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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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完燮

1 개요

1963년생. 학력상으로는 서울대학교를 중퇴했다. 자칭 기자, 평론가, 작가, 소설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매국노.

놀랍게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지금은 현대 한국 사회의 진성 친일파(2번 문서) 중에서도 악질 중의 악질이다. 일본어 위키백과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82년 서울대학교 이과 계열에 입학해 천문학을 전공하다 1989년 중퇴하였다. 나중에 그는 인터뷰에서 대학시절 원희룡, 진중권과 동기였다고 한다. 물론 재학 시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복잡하던 시대에 사회에 대한 참여는 없고 얌전하게 학교만 다닌 진중권이 지금 사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진중권은 유시민이나 심재철처럼 학생운동을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시위나 집회에는 뻔질나게 참여한 인물로, 스스로도 "나는 그냥 되는 대로 따라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와서 보니 학생운동의 역사에 남은 현장에는 꼭 내가 가 있었더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따라서 진중권의 학자/논객으로서의 능력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자칭 사민주의적 리버럴에 온라인 좌파 논객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진중권에 대한 김완섭의 비판은 기실 열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학창시절 때부터 가톨릭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후 열성 가톨릭 교도로서 관련 저서의 번역과 편집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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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모욕질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하여 민주화 유공자가 되었으며[1] 이때 계엄군에게 엄청 맞고, 몇 달 동안 구금되어 있었다고 한다.[2] 하지만 이는 본인의 주장이며, 말의 신빙성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그 단체의 서훈 박탈 결의도 순전히 이미지가 나빠지는걸 염려해 회복을 위한것이지 이 사람에 대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때 행적 자체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1989년부터 '하이테크 정보', '소프트 월드' 등 잡지사 기자 등을 역임하다가 그 뒤부터 소설가, 문학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 내부의 파시즘적 요소를 자의적으로 비난하는 책을 출간했다가 송사와 비판을 받았다. 1990년대 초중반 PC 통신 하이텔에서 활동했다. 당시 하이텔 ID는 WANSUP.

이 시기에는 하이텔 내 서울대 통신망 '버들골'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처음에 운동권을 매개로 논란을 일으켰고 그 다음으로는 성 문제를 소재로 삼으면서 천리안의 극렬 페미니스트논객 신정모라[3]와 대립각을 형성했다.

1995년 '피씨 통신'지에서 발표한 '창녀론'이 화제가 되며 일약 문제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 내용은 아래 내용을 참조하시라. 이후 그해 9월에 그간 올려 온 게시글들이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 하이텔에서 이용정지를 당하고 ID를 개명한 뒤 신생 PC통신 서비스인 나우누리로 이적했으나, 하이텔 시절이나 다름없는 행보로 인해 '불량이용자' 딱지를 달며 나우누리에서도 추방당하고 하이텔에서도 ID가 회복된 틈을 타서 복귀했으나 거기서도 추방당했다. 김완섭의 PC통신 시절 행보에 대해 자세히 다룬 글.

전체적인 행보의 흐름을 살펴 보면, 사상 혹은 성향의 일관성이 아니라, 운동권/사회운동 - 여성/성담론 - 친일문제 - ... 등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시점에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안에 관하여 의도적으로 논란을 촉발하는 모습으로 일관되어 있는데, 그 논란도 선도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제창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핫토픽을 따라 다니며 작위적으로 반대 포지션을 취하는 행태로 노이즈 마케팅적인 모습을 보인다.

1997년 오스트레일리아로 잠시 이주했으나 1998년에 도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2 친일반민족행위자로의 전환

전에도 그런 기미가 더러 있었지만, 한국 귀환 이후부터는 아예 대놓고 본격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었다. 그 대표작이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인데, 일제강점기를 합법적이라 주장하는 등 일제 침략을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일제 시대에 출판되었다면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2002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청소년 유해 매체물(간행물)로 지정되었지만,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논리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4개월 사이 무려 35만 부가 팔려 식민지 수혜론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이 덕분에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같은 일본 수구꼴통의 거두와의 대담도 하였고 일본에서 왜곡 교과서 발행을 주도하는 새역모 사람들과 인맥을 쌓았다.

이 와중에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일본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고 하나, 문전박대당했다. 그런데, 이것 자체도 본인 주장일 뿐이고 실제 신청을 했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더구나 본인이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민주화 유공자임을 근거로 진보주의 세력임을 천명중이나 어떤 주장을 보나 진보와는 매우 거리가 있다. 물론 진보고 보수고 간에 제대로 정신박힌 한국인 중 김완섭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고 젠카와 최기호[4]처럼 빼도박도 못할 자발적 친일파#s-2.

그런데 웃긴 것은 이 인간은 일본어조차도 못한다. 하지만 그 과도한 일빠#s-3질과 독립운동가 디스 때문에 결국 벌금을 물고 만다.

3 관련 병크 일람

3.1 독립운동가는 폭력집단

만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위안부 문제 피해자들을 해외여행 겸 쾌락의 즐거움을 주었으니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며 욕되게 하고 유관순 열사를 폭력시위를 주도한 여자깡패, 안중근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개드립치는 등의 온갖 병크를 저지르다가 독립운동가들의 명예훼손 혐의로 몇번이고 소송에 걸려서 패소하기도 했다. 김좌진 장군을 산적떼 두목이라고 비방한 적도 있다. 매국노가 따로 없으며 반공 시절이었더라면 나라를 좀먹는다는 혐의로 필시 잡혀 죽었을 것이다.

"김구는 민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한뒤 중국으로 도피한 조선 왕조의 충견"이라는 내용의 문건을 배포하여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2008년 항소심에서 벌금형 750만원이 확정되었다. 김완섭은 2003년에도 김구, 유관순을 비방하여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700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재판부는 김완섭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판결문에서 김완섭이 유관순이 주도한 시위는 폭력적이었다고 하지만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유관순에 대한 판결문 및 번역본에 의해 당시 시위는 평화시위였음이 확인되는 바 김완섭의 기술은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된다고 판결하였다.
 
또 김구에 대해서는 김완섭의 주장과 달리 김구는 한 일본인을 살해한 후 복역 중 탈옥해 국내 활동 을 하다가, 더 이상 활동이 어려워져 사건 20년 이후 중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사건 직후 체포를 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도피했다고 김완섭이 표현한 것은 구체적 허위사실 적시명예훼손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유관순을 '여자 깡패'라고 표현한 부분과 김구를 '조선왕조의 충견'이라고 표현한 부분, 그리고 김좌진을 '산적떼 두목'이라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 의견 표명이나 논평에 불과하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이것에 대하여 법원김좌진을 산적떼 두목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표현이 개인적 의견표현의 성격이 강하며, 당시 김좌진을 중심으로 한 광복단이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강제력을 행사한 사실이 국사편찬위에 의하여 인정되므로 완전한 허위사실 적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건에 한하여 일부 무죄 판결했다고 해명하였다. 사실 김좌진을 산적떼라고 하는 식의 논리가 현대사에 적용된 것이 5.18 광주폭동설이다.

이는 법리상 개인적인 의견표명은 명예훼손이 아니라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산적떼 두목이란 표현은 충분히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할만한 언사이지만, 한국의 형법상 사자 명예훼손죄는 있으되 사자 모욕죄는 없기 때문에 무죄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김완섭은 법원이 나의 정당성을 입증하였다느니, 나는 무죄라느니 하고 나팔을 불었지만 엄연히 명예훼손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 사실이니 가볍게 씹어주자. 무엇보다 법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맞다.

그리고 꼴에 5.18 민주화운동은 자신이 참여했다고 여전히 민주화 운동으로 고평가하는 주제에, 3.1 운동에 대해서는 종교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왜 안중근을 민족의 원수라고 하는지 묻는 기자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평화주의자로 절대 조선의 병합을 바라지 않았다. 폭도 안중근이 이토를 암살하여 결국 일본이 조선을 핍박하게 만들었으니 민족의 원수가 아닌가."라고도 발언했으며 "한국인들은 수준이 낮아 내 책도 안 읽고 욕을 한다"라는 말을 했다.

3.2 조선총독부 찬양

김완섭은 이것도 모자라 조선총독부의 총독정치가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왔으며 덕분에 헐벗고 가난한 조선이 뒤늦게나마 발전을 했던 것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조선 민족은 일본에게 감사를 해야한다는 망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덧붙여 조선이 해방되지 않고 총독정치를 통해 20년 즈음 더 지속되었다면 한국은 오늘날 일본의 은덕을 이어받아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인데 조선이 해방되고 총독정치가 끝나게 되어서 매우 슬프다는 망언을 했다.

해방 직후 남한에 식민지 자산이라고 할 것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한국전쟁 이후 오히려 소득이 소폭 올라간 것을 생각해봐도 이게 개소리인 것이 명백하다.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 아직도 암암리에 행해지는, 전근대적인 풍습인 부락민 천대가 왜 한국에서 없어졌는지 생각해보라. 그만큼 식민지 기간동안 전국의 경제적 기반이 송두리째 뽑혀나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비록 냉전의 여파가 한국에 뻗쳤으며 신분차별을 없앨 정도로 크나큰 전쟁에 국토가 다시 박살나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냉전의 폐해지 한국이 일본에게서 독립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참고로, 김완섭의 희망과는 달리, 당시 실제 일본에서는 조선 지역 및 주민의 식민지 지위 유지가 비효율적이라 판단하여 아예 일본 영토로 만드는[5] 정식 병합을 추진중이었고, 이에 따라 1946년 조선 지역 총선거가 계획되어 총독정치는 지속될 수 없었다.

3.3 고소드립 시전

2006년경, 김완섭이 다수의 네티즌을 상대로 고소를 운운하며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항해 당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직접 네티즌들의 구원투수로 등판, 김완섭을 보기좋게 역관광시켰다. 기사

사실 서울대 동기동문이기도 한 김완섭과 현 새누리당 소속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전 국회의원)간의 악연은 꽤 오래된 것으로, 김완섭 자신도 "원희룡 그 친구는 왜 자꾸 나만 갖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네요. 그러지 말라고 좀 전해주세요."라며 원희룡 의원을 천적으로 취급할 정도. 출처

3.4 독도 드립

2006년에는 개한민국 독도강점 55년째라는 칼럼을 인터넷에 퍼뜨리기도 했는데, 김완섭의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는 글.이었지만 지금은 해당 칼럼이 삭제되고 없다.

요약하자면, "일제시대 조선은 전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인민의 낙원이었으며, 반일 파시스트 노무현은 독도에 대해 일본이 침략 전쟁으로 빼앗은 땅을 되찾았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침략전쟁을 한 적도 없으며 개한민국은 국제공인 강도국이 된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3.5 반영남 지역감정

지독한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경상도를 매우 싫어한다. 김완섭은 자신의 《창녀론》에서 "한국 사회의 모든 병폐의 근원이 경상도 남성들에게서 비롯된다"는 드립을 쳤다. 단적으로 신종플루때는 하나님 경상도 놈들이 한 5백만 정도만 죽게 해주세요라는 말까지 당당하게 싸질러버렸다.

이 글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술자리 취객들에게도 안먹힐 주장이라 언제나 그렇듯이 논리적 근거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그냥 지 마음에 안 드니까 달려들고 보는, 초등학생들도 또박또박 반박 가능한 수준의 허점투성이 주장일뿐이다. 되려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나라에 해를 끼치기 위한 의도였다면 상당히 성공한 셈이다.

간혹 친일=뉴라이트 아님? 이라는 선입견적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는데, 애당초 본인 스스로가 진보라 주장하며 뉴라이트와 담을 쌓고 있다. 거기에다가 한나라당을 깐 일도 있다. 하지만 정작 김완섭 본인은 일본 내에서도 신나게 까이는 일본 극우들과 친하게 지낸다.

3.6 불쏘시개인 저서 <창녀론>

요약하자면 여성의 순결은 하나의 상품이고, 결혼은 남편이 아내와 태어날 자식의 양육을 떠맡는 대신 아내의 육체적 관계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매춘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비추어 매춘과 결혼의 차이는 일시불이냐 분할 납부냐의 차이다...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여성이 당당히 화대를 요구해야 남성과 동등한 위치를 점하며 '해방'될 수 있다고 김완섭은 주장한다. 책에는 김완섭이 여성들을 여러 번 희롱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대생들과 함께 MT를 가서 진실게임 비슷한 것을 했다고 한다. 그 중에 어떤 여대생이 아직도 처녀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고백하자, 김완섭은 3학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처녀냐 라는 식으로 말해서 여대생을 울렸다고 한다.

또한 당시 산부인과 치료를 받던 노처녀가 치료 중에 자신의 처녀막이 파열된 것을 두고 병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는데 김완섭은 미친년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 노처녀를 줄기차게 깠다.

다만 좀 넓은 시각에서 보자면, 이건 김완섭의 순수한 독창적인 주장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하의 결혼과 가족을 보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관점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엥겔스 역시 결혼제도를 남자가 여자에게 음식과 집을 주고, 대신 여성을 남성의 전속창녀이자 하녀로 만드는 제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엥겔스는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 제도이니,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여 진성한 양성평등을 이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혁명론을 주창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개념이 자본주의의 문제점이라고 깐 것인데 비해, 김완섭은 성매매야말로 여성 해방의 궁극적 형태라는 아전인수식 주장을 한 것이다. 어지간한 마초이즘 신봉 남성주의자라도 이딴 헛소리는 안한다. 사실 여성주의자나 아나키스트, 자유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중에서도 성매매(성노동)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얼핏 보면 비슷해 보여도 김완섭은 기본적 관점 자체가 편향적으로 치우쳐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정반대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아사나기의 사상도 저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아사나기는 최소한 망가로만 표출한다. [6]

그러나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의외로(...) 김완섭의 논지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지금도 있다. 호기심과 더불어 돈 많은 배우자를 찾으려는 된장녀에 대한 반감에 이 작자의 책을 팔아줬을 것이란 추측이 다수이다. 사실 김완섭이 이런 주장을 한 것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김완섭이 서울대에서 천문학을 공부할 때 사귀었던 여자가 김완섭을 버리고 서울대 법대 출신의 법조인에게 시집갔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이 인간의 본성을 알아차리고 멀쩡한 법조인에게 간 지혜로운 여자에게 차이고 열폭한 찌질이가 이딴 개소리를 책으로 써내는 수고를 감내했다는 것이다. 이걸 출판한 출판사는 어지간히 돈이 없었나보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사실 그렇다고 볼 수조차 없는 것이, 이 책에서 김완섭은 매춘 및 포르노 산업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귀동(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주인공)의 무죄를 주장하고, 우희정(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속칭 우조교 사건의 주인공)은 욕을 먹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이건 앞서 비교된 엥겔스를 모욕하는 그저 도를 넘은 정신병일 뿐이다. 매춘과 포르노 산업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나 자유주의 좌파들도 그것을 국민의 혈세를 들여서 굳이 육성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이런 식의 논리는 마초적 관점에서 남성의 성욕 해소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에 불과하다.[7] 문귀동과 서울대 사건에 대한 언급은...논할 가치도 없다.

김완섭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는,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2세를 안겨 드리고 싶지만, 나이도 적지 않은데다 빈털털이여서 쉽지 않다." 고 말했다. 너 같은거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없으니까 꿈 깨!

3.7 새 친일파를 위한 변명

김완섭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책. 대표적으로 창씨개명은 모든 조선인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란 주장이 있으며, 이 책 하나로 김완섭의 이름을 한국과 일본 모두에 널리 알렸다. 국제적 병신인증[8]

한 마디로 요약·정리하자면, 이 책은 일본 극우가 주장하는 식민지 수혜론의 축약판을 중언부언하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다. 김완섭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일본은 한국을 침략한 것이 아니라 해방시켰다.
  • 일본의 총독통치는 한국의 근대화를 가져왔으므로 한국인은 오히려 일본에게 감사해야 한다.
  • 친일이 곧 애국이요 한일합방은 아주 잘된 일이었다.
  • 일본은 조선을 근대화시켰으며 식민지 경영을 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가 20년쯤 더 지속되었더라면 한국은 오늘보다 훨씬 발전했을텐데 진짜 정말 애석하다.
  • 그러므로 일본은 한국에게 일절 사죄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게 감사해야 한다.

일단 이완용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점을 조명했다. 여기에 따르면 이완용의 장례식때는 이완용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여 10만이 넘는 참배객들이 왔다고 한다. 그 외에 김옥균을 비롯한 친일적 개혁가, 친일파(2번 항목)들을 긍정적으로 재조명했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에 쌀과 콩, 면화(목화)를 수출해서 큰 돈을 만졌다물론 친일파 지주와 자본가는 그랬지...고 주장하기도 하고, 토지 신고제의 경우 전 농민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골고루 나눠주는 사회주의 제도보다 훨씬 합리적이지 않느냐며 옹호했다. 주장의 근거로는 주로 이영훈 교수나 안병직, 윤덕한의 자료를 인용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그러라고 있는 학설이 아닐텐데?

그런데, 한 TV 인터뷰에서 책의 주장들의 근거를 직접 묻자, "인터넷에 보면 많이 있어요"라고 답해버렸다...

재조선 일본인 이야기가 하나있는데, 1945년 8월 15일, 한국의 고아들을 키워준 부산의 일본인 가즈오가 한국인인 자신의 양아들들에게 일가족이 참살된 이야기도 서술하고 있으며 그때 참가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보복이 두려워서 동참했다고 한다. 뭔가 요코 이야기 필이 나는 내용인데 참고로 저건 제대로 된 기록이 없고, 어디까지나 일본인이 보낸 이메일에서만 나온 이야기다. 어째서인지 그가 유포한 날조문이 일본 웹에서 절대로 검색해서는 안될 검색어중의 '가즈오 조선' 로도 돌고 있다. 사실 내용 자체는 소설/희곡작가 故 김성한의 단편에서 나오는 스토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고 소설에서는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다. 일가족은 참살당하지도 않았고 일본인 목사만 죽었으며 아내는 조선으로 흘러들어와 소련군과 한국인 양아치에게 검열삭제를 당한 후 양아치 영감을 죽이고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원래 주제는 당연히 혐한이 아니고 인간세태의 부조리를 고발한 작품이다.

그리고 김구명성황후 민씨, 고종 등의 냄새나는 비사를 서술하고 있다. 고종이나 명성황후는 확실히 까일 소지가 충분하다지만, "명성황후 시해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도와준 것이니 마땅히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따위의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보면 애초에 글러먹었다. 그런데 김구의 치하포 사건을 비난할 때, 국모의 원수라는 추정만으로 죽였다고 해서 흉악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치하포 사건 취조문을 안 읽어본 듯 하다.

이 책은 문예춘추사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으나, 물론 동명의 그 잡지사는 아니고 본인이 한국에서 설립하고 이름만 따왔다. 그렇게 환장하시는 일본에서 상표권으로 클레임 들어가면 어쩔 셈인지.

2004년반도의 퍼니셔박기서에게 구타당했는데, 끝까지 아가리는 살아 있어서 "박기서는 안두희 살해범 박기서가 아니라, 나 김완섭 구타범 박기서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라고도 개소리를 짖어댔다. 그리고 더 맞았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알겠지만 심각한 역사 왜곡과 일제 찬양, 열폭 등으로 중무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이완용이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다. 시체가 돌아왔다 아니면 본격 빙의물

4 그 외

김완섭이 아고라에 올린 글들


2009년, 광우병 사태가 있었을 때 나름대로 반대하는 의견을 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낭소리의 불법 다운에 대해서 옹호하는듯한 태도의 글을 썼다가 네티즌들에게 비판만 받았다. 김완섭 본인은 워낭소리를 마구 깠다.

2014년, 가장 최근에 글을 하나 쓴 것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김완섭은 천안함 피격사건한국미국이 조작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선장 등에게서 발견되는 특정지역 사투리가 우연이겠느냐고 하는 등, 또 다시 지역감정 드립을 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현재 김완섭에 대한 전체적인 네티즌들의 태도는 거의 아오안급으로 취급하는 듯 하다. 올린 지 2달 정도 됐을 때 '이제 관심도 못 받는구나 한심한 놈아 ㅋㅋ;;'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 물론 자업자득이다.

자기는 자신이 일본 우익들의 논리를 업그레이드시켜주었다고 매우 자화자찬하고 있다. 확실히 일본 넷우익들이 김완섭의 주장을 상당수 받아 들인건 맞는데, 문제는 그러함으로써 넷우익들은 일본의 주류 온건보수 세력에게까지 바보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
  1. 실제로 5.18 단체에서는 김완섭의 유공자 취소를 결의했다. #
  2. 장티푸스가 걸려 고생하고 풀려났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3. 그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신정모라 문학서재’, ‘엄마성쓰기협회’, '통일시대 여성주의' 등의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2010년경에 포털사이트 다음의 종북성향 카페 '태양계통신' 운영에 참여함과 동시에 네이버 카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바로알기' 등지에 참여하여 종북성향의 게시글을 올려오다 2013년에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4. 경남 가야대학교 객원교수. 노인으로 현존하는 친일논객중 일제시대를 직접 겪었던 경우다.
  5. 그래서 포츠담 회담 당시에도 조선만큼은 유지하겠다고 버틴 것이다.
  6. 더군다나, 왕이 많은 후궁을 거느렸던 조선 시대에도 연산군 같은 경우는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성욕만 추구한다고 비판을 받았다. 임금이 많은 후궁을 거느렸던 것은 어디까지나 자손을 많이 남기기 위한 것이지 결코 쾌락이 우선이 아니었다. 따라서 결코 결혼성매매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제도를 신성하게 보는 입장이 아니라면, 그것 역시 포함하여 결혼과 성매매의 본질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즉 성적만족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자녀생산을 여성이 제공하고, 경제적 부양 및 물리적 보호(사회적 차원에서의 병역)을 교환하는 거래가 되는 것이다.
  7. 성매매 특별법이 입법되었을 때도 전경련이나 여러 보수 세력,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욕망을 처리할 하수구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성노동 해방을 주장하는 논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8. 특히 혐한초딩들이 매우 좋아한다. 당연히 똑같은 얼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