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

1 서울의 옛 쓰레기 매립장

1.1 역사

원래는 한성부 성저십리가 아닌 고양군 소속이었으나 1911년에 경성부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다시 고양군 소속이 되었다. 1949년에 서울특별시로 편입. 상암동 참조.

유명한 신혼여행지[1]이기도 하였다.

1978년 이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었다. 산업화 과정 동안 서울의 급속한 팽창과 더불어 15년간 9,200 만톤의 엄청난 양의 쓰레기(산업폐기물, 건설 폐자재, 생활 쓰레기 등)가 적재되어 100여 미터 높이의 거대한 산 두개로 변했다.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장은 구의동[2], 장안동, 상계동에 있었다. 방배동, 압구정동에도 소규모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다고 한다.

1.2 쓰레기 매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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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쓰레기 적재량은 계속 늘어나서 하루 트럭 3,000대 분량의 쓰레기가 버려졌고 마침내 기자 대 피라미드의 33배에 이르렀다. 이때만 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일일 쓰레기 배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쓰레기 소각처리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쓰레기 대부분이 직매립되었다.

이 쓰레기 매립장은 서울특별시 뿐만 아니라 인천, 부천, 광명, 안양, 구리 등 근교 위성도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들도 매립되었다. 안양시, 시흥시 등지는 원래는 자체 매립지(평촌, 시화 등)를 이용했으나 이들 매립지 폐쇄로 서울 난지도 매립지를 이용해왔고 성남시는 분당구에 위치한 자체 매립지를 이용했었다.

1993년에 수용 한계량에 도달하여 폐쇄되었으며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는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현 인천 서구)에 조성된 수도권 매립지로 이전하였다.

1.3 난지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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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시점에서는 묻혀버린 사실이지만 쓰레기 매립지가 된 난지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거의 7백여명이 거주했고 매립장 폐쇄가 된 1994년까지는 4백여명이 거주했다. 이들은 쓰레기에서 쓸만한 자재를 골라 팔아서 생계를 꾸렸다. 당시 난지도 산다라고 하면 더러운 일을 하는 극빈층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이들 가정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곧잘 차별 당했다.

난지도 현지 주민들도 그렇지만, 인근의 성산동, 망원동 주민들도 난지도 매립장 때문에 적지 않게 고통을 겪었다. 특히 난지도 소각장이 가동되는 시간대에는 반드시 창문을 꽁꽁 걸어잠가야 했는데.... 여름철엔 그저....

1.4 생태공원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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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공원 전경.

매립지의 폐쇄 이후, 서울시는 해당 구역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계획하고 쓰레기 산을 덮고 공원 건설을 시작하였고, 2020년까지 안정화 작업에 돌입한 상태이다. 방벽은 오염 하수가 한강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껍게 둘러쳤으며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및 다른 혼합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인근의 월드컵 공원과 서울 월드컵 경기장 시설의 열에너지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월드컵 공원은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의 5가지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 중 본래의 쓰레기 매립부지에 해당하는 구역은 난지도 제1매립지에 들어선 노을공원과 제2매립지에 조성된 하늘공원이다.

또한 난지도 주변에는 디지털미디어시티가 조성되어 업무지구와 주요 언론 및 방송사의 핵심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1.5 관련 항목

2 충청남도 당진시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에 있는 섬. 여기도 서울 난지도와 마찬가지로 蘭芝島라고 쓰지만, 난초와 지초는 자생하지 않는다. 물살이 세어 배가 다니기 어렵기 때문에 원래 難知島라고 했다가 蘭芝島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그밖의 몇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대호방조제에 위치한 도비도 선착장에서 배로 약 20분 들어가야 한다. 과거에는 인천광역시 연안부두에서 출발하여 육도·풍도를 거쳐 난지도까지 가는 배도 있었으나, 거리도 멀고 운임도 비싸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결국 2012년 12월 10일부로 노선이 단축되어 육도·풍도까지만 운항하고 난지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수도권 등지에서 해상레포츠나 낚시를 즐기러 관광객이 찾는 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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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새나라 택시 타고 남산 올라가는 것이 신혼여행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여러분의 친척 어르신들 중 60대 중반~70대이신 분이 있으면 물어보시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온양온천이 수도권에서 제법 인기있는 신혼여행지였고 제주도 신혼여행도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했다. 신혼여행을 해외로 나가게 된 건 1990년대 초반부터였으나, 외환위기 시기에 대폭 감소했다가 2000년대 들어서 다시 빛을 보았다.
  2. 현 테크노마트 부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