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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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意俊
1909년 4월 28일 ~ 1985년 2월 14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이다.

1909년 경기도 여주군 여주면 창리(현 여주시 창동)에서 태어났다. 여주공립보통학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일본 메이지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검사, 판사로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 서울지방법원 여주지원장까지 승진하는 한편 고등고시위원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여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일민구락부 원용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하여 호헌동지회에 몸담았다가 탈퇴하였다. 1956년 초 자유당에 입당하였고 자유당 중앙당 선전부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물자 부정 사건으로 기소되면서 후보에서 사퇴하였다. 해당 사건뿐만 아니라 3.15 부정선거 가담으로 인하여 1961년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추가로 정치정화법에 묶였다가 1963년 말 제6대 국회의원 선거 후에야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