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정치인)

20160824173223616710.jpg
김영한(金英漢)
1957년 9월 27일-2016년 8월 21일

1 개요

전직 박근혜정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그 전에는 ‘공안통’ 검사였다. 2014년 6월부터 민정수석을 지냈는데, 박근혜정부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의 국회 출석 지시를 거부하는 등 초유의 항명 파동을 일으킨 뒤 임명된 지 몇 개월 안 된 2015년 1월에 사퇴 의사를 밝히고 청와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후 계속 술만 마시다 결국 2016년 8월 21일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한 권의 노트를 남긴 채...


2 활동

1957년 9월27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경북고등학교[1]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4년 사법연수원을 14기로 수료했다. 해군 군법무관으로 군 생활을 보냈다. 검찰 재직시절 주로 공안담당 검사로 활동해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분류된다. 1988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로 임명된 이후 대구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 1과장과 3과장, 서울지검 형사 10부와 공안1부 부장검사를 거쳤다.

대검찰청 공안1과장을 맡던 시절인 2001년에 8·15 평양축전 방북단의 국가보안법 사건을 지휘했다. 당시 강정구 동국대 전 교수는 평양을 방문해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방명록에 썼는데, 김영한은 강 전 교수를 비롯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방북단 7명을 찬양 및 고무와 회합·통신죄 등으로 구속기소하기도 했다.

2003년 6월 서울지검 공안1부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던 배우 문성근씨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당시 문씨는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이끌며 노무현 후보를 지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운동을 벌인 것이 문제가 됐다. 김영한은 문씨가 ‘후보자를 상징하는 인형이나 마스코트를 제작 또는 판매할 수 없다’고 규정한 선거법 제90조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김영한은 문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에 추징금 20만원(?)을 구형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청주지검장과 대구지검장, 수원지검장을 역임했다. 2010년 수원지검장 재직 시절 김상곤 당시 경기교육감을 공직선거법 위한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집요하다 김 전 교육감은 당시 장학재단에 장학기금을 출연하고 직접 격려사를 했는데 이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불법적 기부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교육감은 1심부터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경기도 교육청이 예전부터 해오던 장학사업에 교육감이 대표로 참여하는 것은 의례적 직무행위라며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이후 김영한은 2011년 고검장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검찰 내 입지가 좁아졌다. 승진에서 밀려났을 때 사의를 표명했지만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과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의 만류로 대검찰청 강력부 부장으로 임명된 뒤 1년 더 근무한 뒤 2012년 7월 검찰을 떠났다.

이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2013년 중반경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을 수임했다.[2]

2014년 6월 홍경식 전 민정수석을 대신해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되었다. 표면적으로는 4.16 세월호 참사와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의 연쇄낙마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양새였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청와대 내부 문건이 같은 해 4월쯤 청와대 외부로 유출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경질됐다는 얘기가 파다했다.[3]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에서 청와대의 비서실 교체 인사에 대해 정윤회라는 사람이 속칭 문고리 3인방[4]이라는 창구를 두고 정기적으로 국정에 개입하는 비선 실세란 기사를 내면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때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이 순전히 청와대 입장에선 일을 잘 해결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한테 높은 신임을 얻게 되고, 이로 인해 우병우 비서관이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하는 등 월권을 저지르는 일이 잦아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호랑이를 키웠네

당시 청와대는 김기춘 실장의 총괄 아래 공안검사 출신의 김영한 민정수석이 상황 관리를 맡고 특수통인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직접 특별감찰 등을 이끄는 방식으로 문건유출사건에 대처를 하고 있었는데,[5] 여기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던 우병우에 비해 김영한의 상황 관리는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6]

어쨌든 이러한 일로 업무에서 사실상 배제되자, 이에 '항명'하여 2015년 1월 9일 문서유출사건 관련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거부하였다. [불출석 사유서 참조]. 조직의 위계와 규율을 중시하는 공안 검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상관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 출석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 또한 이러한 출석거부는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를 무시한 것이고,[7] 공직윤리에도 어긋난 것이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 이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8] 그리고 이렇게 증인출석을 거부함과 동시에 민정수석 자리에서 사퇴하였다. 내가 더러워서 그만둔다. 그가 사퇴하자, 그의 후임으로 우병우가 민정수석이 되었다.

[검찰 공안통에서 ‘껍데기 민정수석’으로]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멍해져 갔다]

2.1 비망록 논란

2016년 8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유족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장례를 치러달라"고 유언함에 따라 장례는 유족들끼리만 조용히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김영한 모친의 말에 의하면 아들이 청와대 사임 이후 허구한날 술만 마시다 급성 간암으로 죽은 것이라고 한다.[9] 그리고 술을 마시게 된 원인으로 김기춘, 우병우를 지목했는데 아들이 두 사람 때문에 평소 집에서도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제2차 청문회 당시 정유섭 의원은 김영한 모친이 "아들의 죽음은 김기춘, 우병우 탓이다. 아들이 평소 정상적인 청와대 업무라고 볼 수 없는 지시와 명령으로 괴로워했다. 아들이 청와대를 그만두고 매일 술만 마시다 사망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국정조사 직전인 2016년 11월 tv조선에서 고인이 된 김영한의 유품 중 민정수석 시절 업무일지를 기록한 데스노트비망록을 입수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각종 공안탄압 의혹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도함으로서 세간에 큰 파문을 일으키게도 했다.[#] 그리고 2016년 11월 20일 jtbc 탐사 보도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최순실 게이트 특집 4탄에서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폴더폰 증거와 함께 그곳에 담겨져 있는 세월호 청문회 관련 면담요청 메시지를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진짜로 유능하지만 문제는 좀 있었던, 그러나 결과적으로 안습한 인물이다 민정수석이라는 명예로운 자리를 맡았지만 상관인 김기춘의 말도 안 되는 지시와 하관인 우병우의 월권행위로 허수아비 민정수석으로 전락하여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쌓였던 것이다.유승민 원내 대표와 고교 때 절친한 친구였다. 그가 사망했을 때 유승민이 페이스북에서 애도의 뜻을 표할 정도. 사실 박근혜국회법 개정을 반대해 당내에서 압박을 받아 원내 대표직을 사퇴했기에 같은 처지의 김영한 수석에게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이다. 그냥 스트레스 받으면 모든 걸 털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정서와 병세를 안정시키고 다음 국회의원 선거때 당선되어 정치인으로 활약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참고로 사초나 다름없는 비망록의 증거 효능의 여부는 전적으로 판사가 결정한다.[#]

3 트리비아

1991년 10~11월경 공안부 검사를 맡던 시절 술자리에서[10] 한 중앙일간지 기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쳐(...) 폭행한 사실이 2014년 6월 언론매체인 미디어오늘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김영한은 당시 만취한 상태에서 기자에게 억지로 술을 권했는데, 이에 해당 기자는 ‘왜 계속 술을 권하냐’고 말한 뒤 술을 받아 마셨는데 그 뒤 갑자기 기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쳤다고 한다. 결국 폭행을 당한 기자는 이틀 뒤 병원에 입원해 4~5일 정도 있다가 퇴원했는데, 취중 행동이라 고소와 같은 법적 대응을 하진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영한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당시 일은 모두 사실이며 서로 상황이 그렇게 돼 개인적인 일로 사과하고 끝났다”고 해명했다.


상술했듯 유승민 의원과 같은 경북고를 나온 절친이었다고 한다.
  1. 유승민과 동기이다.
  2. 이 사건 관련 선임되었던 변호사로는 홍만표, 김영한, 노환균, 우병우 등이 있었다. 여러 의미로 화려하다.
  3. 조응천도 이 무렵에 경질되었다.
  4.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5. 김기춘-김영한-우병우 등의 라인 3명이 모두 검찰 출신이어서,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발언 등 검찰 수사에 대한 직간접적 영향력 행사에 이들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6. 문건 유출 파문의 한 당사자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문서 유출 관련 보고서를 전한 뒤 김영한 수석에게도 문서 수거가 시급하다고 전했는데, 김 수석이 ‘무고죄가 될 수 있다’는 반응만 보였다”며 분통을 터뜨린 바 있다. [관련기사].
  7. 김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은 2주 전에 여야가 합의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친박'으로 분류되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조차 "그의 출석이 필요했다"며 여야 합의배경을 설명할 정도였다.
  8. 특히 문재인 의원은 "지금 청와대에는 위아래도 없고, 공선사후(公先私後)의 기본개념도 없다"며 "'콩가루 집안'이란 말이 있지만, 국가운영의 심장부가 어떻게 이처럼 비극의 만화경일 수 있는가"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아무리 '정윤회 문건'의 작성과 불법 유출 등이 모두 김영한 수석이 취임하기 이전에 벌어진 일들이라 하더라도, 김영한 수석이 직접 국회에서 민정수석실이 파악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올바른 처신이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국회가 장난치는 곳도 아니고…"라며 개탄했다. 한겨레신문에서는 이러한 김영한의 출석거부를 두고 '콩가루 청와대'라는 제목의 조롱성 사설을 내보내기도 했다. [관련 기사].
  9. 다만 암에 '급성'이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과음을 해도 단기간의 과음이 간암을 일으키지도 않고...다만 단기간에 매우 심한 과음을 했다면 급성 알코올성 간염으로 사망할 수는 있다. 어머니나 기자가 '간염'과 '간암'을 혼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10. 자신을 포함한 공안부 검사 4명과 검찰 출입기자 3명 등 모두 7명과 함께 당시 서울지검 앞의 한 보쌈집에서 저녁식사를 가졌다. 이후 2차로 자리를 이동, 카페에서 술을 함께 마시다가 이러한 사고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