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소

만인소는 조선의 공론정신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792년 노론관료 유성환이 왕의 주색잡기에 빠졌다는 내용으로 상소했다. 하지만 이때 임금은 자기 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했던 정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트집잡기에 발분한 영남 지방 유생들이 집단상소를 올렸고 그게 바로 만인소다. 만인소에는 유성환의 처벌과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노론관료에 대한 처벌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유생의 상소는 성균관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정조에게 전달되지 않자 안동 관료를 포섭해 임금에게 직접 알린다. 정조는 유생들을 맞아들였고 유생의 상소가 임금에게 직접 전달되도록 했다. 여기서 진짜 무서운 것은 '만인소'라는 이름 그대로 상소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가 만 명이 넘는다. 정확히는 1만 57명. 사실 집단상소는 이전에도 있었고( 1565년 백인소, 1666년 천인소) 그 전통이 만인소의 바탕이 된 것이라고 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