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지교

1 고사성어

고사성어
맏 맹어미 모석 삼옮길 천어조사 지가르칠 교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번 이사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야기. 전한 때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列女傳)에 등장한다. 삼천번 다닌게 아니다

맹자의 집이 가난해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처음에 상가집 근처에 가니 상여 흉내만 내고, 다음에 시장 근처에 가니 장사치 흉내만 내서, 결국에는 얻어먹을 것이 없더라도 서당 근처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해서 서당 근처로 보냈더니 공부를 했더라는 유래의 고사성어다.

맹자 어머니의 가르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맹모단기지교로 이어졌다.

국내에는 제목만 패러디한 맹부삼천지교라는 영화도 있다. 여기서는 아버지의 눈물 겨운 강남 분투기를 그려냈다.

소수의견이긴 한데, 처음 상가집 근처에 산 것은 생사개념을 깨우치게 하기 위함이고 시장 근처에서 산 건 경제감각을 심어주기 위함으로 그것들이 완료된 후에 서당 근처에서 삶으로서 학문을 배우게 한 지혜로움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진정한 교훈이란 의견도 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별로 없다. 원래 열녀전이 쓰여진 시기는 맹자의 시대보다 몇백년이나 뒤이며, 그 사이의 기록에는 딱히 비슷한 일화가 나오지 않는다. 춘추전국시대의 문헌에는 이런 이야기가 거의 보이지 않으며, 그저 세간에 떠도는 전설이거나 유향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학문 경력에 대해서 '사숙(私淑, 사적으로 혼자 배웠다)했다'고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일화에 나오는 문화는 춘추전국시대 보다는 전한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유가에서 장례식을 흉내내는 것은 딱히 이상하거나 해괴할 것이 없다. 원래 춘추전국시대의 유가의 사회적 업무는 "관혼상제의 전문가"였다. 오히려 공자에는 이런 관혼상제 의식을 어릴때부터 흉내내서 놀이로 삼았으니 그야말로 '예'를 아는 성인 다운 일이었다는 식의 일화가 전해진다. 심지어 공자는 자신이 어릴 때는 천해서 여러가지 재주를 가졌다.(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기술을 많이 알고 있다)는 발언도 했다.

또한, 우리는 맹모삼천지교만 기억하고 '맹모단기(孟母斷機)'는 기억하지 못한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맹모삼천지교 후에 서당에 다니면서 먼치킨 파워를 키워가던 맹자가 십대 중후반 즈음에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 이제 공부 재미없다고 때려치겠다고 하자, 그의 어머니가 한참짜던 비단을 다 잘라내며 "이렇게 다 돼가던 비단도 끊어버리면 소용없다"면서 맹자에게 충격요법을 시전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2 변형된 의미

1에서 파생되어 현대에는 인천이라던가 인천이라던가 인천 같은 열악한 학군의 학부모가 교육을 위해 근처에 나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위장전입을 시도하여 자녀를 전학시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보통은 초등학생 때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지원할 때 지역제한을 우회하기 위해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용법은 긍정적인 의미로 일부 사용되기는 하지만 조롱의 뉘앙스가 강하다. 정치인, 특히 국무위원 후보자의 자녀 전학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 전력이 발각되었을 때 특히 그렇다.

물론 교육에 주변환경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변환경을 맹신하는 듯한 이 같은 무리수는 '맹모삼천지교'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영향을 부정하기 어렵다. 정작 자식이 "나는 맹자같은 철학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하면 갈구는게 함정

3 기타

만화가 윤서인이 트위터에 '맹모는 자식교육을 위해 삼천번이나 이사를 했다니 포장이사 서비스 모델로는 역시 맹자엄마가 제격인듯'이라고 썼다가 개망신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윤서인 논란 항목 참조. 참고로 삼천의 천은 '일천 천(千)'이 아니라 '옮길 천(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