식 후보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의 여러 후보들에게도 손학규 전 대표의 지지를 대신 전한 바 있다.
  7. 다만 남현동의 경우는 다른 동에 비해 새누리당 원영섭 후보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3위인건 변함 없지만
  8. 특히,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2012년에도 승리했던 성현동의 캐리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