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

1 개요

김대중 대통령의 직계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1991년에 김대중의 신민주연합당과 이기택의 민주당이 합당했을 때는 잠깐 동안 신민계로 불렸다.

2 상세

김영삼이 이끄는 상도동계 및 재야민주화운동세력과 연대해서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13대 대선을 앞두고 양김 대선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상도동계와는 갈라서고 독자적으로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였다.

결국 양김 분열의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김영삼과 상도동계가 1990년 삼당합당에 참여하자 양 세력은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된다. 김영삼이 이끄는 상도동계가 부산, 경남를 지지기반으로 했다면, 김대중이 이끄는 동교동계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였다. 결국 YS에 이어 1997년외환위기의 여파속에 DJP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이루어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정권재창출을 위해서 각개약진하였다. 권노갑을 비롯한 상당수 동교동계 주류들은 이인제를 지원하였고, 동교동계의 또다른 실력자 한화갑은 스스로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1] 하지만 양쪽 다 노사모를 앞세운 노무현 바람에 나가 떨어졌다.[2]

당권을 쥔 동교동계는 민주당내 비주류였던 노무현이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갈등하였다. 03시계 파동과 2002년 지방선거 참패로 노무현의 지지율이 급하락하자, 동교동계 일부는 아예 대선후보 교체를 주장[3][4]은하면서 당내분이 가속화되었다. 결국 갈등을 임시로 봉합하고 대선에 나섰지만 동교동계는 선거운동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고, 대선은 노무현후보 캠프와 개혁당/노사모 위주로 치루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은 노무현의 기적적인 대선승리 직후부터 다시 불거지기 시작해서, 참여정부 출범이후 2003년 정치개혁을 둘러싼 논의에서 대폭발한다. 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해찬 등이 주도하는 범노무현계가 신당창당 수준의 과감한 정치개혁을 주장하자, 당내 기득권을 쥐고 있던 동교동계가 강력반발하였고, 여기에 불법 대북송금 사건 특검 문제로[5]기존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과 호남민심이 악화되자 동교동계와 범노무현계는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친노세력이 2003년 11월에 한나라당 개혁파들을 끌어모으고 열린우리당으로 분당해나가자, 동교동계가 주도하던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민련과 손잡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고 17대 총선에서 대몰락하였다.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는 동안에 새천년민주당은 겨우 9석을 얻었다.

17대 총선 이후 권노갑 등 동교동계 1세대들은 반강제적으로 정치일선을 떠났다. 하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민주당을 지키다가 열린우리당의 급속한 몰락으로 2007년 17대 대선과 2008년 18대 총선 과정에서 친노세력과 다시 손을 잡았지만, 감정의 앙금은 여전하다. 사실상 '적의 적이니까 친구'라는 정치공학적 관계로 손을 잡았을뿐. 결국 계속 당내에서 충돌하다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일부는 호남정치세력화를 내걸고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 당으로 떨어져 나갔다.

일부는 친노계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인지 17대 대선과 18대 대선을 앞두고는 순차적으로 이명박,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면서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입당하였다. 한광옥, 안동선 등이 대표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과 17대 총선의 대몰락 이후로는 사실상 단일한 정치세력으로서의 동교동계는 사라졌다. 워낙 오래전부터 활동하던 사람들이라 동교동계의 핵심인사들 대다수는 이제 고령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이고, 아직 활동하는 사람들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뿔뿔히 흩어졌다. 일례로 미디어에서 동교동계의 막내로 분류하는 설훈 의원이 이미 60대 초반. 1970~80년대 김대중을 따라서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인사들을 동교동계라고 본다면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동교동계 인사는 설훈, 김한정[6] 등 극소수이다.

2.1 민주당 동교동계

설훈, 이용희, 이강래, 김한정 등이 있다.

2.2 비민주, 비새누리 동교동계

권노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 정대철, 이훈평 전 의원이 여기 소속이다. 박지원 의원도 탈당을 선언하면서 여기에 들어왔다. 현재는 대부분이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2.3 새누리당 동교동계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김원길 전 의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친 DJ 인사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자 몰락했다.

그 뒤 민주통합당에 반발하여 정통민주당을 만들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현재 이 네명의 원로는 모두 2012년 19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으며 김경재, 한광옥 전 의원은 아예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3 주요 인물

  1. 애초에 야당시절부터 권노갑과 한화갑 소위 양갑 사이의 갈등은 유명했다. 다만 그떄까지는 김대중이 직접 당과 동교동계를 통제하면서 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뿐. 하지만 대통령 임기말이 되자 정계은퇴를 앞둔 김대중이 "이제 알아서들 하라"면서 손을 놔버리자 동교동계가 양갑을 따라서 바로 쪼개져 버린 것이다.
  2. 권노갑이 김근태에게 뇌물을 준 것이 결정타였다.
  3. 동교동계뿐만 아니라, DJP연합과 국민의 정부 출범과정에서 유입된 구 정권 시절의 관료들, 기업인, 군출신들 당내 보수파들이 결집하였다. 당시 김대중정부와 민주당은 대선 승리와 안정적인 국정운영를 위해서 이념,노선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있는 대로 끌어모았기 때문에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인사부터, 재야출신의 급진개혁파들까지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넒었다.
  4. 이 때를 계기로 이인제, 안동선은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서 자민련으로 갔고, 원유철, 전용학, 강성구는 한나라당으로 갔다.
  5. 이때 양갑과는 별개의 라인이었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된다. 수감생활 도중에 녹내장이 악화되어 실명되었다.
  6. 이 사람은 DJ의 비서진 출신인지라 동교동 라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