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밑줄은 도청 소재지.

전라남도 기초자치단체
자치시목포시여수시순천시나주시광양시
자치군담양군곡성군구례군고흥군보성군
화순군장흥군강진군해남군영암군
무안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완도군
진도군신안군
나주시의 행정구역
남평읍
세지면왕곡면반남면공산면
동강면다시면문평면노안면
금천면산포면다도면봉황면
법정동송월동영강동금남동성북동
영산동이창동빛가람동대호동
용산동
200px
나주시
羅州市 / Naju City
국가대한민국
면적608.15㎢
광역시도전라남도
하위 행정구역1 12 7
시간대UTC+9
인구101,796명
(2016년 8월 31일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167.39명/㎢
시장강인규
초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화배꽃
시목은행나무
시조비둘기
슬로건생명의 땅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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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시 마스코트 배돌이&배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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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청사 전경. 주소는 전라남도 나주시 시청길 22(舊 송월동 1100).

1 개관

나주평야 발바리 치와와~~ 왜냐하면~ 왜냐하면~
나주 아이스!! 기분 기분 기분 워!!!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 전남 내륙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화순군과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함평군, 강을 건너 무안군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영암군과 접하고 영산강이 있으며 북쪽으로 광주광역시와 접한다.

인구는 1966년 245,162명까지 증가하였으나 이후 꾸준히 감소하여 8만 7천명선까지 줄어들기도 하였다. '전라도'라는 명칭 자체가 주에서 따온 것을 생각하면, 인구감소가 안타깝다.[1] 전남도 5개 시 중 유일하게 인구가 10만명에 미달된 도시였으나 혁신도시인 빛가람동의 인구 증가에 힘입어 2016년 4월 22일에 10만명이 다시 회복되었다. 하지만 2016 총선 때는 단독으로는 선거구를 구성할 인구가 되지 않아서 화순군과 합쳐 구성되었다.

전통적인 도내 주요 도시였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인접 지역에 새로운 대도시 (광주) 가 발전하여 쇠퇴했다는 점에서 충청남도 공주시와도 비슷한 신세다. 공주시 또한 인접한 대전이 급성장하였으며 1932년에 도청도 빼앗겨버려 그대로 쇠퇴했다. 그럼 공주시 동 지역 인구합은? 6만명 심지어 나주시는 호남선 철도가 지나감에도 크게 쇠퇴했다.

전라남도청을 이전할 때 이곳으로 옮겼더라면 전통도 유지할 수 있고 도의 중앙이라 참 좋았을텐데 [2]

인구가 10만명 선을 다시 넘기기는 했으나 늘어난 인구가 대부분 빛가람동 인구이다. 구도심 지역과 타 읍면 지역은 오히려 쇠퇴하고 있어 상태가 심각하다. 광주나 타 도시에서의 인구 유입이 안 되고 [3] 오히려 구도심과 읍면 지역에서 빛가람동으로 젊은 층이 많이 이동하기 때문인데, 덕분에 빛가람동은 총 인구 101,796명 중 인구 17,924명, 비율로 따지면 17.6%(...)나 되는 수를 차지한다. 관내 유일한 읍인 남평읍이 7,868명, 7.7%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균형 발전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나주 나씨와 금성 나씨의 본관이 되는 곳이다. 후술하겠지만 나주의 옛 지명이 금성(錦城)이다. 이 때문인지 다른 지방에 비해 나씨들이 꽤 많이 살고있다.

2 역사

옛말 및 순우리말로는 '발라'라고 한다.

백제가 이곳을 차지하기 전 마한의 중심지로 추정하고 있다. 반남면에는 그 규모와 숫자로 따지면 경주의 왕릉들과 맞먹는 대형 고분군이 있는데, 마한의 군주 및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신라 초기에 전국을 9주로 개편시킬 때 발라주로 승격시켜 잠시 전남지역을 관할하는 치소가 되기도 하였으나 9년만에 발라군으로 강등되고 치소를 무진주에 빼앗기게 된다. 신라 말에는 금성 LG와는 상관없다 LG화학의 공장이 있긴 하다만[4] 이라고 불렸으며, 후백제견훤이 다스리다가 후삼국시대 왕건태봉 소속으로 내려와 점령하고 나주라는 이름을 붙였다. 견훤이 잠깐 되찾은 적도 있으나 계속 후백제에 등 뒤의 칼 노릇을 한 땅.

그후 고려의 통일까지 왕건의 주요 거점이었으며 왕건의 다음대를 이은 혜종이 이 지역 호족 오씨의 외손자일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혜종이 죽은 이후에도 주요 도시로 현종의 피난처이기도 했으며 이언년의 난이 이곳에서 진압되었다. 도(道)제가 실시되면서 에 속한 나주목으로 승격되었으며, 전주시와 함께 도의 이름에 들어갈 정도로 큰 도시였다.

조선 시대에는 나주목이었으며, 역시 전라도에서 전주 다음으로 두번째로 큰 도시였다. 당시만 해도 이웃 광주는 나주보다 작은 도시였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군이 점령하지 못한 도시가 나주였다. 그 정도로 양반의 세가 강했던 곳이었으며, 자연히 전라도 남부의 행정 중심지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23부제로 개편할 시 나주부가 있었을 만큼 전남 지역에서는 가장 큰 도시였다.

그러나 1896년 전라도를 남북으로 분할하면서 전라남도의 도청을 광주에 두면서 나주의 쇠퇴가 시작된다.[5] 광주가 빠른 속도로 나주의 세력을 흡수하면서 급성장하는 동안 나주는 큰 발전을 하지 못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남평군이 나주군에 편입되었으며, 동시에 영암군으로 일부 면[6]이 이관되었고, 광주의 서쪽에 있는 광산군 송정읍이 성장하면서 1949년에는 광산군(현 광산구)에 3개의 면[7]이 또 이관되어 군역이 축소되었다. 그런데 이건 나주가 비정상적으로 넓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남평군과 합병되어서 넓어졌다는 점을 감안하자 1931년에 나주면이 나주읍으로 승격되었고, 1937년에 영산면이 영산포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1년에야 나주읍과 영산포읍을 합하여 겨우 금성시(錦城市)로 승격될 수 있었다. 전남, 전북을 통틀어 32년만의 시 승격[8]이었다. 읍 승격은 순천시와 동일할 정도로 빠른 편이었으나 시승격은 그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편이다. 그나마 비료 공장(현 LG화학 나주공장)이 하나 있어서 망정이지, 이게 없었으면 아직도 나주군으로 남아있었을 거다.[9] 1986년 금성시는 나주시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1995년 나주군과 통합하며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광주광역시와 인접한 지역이기 때문에 사실상 광주의 위성도시다. 근데 광주의 위성도시 중 시는 나주밖에 없다. 광주광역시 안습. 광주야 힘내 넌 할 수 있어. 주변 지역에 질러봐~! 화순군? 군이라고 무시하지말아라!

3 교통

나주시/교통 문서 참조.

4 경제

전형적인 농촌도시이지만, 나주가 시까지 성장하기까지는 조선 시대의 해상 운송로의 중요 항구였던 영산포항의 존재가 크게 기여했다. 영산포항이 어느정도였냐면,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내륙의 항구였지만 등대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영산강 하구둑의 건설로 그 기능은 소멸되었으며, 덤으로 이 하구둑은 영산강의 수질악화와 나주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것에 크게 기여하여(…) 주민들에게는 까임의 대상이다. 광주-나주-목포로 이어지는 영산강 유역의 지역민들은 하구둑으로 인한 강의 오염을 실시간으로 봐온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이곳 사람들은 하구둑을 만들려는 타지역 사람들에게 왜 만드냐고 반문할 정도.

때문에 과거 내륙 항구로 들어오던 삭힌 홍어는 이제 말 그대로 명맥만 남게되었다. [10]

4.1 광주전남혁신도시

현재 광주광역시-전라남도 공동으로 유치한 광주전남혁신도시(빛가람 혁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1960년대 강남 개발의 원동력 중 하나로 꼽혔던 삼성동 본사 부지를 누군가에게 10조 원에 떠넘기는 데 성공한(...) 한국전력공사가 빛가람동에 들어왔다. 그 외 한국농어촌공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 등등이 들어왔거나 들어올 예정이다. 사실상 쇠퇴한 도시가 부흥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일 듯. 물론 여타 도시들처럼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그대로 나뉠 가능성 [11] 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나주 구시가지와 혁신도시는 서로 이질감이 심한 분위기이다. 보이는 것 부터가 1번국도를 사이에 두고 혁신도시는 도시같아보이는데 건너편은 영락없이 농촌으로 보인다. 내적인 의미에서도 성인은 물론이거니와 아직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나주와 혁신도시를 구분짓는다. 또한 여가나 기타 활동을 하러 나주 구시가로 나가는 것도 현재 혁신도시의 개발이 진행되면서 차츰 사라지고 있다. 나주시내에 정말 대형할인마트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게 크다. 영화관도 없고.. 대형아울렛도 없고.. 심지어 은행수도 나주시내하고 혁신시내하고 비슷한데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나주시내에는 없는데 혁신도시내에는 있다!게다가 인근에 광주광역시라는 훌륭한 대채제가 있어 그 쪽으로 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구시가에 직장이 있거나 공공기관을 이용하는 경우, 또는 구시가에 특별히 볼 일이 있는 것이 아니면 나주 구시가와의 왕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혁신도시 덕분에 꾸준히 감소하여 한때 3만8천여명으로 줄어들기까지 했던 시내 인구(동지역)가 혁신도시 건설 이후로 빛가람동 인구가 늘어나 2015년 다시 4만명을 돌파하면서 삼척시의 시내인구를 추월하게 되었고, 2016년 7월 50,830명으로 마침내 5만명까지 회복하게 되었다. 다만 빛가람동을 제외하면 34,761명으로 정체 중이긴 하다. 아니, 오히려 2015년에 비해서 떨어졌다. 어쨌든 시 전체로 봤을 땐 혁신도시 건설에 힘입어 2016년 4월 시 인구가 10만을 돌파했다.[12] 앞으로 나주의 인구는 생태환경 도시조성과 에너지신산업을 기반으로 18만여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동부 생활권인 남평읍, 산포·금천면, 빛가람동은 쾌적한 정주환경과 에너지 클러스터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게 될 것이며 서부 생활권인 동강·공산·왕곡·반남면은 마한역사문화와 기업혁신지구로 집중 육성된다. 남부 생활권인 세지·봉황·다도면은 스포츠 헬스투어 중심의 관광농업지구로, 북부 생활권인 문평·다시·노안면은 역사문화관광과 스포츠마케팅 지구로 지정해 역사와 스포츠를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중부 생활권인 이창·송월·영산·영강·금남·성북동은 중심지원 기능과 역사도시 재생지구로 지정해 집중 육성된다. 혁신경제, 역사문화, 생태도시 조성 등 6대 분야에 세계 최대 에너지 밸리 구축, 고대역사문화 관광자원, 나주읍성내 전통한옥마을 조성 등 33개 중점사업을 추진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4.2 혁신도시 외 나주

'도시'관점에서 나주는 지도상 송월동,금남동,성북동으로 어떻게든 이어지는 나주시내와 영산동과 이창동으로 구성된 '영산포'로 나누어진다. 물론 도심-부도심을 나눌 수 있는 인구도 아니지만, 편의를 위해 쓰자면 나주가 도심, 영산포가 부도심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면내, 읍내는 '도시'관점이 아니므로 넘어가자 공산면, 다시면 거주 위키러가 있다면 이해를 부탁하는 바이다

큰 경제권은 광주에 속해 있지만 작은 경제권으로 보았을 시 나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지도상에서는 나주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큰 길인 중앙로이다. 정확히는 중앙로부터 남고문 일대. 대형 상점은 없지만 왠만한 수준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농촌도시의 대형마트인 하나로마트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곳이 영산포 터미널 일대. 90년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주거지 및 상권으로서, 크지는 않지만 터미널 중심으로 하나로마트가 비슷한 거리에 2개 있는것이 포인트. 송월동 일대도 원래부터 있던 시청과 롯데마트 및 조그마한 상권 그리고 역세권이 아주 조금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신축된 모텔 등 뭔가 있을 듯한 모양새지만 현실은 시궁창.

윗문단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설명된 3개의 지역 내에 대형서점, 영화관 및 대형 아울렛은 없다. 대형마트도 위에서 언급된 롯데마트 이외에는 없고, 중형급 마트인 하나로마트만 있다. 은행 또한 나주터미널 앞 국민은행 지점을 제외하고는 전부 광주은행과 농협 뿐이다. 나머지 은행은요? 그건 우리에게 있을수가 없어 ATM도 마찬가지. 나주에 관광이나 친지방문 등으로 온 타지역 위키러들이 굳이 수수료 안물고 돈을 뽑고 싶다면 혁신도시로 가자. 신한, 하나, 기업은행 지점이 있다. 물론 버스비가 2400원인건 감안해야 한다

전통상권은 크게 2개 시장이 있는데, 목사골시장 주변에서 열리는 나주장과 영산포농협 하나로마트 옆 풍물시장에서 열리는 영산포장이 그것이다. 도시쪽에서 살지 않고 읍면쪽에서 사는 분들이 하나로마트를 뒤로 하고 주로 찾는다. 두 시장 모두 일정이 겹치지 않게 5일장이라고 알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으므로 자세하게 알고 있는 위키러가 있다면 수정바람.

5 생활문화

5.1 음식

특산물로는 멜론이, 지역 음식으로는 나주곰탕과 영산포 홍어가 유명하다. 나주 배는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맑은 국물에 깔끔한 맛이 일품인 나주식 곰탕 또한 유명하다.

5.2 교육시설

5.2.1 유치원

설립구분유치원명주소
단설나주이화유치원나주시 나주로 88-5(남외동)
한아름유치원나주시 그린로 292(빛가람동, 한아름유치원)
빛누리유치원나주시 그린로 176 (빛가람동) 빛가람초등학교 2층
병설나주북병설유치원나주시 청암길 47-23(청동)
영산포병설유치원나주시 금영로 2-6(이창동)
영강병설유치원나주시 영강길 14(삼영동)
세지병설유치원나주시 세지면 동창로 111
양산병설유치원나주시 왕곡면 고분로 1560
왕곡병설유치원나주시 왕곡면 나주서부로 554
반남병설유치원나주시 반남면 고분로 712
공산병설유치원나주시 공산면 공산로 85
동강병설유치원나주시 동강면 동강로 595
다시병설유치원나주시 다시면 다시로 203
문평병설유치원나주시 문평면 문평로 15
노안병설유치원나주시 노안면 노안로 165
노안남병설유치원나주시 노안면 만호길 20-11
금천병설유치원나주시 금천면 금영로 960
산포병설유치원나주시 산포면 산포로 400
남평병설유치원나주시 남평읍 지석로 95
다도병설유치원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636
봉황병설유치원나주시 봉황면 죽석길 31
사립까리다스 유치원나주시 정렬사길 15-14 (대호동)
한별 유치원나주시 남내1길 14 (남내동)
빛가람 유치원나주시 남고문로 16-6 (송월동)
동산 유치원나주시 나주로 41-17 (송월동)
자연 유치원나주시 남내2길 4 (남내동)

5.2.2 초등학교

학교명주소
나주초등학교나주시 남외1길 16 (남외동)
나주중앙초등학교나주시 대호길 24 (성북동)
나주북초등학교나주시 청암길 47-23 (청동)
영산포초등학교나주시 금영로 2-6 (이창동)
영강초등학교나주시 영강길 14 (삼영동)
세지초등학교나주시 세지면 동창로 111
양산초등학교나주시 왕곡면 고분로 1560
왕곡초등학교나주시 왕곡면 나주서부로 554
반남초등학교나주시 반남면 고분로 712
공산초등학교나주시 공산면 공산로 85
동강초등학교나주시 동강면 동강로 595
다시초등학교나주시 다시면 다시로 203
문평초등학교나주시 문평면 문평로 15
노안초등학교나주시 노안면 노안로 165
노안남초등학교나주시 노안면 만호길 20-11
금천초등학교나주시 금천면 금영로 960
산포초등학교나주시 산포면 산포로 400
남평초등학교나주시 남평읍 지석로 95
다도초등학교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636
봉황초등학교나주시 봉황면 죽석길 31
빛가람초등학교나주시 그린로 176 (빛가람동, 빛가람초등학교)
빛누리초등학교나주시 그린로 328 (빛가람동, 빛누리초등학교)

5.2.3 중학교

설립구분학교명주소
공립나주중학교나주시 남산길 10 (죽림동)
영산포여자중학교나주시 이창1길 32 (이창동)
나주금천중학교나주시 금천면 영산로 5691
나주다시중학교나주시 다시면 무숙로 776
나주공산중학교나주시 공산면 공산로 110
남평중학교나주시 남평읍 남평3로 40
다도분교장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747
나주동강중학교나주시 동강면 인동길 25-28
나주봉황중학교나주시 봉황면 봉황로 682
나주문평중학교나주시 문평면 평복길 27
나주반남중학교나주시 반남면 석천로 20-15
노안중학교나주시 노안면 노안로 373
빛가람중학교나주시 월정5길 12(빛가람동, 빛가람중학교)
사립금성중학교나주시 건재로 41 (경현동)
영산중학교나주시 영강길 32 (삼영동)
세지중학교나주시 세지면 동창로 112

5.2.4 고등학교

전남지역의 특목고인 전남과학고등학교와 전남외국어고등학교가 나주시에 위치하고 있다.(*표시)

설립구분학교명주소
공립나주고등학교나주시 나주천2길 26 (교동)
나주상업고등학교나주시 함박산길 23-4 (청동)
전남미용고등학교나주시 영산포로 182-9 (영산동)
*전남외국어고등학교나주시 영나로 2434 (용산동)
호남원예고등학교나주시 금천면 영산로 5691
*전남과학고등학교나주시 금천면 오강길 33
봉황고등학교나주시 월정5길 22(빛가람동, 봉황고등학교)
사립금성고등학교나주시 건재로 41 (경현동)
광남고등학교나주시 남평읍 교원교촌길 84-4
나주공업고등학교나주시 건재로 43 (대호동)
영산고등학교나주시 영강길 32 (삼영동)

5.2.5 대학교/전문대학

6 정치

나주시15대16대나주시-
화순군
17대18대19대20대
정호선/초선
새정치국민회의
배기운/초선
새천년민주당
최인기/초선
무소속
최인기/재선
민주당
배기운/재선[13]
민주통합당
손금주/초선
국민의당
신정훈/초선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화순군과 함께 선거구를 이루고 있으며 한 명을 뽑는다. 호남 지역인 만큼 민주당의 세가 높지만 절대적이지 않아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리고 혁신도시 조성지의 경우 외지인의 유입 때문인지 새누리당 지지율이 다소 높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소.(...) 어차피 대부분 광주에서 출퇴근한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민주계열 정당 지지율이 나주 관내에서 2위를 찍었다.

새누리당 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보수정당 경합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경합 지역각 당 경합세 득표율진보정당 경합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더불어민주당 우세지역우세정당 평균 득표율
남평읍80%
세지면68.5%
왕곡면67.5%
반남면70%
공산면64%
동강면64%
다시면71%
문평면71.5%
노안면75%
금천면74.5%
산포면75.5%
다도면71%
봉황면68.5%
송월동69.5%
영강동68%
금남동68.5%
성북동68.5%
영산동67.5%
이창동68%
빛가람동79%
  • 위 표는 지방선거의 광역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이나 기초비례대표 정당지지율 +α 가 되는 지방선거의 광역선거, 총선, 대선등의 1:1구도 내 각 양대 정당의 양자구도 시의 대략적 평균 지지율을 나타낸 것입니다. 실제 선거에서는 후보나 각종 변수, 구도, 후보 등의 변화에 따른 크고작은 득표율 오차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7 하위 행정구역

나주시/행정 문서 참조.

7.1 주요 기관

7.1.1 전라남도청 소속기관 및 산하기관

  • 전라남도산림자원연구소
  • 전라남도도로안전사업소
  • 전라남도농업기술원
  • 전라남도생물산업진흥재단

7.1.2 전라남도교육청 소속기관 및 산하기관

  • 전라남도과학교육원 : 원래 전라남도과학교육원과 전라남도교육연구원이던 것을 1999년 전라남도교육과학연구원으로 통폐합하였다가 다시 2011년 전라남도과학교육원과 전라남도교육연구정보원으로 분할하여 교육연구정보원은 남악신도시로 보내고 과학교육원만 남았다. 어째 이름이 거기서 거기라 헛갈린다]
  • 전라남도교육시설감리단: 원래 전라남도교육정보연구원이 있던 자리에 2012년 신설하였다.

7.1.3 정부 부처 소속기관 및 산하기관

  • 광주전파관리소
  •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나주출토유물보관센터)
  • 국립나주병원
  • 국립나주박물관
  • 전남운전면허시험장: 엄밀히 말하면 기관은 아니고 도로교통공단의 시설이다.

7.1.4광주전남혁신도시 관련기관

8 출신 인물

분류:나주시 출신 인물 항목 참조.

8.1 역사적 인물

  • 장화황후 오씨 : 나주의 지방 토호였던 나주 오씨 오다련의 딸로 태조 왕건과 결혼하여 고려 혜종을 낳았다.
  • 고려 혜종 : 고려의 제2대 왕.
  • 박상충 : 고려 말의 문신으로 친원파에 맞서 친명 정책을 주장했다.
  • 정지 : 고려말의 무신. 순천, 낙안, 영광, 광주, 담양, 남원, 남해 관음포에서 왜적을 대파했고 요동 정벌 때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동조했다.
  • 박은 : 조선 초의 문신으로 박상충의 아들.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웠고 태종에게 중용되어 좌의정에 이르렀다.
  • 김천일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몸이 약해 갑옷 입기도 힘들어 했던 선비였으나 호남에서 이름난 의병장이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죽을 자리를 만났다며 장렬히 전사.
  • 나대용 : 임진왜란충무공 이순신의 부관으로 거북선 제작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 박인천 :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
  • 신숙주 :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정치가.
  • 임제 : 조신시대 명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던 조선중기 시인 겸 문신.
  • 정가신 : 고려 후기의 문신.
  • 오겸 : 조선 중기의 정치가로 우의정을 역임했으며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 나세찬 : 조선 중기의 정치가로 대사헌(지금의 감사원장)을 역임했으며 김안로를 비판하다 귀양을 가기도 했다.
  • 이발 : 조선 중기의 정치가로 대사간을 지냈으며 동인의 중진으로 서인정철과 대립하였다.

8.2 연예인

8.3 정치인

8.4 스포츠 관련 인물

9 영화 / 드라마 촬영

9.1 영화

9.2 드라마

9.3 뮤직비디오

10 관련 문서

  1. 경상북도상주시 또한 비슷한 상황이다. 10만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 동 지역 인구도 5만명 정도다.
  2. 만약 나주로 도청이이전되었다면 도의 균형발전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된다. 나주서 광주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30분 거리로 도청이 이전된다고 해서 관련 기관이나 상권, 주민들이 이주 할 이유가 만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괜히 도청 건물만 새로 만들게 되는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해초에 도청이전은 전라남도의 균형 발전이라는 지향점이 있었고, 광양-여수-순천 중심의 동부권은 일정수준 이상의 경제권역을 가지고 있던 반면, 서부권인 목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전남 내부에서도 낙후지역이였기에 도청은 자연스럽게 전남 서부권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물론 전남서부권이 정치적인 파워가 강력한 곳이기도 했다. 목포-신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정치적 시발점이었고, 인근지역을 지역구로 하는 구민주계 원로들이 득실대는 곳이 전남 서부권이다.
  3. 사실 혁신도시 전입인구의 절반은 나주 외 광주,전남인구이고, 약 25%는 서울,경기권에서 전입한 인구이다. 나주 관내에서만 전입하면다면 나주시 전체 인구가 증가하지 않아야 한다.
  4. 신라의 수도였던 금성 (경주시) 과 다르다. 경주 금성은 ' 금' 金城, 나주 금성은 '비단 금' 錦城.
  5. 동학농민운동 이후 을미개혁이 시작되었고 단발령, 23부제가 순서대로 시행되었다. 양반의 세가 강했던 동네였던 만큼 단발령에 반발하여 의병들이 봉기하면서 나주군수가 죽는 일이 발생하였고 나주부 관찰사였던 윤웅렬(윤치호의 아버지)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광주로 처소를 옮겼다. 곧 윤웅렬은 나주의병들을 진압하였지만 광주에 이미 우주방어를 시전해놓았기에 진압 후에도 나주로 돌아가지 않고 조정에 상주해 광주에 처소를 두는것을 허락받았다. 그 후 23부제가 13도로 바뀔때에 광주에 자연스레 도청이 생긴것이다. 윤웅렬이 잘못했네
  6. 원정면, 금마면, 비음면, 종남면으로 현재의 금정면, 신북면 북부, 시종면 북부지역이다.
  7. 현재의 광산구 평동(평동면), 삼도동(삼도면), 본량동(본량면)이다. 광산군청이 송정읍으로 이전하면서 인근 면을 편입하였다.
  8. 여수, 순천이 부로 승격된 게 1949년이었다.
  9. 사실 나주읍이 인구 폭락을 면하고 오히려 인구가 증가했던 게 비료공장의 힘이 컸다. 반면 포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전해온 영산포읍은 인구가 감소하였다.
  10. 현재 국내산 홍어는 흑산도 주변과 그곳에서 주문받아 납품되고 있으며, 수입 홍어는 목포 동명동 어시장을 중심으로 유통된다.
  11. 당장 나주 시내와 영산포 지역을 합쳐도 4만명이 안 된다. 2016년 1월 현재 빛가람동 전체 인구가 1만 2천명 선이니, 이대로 빛가람도시가 완성되면 기존의 나주 시내 지역이 머릿수로 밀릴 수밖에 없다.
  12. 그리고 혁신도시 뿐만 아니라 남평과 노안 그리고 송월과 영산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10만을 넘은뒤에도 증가세일 것으로 보인다. 나주시의 다음 목표가 15만 인구이기 때문. 25만 인구는 아직 힘들다. 근데 나주가 25만 인구가 되도 엄청난 거다. 시답지 못한 시에서 탈출하여 현재의 경산시거제시 인구를 뛰어넘을 정도다.
  13. 14.6.12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