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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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대한민국의 여권법에 의한 여행금지국가(특별여행경보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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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소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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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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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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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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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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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잠보앙가, 술루 군도, 바실란, 타위타위 군도 한정.
여권법 외의 별도의 대한민국 법률로 출입이 금지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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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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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남극활동법)
북아프리카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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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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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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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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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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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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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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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아랍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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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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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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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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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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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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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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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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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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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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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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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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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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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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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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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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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로
국기
면적1,759,541km²
인구6,541,948명(2016년 통계)
수도트리폴리
공용어아랍어
통화리비아 디나르
1인당 GDP명목 12,058$(2012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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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거 같다 불타고 있긴 하다 금성 표면?

حُريّة، عَدالة، ديمقراطيّة

평화, 정의, 민주

1 개요

북아프리카에 위치하며 지중해에 접해 있는 아랍 국가. 대중동권역으로도 분류된다. 영어로는 Libya. 아랍어로는 ‏ليبيا‎(Lībyā).리빅아가 아니다 공용어는 아랍어다.[3]

수도는 트리폴리(Tripoli). 아랍어로는 타라불루스(طرابلس)인데 레바논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기 때문에 서 타라불루스(طرابلس الغرب)로도 불린다. 제2도시로는 벵가지가 있다.

이전의 정식국명은 '대(大) 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الجماهيرية العربية الليبية الشعبية الإشتراكية العظمى)'였다. 여기서 '자마히리야(جماهيرية)'란 카다피가 창안해낸, 리비아의 아랍 사회주의 내 특유의 직접 정치참여 체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 카다피가 축출된 이후로 현재는 과도정부 하의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이들 과도정부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기본법으로 정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선포했다. 본격 신정국가 체제? 하지만 극단주의, 정교일치의 국가가 아니라 온건한 이슬람 국가를 표방했다.

인구는 2015년 기준 약 630만 명. 국토면적은 약 176만㎢로, 세계에서 17번째로 면적이 넓고 아프리카에서는 4번째로 큰 중간 크기의 대국이다. 유럽에는 러시아를 제외하고 리비아보다 큰 나라가 없다. 아프리카에는 세계 순위권에 속하는 트리플(알제리, 콩고 민주 공화국, 수단)이 있어서 조금 밀리지만 그래도 아프리카에서도 영토만으로 5번째 상위권. 물론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이기 때문에 실제 개발 가능한 면적은 좁다.

2 자연

해안부를 제외한 지역은 거의 사막지대로 인구가 희박하다.

1922년에 엘 아지지아(El Aizia)라는 곳에서 화씨 136도(=섭씨 58도)가 기록되어 세계 최고 기록 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2012년 세계기상기구(WMO)의 조사를 받은 후 왕좌를 빼앗겼다. 국제연구진을 조직해 조사를 벌인 결과, 비전문가가 부정확한 판독을 내리는 바람에 잘못 기록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2.1 지리

이집트처럼 영토 대다수가 사하라이고 해안가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리비아와 국경을 직접 접하는 이웃나라들로는 서북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튀니지, 서쪽의 알제리, 서남쪽의 니제르, 남쪽의 차드, 동남쪽의 수단, 동쪽의 이집트, 그리고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진 않지만 지중해 건너편의 가까운 이웃나라들로는 동북쪽의 터키그리스, 북쪽의 알바니아, 서북쪽의 몰타이탈리아 등이 있다.

3 역사

리비아의 역사
تاريخ ليبيا
선사&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 리비아
T베르베르페니키아카르타고
누미디아
로마 제국반달 왕국동로마 제국우마이야 왕조피흐리 왕조무할라브 왕조아글라브 왕조파티마 왕조파티마 왕조지리 왕조노르만무와히드 왕조하프스 왕조오스만 제국
카라만리 왕조
이탈리아령 트리폴타니아대영 제국리비아 왕국인민사회주의 아랍공화국리비아 내전공화국
C펜타폴리스헬레니즘 제국동로마 제국압바스 왕조툴룬 왕조이크쉬드 왕조힐랄족,
술라임족
파티마 왕조
가니야족
아이유브 왕조
F가라만테스 왕국베르베르
/
투아레그
프랑스
※ T는 트리폴리타니아 지역, C는 키레나이카 지역, F는 페잔 지역, 붉은색은 튀니지 방면 세력, 녹색은 이집트 방면 세력

3.1 고대

이 시대에 리비아는 없었으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나일 강 제일 동쪽지역을 리비아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다.[4] 고대 리비아의 경우는 주로 키레나이카 아니면 트리폴리타니아까지 포함하여 불렸으며, 페잔의 경우는 기원전 19년 로마가 페잔을 점령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편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 해안가에는 고대 국가 카르타고의 영토 일부[5]였으며,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146)으로 카르타고가 망하자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가 제정으로 이행한 뒤에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냈지만, 2세기 후반 세베루스 왕조의 시조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재위 193~211)가 태어난 도시인 렙티스 마그나[6]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3.2 중세

이후 다시 역사에서 묻힌 곳이 되었고, 반달 왕국,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거쳐 7세기 아랍 이슬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왔다. 길목으로서는 대단히 긴요한 지역이지만 세력을 떨친 나라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옆동네 이집트에선 살라흐 앗 딘의 아이유브 왕조를 비롯 맘루크 왕조 같은 강력한 나라가 태어났고 모로코에서도 나름의 강력한 국가들이 나타났지만 트리폴리타니아(Tripolitania)-키레나이카(Cyrenaica)라고 불린 현재의 리비아는 그저 지배만 받았다.[7] 안습

3.3 근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별 문제 없이 속주에 머물러 있다가 [8]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하면서 이탈리아 식민지가 되었다. 그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아프리카 원정이 이곳 리비아에서 시작, 유명한 토브룩 전투가 키레나이카에서 벌어져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2차 대전 후에는 패전국 이탈리아의 영토 사실 패전국인지도 애매하지만 였기에 프랑스영국이 분할 통치하다가, 1951년에 영국령의 트리폴리타니아(Tripolitania, 아랍어로 طرابلس‎), 키레나이카(Cyrenaica, 아랍어로 برقة‎), 프랑스령의 페잔(Fezzan, 아랍어로 فزان‎) 세 지역을 합쳐 연합 왕국으로 독립했다. 독립당시의 리비아는 매우 가난한 최빈국이었으나 1961년에 대량의 석유가 발견되면서 완전히 역전되어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부의 재분배가 효과적으로 이루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왕정에 대한 지지도는 급속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3.4 카다피의 독재 및 내전 이후

1969년, 육군 장교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국왕 이드리스 1세가 해외순방 겸 해외치료(당시 나이 80세였다.)를 나간 틈을 노려 쿠데타를 일으켜(이 당시 카다피의 계급은 일개 대위였다.[9]) 왕정을 폐지하고 나세르주의에 입각한 아랍 사회주의 국가를 세웠다, 카다피는 집권후에 석유국유화를 전면적으로 단행하여 거대 석유회사와 소수계층에서 쏠렸던 부를 재분배시켰고 1973년에 전격적인 유가인상을 주도하여 리비아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그 결과 당대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잘사는 그야말로 부자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카다피는 반미-반서방-반이스라엘 노선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여러 테러활동에도 지원을 내보내서 카다피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간에 주목받는 지도자가 되었다.

한편,이드리스 1세는 이집트로 가서 살다가 1983년 93세로 죽었다.

1988년 크리스마스 날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일어난 팬암 103편 폭파 사건 등 몇 차례 테러 사건에 연루되어 미국공습을 받았으며, 이후 카다피가 데꿀멍해서 공식적으로 테러활동이나 테러활동에 대한 지원은 안하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랫동안 군림 중이었던 집권자 아니 독재자 중 하나로, 그의 패션 센스는 세계 최악의 컨셉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해외에 방문할 때는 항상 유목민처럼 커다란 텐트를 치고 숙소로 삼는데, 뉴욕에 방문해서도 똑같이 하려다가 미국시민들의 주거지침해로 무산되었고, UN 총회에서 장시간 연설에 빈축을 사기도 했다.[10]

팬암기 사건 이후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조치로 경제는 피폐해졌으나 그럼에도 인구가 적어서 쌓아 놓았던건 많았던지라 알제리나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의 산유국들이 빈곤층의 급증이나 실업난, 임금삭감으로 격변기를 맞고 있을 순간에도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라는 타이틀은 계속해서 유지했으며 2000년대 들어 상당 부분 경제 제재가 풀리고 다시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면서 다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카다피가 장기집권하면서 속은 상당히 곪은상태가 되었다. 여하튼 카다피가 집권하면서 리비아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된 측면도 있기 때문에 카다피의 독재가 아프리카나 제3세계 국가 내에서는 의외로 꽤 칭송받는 분위기였다. 세계 8위 규모의 유전이 있다고 하지만 그간의 경제제재로 거의 개발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집권 2기에 이르러 갑자기 잘못을 실토커밍아웃하고(?) 팬암기 폭파 사건 보상문제를 재논의하며 국제적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리고 2011년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는데(...)

2011년 2월 말에서 10월 23일까지 리비아 내전이 발발했고, 카다피는 결국 사망하면서 혁명이 성공하긴 했다. 하지만 내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치안도 어느 정도 나아졌지만 2011년 이전처럼 치안이 회복되지는 못했고, 결국 카다피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 들어선 임시정부가 이슬람주의파와 세속주의파간 갈등으로 정부가 트리폴리 정부와 토브룩 정부로 갈라지면서 2014년 내전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게다가 IS와 안샤르 알 샤리아등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 테러 단체들까지 끼어들면서 무하마드 나지불라 독재 정권 붕괴 후 무자헤딘 세력과 탈레반,알카에다등이 엉켜 엉키고 섥켜 죽고 죽이는 피 흘리는 내전이 지속되고 9.11테러 이후 미군과 서방세계 군대까지 침공하여 대규모 전쟁터가 되어버린 아프가니스탄이나 시아드 바레 정권 축출 이후 군벌,부족 단위로 갈라져 내전이 벌어지고 알샤바브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들까지 난립하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륙 최악의 내전 지옥이 된 소말리아, 모부투 세세 세코 정권 붕괴 후 끓임없는 내전과 종족,군벌간 대립이 이어진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실패한 파탄국가가 될 위기를 맞았으나 2015년과 2016년 사이에 내전을 벌이던 각 두 정부가 유엔의 중재로 통합 정부 수립에 합의하면서 향후 리비아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것으로 보인다.[11] 자세한 것은 2차 리비아 내전 항목을 참고.

4 군사

이래뵈도 이전에는 북아프리카, 아니 아프리카를 통틀어 무기 강국이었다. 되려 60년대 친미적 태도를 취하던 시절보다도 무기 구입에 열을 올려서 1970년대 러시아제 MiG-23(100대), MiG-25(120대), Su-22(80대) Su-25(70대), 미라지 F1(40대), Tu-22 블라인더 폭격기를 비롯한 전투기들을 엄청 사들여와 총 보유수가 자그마치 500대가 넘었고, 거기에 이탈리아로부터 SF-260 훈련기만 200대 가까이 따로 사들여왔을 정도로 공군 규모 하나는 아프리카 최강급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그렇다쳐도, 훨씬 공군력이 약했던 이집트와 차드 공군에게 크게 당했다. 덕분에 리비아가 이집트와 국경을 맞닿기에 다행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만일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닿았다면 틀림없이 전쟁벌여서 이집트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당했을테니.

1973년 이스라엘이 자국 영토 가까이 지나는 리비아 여객기를 미사일로 날려서 1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은 아픔도 가지고 있다. 리비아 여객기도 잘못은 있지만 경고도 없이 바로 미사일을 날려버린 이스라엘 공군도 문제가 있는 듯. 물론 미국은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골다 메이어는 격추시킨 조종사를 칭찬했지만, 국제적으로 더 욕먹은 건 역시 이스라엘이었다. 그나마 팬암기 사건 등으로 리비아가 욕을 먹으며 이 사건은 잊혀져버렸다.

1980년대 리비아 앞바다(주로 Gulf of Sidra, 시드라 만이라고 불린다.)에서 여러번 미 해군 함대에 무력시위를 벌이다 대응출격한 F-14 전투기에 MiG-23 전투기가 격추당했다.

5 경제

석유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HDI도 높은편이다. 최근 몇 년간은 정치상황이 혼란하다 보니 2011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내전의 여파로 -60%를 찍었다가 2012년에는 내전 여파가 복구되면서 120%를 기록했었는데, 다시 내전 재발과 유가 폭락으로 GDP가 반토막나는 등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상황. 참고로 과거 미국의 1인당GDP를 넘긴 아프리카의 전무후무한 국가이다. 석유파동당시, 1980년 1인당 GDP가 13,032달러로 미국은 12,576달러였다. 출처

6 사회

같은 이슬람 문화권인 사우디아라비아이란에 비하면 의외로 개방적인데 카다피의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유럽 유학을 하여 개혁. 개방적 사고를 갖추었다는 평. 카다피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2008년 정계은퇴를 발표하긴 했지만 그 후로도 외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후계자가 유력하다는 평이었는데 2011년 8월 21일 리비아 내전 와중에 시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지만 아버지가 사살당하고 해외로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기에 정권을 잡기엔 어려워보인다.

이 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아랍계 셈족이며 통용언어는 아랍어. 그리고 국토의 90% 이상이 사하라 사막이고 동쪽 이집트와의 접경지역은 리비아 사막이라 농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구 밀도도 대단히 낮은 편.

석유 덕분에 국가가 돈이 엄청나게 남아 도는 관계로 2006년에는 전 초등학생들에게 전자민주주의 확대라면서 120만대 노트북을 무상지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넘치는 돈을 가지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 내전에 지원하면서 욕도 무진장 많이 먹는다. 그러고도 웃긴 건 아프리카 연맹 결성까지 주도하려고 한 점. 당근 어느 나라도 동참하지 않았음에도...트리폴리 거리를 지나면 카다피 사진에 아프리카 국기들을 배경으로 리비아가 아프리카 연맹 리더라고 홀로 생쇼를 하는 큼직한 광고판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죄다 없애버려서 볼 수 없을 듯.

6.1 식문화와 문화

사막성 지역이라 농사지을땅이 부족하고 그 동안의 남획으로 어업도 시원치 않다. 때문에 먹을 것을 거의 수입해온다. 그렇지만 먹을 걸 넘치게 수입하는지, 론리 플래닛 지은이 토니 휠러가 쓴 《나쁜 나라들》이란 책에 리비아로 여행간 영국 여작가의 충격적인 목격담이 실려있는데, 빵들을 하도 안 먹어서 거리에 버려져서 들개들이 포식하고 있더란다(...). 믿기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질문하니 무상으로 제공하는 빵인데 워낙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고 했다. 뒤늦게 정부도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다고 하여 소중한 먹을 것을 버리면 처벌한다고 엄포를 내리는 한편, 남아도는 먹을거리를 차드에게 지원하면서 일단 주변 나라와 관계개선에 힘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차드 여론의 반응은 차가운데, 차드 사람이 먹어도 이건 돌씹는 맛이라고 되려 차드에서 리비아 욕만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나.(…)

카다피가 비록 나란 황무지같아도 자원의 힘도 있거니와, 온갖 유적지 등 볼 것도 많은데 왜 한해 관광객이 10만명도 안되는가? 이웃 이집트만 해도 관광객이 해마다 평균 400만명이 넘고 튀니지도 200만명이 넘는데 우리가 뭐가 부족한가? 하여 1998년 영국 여행 관련 사업 전문가에게 한번에 10억원이 넘는 거액수표까지 줘가면서 자문을 얻었다. 그래서 그 전문가는 리비아로 와서 꾸준히 조사한 다음, 3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건의했다.

첫번째는 리비아를 오고가는 국제 항공노선을 더 늘려야 하며, 두번짼 술을 좀 자유롭게 해줄 것. 이집트는 아예 맥주를 직접 만들고(스텔라 맥주) 튀니지나 이집트나 술에 대하여 개방적이라 외국 관광객이라면 마실 곳이 꽤 많다. 마지막으로 입국을 더 자유롭게 해주면 된다[12]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난 2008년 그 전문가가 어디 얼마나 달라졌나 하여 리비아로 와봤더니, 이 가운데 딱 하나, 항공노선만 늘렸을 뿐 다른 건 전혀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카다피는 관광객이 안 온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다(...).그리고 이젠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다에시 전멸

론리 플래닛으로 유명한 토니 휠러는 여러번 리비아 여행을 하면서, 나중에 카다피에게 저 3가지 조언을 한 영국인 여행사업 전문가를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지적한 3가지에 하나를 더 덧붙여야 해요. 지지리도 맛없는 리비아 음식부터 어떻게 고치라고." 영국 요리는? 최소한 리비아 음식이 영국 요리보단 맛있어서 3가지 조언만 했나보지

그의 글에 의하면 주변 나라들 길거리 음식들도 환상적으로 맛있는데 리비아는 트리폴리 한복판 고급 레스토랑, 그것도 여러 곳에서 번갈아 사먹음에도 한끼에 20~30달러나 넘는 비싼 돈을 주고 사먹은 음식들 맛이 주변 튀니지나 모로코에서 사먹던 길거리 음식들, 하다못해 차드에서 사람들이 어렵게 먹는 음식 수준보다 못하다고 최악이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다만 한국 여행자들이 리비아에서 먹던 음식들이 생각보다 맛있다는 반응도 있기에 이건 사람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그러나 이젠 저기서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바로 불안정한 치안을 정국 안정으로 만드는 것. 지금 리비아는 여행금지국가다.[13]이쯤되면 여행이 문제가 아니지않나
물론 리비아 해안가 일대에는 고대 그리스, 페니키아나 카르타고, 로마가 남긴 문화유산 및 중근세 시대의 이슬람 사원유적들이 있긴 한데... 아직 전쟁 중이고[14] 무엇보다 여기도 여행금지에 속한 나라이기에 가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 중 절반은 오랜 내전으로 파괴되거나 훼손된 유적들이 심각하다.

한편 음식으로는 쿠스쿠스가 있으며, 이탈리아의 지배로 인한 영향이 있어서인지, 파스타 요리도 발달되었다고 한다.

6.2 스포츠

축구가 그나마 인기가 있긴 하나, 북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FIFA 월드컵에 한번도 못 나간 나라다. 그나마 가까웠던 때가 1986년의 예선. 이 때도 모로코에 1:0으로 이겼으나 1차전 때는 3:0으로 져서 못 나갔다. 이 나라의 축구 국대에 대한 자세한 건 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7 외교 관계

이집트 말고도 이웃 나라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이스라엘에게 그다지 반감을 보이지 않는 튀니지나 모로코는 물론, 에티오피아와는 종교적으로 사이가 안 좋았고, 역시 국경을 맞닿은 수단차드는 내전을 지원하면서 아주 원수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차드의 경제가 풍비박산나면서 사람들이 굶주리자 비웃듯이 리비아에선 버려진 빵이 많은데 그거라도 줄까? 약올리기까지 했다…그러나 정작 차드와 벌인 토요타 전쟁에선 차드군에게 압도적으로 패하면서 자존심에 금이 갔다. 아무래도 내전으로 전투 경험이 많은 군대가 유리했나 보다. 최근까지 이웃 나라들과 작은 분쟁에서 동네북급으로 당했다.(…)

7.1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도 은근히 여러번(1981년, 1989년) 공중전을 벌였다. 물론 미군 피해(톰캣)는 전무하고, 리비아 미그기와 수호이를 각각 2대씩, 4대가 격추당하면서 조종사 3명을 잃었다. 더불어 1986년에 미국이 벌인 폭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당연하지 쇼미더머니천조국인데

2012년 9월 11일, 무함마드를 모독한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에 분노한 뱅가지 시위자들의 로켓 공격으로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대한 미국은 대테러보안팀[15] 50명과 알레이버크급 이지스함 2척을 출동시켰다. 영어기사 하지만 무슬림의 순진함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예멘, 이란, 수단, 모로코,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비록 인구 20% 이하지만 이슬람이 다수인 지역이 따로 있기에) 기타 이슬람권 국가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리비아만 족칠 수도 없게 되었다.

7.2 이집트와의 관계

이 두 나란 오래전부터 국경 문제로 허구한 날 치고받았다. 그리고 1977년에는 아예 국경에 위치한 이집트 군대에 폭격까지 감행했으나, 이집트군의 반격으로 되려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리비아군은 전투기 20대 이상, 전차 10여대를 잃고 100여명의 전사자를 낸 반면에, 이집트군은 전투기 6대, 전차 2대를 잃고 20명 남짓한 전사자를 내면서 4차 중동전 초반 이스라엘을 뭉갠게 운빨이 아님을 증명했다.[16]

7.3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1978년에 영사급으로 수교했다가 2년 후인 1980년에 대사급으로 격상되었으며 북한과는 1974년에 수교하였다.과연 유유상종 아래의 사건들로 인해 빡친카다피에 의해 대사관이 대표부로 격하되었으나, 리비아 내전이 시민군의 승리로 끝난 뒤 다시 대사관으로 격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리비아 대수로 건설에 나서면서 국민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17] 이후 다시 잊혀졌다.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아프리카 무역에 있어서 6위의 수출 대상국이었다.(4억 6,000만 달러 수출) 의외로 한류 열풍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빅뱅은 거기서도 유명하다고. 심지어 스피드왕 번개까지도 방송되었다고 한다.

대수로 건설 붐 당시엔 대한항공이 취항했었다. 여담으로 대한항공이 리비아 취항 당시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가 났었는데, 현대건설 전무 김윤규(이후 현대아산 부회장까지 오른다.)가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을 파르르 떠는 버릇이 생겼다.

한편 한국에도 리비아인들이 꽤 거주하는데 대표적인 연예인인 아미라가 있다.[18]

7.3.1 리비아 한국 스파이 사건

앞서 말한대로 한류 열풍도 있었지만, 자원은 많으나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이 2가지는 절대적인 골칫거리였다. 그런 골칫거리 중 하나를 해결한 것이 1980년대 한국 동아건설이 공사하여 이뤄낸 지하수 공사였다. 아주 물이 넘쳐날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난 시간과 공사 끝에 꽤 해낸 이 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많았다. 당시 리비아 여론도 환호했고, 오죽하면 당시 동아건설 회장이 카다피를 카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지냈으며, 카다피가 서투른 한국어로 동아건설 회장을 "헤잔님"(회장님)이라고도 불렀을 정도였다.

이렇게 한국에 대하여 긍정적인 여론은 2010년 7월경에 한국의 개신교 목사가 선교하다가 잡히는 사건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 한국 대사관 상주직원 3명도 철수하고 현지 공사에 필요한 인원도 보내지 못하는 등 그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

일개 목사 1명이 범법 행위를 저지른 거치고는 리비아의 대응이 너무 과한지라[19] 외교계 일각에서는 무언가 더 큰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줄곧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알고보니 한국 외교관간첩행위로 인해 국교가 파탄난 것이었고 외교당국이 이것을 은폐, 축소했다가 때마침 불법선교의혹을 사던 목사가 추방당한 것을 언론에서 아무 의심없이 불법선교행위로 국교가 파탄난 것으로 보도해버린 것(...). 이미 아랍 측 언론에는 이 일을 대서특필하고 있었고 현재는 이 간첩행위가 단지 한국의 국익을 위한 정보수집행위였나 아니면 다른 나라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조사중이라고 한다. 관련기사

체포된 목사가 불법선교를 한 적 없으며 그저 리비아 대학에서 아랍관련 학문을 공부하던 중 외교적 구실 마련을 위해 체포당했다는 주장도 있고, 실은 목사가 국정원 스파이라는 설까지 있다.

리비아 측에서는 국정원이 카다피의 차기 후계자 정보를 수집[20]하다 체포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에선 그저 기업활동을 위한 통상적 업무수행이었다고 해명하자 이제는 한국 국적의 기업인들도 첩보 작전에 참여한 거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카다피는 이 사건 이후 한국과 외교를 끊는 것도 불사하겠단 입장이라서 리비아에 나가 있는 건설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참여한 건 맞긴 한데 참 입장이 애매하다. 왜냐면 통역을 했기 때문이다. 왜 통역했냐면 국정원 요원이 아랍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아랍어 수요는 대폭발인데 가르치는 곳은 한손에도 안 들어가고, 아랍어 능력자들은 상대적으로 연봉 적고 이런저런 조건에 시달리는 직업들을 기피하기 때문.

게다가 리비아는 한국의 외교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에 속한다. 앞서 언급했듯 리비아와의 교류로 얻는 경제적 이득도 큰 편이며 전체적인 영향력에서 북아프리카에서 리비아를 능가할 만한 나라는 이집트 정도를 제외하면 없기 때문. 게다가 리비아는 미국이나 한국이 적대하는 나라들과도 꽤 친하게 노는 편이라 이곳에서 정보를 얻어가는 게 많았다. 국정원 니들이 코렁탕 마셔라.

그런 가운데 리비아 주간지의 기사를 바탕으로 내보낸 KBS의 보도가 또 파문을 일으켰다. KBS는 리비아 주간지를 인용해서 한국 정부가 스파이 행위를 했음을 시인했으며 사죄의 의미로 리비아가 한국에게 10억 달러(1조 2천억원)에 해당되는 것을 내놓지 않을 경우 리비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는 것. 일부에서는 10억 달러짜리 공사를 공짜로 해주라고 요구한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에 외교부는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외교부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 그리고 10억 달러에 대한 것을 부정한 바로 다음날, 리비아에게 10억달러치의 경제 지원을 검토중이란 말이 올라왔다.

그런데 어차피 카다피 정권이 작살났으니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8 상징물

8.1 국기


현 리비아의 국기. 리비아 내전으로 리비아 공화국이 정권을 잡기 전의 지배자인 카다피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전복한 리비아 왕국의 국기를 다시 내건것이다. 하지만 굳이 '왕국'의 국기라서 내건 것(왕정복고)이 아니고 카다피가 집권한 42년을 부정하는 의미이다.[21] 이는 같은 시기에 시위 중인 시리아에서도 나타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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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그리기 쉬웠던 카다피 정권 시기의 리비아 국기. 그릴 필요도 없이 초록색 천을 네모반듯하게 쓱싹 잘라놓으면 되었지만 이 국기는 초원의 푸르름과 이슬람 교리의 성스러움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실은 카다피가 쿠데타로 집권한 초기에는 왕정시대 국기를 없애버린 후 적, 백, 흑의 가로 삼색기를 제정해 쓰다가(예멘 국기와 비슷하나 가로세로 비가 2:1이었다.) 1972년 이후 이집트, 시리아와 아랍 공화국 연방을 결성해서 이집트와 색깔, 문장이 똑같은 국기를 썼다. 그러나 4차 중동전쟁(1973) 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화해하려는 것에 격분해 이집트와 절교하고 연방해체 크리를 맞으며 아예 국기를 녹색으로 떡칠한 국기로 바꾼 것. 그러나 현재는 2011년에 망한 자마하리야 잔존세력들, 카다피 추종세력들만 녹색 국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시민군이 저 앞의 국기로 다시 바꾸어 놓얐다.

9 창작물에서의 리비아

로버트 제멕키스 감독의 80년대 명작영화 백 투 더 퓨쳐에서는 작중 등장하는 테러리스트의 국적이 이곳으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이에 화가 난 카다피가 직접 수입금지령을 내렸다는 일화가 있다.몇년 후 자기가 테러리스트가 될 줄은 몰랐겠지 35년만 더 뒤에 만들었으면 이라크가 되었을것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에서는 소련군으로 참전. 데몰리션 트럭이라는 막강한 핵트럭을 특수유닛으로 지니고 있다. 데몰리션 트럭이 본진 가까이에서 터지는 순간 헬게이트가 열린다. 철의 장막을 씌운다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곳을 주제로 한 TPS 게임인 글로벌 옵스: 코만도 리비아라는 게임이 있는데, 메타스코어 37점을 맞은 것 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걸출한 쓰레기 게임이다.(...)

리비아의 게롤트와는 상관이 없다.[22]
  1. 전 지역
  2. #
  3. 교육받은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며 예전에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아서 노인층 등에서는 이탈리아어 사용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4. 고대 그리스 여신의 이름 중 하나였다고 한다.
  5. 식민지, 인종은 달랐고 지배 민족인 카르타고인과 리비아인 첩들간의 혼혈이 카르타고 군사력의 중추였다고 알려져있다.
  6. 원래는 카르타고의 도시였으나 로마제국에 편입되었다 이 도시의 유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북아프리카 최대의 로마 유적지로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7. 실제로 트리폴리타니아는 모로코계 베르베르인들의 통치를 받아서 베르베르인들의 문화와 비슷하기도 하며, 키레나이카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아 이집트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8. 다만 1711년 트리폴리타니아에 잠시 카라만리 왕조가 들어서기도 했다. 이 왕조를 중심으로 리비아를 구성하는 세 지역들이 서서히 통합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835년에 오스만이 리비아 지역을 되찾긴 했지만.
  9. 물론 리비아같이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는 실제론 위관이라 해도 장관급의 지위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으므로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다.
  10. 덕분에 지루함과 짜증남에 바쁜 일정까지 겹친 참석자들은 하나 둘 회의장을 떠났고, 결국 다음 연설자는 휑하니 비어버린 회의장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그게 누군지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 항목 참조. 참고로 카다피의 통역은 중간에 실신(...)해서 새로운 통역으로 교체 되었다.
  11. 똑같이 다에시와 전쟁 중인 시리아와 달리 다에시가 점령하던 영토들도 빠르게 탈환해나가며 전세를 거의 뒤집는데 성공 했고 교육 수준이 높은데다 석유 이외의 산업 기반과 인프라도 제법 갖추어진 편이라 언제든지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
  12. 이 전문가가 리비아에 입국할 때, 공항측은 "홀로 입국은 안되며 기본 4명이 한번에 들어와 입국료를 내야한다"고 배짱을 부렸다.
  13. 사실 리비아 내전이 종식되고 한국에서는 2011년 12월 14일 이후에 여행금지가 해제되었으나 대신 여행제한으로 낮추었고 왠만하면 안 가는 게 좋다며 여행을 말렸다. 2012년, 2013년, 2014년(7월 30일 이전)까지는 여행이 가능했어도 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데다가 여전히 치안도 안 좋았다. 결국 2014년 5월 이후 본격적으로 내전이 한번 더 일어나면서 한국은 7월 30일에 여행금지를 다시 지정하게되었다. 물론 2015년 12월 통합정부 구성에 서명했지만 내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며, 여러 지역의 내분이 해결되거나 다에쉬 잔당세력들을 마저 토벌하지 않는 한 여행하는 것 자체가 쉽다고는 볼 수 없다.
  14. 다만 다른 여행금지국가와는 달리 정부통합이 통과되었다.
  15. FAST로 불리는 미 해군/해병대의 대테러대응조직으로, 테러위협이 있는 지역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주임무이다. 일반적인 대테러부대와는 달리, 공격적으로 운용되는 조직은 아니다.
  16. 리비아가 답이 없을 정도로 약했다고도 볼 수가 있는 게, 리비아는 무력으로 재미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토요타 전쟁에서는 지는 걸 생각하기도 어려운 약체인 차드군에게도 탈탈탈 털렸고, 미군의 엘도라도 협곡 작전에 본진을 푹 찔리기도 했다. 그리고, 미 해군 항모전단에 얼씬거릴 정도의 적이 별로 없어서 몇 대 안되는 톰캣의 격추전과는 대부분 리비아군을 상대로 올린 것이었다. 21세기가 되어도 리비아군의 막장성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아서, 리비아 내전에서도 카다피측과 시민군측이 나란히 졸전을 벌이며 6개월간 난장판병림픽을 벌였다.
  17. 신화창조의 비밀에서는 1차 대수로공사 이후 진행된 119 프로젝트편을 방영하기도 하였다.
  18. 2014년 10월에 방영했던 헬로 이방인에도 나왔으며, 지금도 몇몇 프로그램에 가끔씩 출현한다.
  19. 리비아의 대한민국 건설 수주량은 5위권에 들 정도로 나름대로 상당히 각별한 관계다.
  20. 전제 왕권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 후계자 문제에 얼마나 예민한지는 한반도 북쪽의 예에서 보듯 엄청나게 민감한 사안이다.
  21. 조선 말기에 탄생한 태극기가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국기로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2. 이쪽 리비아 스펠링은 rivi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