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의 1996년 소설. 국내에서는 김난주가 번역하고 소담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15개월에 걸쳐 사랑하는 남자 다케오를 천천히 떠나보내는 여자 리카의 이야기… 노을이 진 저녁 시간, 이성이 고개를 숙이고 청명한 감성이 눈뜬 시간 속에서 사랑을 뺏은 여자와 뺏긴 여자 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사랑, 그 이후에 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라고 책 소개글에는 적혀 있으나…

쉽게 말해서 완전히 네토라레물이다.

여주인공 리카가 자신의 남자를 빼앗아간 여자 하나코와 무려 15개월 동안 동거하는 이야기. 갑자기 자기 애인을 빼앗은 여자가 자기 집에서 찾아와서 같이 살자고 부탁하는 이뭐병 같은 상황 설정이 압권. 왜인지 막장계의 대모 임 작가이 드라마가 연상된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받아들인 리카라는 여자도 이해 불가능이지만……. 상황은 이와 같이 막장의 극을 달리지만 에쿠니 가오리 소설답게 그냥 조용하게 물 흐르듯이 잔잔한 일상을 유지하다가 끝난다.

여담이지만 리카의 옛 애인 다케오의 원래 이름은 '겐고'였으나 번역가 김난주는 다케오로 바꿨다……. 아예 캐릭터 이미지상 다케오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일부러 바꿨다고 역자 후기에 당당히 밝혔다. 이 사건은 번역계의 병크로 꼽히는 사건 중 하나.

이하 문제의 역자 후기.

남자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다케오가 아니라 겐고입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이 한자를 줄곧 다케오라고 읽었고, 겐고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다케오란 이름으로 인물의 이미지가 굳어버려 그 이름이 어색하고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지만, 건강하고 저돌이며 또 사랑에 고뇌하는 남성의 이미지에는 소박하고 수줍을 잘 타는 시골 청년이 연상되는 겐고라는 이름보다 다케오란 이름이 더 어울릴 듯 하여 굳이 오류를 범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겐고는 그렇지 않아!

차라리 잘못 읽은 것이었으면 '실수'로 치부할 수 있지만 실수를 깨닫고도 역자 맘대로 개명한 것은 뭐하는 짓인지. 한국 독자가 일본 이름의 이미지를 어떻게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다케오/겐고의 원어는 健吾인데, 健吾는 DQN네임이 아닌 이상 たけお로 못 읽는다. 吾의 일본어 음독은 ゴ이며, 남성 이름의 마지막 글자로 쓰일 때도 일반적으로 ご로 읽힌다. '다케오'는 健의 훈독 たけ + 吾의 한국 한자음 '오'의 조합으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