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정밀화학

1 기본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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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주소 : [1]
주소 : 울산광역시 남구 여천로217번길 19(여천동 190)

2 연혁

1964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국내의 민영회사로는 처음으로 비료사업에 뛰어들면서 울산에 1백만평의 부지를 매입, 당시로는 최대 규모의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7년 준공을 앞둔 시점에서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반강제적으로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당시 한국비료는 첫 해 매출액이 그룹 전체 매출액의 30%에 이를 정도로, 당시 그룹 내에서 비중이 크고 알짜인 기업으로 통했기에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울분을 삭히며 헌납해야 했다.[1]

정부가 국내 비료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지정하면서 국영회사로 출발하여, 1970년대 들어서는 정부가 '비료 생산을 늘려 수출하겠다'며 투자를 늘리기 시작해 남해화학.충주비료.나주비료 등의 부수 기업들이 생겨났다. 그러다 수출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과잉투자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1980년대 초 비료산업 합리화 조치를 단행[2]하였으나, 당시 공기업이던 한국비료는 비료 매출의 비중이 90%였지만 삼성그룹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업다각화에 성공해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비료가 공기업화 된지 30여년간 삼성그룹은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가 1994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조치 때 비로소 입찰을 통해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되찾게 된다. 소유주인 산업은행은 입찰 예정가를 1천3백억원 정도로 잡았으나 삼성이 써낸 가격은 2천3백억원이나 됐다. 당시 주가가 한 주에 10만원도 안되는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주당 33만원을 써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다. 선대 회장인 이병철이 아껴왔던 회사를 되찾아야 한다는 과업을 27년 만에 이룬 것이다.

1994년 한국비료 인수 후에 삼성그룹은 사명을 삼성정밀화학(Samsung Fine Chemical)으로 변경했으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경영합리화를 위해서 수익성이 낮은 품목과 시설을 분사하고[3], 사업을 다각화하여 비료뿐 아니라 시멘트가 서서히 굳게 하는 기능성 첨가제인 메셀로스 등 각종 첨가제, 인조가죽 원료인 DMF, 의약용 코팅 및 캡슐 원료 등으로 다각화한 것이다. 특히, 인조가죽 원료인 DMF는 세계 1위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나름 선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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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는 연간 33만톤을 생산하는 울산 비료공장 2개 라인중 1개라인 가동을 중지했으며, 나머지 라인도 요소비료 생산은 중단하는 등 사실상 이 기업의 모태 사업이었던 비료 생산사업을 접었다. 중동 지역에서 가격이 싼 천연가스를 주원료로 요소비료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버틸 수 없던 것이 주 원인이었다. 삼성그룹이 사활을 걸고 건립했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이라는 큰 잡음속에서 예정에도 없던 공기업으로 변모하며, 농민들이 한 부대라도 더 구하기 위해 농성까지 할 정도로 비료 생산 및 공급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기업이었지만, 결국 삼성그룹의 품으로 돌아와 사명이 바뀐 데 이어 비료 사업을 포기함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고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쓰게 됐다.

그리고 2015년 10월 29일. 삼성정밀화학을 롯데케미칼에 매각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와 함께 삼성 SDI 케미칼사업 부문, 삼성BP화학을 동시에 매각하여 삼성은 화학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2016년 2월 29일 사명도 롯데정밀화학으로 바뀌었다.

3 근무환경

3.1 노후화된 시설

1960년대 만들어진 초창기 시설이나 공장이 아직도 남아있고 사용되고 있다.[4] 뿐만아니라 입구로 가는길[5]왕복 2차선으로 1960년대 만들어진 길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인도도 없는 좁고 요철이 심한 길밖에 없다.[6]
재수 없으면 부푼꿈을 안고 삼성직원으로 입사해서 지은지 수십년은 된 가건물에서 일하게 된다.

3.2 도심지에 근접

울산 최고의 환락가인 삼산동과 몇 킬로 안 떨어져있다. 여천오거리로 나간 다음 언덕 하나 넘고 개천 하나만 지나면 삼산동이어서 회식하러 가기가 상당히 편하다.

3.3 행사

1년에 1번 사내 잔디밭에 연예인을 불러서 축제를 한다. 이때는 맥주 무제한이다! 그리고 2011년에는 소녀시대가 왔었다.

4 여담

공장 북쪽, 태화강역 동쪽에 돝질산 이라는 야트막한 야산(해발89m)이 있다. 이 산의 정상에는 한국비료 착공 이듬해인 1966년 9월 착공했으나 사카린 밀수사건이 발생하고 한비가 67년 10월 국가에 헌납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어 장기 미준공 건축물로 방치되다가 2001년 5월 철거된 영빈관이 있었다.

울산에서는 소위 이병철 별장이라 불렸던 곳이다. 해당 건물은 남쪽으로는 한국비료 나아가 울산석유화학단지 전체를, 다른쪽으로는 당시 개발되지 않은 태화강 하류지역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었는데 한비공장 건설을 시찰하던 이병철 회장이 경치에 감동하여 건설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강제헌납 이후 2001년까지 방치되었는데, 이에 기반한 도시전설도 있다. 영빈관 공사 당시 굴삭기가 땅을 파니 용/이무기/구렁이가 나왔다는것. 그리고 굴삭기가 그 구렁이를 깔아죽였는데 그 굴삭기 기사가 나중에 피를 토하며 죽었다더라, 그 이후로 한비가 사업이 망했다더라 하는 것이다.동네 주민의 얘기로는 땅을 파다가 큰 썩은 통나무가 나왔는데 그게 와전되었고, 그 굴삭기기사는 어제도 나랑 술 잘먹었는데 죽긴 누가 죽었냐 라더라 해당 건축물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완공하거나 철거하라고 울산시에서 요구하였고, 너무 장기간 미준공 상태로 방치되어 완공할 가치가 없어 철거되었다.

이 회사와 직접 거래하지않는 일반시민들에게는 한비(한국비료공업의 약칭)라는 명칭이 삼성정밀화학, 롯데정밀화학보다 익숙하다.

홈플러스 울산점 인근에 사택이 위치하여 한비사택, 한비사거리 라는 지명이 오랫동안 사용된 덕분이다. 현재는 유휴자산 정리차원에서 사택을 매각하였고, 재개발이 진행중이다. 한비를 사용한 지명도 이제 더는 사용되지 않는다.
  1. 실제 삼성그룹도 주식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정부측이 헌납된 주식 51%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삼성에선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2. 공장을 지은 지 10년도 안된 충주.나주비료 등이 새한미디어.LG그룹에 각각 인수돼 공장이 폐쇄됐다.
  3. 분사하게 되는 업종에서 일하던 직원은 삼성정밀화학 내에 있는 다른 부서로 가던지 퇴직금대신에 기기와 공장을 받아서 분사할지를 선택해야 했다.
  4. 이런 오래된 시설은 특혜지정이 되어있어 소방법등의 제한이 없는경우도 있다.
  5. 삼성정밀화학의 입구는 2개 있는데 1톤이상 차량만 통과하는 화물용 입구와 1톤이하의 차량만 통과하는 인력 출입용 입구다.
  6. 태화강 방면으로 돌아가는 길은 넓지만, 어느 정도는 옛날 길을 지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