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완(찻잔)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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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차형태의 녹차를 개어 마시는데 주로 쓰인다. 엽차용 다기에 이것이 끼어있는 경우는 보통 끓는물의 온도 조절용이나 다기를 헹구는 데에 쓰는 물을 받아두는 용도로, 잠시 물을 옮겨놓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2 설명

일본에서는 12세기 말 송나라에서 차가 처음 전래 되었을 당시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고급 자기그릇 등을 당물(唐物)이라 부르며 다완으로 사용하였고 이러한 문화는 점차 사치스러워졌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사치에 대한 반발로 소박한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외비 정신에 입각한 다도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뒤 조선에서 서민들이 밥그릇으로 쓰던 싸구려 막사발[1]이 다완으로 사용되었고, 이 막사발을 포함해 다기 하나 하나가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취급되었다. 결국 본뜻이야 어찌됐든 간에 인간은 튀고 싶으면 무엇이든 가치부여를 하는 법이다. 초기에는 제대로 된 태토가 아닌 거친 진흙에 유약도 아닌 잿물 발라 구운 옹기 수준의 싸구려도 최고급 자기로 치기도 했다. 막사발 다완 하나가 성 하나랑 같은 값어치일 정도.[2] 그래서 차솥을 내놓으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차솥이랑 같이 폭사했다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가 하면 임진왜란 때 일본군 장수들이 도자기 굽는 장인들을 포로로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막사발 형태로 다완을 만들고 도리어 이것이 역수입되기도 한다. 또한 이천 도자기축제 때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와 막사발 형태의 다완을 쓸어가는 광경도 가끔 볼 수 있다. 흠좀무....

처음 일본은 중국의 찻잔을 이용했지만 비싼 가격으로 인해 사치 문화가 되자 이에 반발한 센노리큐에 의해 소박함을 바탕으로한 와비 문화가 성형하게 되었는데 그때 조선의 싼 막사발을 찻잔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당시 일본에 있는 조선 막사발은 대부분이 경상도 남부에서 제작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점과 당시 한국의 도자기 기술력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조잡하게 제조된 점과 그 시기에만 제조된 점을 고려해 일본에서 주문제작으로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검은 다완이라 불리는 라쿠다완의 경우 사실 도자기로서는 실패작이라고 보는 게 맞다. 라쿠다완은 일본에서 조지로(長次郞)라고 불린 한 조선인이 만든 것으로, 조지로는 원래 기와를 만드는 장인이었는데 갑자기 다완을 만들라는 명을 받았다. 도자기 제조기술이 없었던 그가 억지로 만들다 보니 유약이 타서 나온 게 지금의 검은 라쿠다완인 것이다. 그 후 그의 여러 작품들 역시 도자기 장인의 기준에서 보면 열 조절 실패, 유약 탄화 등으로 인해 다완에서 구현되어야 할 본연의 색이 죽어 있는 등 조잡한 수준이라는 평이다. 후의 조선인 도자기 기술자 덕분으로 그의 아들대부터 퀄리티가 많이 상승하게 되었다.

조선 다완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바로 유리빙결인데 일본 최고의 다완이라 불리우는 저주의 다완[3] 기자에몬에 경우 전체적으로 곰보같이 퍼진 유리빙결을 최고로 치고 있는데 이 빙결을 보면 마치 벚꽃이 화사하게 펴있는 듯 해서 벚꽃을 좋아하는 일본인 입장에서 더 호감을 갖는 듯하다.

3 특징

다완이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완성와 불안정성 그리고 싸구려틱함(...)이다. 어딘가 유약이 덜처리되어도 타졌어도 심지어 조그만 돌 때문에 파여도! 물이 새지 않는 이상 용서가 되며 오히려 그런 단점을 자연스럽다고 더 선호하기도 한다. 흙 알갱이가 보이고 색처리도 얇아 대충 만든 듯 하지만 소박함이 있으며 때로는 외로움까지 느껴져 안쓰러울 정도로 도자기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열처리는 낮게 해서 두들기면 목탁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나며 충격에 약하다. 물론 열처리를 높게 한 견수 땡땡이(...) 다완도 있다. 하여튼 열처리가 낮기에 차를 담그면 전체적으로 훈훈하게 퍼져 덜 뜨겁기에 들기가 편하다.

용도가 말차를 위해서 이기에 넓직한데 물을 담가두면 옹달샘 또는 우물안에 물을 보는 들한 풍치가 있다.
내부 빙결을 중시하는 분도 있는데 내부 유약이 덜가 파인 홈은 말차 제조시 거품이 더 잘나기에 선호하는 것이다.
사용할수록 변화하는 것도 특징이다. 위에도 언급했듯 불안정한 제조다보니 빙결과 유약처리가 덜 된 부분으로 찻물이 들어가다 보니 찻물이 말라지면서 점점 색이 진해진다. 그렇기에 장시간 사용하면 색감이 진해지고 세월의 묻음이 들어난다.

  • 정호다완
대표적 다완으로 사발형태로 되어 있으며 삼각형 모양 덕분에 손에착 잡히며 그리고 다완중에서도 아름답다. 밑부분은 유약들이 뭉처 오돌톨하게 되어 있는대 이부분 때문에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일본도의 손잡이와 비슷한 감촉이라 매우 선호했다고 한다. 물을 담가두면 옹달샘에 담가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본 국보 다완 기자에몬이 이런 전호다완 계열이다.
  • 여름다완
나츠다완이라 불리우며 전체적으로 면적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면적이 넓은 이유는 여름엔 차가 잘 식지 않기에 빨리 식히기 위해서 이다. 밑에 굽이 작은 편이라서 옆으로 탁 치면 쉽게 엎어지니 주의하자.
  • 김해다완
삼국시대에 술잔을 보는 듯한 아주 중후한 모양이 다완이다. 특히 밑에 굽을 높게 새워 V자 형으로 잘라 만든 것이 특징이다. 모양에 따라선 손톱으로 일부로 긁어서 빗결무늬를 만든 것도 있는데 일본에서는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은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라쿠다완
일본에 대표 다완으로 머그컵 형태로 되어 있다. 워낙 모양이 투박해서 호불호가 심하다. 말차 제조시 차시 휘둘때 찻물이 넘치는 문제가 정호다완보다 적어서 좋다.
  • 교토다완
밥그릇 같이 생긴 모양 (...)이 특징이며 크기도 큰편이다. 기본 모양을 만들고 그걸 가공해서 둥그스럽게 모양을 잡은 후 그 후 에 그림등을 넣는다. 때론 금박도 칠하기도 한다. 인위적이지만 일본 특유에 화사함을 넣기도 한다.

4 여담

일본에서 다완을 보는 예법으로 엎드려서 팔목도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머리를 들어 (거의 조아림 자세) 보는 것인데 다완을 들고 있다 떨어트려 깨트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끼던 다완 츠츠이츠츠(筒井筒)의 금이간 다완은 수하가 깨먹어서 그런 것이다. (그 당시 다완이 성하나 가격에 맘먹은걸 고려하면...)

라쿠다완의 경우 히데요시는 금박을 하는 화려한 다완을 요구했지만 조지로는 기술이 없었기에 만들지 못했다. 무엇보다 센노리큐가 가장 반발했다. 그리고...

정통가마로 구운 다완에 경우 처음 사용하면 흙냄새 비슷한 거북한 냄새가 난다. 계속 사용하다 보면 찻물이 배어 그런 향이 사라진다.
  1. 싸게 많이 만들기 위해 그릇 바닥에 자그마한 돌받침을 놓고 수십개를 쌓아 굽는 대량생산품이다. 지금도 도요지 터에서 이렇게 굽다 무너진 것들을 볼 수 있다.
  2. 희한하겠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의 그 유명한 조나라의 화씨의 벽(구슬)은 진나라에서 성 15개와 교환하자고 했다. 정확하게는 고가에 팔린 다완들의 값이 성 하나를 만들 수 있는 비용인 경우가 있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성이란 흔히 생각하는 규모가 큰 성이 아니라 군사시설로서의 요새에 가깝다.
  3. 실제 이 다완을 소유한 사람들은 병으로 죽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기자에몬을 포기하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