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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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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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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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시절.
KIA 타이거즈 No.80
김창희(金昌熙 / Chang-Hei Kim)
생년월일1973년 7월 3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출신학교양덕초-마산중-마산고-한양대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7년 해태 타이거즈 2차 1라운드
소속팀해태 - KIA 타이거즈(1997~2003)
두산 베어스(2003~2006)
삼성 라이온즈(2006~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3번(2006 ~ 2009)
박대호(2004 ~ 2005)김창희(2006 ~ 2009)이만기(2010)

1 소개

KBO 리그 선수이자 現 KIA 타이거즈의 스태프. 현역선수 시절에는 해태/KIA 타이거즈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외야수로 활약하였다. 등번호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는 44번, 두산과 삼성에서는 63번을 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해태의 마지막 홈런을 쳐낸 선수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2001년 7월 29일 해태는 삼성을 상대로 6:8로 패했다. 당시 경기에서 8:5에서 마지막에 한점 쫓아간 홈런 친 선수이다. 기막힌건 몇년전만해도 네이트 야후 검색하면 걍 애 이름 검색하듯이 이 동영상이 나왔지만 점점 없어졌다.

네이버 검색에서 동명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에게 밀릴 정도로 인지도가 낮은 눈에 띄지 않는 야구선수였지만 이 사진 하나힛갤에 올라간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초창기 야갤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원래 별명은 창희언니였지만 롤링창희 짤방의 힛갤입성 후, 롤링창희가 대세가 됐으며 그 후 아웃카운트를 착각하고 3루에서 그냥 덕아웃으로 들어오다 다시 돌아가는 사건 이후 퇴근창희라는 별명이 새로 추가되었다.

...물론 개그요소로써의 위상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는 이병규에게 조금밀린 대학리그 최상위 타자였다. 당시 돈이 (97년도)없는 해태 타이거즈가 땡잡은 타자라고 불릴정도로 대학리그에서도 이병규 버금가는 정도였고 실제로 그정도 활약은 했다. 무엇보다 97년 해태에서 잡은, 돈이 없는 상태에서 잡은 이병규 버금 가는 대학 레벨 타자였다.

2 선수 시절

원래는 해태 타이거즈의 선수였으며, 2003년 손혁과 함께 진필중을 상대로 현금 트레이드되어 두산 베어스로 가게 된다. 그 후 2006 시즌을 앞두고 강봉규와 함께 강동우와 맞트레이드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경기 도중 거성으로부터 '저런 선수가 있어야 팀이 산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정작 거성은 그한테 밀려 해태의 외야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어찌 거성의 안습이 그뿐인가 그만하자.. 그만큼 자기 몫을 해낸다는 뜻. 2007년도 한 경기에서 야구인생 최초로 그날의 수훈선수상을 받게되자 감격의 눈물을 보여 많은 이들을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다.

해태 시절 신인 때부터 .263 9홈런의 활약을 펼쳤다. 평범한 수준이지만 그 거성 분께서 말년에 바닥을 칠 수준이라 그 분, 최훈재, 로또와 더불어 해태 외야의 한 축을 담당했다.[1] 1998년에는 약간 성장하여 .267에 12홈런 64타점으로 팀내 홈런 4위, 타점 3위를 기록했으며, 이종범이 나간 자리를 메워 줄 외야수로 성장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2] 하지만 타고투저가 극심한 1999년에도 비슷한 성적을 냈으며, 2000년부터는 점점 성적이 떨어지더니 벤치로 전락하였다. 급기야 2002 시즌 후 그는 진필중의 트레이드 맞상대가 되고 만다.

여러 코치들의 평에 의하면 발은 빠르지 않지만 낙구지점 판단력이나 송구과정 등의 외야수 수비 플레이에 있어선 국내 최고라고 한다.[3] 팀 내에서는 두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강봉규 선수와 친한 선후배 사이인 듯. 2009년 시즌 종료 뒤로는 김창희가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강봉규가 홀로서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박재홍이 왔으니 잉여가 되는건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로선

해태에서 데뷔하자마자 거성을 외야에서 몰아내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서 전라도 출신인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마산 출신이다. 한때 해태 시절에는 삼나쌩(삼성만 만나면 쌩큐)으로 활약한 적이 있을 정도로, 대구구장에서 홈런을 자주 기록했다. 신인 때부터...

트레이드로 특정 해당 선수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본의는 아니지만 이 2차례 트레이드로 강봉규를 제외하면 살아남지 못했다.(강동우, 손혁, 진필중) 사실 그전 기믹은 김종훈이 가지고 있었다.[4]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었던 김응용 감독이 해태 시절부터 아껴 왔었으며, 삼성에서 그를 데려온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7해태 타이거즈102315.2638320194341232.419.330
1998124439.267117231126449553.405.343
1999117341.26189120103955564.384.378
200097250.236598153736353.336.368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1KIA 타이거즈88232.2806510052528335.388.373
2002114310.2166712053528431.303.283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3두산 베어스121288.2747912233636529.361.338
2004110301.2768317143137237.379.355
200584221.271609033526440.353.379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6삼성 라이온즈114307.2216812183835634.345.297
2007100251.2476214232220222.355.305
2008103227.2826413011929233.352.373
200971126.23830500147116.278.322
통 산13453608.25792616796843842744479.365.342

4 지도자 시절

2009년 9월 은퇴 선언을 했으며, 은퇴 이후로는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2012년 11월 14일 삼성 전력 분석원에서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돌아와 2군 외야 수비코치로 부임하였다. # 그러나 수비코치로써의 능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2014 시즌이 종료되고 선동열 감독이 사퇴한 뒤에는 코치진에서 물러나고 삼성 시절과 마찬가지로 전력분석원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그런데, 김기태 감독 부임후 다시 2군 주루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 현재는 1군 수비코치로 있으면서 경기 중에는 1루 주루코치를 하고 있다.

2017 시즌에는 김민호 코치가 다시 1군으로 올라오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5 기타

그런데 어떤 사건이 터지면서 이 사람만 난처해지게 생겼다. 이유는 프로게이머 김창희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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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시즌 끝나고 김창희가 주전 외야수가 되면서 이순철은 방출되어 삼성으로 이적했다.
  2. 그 시즌이 커리어하이
  3. 그 때문에 발이 빠르지 않음에도 중견수도 볼 수 있었다.
  4. 손혁은 김창희보다 그 전에 양준혁을 상대로 트레이드된 사건이 가장 임팩트가 컸었다. 물론 강동우는 한화에서 다시 부활하긴 했지만.. 고로 직접적인 피해자는 손혁강동우보다는 진필중이 좀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