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金榮春

이름김영춘(金榮春)
출생음력 1961년 11월 17일(양력 1962년 2월 5일)
출생지경상남도 부산시
소속 정당더불어민주당
선거구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선횟수3선
학력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학 석사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외부 링크공식 사이트
종교천주교(세례명 : 다니엘)

1 개요

대한민국의 제16대, 제17대, 제20대 국회의원이다. 처음엔 민추협의 김영삼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노무현 대통령 당시 민주진영으로 건너왔다.

2 생애

1961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동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학부 재학 시절인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다. 학도호국단을 없애는 대신 부활된 총학생회의 첫번째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같은 해 11월 민주정의당사 점거 시위로 구속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이후 김영삼계 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민추협을 이끌며 고생하고 있던 김영삼에게 자기 발로 찾아갔다고 한다. 김영삼이 워낙 총애해서 당시 상도동계 선배들조차 김영삼에게 하기 어려운 말이 있으면 김영춘에게 도움을 구했다. 상도동계의 명실상부한 막내라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서 정무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문화체육부 차관 출신의 김도현과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광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김상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김상우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2003년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한나라당에서 상도동계로 그냥 남아 있었으면 김무성이나 오세훈을 능가하는 거물 정치인이 되었을텐데, 독재세력과 계속 손 잡을 수 없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후신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여 문국현창조한국당에 입당하였다. 이때부터 비노계열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2008년 다시 창조한국당을 탈당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하였다.

2010년 민주당에 복당하여 최고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광진갑에 출마했으면 고생도 덜하고 충분히 편하게 당선될 수 있었을텐데, 지역주의 극복하는 새 정치 한번 해보겠다고 가족들 다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아들도 진중으로 전학시켜서 지역을 위해 낙향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선거당일 출구조사에서는 1위였고, 개표 초반에는 1위로 시작하다 역전의역전을 거듭했지만, 초읍동에서 나성린에 대한 몰표가 쏟아져 추격전끝에 삼천표차이로 눈물을 삼켰다. 추후 선거에 출마할 것을 약속하고,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정책연구소인 인본사회연구소를 서울에서 서면으로 옮겨왔다.

2014년 지방선거에 부산광역시장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 무소속 오거돈에 양보하였다.하지만 오거돈 또한 낙선하였다.[1]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일찌감치 단수공천을 받았다. 이미 2012년부터 약 4년 동안 지역을 거의 박박 기다시피 하면서 선거운동을 해왔기에 이번에는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2]

그러나 상대인 나성린은 경선을 뚫고 공천되었고, 부산에서 유일하게 야당 간판을 달고 3선이 되었던 조경태의 새누리행, 야권의 분열로 인해 악재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론조사 결과도 나성린에게 크게 뒤진 상황이었다. 반면에 새누리는 부산 싹슬이를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출구조사에서는 오차범위내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왔고, 실제로는 개표이후 계속 앞서갔다. 그리고 개표 90% 시점에서 당선을 확정해 설욕에 성공하였다. 총 득표 45,706표 (49.6%). 거기에 독수리 오형제의 동지였던 김부겸도 대구에서 당선되는 결과를 얻었다. 부산시당 위원장으로서 부산심장까지 공략에 성공해 더민주의 영남권 약진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해 4월 17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이춘석과 비상대책위원으로 추가 선임되었다.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도시 지역구인데 해양수산도시 지역구 이니까.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신한국당22,309 (27.9%)낙선 (2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한나라당37,446 (50.8%)당선 (1위)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열린우리당44,519 (50.7%)당선 (1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민주통합당34,238 (35.8%)낙선 (2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더불어민주당45,706 (49.6%)당선 (1위)
  1. 하지만 서병수와 오거돈의 득표율 차이는 1.4% 밖에 나지 않았다.
  2. 중앙정치계에서 지방으로 진출하는 정치인들이 대개 자녀 교육 등을 고려해 가족을 수도권에 두고 단신으로 지역구 활동을 벌이는 것에 비해 전 가족을 모두 이끌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주해 왔다는 대목에서 부산 시민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