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도서기

東道西器
서세동점에 맞서 근대화를 하려 했던 조선의 생각이 담겨있는 구호이다. 동양의 유교를 바탕으로 하되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중국에서 나온 구호인 중체서용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일본은 동아시아를 버리고 서양화를 통한 근대화를 추진했고 그게 바로 탈아입구메이지 유신이며, 익히 알고 있듯이 일본은 성공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메이지 유신의 성격이다. 메이지 유신은 덴노를 위시한 중앙집권화였는데, 당시 조선은 이미 이를 시행하고 있었고, 6조 체제 하에서 이조는 인사, 병조는 군사. 형조는 법의 집행, 호조는 재정, 예조는 외교와 교육, 공조는 토목공사와 수공업을 담당했다.[1] 훗날의 갑오개혁도 이 6조 체제를 정교화한 것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중국이나 조선이 서양과학에 대한 이해없이 기술을 수용하려 했고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고 할수도 있지만[2] 이미 17세기부터 서양 천문학을 바탕으로 한 시헌력을 사용했고 조선 또한 백년 넘는 학습을 하여[3]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에 아무런 이해 없이 수용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점을 보면 동도서기는 치열한 성찰의 산물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1. 우리역사넷 6조참조
  2. 일본의 경우 해체신서가 대표적이다.
  3. 열린연단 문중양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