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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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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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16
김주찬 (金周燦 / Joo-Chan Kim)
생년월일1981년 3월 25일
신체183cm, 85kg
출신지경기도 수원시
학력충암초-충암중-충암고야구 편히 했네?[1]
포지션외야수[2], 내야수[3]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0년 삼성 라이온즈 2차 1순위 지명
소속팀삼성 라이온즈 (2000)
롯데 자이언츠 (2001~2012)
KIA 타이거즈 (2013~)
등장음악
FIVE - Everybody Get Up[4]
응원가[5]Mary Hopkin - Those were the days[6][7]
João Lucas e Marcelo - Tchu Tchu Tcha
군 복무공익근무요원 (2005~2006)
종교불교주처님
보유 기록
10경기 연속 멀티히트2014년 7월 5일 넥센 히어로즈
역대 최소경기 100안타62경기[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
김기태 (1999) 김주찬 (2000) 김승권 (200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2번
강성우 (1992~2000) 김주찬 (2001~2012) 김민하 (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16번
김희걸(2010~2012)
조영훈 (2012)
김주찬 (2013~ ) 현역

1 개요

KIA 타이거즈의 살림꾼

KBO 리그를 대표하는 유리몸 16시즌에 강화유리로 진화했다
7월 22일 업그레이드에 실패했다(...)

KIA 타이거즈의 기간제 캐쉬아이템

KIA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선수이자 협상왕 주캇 보라스.

김주찬 스페셜 영상 BGM 조심[9] 기아의 외야수로 주로 좌익수로 뛴다.

충암고 시절에 이종범의 뒤를 이을만한 대형 5툴 유격수 자원으로 각광받았다.[10] 참고로 함께 비교되던 81년생 3대 유격수는 박기혁, 박준서. 그리고 그들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만나게 되는데...

마해영 vs 김주찬 트레이드로 인해 어떤팀이 이득봤냐.. 했을때 둘다 윈윈이었다. 마해영은 중심타자로 삼성의 V2를 견인하였고, 김주찬은 초반 몇년에는 안 터지다가 이후 터지면서 1번타자 역할을 톡톡히 한것.. 프로야구 역사상 이런 윈윈도 없다.

2 프로 입단 후

2.1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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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삼성에서 등번호 10번을 달았던 양준혁은 당시 LG에 뛰고 있었고 김기태가 1999년에는 10번을 달다가 느닷없이 11번으로 번호를 교체해서 등번호 10번을 김주찬이 달고 뛰었다. 결국 나중에 김기태는 감독으로, 김주찬은 선수로 한 팀에서 만나게 되는데.. 삼성에서 백업 내야수로 데뷔한 후에 괜찮은 컨택 능력과 빠른 발로 가능성을 엿보였다. 하지만 2000년 7월 16일 마산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관중석 송구라는 대형사고를 쳐서 끝내기 실책을 허용하고 말았다.[11] 처음부터 롯데의 스파이?? 결국 이듬해, 외야수 이계성과 함께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롯데 구단의 미움을 받게 된 마해영과 2:1 트레이드되어 롯데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롯데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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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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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공보다 빠른 남자!

롯데로 트레이드 된 후인 2001시즌은 주로 백업 내야수로 출전하다가 후반기부터 주전으로 중용되기 시작했다. 톱타자에 3루수로 출전하며 3할대의 정교한 컨택과 15연속 도루 성공 등으로 김태균, 박한이 등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 당시 롯데가 시즌 막판까지 4강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활력소 역할을 하며 마해영의 이적으로 속이 쓰린 롯데팬들을 달래줬다. [12]

2002 시즌에는 부진하였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로 보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는게 중론. 하지만 이 해 후반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면서 그는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다.

내야수임에도 관중석이나 덕아웃으로 송구를 하는 블래스 신드롬 증세를 나타냈기 때문에 외야수로 전향시킨 것까지는 좋았다.[13] 하지만 백인천 감독은 빠른 발과 좋은 컨택을 가진 김주찬을 "제2의 이승엽으로 만들겠다."라든가, "30-30도 충분히 가능한 선수"라면서 타격 개조에 들어갔다. 그 결과 김주찬은 이전까지의 맞추는 재능조차 모두 까먹은 채 선풍기 스윙만 해댔다. 장타력이 증가하긴커녕 타율만 2할대 초반으로 수직낙하한 채 고정되어 버렸다. 한 술 더 떠 2003시즌은 타율 .160으로 더더욱 추락하여 유망주의 야구인생 자체가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14]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ref>

2004 시즌에는 양상문 감독의 무한 신뢰 하에 외야수로 출전, 찬스마다 삼진과 범타를 일삼으며 '양상문의 양아들'이라고 무한대로 까이며 주찬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가루가 될 때까지 까였다.[15] 120경기나 출전한 탓에 도루는 44개로 2위를 기록하며 그놈의 방망이만 좀 어떻게 하면... 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시즌 막바지에 터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태로 인해 군복무에 들어가서 2007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제대했다.

제대 후 맞이한 2007 시즌에는 강병철 감독의 무한 신뢰 하에 외야수로 출전, 찬스마다 삼진과 범타를 일삼으며 '강병철의 양아들'이라고 무한대로 까이며 주찬이라는 별명까지 새로 얻으며 가루가 될 때까지 까였다. 그런데 5월 27일 잠실 LG전에서 끈질기게 파울 타구를 처리하다가 머리를 땅에 부딪혀 그대로 실신하고 병원으로 후송되자, 임수혁의 악몽을 잊지 못하는 롯데팬들이 일제히 김주찬 까기를 멈추고 한마음으로 회복을 기원했다. 다행히 바로 의식을 회복했고 이 때 타구를 처리하며 보여준 근성 때문인지 이때부터 김주찬 까기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또한 김주찬 본인도 후반기로 갈수록 어느 정도 기량을 회복하는 모습으로 타율도 .262까지 끌어올려서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16]

2.2.1 2008 시즌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그를 잘 모르는 다른 나라 투수들에 의해 이러한 약점이 노출되지 않아서 좋은 활약(무려 7할대의 타율)을 펼쳤다. 2008 시즌에 들어서는 롯데에서 1, 2번으로 번갈아 기용되며 초반기 맹활약을 펼쳤지만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외야 플라이를 잡으려다 펜스와 충돌하면서 부상을 당해 이탈하였다. 그 후로 한 동안 꾸준하게 삽질을 하며 시즌 초반 로이스터가 '내가 아는 김주찬은 2할 6푼 2리의 타자다'라는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가 싶었지만, 7월에 올림픽 대표 선발 즈음 돼서 이탈한 정수근을 대신한 이인구에 밀려 1루수로 이동하면서 다시 폭발하였다. 그렇게 시즌 중반까지 3할 넘게 타율을 끌어올리며 맹활약하였다. 김주찬, 이인구의 테이블 세터가 꼬박꼬박 출루해주는 것이 롯데 상승세의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되었으며, 결국 롯데는 3위의 성적으로 패넌트레이스를 끝낼 수 있었다.

롯데가 죽을 쑨 2008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이인구하고 김주찬 만큼은 꾸준히 출루를 해줬다. 특히, 준플 3차전에서는 악착같이 출루를 했다. 하지만 조성환을 비롯한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 클린업 트리오들의 부진으로 계속 점수가 안 나오자 나중에는 그냥 테이블 세터 둘이서 점수를 올리면서 자기들 끼리 해먹는 황당하면서도 대단한 활약을 했다. 8년의 긴 시간이 지난 이후에 드디어 포텐셜이 터진 것이다. 주멘

2008 시즌 성적은 타율 0.313(리그 10위), 홈런 1, 타점 42, 도루 32(리그 5위[17]), OPS 0.752로 데뷔 후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2.2.2 2009 시즌

2009 시즌 시작 후, 처음에는 맹타를 휘두르며 번트안타도 몇 개 치는 등 2008 시즌의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5월에 가까워지면서 타율은 다시 2할 후반대로 추락했다. 무엇보다도 그나마 쉬운편에 속하는 1루수 수비가 그렇게 안정적이지 못했다. 거기다 김주찬의 블래스 신드롬 증상으로 내야에서의 포지션 변경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대호를 싫으나 좋으나 3루수로 기용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박기혁이 혼자 내야 수비를 하는 형세를 갖추게 되었다. 조성환의 부상 이후, 백업으로 들어온 김민성의 맹활약으로 내야가 그나마 나아진 상황.

6월 27일, 대 한화전에서 도루중에 송광민의 스파이크에 발이 밟혀 탈골되면서 한달동안 결장했다.

7월 25일 올스타전에서 1루수 부문에 뽑혔지만 선발 출전하지 못하고 9회말 대주자로 출전하였다. 허나 '마구마구 온라인 홈런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해 상금 200만원을 받았다.

9월 13일, 데뷔 첫 홈스틸을 기록하였다.

2009 시즌은 타율 0.310(리그 9위), 홈런 7, 타점 51, 도루 34(리그 5위에 성공률도 83%로 상당히 좋아졌다), 출루율 0.356, 장타율 0.451, OPS 0.806로 2008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2.2.3 2010 시즌

시즌 초에는 출발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박종윤 선수의 각성 때문에 1루수보다 중견수로 더 많이 출장하고 있기 때문인지 전년도보다 낮은 타율에 특히 톱타자감으로는 낙제점인 출루율을 보여주었다. 수비는 원래 좋지 않은 선수였지만 더욱 더 불안한 중견수 수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5년 연속 두 자리 수 도루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코뼈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전반기 막판에 벌어진 황재균김민성, 김수화 트레이드로 인하여 이대호가 1루수로 수비위치를 이동하게 됨으로서 좌익수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홍성흔의 부상으로 이대호가 지명타자로 이동함에 따라 8월 이후에는 다시 1루수로 많이 출장했다.

8월 28일, 2연속 도루에 성공하면서 이대형을 제치고 도루 1위에 올랐다. 생애 첫 도루왕? 이후 함께 출루율 꼴찌를 다투고 있는 이대형과 한동안 엎치락뒤치락했다.

드디어 9월 18일, 도루 2개를 추가하며 60도루를 돌파했다. 주루뇌가 잘 돌아가나? 하지만 이대형이 9월 26일에 도루 1개를 추가하면서 결국 도루왕을 놓쳤다.

2010년 페넌트레이스 기록은 타율 0.276, 출루율 0.324[18], 홈런 9, 타점 40, 도루 65(리그 2위[19]), OPS 0.710.

김주찬과 이대형의 도루 스타일은 서로 다른 게, 도루에 있어서 세가지 요소인 3S(스피드, 스타트, 슬라이딩) 중에서 김주찬은 스피드 및 가속력이 이대형보다 낫고, 이대형은 스타트, 슬라이딩이 낫다는 평. 물론 두 선수 모두 나머지 요소들 모두 평범한 주자보다 훨씬 월등한 것은 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1루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20타수 9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1타점 6득점, 타율&장타율 .450, 출루율 .522로 좋은 활약을 했지만, 팀은 2연승 3연패로 탈락했다.

2.2.4 2011 시즌

시즌 초부터 타격 능력이 많이 침체되었다. 개막전부터 1번 타자로 기용되다가 4월 중후반부터 전준우에게 톱타자 자리를 내주고 9번 타자로 밀려났다.

4월 23일 SK전에서 상대 선발 매그레인의 공에 손목을 맞았다. 처음에는 단순 타박상인줄 알았으나 재검사 결과 미세골절로 밝혀져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6월 중에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훈련에 들어갔었으나 병원에서 검사 결과 아직 뼈가 아물지 않아 좀더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밝혀졌다.

6월 21일 두산전에서부터 복귀하였다. 복귀 후, 스탯을 상당히 끌어올린 점이 고무적이다.

부상 중이던 2달 동안 뭘 했는지 그 전에 비해 살이 좀 붙었고, 주루스피드 자체가 이전에 비해서 다소 줄었다. 대신 7월을 기점으로 수비가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김주찬의 수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경악할 정도로 겨우내 3루 수비 연습을 해 외야 수비 감각이 떨어진 전준우의 수비범위를 야금야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가장 큰 원인은 조원우 외야 수비 코치 덕분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구를 참는 습관도 생겨서 홈런보다 보기 힘들다는(…) 볼넷도 자주 얻어내었다. 이건 우리가 알던 김주찬이 아니야 나의 김주찬을 돌려줘

2011 시즌 페넌트레이스 최종 성적은 타율 0.312, 출루율 0.360, 장타율 0.423, OPS 0.783, 6홈런, 40타점, 25도루. 부상 때문에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으나 시즌 막판의 무서운 상승세로 100안타를 채우며 6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였다.

2011년 10월 16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1회말 상대 선발 투수김광현으로부터 선두 타자 홈런을 쳤다. 이날 김주찬은 5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 1도루, 2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했지만 팀은 연장 10회 접전 끝에 7:6으로 패배하였다. 원흉은 손아섭

김주찬은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21타수 10안타, 1홈런, 1볼넷, 1사구(死球), 2타점, 4득점, 타율 0.476, 장타율 0.762, 출루율 0.522로 맹활약했지만, 팀은 SK에게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8888577]-03-13-23-23

2.2.5 2012 시즌

시즌 초에는 햄스트링 부상 등 잔부상이 많아 많이 출전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매년 그랬듯이 부상에서 복귀한 뒤 6월부터 롯데 타선에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Show me the money 타율 0.294, 32도루(3위), 장타율 0.405, 출루율 0.346을 기록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 2, 3, 4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5안타(2루타 한 개 포함), 2타점 2볼넷, 타율 0.278, 장타율 0.333, 출루율 0.3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22타수 7안타 1볼넷 1몸에 맞는 공 2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318, 장타율 .409, 출루율 .375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김주찬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40타수 12안타 3볼넷 1몸에 맞는 공 3타점 3득점, 타율 .300, 장타율 .375, 출루율 .364를 기록했다.

2.3 FA

2010년대 FA 인플레이션의 시발점.[20]

2012 시즌 종료 후, 생애 첫 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었다. 일찌감치 F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는데 이유는 2013 시즌으로 첫 1군 진입을 하는 NC 다이노스의 존재, 그리고 한화 이글스류현진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280억이라는 실탄을 획득했고, 또 다른 주요 타자매물인 LG 트윈스정성훈, 이진영이 시장에 나오지도 않고 원소속팀에 잔류함등을 들수있다 일찍이 50억 대박설이 나돌았고, 한화의 김응용 감독도 50억 원의 가치가 있다라고 평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말을 한 덕에 꼴런트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그리고 원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의 마지막 날인 11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최종협상을 가졌으나 결렬되었다. 롯데는 4년 44억(옵션 4억)을 제시했으나, 선수 본인은 4년 48억(옵션 8억)으로 옵션 4억을 더 요구했다고 한다. 세간의 평은 "44억도 오버페이다", "롯데 프런트도 할만큼 했다"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웬만한 조건이면 롯데에 남고 싶다고 립서비스말했던 김주찬이었기에 보장금액도 아닌 옵션 4억에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에 배신감을 느낀 롯데팬도 적지 않았다. 역시 주캇 보라스 이쯤 되면 모 나라 모 리그모 선수가 떠오른다.

롯데가 협상 막판엔 49억까지 제시했다는 기사가 떴다. 사실이라면 그걸 거절한 김주찬이 여러 의미로 대단하긴 한데, 기사 쓴 기자가 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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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1월 17일, 뜬금없이 KIA 타이거즈와의 접촉을 통해 입단을 결정하였다. 계약조건은 4년 계약에 계약금 26억, 연봉 5억에 옵션 4억으로 총액 50억. 김응용의 50억 발언이 현실이 된 셈. KIA팬들은 헛돈만 쓴 게 아니냐면서도 일단 사왔으니 제대로 써 보자는 반응을 보였다. 그 와중에 헐값에 계약한 김원섭 지못미

롯데의 49억 제의는 다른 기자에 의해서도 언급되었던 것으로 보아 사실임이 확실해보인다. 아마 KIA가 세부 계약내역[21]에서 더 좋았지 않겠냐는 것이 이 기사의 추정. 이후 롯데에서는 FA 보상선수로 홍성민을 지명하였다.

KIA에서 받은 등번호는 조영훈이 NC로 옮기게 되면서 결번이 된 16번.

그리고 1년 뒤, 이 계약은 시작에 불과했는데....

2.4 KIA 타이거즈 시절

몸만 건강하면 해태시절의 이종범을 떠올리게 하는 타자

2.4.1 2013 시즌

김주찬/2013년 항목으로.

2.4.2 2014 시즌

김주찬/2014년 문서 참조.

2.4.3 2015 시즌

김주찬/2015년 문서 참조.

2.4.4 2016 시즌

김주찬/2016년 문서 참조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0삼성 라이온즈6048.3131532052274.458.365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1롯데 자이언츠86300.31394214
(4위)
4315729
(3위)
26.450.363
200284264.22058134
(4위)
72525919.379.271
200355125.1602051331275.288.192
2004120450.242109205
(2위)
7425344
(2위)
45.356.310
2005병역비리 사건 연루 및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
2006
2007113387.2611011715304922
(7위)
21.349.298
2008104412.313
(10위)
129167
(1위)
14275
(9위)
32
(5위)
32.393.359
2009109435.310
(9위)
13530
(6위)
5
(4위)
7517734
(5위)
34.451.356
2010118485
(2위)
.276134184
(4위)
94089
(2위)
65
(2위)
36.386.324
201186321.3121001236405825
(7위)
34.424.373
2012118435.29412827
(8위)
35396232
(3위)
37.405.346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13KIA 타이거즈47168.3045194028242319.405.372
2014100399.346
(6위)
13832
(7위)
4946722235.514.397
201598333.327109232186266835.571.383
2016130511.346
(4위)
177
(8위)
37
(4위)
32310197938.566.386
통산(15시즌)14285073.295149828352104585838368
(6위)
431.433.346

4 플레이 스타일

김주찬/플레이 스타일 문서 참조.

5 별명

초구를 너무 사랑해서 초구찬이라는 별명이 있다.

파일:Attachment/김주찬/f0018015 4c3ff1ef736aa.jpg
초구를 사랑한 사나이

원래 주찬신, 주멘등 기독교적인 별명이 강세였으나 김주찬이 불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부터는 주처님으로 불린다. 이후, 그가 안타를 칠 때는 법력으로 친 법타라 불리운다. 가끔 수비 시에 뜬금없는 플레이를 보여줘서 뇌가 없다는 이유로 뇌주찬 또는 뇌(腦)제라고도 부른다.[22] 못 하는 날에는 뇌주찬이라고 까이고, 잘 하는 날에는 주처님으로 불리운다. 그가 타석에 있을 때나 루상에 있을 때 상대 선수가 실책을 하거나 하면 주처님이 법력을 사용해서 상대 선수의 실책을 유발했다는 말이 뒤따르며, 그가 덕아웃에 들어간 뒤에도 실책이 일어나면 덕아웃에서 법력을 썼다는 말이 나온다. 불교를 믿는 다른 선수(특히 박준서)들과 관련된 상대 실책이 나올 경우 보급형 법력을 가지고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오곤 한다.

발이 워낙 빨라서인지 한화 경기 중 선두 타자로 나와서 출루, 그리고 희생 번트 기회를 살려서 1루에서 3루까지 순식간에 가버려(물론, 1루수가 방심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사 1루 상황에서 바로 1사 3루 상황을 만든적이 있었다. 이러한 빠른 스피드 때문에 붙여진 별명은 주사인볼트. 하지만 너무 빠르게 달리다보니 뇌를 떨어트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힘들게 도루 성공하고도 어이없는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아웃 당하는 모습은 안타깝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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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매니저 한정, 고영민과 함께 코레기라는 별명이 있다. 2009년도 김주찬 카드의 너무나도 끔찍한엄청난 효율 대비 스텟 덕분. 하지만 6월 라이브카드가 나오면서 프야매 최강의 타자라는 칭호 또한 얻게 되었는데, 6월 라이브카드가 10코스트인건 물론, 전체적인 능력치가 5툴 플레이어의 끝을 달리기 때문에(심지어 번트도 높다!) 그렇게 되었다.

서인영과의 스캔들을 즈음하여 나온 꼴데툰을 계기로 야모순바라는 별명이 생겼다. 뜻은 '야구 밖에 모르는 순진한 바보'.

2010 시즌 종료 후, 이대호의 연봉협상이 야구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자 김주찬의 연봉협상에 대한 귀신같은 재능이 재조명받으며 협상왕, 주캇 보라스라는 별명도 생겼다. 뇌주찬이 아니라 KBO의 진정한 천재 김경문 감독님 덕분에 FA도 보장된 행운의 협상왕 주처

2011 시즌이 끝난 뒤엔 구단에서 그의 협상능력을 이해한 것인지 정말 심플하게 연봉협상을 끝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구단 : 1장 더 줄께

김주찬 : (존나 띠껍게) 1000만 원 입니까?
구단 : 아니 1억
김주찬 : (배시시 웃으며 말없이 사인)

기아에 온 이후, 잦은 부상과 이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팬들에게 존재감이 아직 부족한 듯 하다. 갸갤에서 모 갤러가 응원단장 김주일과 김주찬을 헷갈려한 글이 올라온 이후 공식 별명이 김미미(...)로 굳어진 모양새. 응? 기아팬 : 그런 미미한 선수는 잘 알지 못한다 성지순례하자이것도 있다
기아에 온 이후에도 잦은 부상에 시달리자 이를 본 어떤 갸갤러가 젓가락으로 집으면 바로 바스라지는 묵같다고 했고 이후 김주찬은 갸갤에서 묵찬이라 불리우고 있다.

6 여담

  •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의 닉네임 '정카스'라는 유저는 김주찬에 대해 애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는데, 그의 비유와 표현이 어찌나 주옥같은지 시인이라 불릴 정도였다.주옥 같은 정카스의 어록.국거박[23]
  • 2010 시즌 이대형과 도루왕 경쟁을 펼칠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이대호가 발목염좌로 팀의 주전에서 빠지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 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김주찬이 다치면 안된다고 김주찬에게 목동 경기 가지 말고 부산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김주찬은 도루왕 경쟁 때문에 목동 경기를 뛰어야 하는 상황.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 스타일상 개인기록 때문에 경기 뛰겠다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주찬은 머리를 짜내서 짜낼 뇌가 있었어!! 로이스터 감독의 약점을 공략했는데..
"감독님, 저 서울에서 선보기로 해서.."(물론 거짓말)

그리고 로이스터 감독의 대답은 예상대로

"오 그래? 그런일이라면 인생에 중요한 일이니 서울에 가야지"

라고 말하면서 김주찬을 부산으로 보내려던 계획을 바꿔서 목동에 데려갔다. 하지만 폭우가 쏟아져 목동 경기가 취소되면서 김주찬은 결국 도루왕을 놓치고 말았다. 저 잔머리를 초구공략하는데 썼으면 분명히 도루왕은 따논 당상이었을텐데..

  • 몇년간 거의 막차로 연봉협상을 해서인지 같은 팀 선수들에 비해 연봉이 후하다.
  • 홍성흔을 롯데로 불러온 진정한 흑막(?). 자세한 사항은 홍성흔 항목 참고.그러나 홍성흔은 롯데에서 친목을 쌓더니 친정팀으로 돌아가 환경운동가를 데려갔다 생각해보니 김주찬도 롯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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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찬의 뇌주루는 고등학교 때부터 싹이 보였다.
  • 2011 시즌까지 커리어에서 3할을 기록한 시즌이 다섯 시즌이었는데, 5번 모두 3할 1푼대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김주찬의 귀신같은 3할 1푼 본능이라 하기도.
  • 대표적인 유리몸 선수 중 하나이다(대부분 야구 선수들이 부상을 달고 살기는 하지만..). 당장 이 항목에서 '부상'으로 검색해보면 매년 부상으로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 결장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대부분 한 시즌 중 가장 활약이 두드러질 때 부상을 입어서 팬들을 어이없게 만들곤 했다.
  • 롯데 시절에는 타격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응원가를 틀지 않았다. 원래는 타석에 나와서 10초 만에 초구 치고 달리는데 필요가 없긴 하지만 응원가가 있었다. 과거 WestlifeUptown Girl, 또 지금의 전준우 응원가[24]가 김주찬의 응원가였는데, 김주찬이 타격 시 혼란스럽다고 응원가를 정중히 거절하고 그럼 출루라도 잘 하든가 대신 안타를 쳤을 때 위에서 설명한 그 노래를 틀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김주찬이 KIA로 이적한 후, 김주일 KIA 응원단장은 응원가에 멜로디를 상당히 배제한 노래를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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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 이런 모습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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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미는 스타크래프트. 프로야구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의 사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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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에 2위를 차지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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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도 그의 뇌주루(…)는 여전해서 마인에 드라군이 폭사하는 명짤을 남기기도 했다. 김주찬 뇌주루, 뇌라군 등으로 가끔씩 커뮤니티에 올라와 빵빵 터뜨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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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올스타전에서 마구마구 레이스에서 우승해 100만원 상금을 탔다. 게임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 싶다. 그깟 공놀이 참고로, 이 때 김주찬은 처음으로 마구마구를 접해보았다고. 뭐야 이거 몰라 무서워 이렇게 잡기에 능한 모습 덕분에 야구계의 정형돈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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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개드립에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 인터뷰를 할 때 말은 술술 잘 하는 편인데 발음이 굉장히 어눌해서 알아듣기 힘들다.[27][28]전설의 지꾸여꾸여 영상 또한, 오승환 만큼은 아니라도 잘 웃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초반에는 순진남 or 그를 뛰어넘어 백치(…) 이미지가 생겼다. '야모순바' 별명이 생기게 된 이유. 하지만,
  • 팬들 앞에서는 이런 모습이지만 여러 썰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실제로는 뒤에서는 놀거 다 놀고 챙길거 다 챙긴다는게 밝혀지면서 충공깽을 안겨주었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연봉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에서도 짠돌이 끼가 보이는 에피소드가 많아 돈에 환장했다고 놀림당하고 있는 판.[29] 괜히 협상왕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하라구로 기믹까지 생겨났으며 이제는 팬들 사이에선 순진남 그런거 없고 4차원으로 통한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마이페이스를 유지하기로 유명하며 그의 행동은 기행으로까지 꼽히기도 한다. 그의 기행에 대한 소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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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유의 무표정 때문인지 이런 짤방도 나왔다.
  • 하지만 2012 시즌에 들어오면서 웃는 모습이 많이 잡혀 혹시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돌았다. 정대현의 복귀 후, 정대현과 웃으며 장난치는 사진이 퍼져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2009년에 서인영과 열애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사자들도 그냥 밥만 같이 몇번 먹었다며 극구 부인하고 있다. 김주찬 선수 본인은 서인영의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9년 라디오 스타에서 서인영은 밥을 몇번 먹었다고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열애설이 터졌다고 밝혔다. 서인영의 표현으로는 사람의 앞날은 모르니까 열애설 안터지고서 좀 더 만났더라면 어쩌면 인연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투로 말하기도 했다. 정황을 보면 사귀기 전단계 수준에서 몇번 만난 정도였던것 같다.[30]
  • 개그맨 김기리를 닮은 외모로도 유명하다.[32] 또한 EXO카이를 닮았다는 주장도 있다 (매우매우 정말닮았다....)덕분에 카이의 별명은 주처돌이 됐다 야갤에서 하도 놀려대서 엑소갤에선 김주찬이 금지어라고 한다
  • 헬멧이 상당히 꼬질꼬질하다. 타자들이 배트를 손에 고정시키기 위해 손에 송진을 바르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헬멧 정수리쯤 발라놓고 그 부위를 손으로 비비는 식으로 송진을 묻힌다. 주로 메이저리거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 이게 시간이 지나면 송진으로 헬멧이 녹슬고 더러워지게 된다. 김주찬의 경우 상당히 많이 바르는지 헬멧이 유독 더러운 편.
  • 롯데 시절에는 그나마 검은 헬멧이라 티가 덜 났지만 기아로 이적하며 빨간 헬멧을 쓰게 되어 상당히 더러운 것이 티가 난다. 과거 한화 김태균이 헬멧 더럽기로 쌍벽을 이뤘으나 한화 이글스가 헬멧과 모자컬러를 주황에서 검정색으로 변경함에 따라 이젠 김주찬이 KBO 전체를 통틀어서도 독보적으로 더러운 헬멧의 주인.
  1. 보통 야구 계열 체육특기자들은 야구부가 있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이사하고 다니지만,(숙소생활도 많이 한다)김주찬은 충암학원 초중고를 나왔다.다시 말해 학교 세 개가 가까운 정도가 아닌 붙어 있다는 말....
  2. 좌익수(2011~), 중견수(2008~2010), 우익수(2007)
  3. 1루수, 3루수(2001), 유격수, 2루수(2015)
  4. (빰빰 빰빠바밤) 기! 아! 김주찬! (빰빰 빰빠바밤) 기! 아 ! 김주찬! Everybody Say 기~아~ (김주찬! 김주찬!) x 4하도 초구만 쳐대서 사실상 이게 응원가다
  5. 롯데 자이언츠 시절에는 타석에 설 때 응원가를 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본인이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응원가를 안타 혹은 출루, 혹은 도루 시 틀었었다. 그 전에 응원가 부를 시간이나 달라고 이 양반아
  6. 기아의 김주찬 기아의 김주찬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 허우 허우 기아의 김주찬 김주찬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 (x 2) 한때 '장송곡'이라는 비아냥 받으며 까인 응원가였지만, 의외로 중독성이 있어서 많이 불리고 있다(...)
  7. 한때 서재응의 응원가와 동일한 곡인 I can't stop loving you를 롯데시절에 썼다만, 기아로 오면서 동일한 곡을 서재응이 쓰고있는지라, 응원가가 바뀌었다. 그 응원가는 송승준김민하가 현재 쓰고있다.
  8. 2014년 7월 29일 NC 다이노스
  9.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노래는 Steppin' To The Bad Side로 김주찬의 등장곡이다.
  10. 훗날 김주찬이 KIA로 이적하게 되었을 때, 어떤 기사에서는 이종범의 공백이었던 우익수 자리를 메워줄 선수라고 평가했다.
  11. 이 경기 전까지 삼성은 13연승을 달리고 있었고, 더불어 이 경기에서 9회까지 1:2로 삼성이 지고 있었으나 주장 김기태가 극적으로 솔로홈런을 치면서 동점까지 따라갔다.
  12. 이 시즌이 전설의 비밀번호 8888577에서 첫번재 8을 찍은 시즌이긴 하지만, 4위와 2경기 차이인 8위였다. 그러나 이 시즌 중 김명성 감독이 사망하고 뒤에 어느 골프를 좋아하시는 분이 감독으로 오면서...
  13. 충암고 시절엔 유격수였다. 그의 내야 송구가 엉망이 된 이유에는 고교 시절 몇 차례 투수로 등판했다가 송구 폼이 변해서라는 설이 있다.
  14. 하지만 백인천 감독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이, 김주찬이 갖춘 툴을 감안해 보면 30-30 같은 것이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백인천 감독의 무리한 장타 교정과 김주찬 개인의 불성실함이 낳은 하모니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15. 특히 이 때 아직 포텐이 안 터진 2할 4푼대의 이대호, 2할도 못넘기던 박기혁과 세트로 묶여 양주찬, 양대호, 양기혁으로 불리며 양상문의 양아들 3인방 중 하나로 주구장창 까였다
  16. 하루가 멀다하고 삽질을 거듭하며 까이다 보니 현란한 언어솜씨로 김주찬을 까는데 도가 튼 한 야갤러가 명성을 얻는 일까지 생겼다. 어록
  17. 단 성공률은 64%로 그리 높지 않다.
  18.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 뒤에서 2등.
  19. 도루만 놓고 보자면 커리어 하이.
  20. 이택근과 함께 4년 50억이라는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계약을 맺어 오늘날 어느 타자와 어느 투수 몸값을 나오게 한 장본인이다. 게다가 그중 투수 하나는...
  21. KIA와의 계약 내용에서 옵션 4억에 계약금 26억원이라는 내용을 참고. 성적 및 기타 고과사항에 따라 달라지는 옵션과 4년 연봉 20억을 제외한 26억원은 심정수에 이어 총액으로 역대 2위(이택근과 공동)이며, 작년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을 맺었던 이택근의 계약금 16억보다도 무려 10억이 더 많은 금액이다. 과감한 혹은 무리한 배팅이었다는 것이 중론. 그러나 막상 시범경기와 개막전에서의 모습은 50억이 아깝지 않다는 반응.
  22. 타격과 수비 시에 뇌를 갈아 끼운다는 농담까지 있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실제로 갈아끼운다! 19금
  23. 정말 삼진 하나만 먹어도 미친듯이 깠는데, 진짜 김주찬을 좋아한건지 아니면 일종의 이기주의(...)인건지 자기가 미친듯이 까야 김주찬을 다른 사람이 안 깐다고 더 깠다고 한다.
  24. 김주찬 응원가로 쓰일 때만 해도 똥망한 응원가 취급을 받았는데, 전준우 응원가로 바뀌고 나서는 타팀팬들도 극찬하는 응원가로 재탄생되었다. 김주찬이 쓰던 시절의 응원가는 찬.찬.찬.찬 쎄리라 쎄리라 롯데 김주찬.
  25. 위 사진의 좌측 하단에 강영식도 보인다. 좌측 상단부터 SK 윤길현, 한화 김수연, LG 류택현, 당시 두산 소속이었던 나주환, 당시 KIA 소속이었던 김경언, 김주찬. 좌측 하단부터 당시 삼성 소속이었던 강영식, 당시 현대 소속이었던 이상열.
  26. 참고로 우승은 한화 김수연이 했다. 2010 시즌에 이 사진이 다시 회자되었는데, 삼성의 강영식은 바로 옆 김주찬의 롯데로, 현대의 이상열은 류택현이 있는 LG로, 두산의 나주환은 윤길현의 SK로, KIA의 김경언은 김수연의 한화로 이적했다. 전구단 이름이 한번씩 나왔네 현재(2016년 기준) 윤길현은 롯데에 있고, 김수연과 이상열은 방출(...), 류택현은 여전히 LG에 있지만 은퇴한 뒤 현재는 육성군 투수코치로 지내고 있다. 근데 왜 1위가 방출이냐... 김주찬은 뭐, 이 문서를 봐 현 상황을 알고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게 뻔할 뻔 자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7.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선 김주찬 인터뷰를 번역(…)해주는 갤러까지 있다.
  28. 특히 '직구였고요'를 대략 '지꾸여꾸여' 라고 발음하는 바람에 이 말은 김주찬의 발음을 놀리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었다.
  29. 롯갤에서 충암고 출신 친구를 둔 모 갤러가 푼 썰에 따르면 김주찬은 팀 선배 조성환과 함께충암고출신인데 조성환은 주기적으로 야구용품을 싸들고 모교를 방문해 후배들을 독려하는데 반해 김주찬은 한번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30. 사실 김주찬과 서인영의 주선도 자칭 한국스포츠의 에이전트를 자처하는 어느 분이 주도했다고 한다.
  31. 닉네임 '정석'이라는 야갤 유저가 크보 최고의 얼짱이라는 제목과 함께 포토샵이 진하게 된 김주찬 사진에 크보얼짱 주처찡이라는 꾸준글을 올리면서 생겼다.
  32. 이걸 노렸는지 개그 콘서트리액션 야구단 꼭지에서 김기리가 입은 유니폼에 '김주찬'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