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카

동명의 앨범에 대해서는 Metallica(앨범) 문서를,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등장하는 스탠드에 대해서는 메탈리카(죠죠의 기묘한 모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문서가 있는 외국의 Thrash Metal 밴드
Big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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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y Big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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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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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왼쪽부터 제임스 헷필드, 깨알같이 모터헤드 셔츠를 입고있는 론 맥거브니, 라스 울리히, 데이브 머스테인.1982년. 왼쪽부터 故 클리프 버튼, 데이브 머스테인, 라스 울리히, 제임스 헷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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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왼쪽부터 故 클리프 버튼, 커크 해밋, 라스 울리히, 제임스 헷필드.1990년. 왼쪽부터 제이슨 뉴스테드, 제임스 헷필드, 라스 울리히, 커크 해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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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왼쪽부터 로버트 트루히요, 제임스 헷필드, 커크 해밋, 앞쪽의 라스 울리히.

1 개요

80년대 헤비메탈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1]

미국록밴드. 2016년 현재까지 정규앨범 9장을 발매하며 그래미 어워드를 8번 수상했고 2003년에는 'MTV Icon'에 선정되어 출연하였다. 2009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커리어 통산 1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밴드이다.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50줄을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의 패기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야말로 명실상부 최정상급 밴드다.

밴드명 작명 일화가 두 가지 있었다. 유력한 것은 라스 울리히의 설. 밴드가 결성되기 이전 라스 울리히가 어느 친구와 서로 메탈 밴드 이름 짓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때 그 친구가 지어낸 이름이 메탈리카였고 한순간 그 이름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라스가 "그 이름은 별로"라고 하고 다른 밴드명을 정하게 한 후, 자신이 메탈리카라는 밴드명을 가져갔다는 설이다. 페이크 앤 스틸! 두번째는 제임스의 설. 친한 친구가 메탈 전문 잡지명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제임스가 훔쳤다고 한다.둘다 도둑질

사실은 위의 두 가지 설이 섞인 것으로 밝혀졌다. 메탈리카 멤버들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Killing Time>[2]에 따르면 라스가 친구의 헤비메탈 매거진 이름을 같이 고민하면서 지극히 덴마크인스러운 괴악한 이름들을 내놓았고, 그 친구는 Metallica라는 이름을 후보에 올린다. 라스는 잠깐의 머리회전을 거쳐 Metal Mania라는 이름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친구를 설득하고 결국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는 몇년 후 전미를 강타한 메탈밴드 Metallica에 라스가 드러머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멍때렸다고.

2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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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1984
1986
1988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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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Em All
Ride The Lightning
Master of Puppets
...And Justice For All
Metallica
1996
1997
2003
20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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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ad
Re load
St. Anger
Death Magnetic
Hardwired... to Self-Destruct

※ 앨범아트를 클릭하여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 정규 앨범 (괄호안의 판매량은 미국내의 판매량만 개재)
    • 1집 - Kill 'Em All (1983) 미국 내 3백만장 판매 (1999년에 RIAA 인증 3x Platinum을 달성)
    • 2집 - Ride The Lightning (1984) 미국 내 5백만장 판매 (1990년 닐슨 사운드 스캔 도입 이후 판매량은 430만장. RIAA 인증 5x Platinum)
    • 3집 - Master of Puppets (1986) 미국 내 6백만장 판매 (1990년 닐슨 사운드 스캔 도입 이후 판매량은 450만장. RIAA 인증 6x Platinum)
    • 4집 - ...And Justice For All (1988) 미국 내 8백만장 판매 (1990년 닐슨 사운드 스캔 도입 이후 판매량은 5백만장. RIAA 인증 8x Platinum). 스래시메탈 밴드로서 메탈리카 팬들은 이 앨범을 끝으로 더 이상 메탈리카 음악을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 5집 - Metallica (앨범 자켓이 검은 색이라 'The Black Album' 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1991) 미국 내 1천6백만장 판매. RIAA 인증 16x Platinum이자 다이아몬드. 대부분의 팬들이 여기까지는 괜찮게 본다. Load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호평이 지배했었다.
    • 6집 - Load (1996) 미국 내 5백만장 판매 (RIAA 인증 5x Platium)
    • 7집 - Reload (1997) 미국 내 4백만장 판매 (RIAA 인증 4x Platinum}
    • 8집 - St. Anger (2003) 미국 내 2백만장 판매 (RIAA 인증 2x Platinum)
    • 9집 - Death Magnetic (2008) 미국 내 2백만장 판매 (RIAA 인증 2x Platinum)
    • 10집 - Hardwired... to Self-Destruct (2016)
  • 비정규 앨범
    • 1987년 The $5.98 E.P.: Garage Days Re-Revisited[3]
    • 1998년 Garage Inc.[4][5]
    • 2011년 Beyond Magnetic[6]
  • 라이브 앨범 및 비디오
    • 1987년 Cliff 'Em All[7]
    • 1993년 Live Shit: Binge & Purge[8]
    • 1998년 Cunning Stunts
    • 1999년 S & M[9]
    • 2009년 Français Pour une Nuit[10]
    • 2009년 Orgullo, Pasión y Gloria: Tres Noches en la Ciudad de México
    • 2010년 The Big 4 Live from Sofia, Bulgaria[11]
    • 2012년 Quebec Magnetic[12]

3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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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5134.jpg
1982년 데뷔 당시의 데모앨범부터 5집까지 사용한 팀 로고. 삐죽빼죽 제멋대로인 느낌을 살려 스래쉬 메탈 밴드 로고의 정석으로 꼽힌다.
초기에는 위의 로고를 썼고, 2집 쯤 이후로 아래의 3D화 된 로고또한 쓰였다.
아무래도 메탈리카의 전성기 시절 로고이다 보니 요즘 들어서도 메탈리카 상품 등에서 쓰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M과 A가 완전한 대칭을 이루지 못한다. 으아 강박증

vinyl-decal-sticker-13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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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부터 8집 활동 전까지 사용한 로고다. 뭉툭하고 말쑥한 폰트를 쓰며 얼트 & 하드 서던 록으로 전향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로고다.
또한 이전 로고의 M자 4개를 배치하여 만든 마크를 함께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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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집 활동시기동안 사용한 로고다. '00년대 초반 하드코어 펑크 기반의 뉴메탈의 느낌이 반영되었으며 원년 로고처럼 공격적인 느낌을 살리긴 했으나 앨범이 흑역사(...)가 되며 공식 로고로는 사실상 최단명했다.

metallicalogo1truelogoblogspotcom.png

2008년도 9집부터 사용중인 로고다. 원년 로고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약간 다듬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얼트고 서던 록이고 뉴메탈이고 뭐고 가장 잘나갔던 시절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보인다. 중간에 A와 C의 자형이 신경쓰이는 사람이 몇 명 있을 거다.

파일:Met4.jpg

10집 Hardwired... To self-destruct 활동을 하면서 사용하는 로고이다.

4 멤버

4.1 현재 멤버

4.1.1 제임스 헷필드

James Hetfield. 해당 항목 참조.

4.1.2 커크 해밋

Kirk Hammett. 해당 항목 참조.

4.1.3 로버트 트루히요

파일:Robert+Trujillo+Metallica+Concert+dnK14 OJbchl.jpg

윈스턴

Robert Trujilo. '로버트 트루히요'라고 읽는다.
위는 예명이고 본명은 로베르토 아구스틴 미겔 산티아고 사무엘 트루히요 베라크루스(Roberto Agustín Miguel Santiago Samuel Trujillo Veracruz)이다. 왜이리 미들네임이 기냐???

오지 오스본[13] 등 여러 밴드를 거친 베이시스트. 2001년 제이슨 뉴스테드가 탈퇴하면서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임시변통으로 프로듀서인 밥 록이 8집 녹음과정에서 베이스를 잡았다. 이 앨범의 녹음이 거의 완료된 2003년경 로버트는 오디션을 통해 메탈리카의 4대 베이시스트를 맡게 된다.

오디션 당시 기존 멤버들[14]은 '클리프 버튼이 지금 경쟁한다 해도 뽑히기 힘들 정도', '참가자 중 연주에 가장 여유가 있었다(라스)', '연주하면서 우리와 호흡이 잘 맞았고, 클리프 이후로 그런 핑거 피킹은 처음 봤다(커크)', '핑거 피킹이 무슨 피크 연주 같다(제임스)'는 등 칭찬 일색.2분 57초부터 라스와 커크의 코멘트. 오디션 곡은 그가 직접 고른 Battery. 메탈리카의 수많은 스래시 넘버 중에서도 가장 빠르고 격렬하기로 손에 꼽는 곡을 완벽히 연주해냈다. 특히 For Whom The Bell Tolls에서 다른 후보들이 아마추어로 보일 만큼 엄청난 기량을 선보였는데, 메탈리카 특유의 중후함과 조합이 맞으면서도 기타 소리를 잡아먹을 듯한 연주로 멤버들을 뻑가게 만들었다.[15]

기본적인 연주 스타일은 핑거 피킹. 메탈리카의 거의 모든 곡을 묵직하게 소화해내며 강한 근력과 변태 같이 파워풀한 험버커 픽업이 더해져 피킹에 맞먹는 헤비한 느낌을 낸다. 그리고 메탈리카에서는 그런 곡이 적어 짧은 솔로로 간혹 맛만 보여주지만 슬랩 연주도 달인의 경지이다.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매우 그루브 있는 연주도 들려준다. Infectious Grooves 시절 노래를 들어보면 슬랩핑의 모습을 볼수 있다. 제이슨 뉴스테드가 베이스를 맡던 시절 스타일이 맞지 않아 그냥 제이슨이 싫었던 사실상 영구봉인되어있던 명 연주곡 Orion을 부활시킨 계기가 된 연주자이기도 해서 영입 후 짧은 시간에 팬들에게 좋은 눈도장을 팍팍 찍으며 고정 멤버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2006년 내한공연에서 보여준 트루히요의 Orion 연주는 백미.[16]

연주 스타일과는 별개로 비주얼과 퍼포먼스가 굉장히 유니크(...)하다. 우선 우락부락하고 그을린 얼굴과 길고 다부진 팔,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허벅지, 수염과 긴 머리를 다 조합해 한 마디로 퉁치자면 유인원. 후술하는 바와 같이 퍼포먼스 또한 외모에 수렴해서(...) 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릴라같다고 놀린다. 유튜브에 업로드 된 2006년 서울 공연 영상 댓글 중에는 "저 베이스 든 유인원은 누구냐"는 댓글도 달리곤 한다. 험상궂어보이는 외모와 달리 멤버들끼리 찍은 영상을 보면 잘 웃으며 아주 재미있고 대인배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퍼포먼스 이야기를 하자면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베이스가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스트랩을 길게 늘어뜨리고 무릎을 굽혀 반쯤 웅크린 채로 연주하는데, 심지어 'For Whom the Bell Tolls' 등 미디움 템포 메탈을 연주할 때는 무릎을 구부린 채로 점프하거나 쪼그린 채로 오리걸음(...)을 하기도 하는 등 기행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밥 먹듯 펼친다보다보면 침팬지같다. 잠깐 보기에는 웃길 뿐이지만 이 짓을 두시간 반씩 해낸다는 점에서 이 양반의 다리와 허리 근력을 짐작해볼만도 하다. 변강쇠 또한 오만상을 찌푸리며 연주하는 통에 유인원스러움(...)이 극대화되는 편. 무대 의상은 주로 농구 저지에 반바지, 종아리까지 올려신은 양말과 운동화(또는 슬리퍼). 패션 테러 5집 이후로 주로 검고 스키니한 의상에 구두를 신는 다른 멤버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튄다.

기타도 잘 친다. 통기타 하나로 즉석에서 플라멩코 리프를 만드는데 제임스가 그걸 보고 뻑간다. 뒤늦게 그 자리에 들어온 커크는 그걸 듣고 딴다고 매의 눈을 하고 있었다(...) 기타리스트들이 베이시스트한테 기타를 배우는 안습의 상황. 생계걱정을 해야겠는걸.

다만 박력있는 핑거 피킹에 어울리지 않게 백업 보컬로서의 역량은 제이슨 뉴스테드의 빈 자리를 완벽히 채우지 못한다는 평. 제임스 헷필드의 목이 맛이 가는 와중에도 뉴스테드가 메탈리카 소속으로서 말년까지 혼자 대악마스러운 성량의 그로울링을 뽐내며 고군분투 한 것에 비해 트루히요는 목을 긁는 톤을 제대로 내지 못해 두 멤버는 상당히 자주 비교된다. 메탈 밴드 보컬이라기 보다는 밝은 분위기의 힙합 크루의 하울링에 가까운 음색. 알콜 중독과 거듭된 공연으로 일찍 목이 가버린 헷필드가 제대로 된 성량을 선보이지 못하는 와중에 백업 보컬로서 뉴스테드와 색채가 확연히 다른 트루히요가 영입되면서 메탈리카의 전체적 보컬 출력이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에 이견이 없는 편. 제이슨이 제임스와 자웅을 겨루듯 마이크 볼륨을 한껏 높였던 과거에 비해 트루히요의 배킹 보컬은 곡을 대충 듣다보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볼륨이 낮게 설정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일단 유튜브에서 Creeping Death나 Fuel의 서울 라이브를 봐보자 이 양반 생각난다 장르가 다르잖아 얘네 장르파괴자 아니었나

여담으로 제임스 헷필드가 원형탈모, 라스 울리히가 앞머리 후퇴, 커크 해밋이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숱이 줄어가며 가늘고 희끗희끗해지는 등 젊은 시절의 머리를 잃어가는 것에 비해 로버트 트루히요는 혼자 검고 풍성한 장발을 자랑하고 있다. 메탈리카의 자존심을 담당한다!

4.1.4 라스 울리히

Lars Ulrich. 출생지인 덴마크 발음으로는 라스 울래그, 주 활동지인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라즈 얼리크[17], 동명이인이 가장 많은 독일식으로는 라스 울리히라고 발음한다. 전세계에 흔해빠진 게르만-노르딕 계열 이름 중 하나로 발음에 별로 일관성이 없으며 동아시아권에서는 주로 독일식으로 읽는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라스 울리히는 메탈리카 초중기때 비주얼 담당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멤버들중 가장 잘생긴 편이였다(...)

프로 메탈 드러머 중에서 가장 연주력이 부족한 드러머로 데뷔시절부터 꾸준히 까이는 멤버. 특히 드러머로서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독학 위주로 성장해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점이 매우 치명적인 부분이다. [18] 꼴리는 대로 연습해왔기 때문에 나름 멜로디에 대한 이해가 돋보인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리듬'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 치명타. 그러면서도 메탈리카의 곡 상당수가 멜로디보다는 리프를 리드하는 파워 드러밍에 맞춰져 있어 약점이 두드러져 보이는 측면이 매우 크다. 오죽하면 5집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프로듀서인 밥 록이 라스가 박자를 잘 못 맞춰서(...) 메트로놈을 놔두고 계속 연습을 시켰다는 일화가 유명하다.[19] 데뷔 10년 차 연습생 1980년대와 90년대 영상을 보면 템포가 어긋나는 부분에서 어떻게는 자신의 포지션인 리듬 기타로 매꿔보려고 제임스는 숨이 넘어간다. 링크 추가 바람.[20]

그가 플레이한 기타 히어로 드럼 영상[21]은 아직까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궁금하면 유튜브에 영상이 있다.테이크 1에서 5까지 인트로에서 계속 실패하는 건 기본이요, 테이크 6에서 쉴 새 없이 두드렸는데도 결과는 Failed, Try Again. 심지어 바탕곡은 4집의 The Shortest Straw(...) 개빠르거나 어려운 곡도 아닌데 자기 곡의 박자를 못맞추는 건 좀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요즘은 차이나 심벌을 너무 많이 써서 난잡하다고 까인다.

자기의 우상인 모터헤드의 레미 킬미스터를 초청해 모터헤드의 곡을 공연을 했었다. 연습 때 제임스가 "저희 어때요, 모터헤드 멤버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장난식으로 물어봣는데, 레미가 가차없이 "드러머 빼고 다 좋아"라고 정면에서 까였다(...) 그러면 베이스가 두명이니까 더블 베이스다. 좋았어. 이봐 잠깐

젊은 시절에는 딸리는 박자감을 정신 나간 듯한 고속 난타와 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파워풀한 연주[22]로 커버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연주 속도나 더블 베이스를 연타할 힘이 줄면서 전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그나마 그런 기량마저 급격히 하락했다. 전성기 당시 배터리 라이브와 지금의 배터리 라이브 속도를 비교하면 템포도 더 느려지고 라스가 연주할 노트도 엄청나게 줄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더블 베이스 연타가 오래 들어가는 곡들은 라이브 셋리스트에 거의 안 넣는다. 심지어 멀쩡한 곡에서 더블 베이스 연타를 빼버리기도 한다. 무슨 지거리야!!! 슬레이어데이브 롬바르도와 비교하자면 안습... 하긴 옛날부터 데이브랑 비교하긴 좀 그랬었다(...). 메탈리카가 슬레이어 3집의 Raining Blood를 커버해 연주할 때 라스는 드럼 파트의 45%를 생략해 지금 내가 슬레이어의 곡을 듣는 건지 메탈리카 신곡을 듣는 건지 헷갈리게 할 정도.신성 모독이다[23] 결국 젊은 시절에는 자기 마음대로 드럼을 패느라 제대로된 연습을 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자기의 인기에 취해 연습하지 않았고 이제는 나이먹어 연습할 생각도 안하는 꼴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메탈리카가 90년대 이후에 보여주고 있는 방향성이라고 변명을 하기도 한다.[24] 기량(?)이 떨어지기 한참 이전인 90년대 중반부터 메탈리카는 얼터너티브와 서던 록을 결합한 음악을 시도했는데, 이때는 때려부수는 듯이 난타하며 '우리 노래는 난폭하다'라고 외치는 듯한 1차원적인 공격적 넘버들을 버리고 '80년대식 스피드 메탈이 아니어도 우리는 여전히 헤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 곡들을 전면 배치했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탐탐을 6~7개씩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야성적인 드럼 셋이 단 몇 년만에 대폭 간소화되었고 적은 숫자의 악기들로도 상당히 괜찮은 연주를 보여주었다.[25] 다만 다시 진면목을 보여줘야 할 9집 이후의 행보에서 80년대 스타일의 연주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한 처참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는데, 그냥 단순히 90년대부터 갈수록 기량이 떨어지는 거라고 비판해도 쉴드쳐 줄 개인팬이 없어 라이브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죽도록 까이고 있다. 다른 프로 드러머와 비교하여 작곡, 작사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겠지만 드러밍 테크닉적으로 프로라는 말을 붙여주는 것은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드러머에게 실례될 수준으로 기량향상이 없다. 메탈리카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라스의 라이브 드럼소리를 싫어하여 공연장을 찾지 않거나 라이브 앨범을 구입하지 않는 해외 메탈리카 팬도 상당하다.

뿐만 아니라 앨범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작곡 면에서도 리스너들에게 거세게 난타당하고 있다. 제임스와 함께 대부분의 작곡을 맡고 있는데 자꾸 3집 시절의 영광을 돌이키고 싶은지(...) 혼자 대곡을 만드는 데에 집착해서 8집 이후 메탈리카 앨범의 밸런스를 못 맞추고 있다.[26] 별다른 리프 전환이나 변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곡들마다 무차별적으로 평균 6~8분 분량으로 잡아늘려놓는 바람에 집중도와 퀄리티가 떨어지는 동시에 라디오에서 틀 수 없는 분량의 곡들이 되어버리는 등 앨범 흥행이나 홍보 등 여러 방면에서 애매해지게 하는 원흉.

이런저런 비판이 있지만, 특유의 스타일이 메탈리카의 음악을 규정짓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데, 작곡가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어쨌든 라스는 모터헤드의 전 드러머 필 테일러의 영향을 받아 스래쉬 메탈 드러밍의 개척자 중 하나일 뿐 아니라, 그의 엇박을 활용한 리듬과, 참신한 변박을 활용한 연주, 다른 스래쉬 메탈 밴드들과 차별화되는 멜로디에 좀 더 비중을 둔 곡의 구성[27]은 인정할만 한 부분이다. 드러머의 실력과 안정감은 라이브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28]기에 이제 새 드러머를 구해야하지 않을까라고 팬들은 생각하지만 그래도 메탈리카스러운 드러머를 구하는 건 쉽지 않고, 또 라스의 엉성한 드러밍도 이젠 적응이 된 팬들이 많은 지라... 그러니까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고 연습도 하세요...

일본의 헤비메탈 밴드 VOW WOW극렬한 빠돌이로도 유명하다. 데뷔 전부터 공연장도 찾으며, VOW WOW가 낸 전 앨범을 모두 다 소장하고 있다.

라스 울리히는 대단한 순수미술 애호가이며 음악가인 부친 토벤 울리히 덕에 색소폰 연주자 덱스터 고든대부(가톨릭)로 두었다. 그래서 드럼 연주 역시 일반적인 스래쉬 메탈들에 비해 멜로디와의 적절한 밸런스를 따르고 있다. 본인은 당시에 삭막했던 덴마크의 락, 메탈 씬에서 벗어나 멜로딕한 전개를 할 수 있게끔 드러밍을 하고자 했다고 한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와도 사이가 좋으며, '라스를 찾으려면 오아시스 공연장에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아시스의 음악을 좋아한다.[29] [30] 헌데 제임스는 오아시스를 매우 싫어한다. 자기만의 독창성과 창조력이 없는 그저 비틀즈 카피 밴드라고 생각하는 듯.[31]

또한 그는 드럼을 잡기 전엔 음악가인 동시에 프로 테니스 선수였던 아버지 토벤의 영향으로 테니스를 했었으며 드럼 플레이 때 그때 기른 체력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거 없고 조루지만(...)

여담으로 라스 울리히의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메가데스(...)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여담이지만 독설가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잉베이 맘스틴은 스래쉬 메탈 분야에서는 메탈리카가 최고라고 평가했었고, 라스는 대단한 드러머라고 칭찬했었다. 나의 잉베이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아

4.2 이전 멤버

  • 론 맥거브니(Ron Mcgovney) - 베이스 (1982년)[32]
해당 항목 참조.
  • 클리프 버튼(Cliff Burton) - 베이스, 배킹 보컬 (1982년~1986년, 1986년 9월 27일 사망)
해당 항목 참조.
  • 제이슨 뉴스테드(Jason Newsted) - 베이스, 배킹 보컬 (1986년~2001년)[34]
비운의 2인자다. 커크의 친구였던 프라이머스(밴드)의 리더이자, 희대의 괴짜 천재 '레스 클레이풀'과 함께 메탈리카 베이시스트 오디션에서 최후의 2인으로 남았으며[35] 결국 최종 선발되어 메탈리카의 3번째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햇수로 16년을 재적하며 메탈리카 역대 최장수 베이시스트이지만 2003년 영입된 로버트 트루히요가 몇 년 내로 기록을 경신하며 연차에서마저 2인자로 밀릴 예정(...).
핑거피킹을 하지 않고 픽을 사용해 연주하는 베이시스트로, 재적 당시 클리프 버튼의 부드럽고 기교넘치는 연주에 익숙해져 있던 팬들의 호불호가 상당히 갈렸다. 재적하는 내내 '왜 손가락으로 연주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그를 따라다녔으며 심하게는 '픽으로 연주하는 한 클리프 버튼을 넘어설 수 없는 2류다'라는 비난도 숱하게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픽으로 연주하는 것은 단순한 고집이나 음악적 선호보다는 어릴적 당한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핑거피킹이 불가능한 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이 때문에 제이슨은 모터헤드의 리더인 故 레미 킬미스터를 더욱 열렬히 영웅으로 모시며 자신의 구세주로 여겼다고 한다.[36]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밴드에 재적하는 내내 대우가 매우 좋지 않았다. 클리프 버튼의 사고는 월드투어 도중에 일어났으며 남은 멤버들은 이 사고때문에 창창하게 남은 투어를 중단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 버튼의 장례식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탈리카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붕괴한 상태에서 급하게 여러 밴드를 수소문해 베이시스트 오디션을 치렀는데, 그들은 제이슨의 음악적 철학 등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일단 빼어난 연주력만을 높이 사 그를 사실상 '고용'하게 되었다. 기존 멤버들은 클리프 버튼을 잃은 데 대한 트라우마를 해소할 시간을 갖지 못했고, 상실감은 분노로 바뀌어 버튼의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제이슨을 괴롭히는 방향으로 엇나가고 말았다.
사실로 밝혀진 몇가지 따돌림 일화가 있는데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 제이슨이 메탈리카에 가입한 첫날 멤버들이 어느 식당에 데려갔고,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모두 도망쳐 그날 밥과 술값은 제이슨이 모두 계산해야 했다는 혹독한 신고식 이야기가 그것이다. 제이슨이 처음 참여한 4집 ...And Justice For All의 믹싱을 할 때 제이슨이 연주한 베이스 음의 볼륨을 거의 음소거하다시피 작게 처리한 것도 유명하다. 실제로 제이슨이 결코 작곡 역량이 나쁜 건 아니었음에도 그가 16년 동안 메탈리카 내에서 작곡에 참여한 곡은 Blackened, My Friend of Misery, Where the Wild Things Are 이렇게 단 3곡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걸출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메탈리카 디스코그래피 내에서 작곡/작사에 대한 기여도는 공기에 가깝다. 이에 대한 뒷얘기로 밴드 리허설에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려주면 '곡을 작곡할거면 밴드를 나가라"는 비난을 들었다고도 하니... 사실상 밴드 내에서 서열 꼴찌. 상근 세션맨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듯 하다.(...) 여기에 대해 제이슨이 인터뷰에서 차분하게 술회한 과거사가 화룡점정. 그가 한줄로 요약하기를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무시했다.(The person who I respected the most, disrespected me the most.)"이라고.
제이슨이 메탈리카에서 탈퇴한 직접적인 계기도 2001년 메탈리카의 프로젝트 밴드 '에코브레인'을 론칭하려다 밴드 구성원이 분산되는 것[37]을 극도로 경계하던 제임스가 "차라리 메탈리카를 때려쳐!"라고 면전에서 비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이 공연이 마지막이다'라고 미리 마음먹은 공연을 마치고 돌연 종적을 감춰버린다. 놀란 멤버들은 제이슨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는 "난 더이상 메탈리카 멤버가 아냐. 혼자 있게 내버려 둬. 다신 전화하지 마. 안녕.(I'm not in Metallica anymore, leave me alone and don't call me again. Bye.)"라는 차가운 통보를 건네고 사라져버렸다. 한때는 인터뷰에서 "밴드 멤버들이 갈궈도 나는 메탈리카의 음악이 좋고 메탈리카의 구성원이 된 것이 자랑스럽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리고 말하기까지 한 제이슨은 이렇게 메탈리카를 탈퇴한다. 이후 제이슨의 인터뷰를 보면 제임스와 라스가 가정을 꾸리면서 메탈리카의 창작활동이 사실상 멈춰버린데 반해, 자신은 음악과 결혼했고 자신의 곡이 자신의 아이들이므로 계속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밴드를 나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에코브레인, 캐나다의 헤비메탈 밴드 '보이보드', 오지 오스본[38] 등 몇몇 밴드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2013년 9월, 자신의 밴드 '뉴스테드'를 만들고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기량 저하로 상대적으로 루즈해진 메탈리카에 비해 타이트하고 묵직한 사운드를 선보이며 메탈리카 팬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39] 직접 리드 보컬과 베이스, 작사, 작곡 등 앨범 작업 전반을 주도하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만약 제이슨 없이 개성 강하고 약에 쩔어있는 레스 클레이풀같은 베이스가 선발되었다면 지금의 메탈리카의 위상이 존재했을 지는 의문이다. 86년부터 바로 라이브에 투입되었고 최고점으로 치고 올라가려는 순간에 자리를 비우지 않고 밴드를 지켜주었지만 탈퇴 당시에 라스는 감사한 줄도 모르고 제이슨더러 '밴드를 버리고 자기 자신을 희생양으로 포장하려 한다.', '지금의 메탈리카 모습이 제이슨이 원하는 메탈리카의 모습일 것이다. "라고 욕만 해댔다. 한마디로 라스와 제임스는 예전부터 탈퇴 직전까지 제이슨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의지가 한 톨만큼도 없었고, 그가 탈퇴한 후에도 제이슨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 당시 멤버들(특히 라스)이 제이슨을 비난한 영상을 보면 매우 감정적이고 프로들의 언동이라기 보기 힘들정도의 추태를 보여주었다.
상기한 대로 2013년 9월 자신의 밴드 'Newsted'를 런칭하고 EP를 내고 투어를 하며, 오피셜 홈페이지를 꾸리고 왕성한 SNS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이 주도하는 헤비메탈 음악에 매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정규앨범 'Heavy Metal Music'이 갓 나온 2014년 9월, 돌연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을 일거에 폐쇄하고는 아래와 같은 메시지만을 띄워놓은 채 완전히 잠적해버렸다.
Jason Newsted is not on Twitter, Instagram, Facebook, or any other social networking website as of September 15, 2014 & and has no affiliation with any such impostor sites using his name or likeness unlawfully. (제이슨 뉴스테드는 2014년 9월 15일 부로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또는 그외 다른 어떤 사회관계망 서비스도 이용하고 있지 않으며, 그의 이름을 도용하는 어떠한 사칭 사이트와도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Newsted 투어를 함께한 기타리스트의 말에 따르면 정규 앨범을 녹음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해체 의지를 밝혔다고 하며 간간히 연락은 된다고. 하지만 뭔가 떨떠름한 태도와 헤비메탈 뮤지션답지 않게 정치적 올바름이 느껴지는 발언때문에 일부 호사가들은 그가 약물 중독 치료를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도 루머와 달리 건강히 잘 지내고 있기는 한 듯. 2015년 12월 28일 모터헤드의 리더 레미 킬미스터가 사망한 이후 여러 매체에서 모터헤드와 관련된 뮤지션들을 상대로 레미와의 추억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29일 미국의 어느 라디오 방송국에서 제이슨 뉴스테드와 전화연결 섭외에 성공해 레미에 대해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 미리 약속된 부분인지 제이슨의 근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기에 뭘 하고 지내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는데. 2016년 7월 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Would And Steal라는 이름의 어쿠스틱 밴드로 활동할 계획을 잡고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제임스 헷필드가 왕년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일찍이 소프라노(...)가 되어버린 반면 제이슨은 걸걸한 전성기 시절 목소리를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라이브시 무대 액션이 굉장히 화려한데, 전성기의 라이브를 보면 풍차돌리기는 기본에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무대를 빙빙 돌면서 전력질주한다! 무대 퍼포먼스만 본다면 메탈 전체 베이시스트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90년대 이전의 메탈리카에 가장 어울리는 베이시스트는 클리프 버튼이 아니라 제이슨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많다.
Creeping Death Live - 3분 33초부터 뛰어다니고 5분 30초무렵에는 리드보컬로 부른다.

5 장비

시그너쳐는 ESP에서 제임스 헷필드, 커크 해밋의 모델이 여러개가 나와 있다. 메탈리카는 ESP의 가장 대표적인 엔도저. 매년 새로운 시그너쳐가 하나, 혹은 그 이상으로 나오는 추세. 현재 판매 중인 대표적인 시그너쳐로는 제임스의 '스네이크바이트'와 '트럭스터'가 유명하다. 제임스, 커크 둘 다 아주 가끔 깁슨의 Flying V나 Les Paul 모델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파일:Attachment/메탈리카/Snakebyte.jpg
ESP 스네이크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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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 트럭스터

커크의 경우는 본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빈티지 모델 'KH-2'가 가장 유명한 기타. 이외에도 고전 공포영화광인 커크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드 칼로프 감독의 고전 명작 'Mummy'의 포스터 디자인을 삽입한 'KH-2 Mummy'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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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 KH-2 빈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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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 KH-2 머미

요절한 베이시스트인 클리프 버튼의 경우에는 1집은 릭켄베커 4001S 베이스를 2집은 알렘빅 스포일러를[40] 3집에서는 아리아 프로 베이스를 메인으로 사용하였다.

클리프 요절 후 후임으로 들어온 제이슨 뉴스테드는 초창기에는 알렘빅을 사용하다 간간이 스펙터 등을 쓰기도 하고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메탈리카를 탈퇴한 현재까지는 새도우스키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베이시스트 로버트 트루히요는 주로 페르난데스 그래비티 베이스를 사용한다. 하지만 워윅과 ZON에도 그의 이름의 시그너쳐가 있는 데다 가끔씩 펜더 프레시젼, 뮤직맨 스팅레이도 들고 나오는 걸 보면 엔도저 계약 위반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여러가지 들고 나오는 듯. 기성품 말고 그가 사용하는 시그너쳐 베이스의 공통점은 픽업이 EMG라는 것.

6 음악적 위치

위 공연은 영국의 록 페스티벌인 몬스터즈 오브 락의 1991년 유럽 투어 중, 모스크바 투시노 비행장에서의 공연이다. 관객들은 무려 80만 명 정도로 집계되었고(확실하지 않은 추정치이지만 수십만명의 관중이 모인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관객들을 통제하기 위해 구 모스크바 군구 병력이 동원되었다. 후에는 이 관객들과 함께 공연에 열광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볼거리다. 상공에는 군헬기들이 비행하고 있으며 메탈리카가 덥다고 물 좀 달라고 하자 헬기에서 물을 뿌려줬다는 후덜덜한 이야기. 이 페스티벌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곡 중 하나가 Enter Sandman으로서 아직도 많은 록 매니아들에게 이 공연은 '전설적인 공연'이라고 불리고 있다. 메탈리카의 악질 팬들이 저 공연 하나로 메탈리카를 칭송하는 경우가 많으나 저기 있는 모든 사람이 전부 메탈리카만 보러온 것은 아님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메가데스와 함께 스래쉬 메탈계를 이끌어가던 쌍두마차로 4대 스래쉬 메탈(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랙스)중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6집 Load부터[41] 음악성이 얼터너티브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여 엉터얼터리카라는 이름까지 붙었고[42] [43] 그러나 이마저도 St. Anger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듯. 이때는 허탈리카라고 불렸다.(...)

블랙 앨범 이후로 발표한 정규앨범들(후술의 Death Magnetic 포함)이 5연속으로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여 4연속인 비틀즈를 누른 록 밴드가 되었다.(물론 전체 판매량은 당연 비틀즈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최근 라이브 셋 리스트를 보면 Load, Reload의 수록곡은 다소 적게 라이브되고 있다.(Fuel과 The Memory Remains는 자주 라이브를 선보인다.) 물론 St. Anger보다는 많이 연주되고 있지만.

2008년 Death Magnetic으로 과거의 스래쉬 스타일로 블랙 앨범 이후로 무려 17년만에 돌아왔다.[44]

2011년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Lulu에선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고참 뮤지션인 루 리드와 함께 작업한 곡들이 실렸다. 루 리드가 보컬을 맡고 메탈리카 멤버들은 악기 연주 파트를 담당하는 식.
맨 처음 유튜브에 공개된 The View라는 곡인데, 최악이다.(...)[45] 결국 세인트 앵거 이상의 괴작으로 판명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락 팬들은 좋아할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프로그레시브 락 팬에 대한 모독이다.[46] 이게 어디가 프로그레시브야 거기다 판매 전에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게 했기에 그 정체를 전 세계인이 눈치 채버렸다!(...) 가장 먼저 뚜껑이 열린 The View가 제일 고퀄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나머지 트랙들은 엄청난 불협화음을 자랑한다.
일반 리스너들이 이러한데 평론가들의 평도 당연히 영 좋지 않다. James 'the table' Hetfield Chop your breakfast out of TABLE!!! I AM THE TABLE!!! 신랄한 비유를 인용하자면, 사악한 메탈 키드들이 왕년에 잘 나가시던 할아버지를 스튜디오에 모셔놓고 제멋대로 놀려먹는 듯하다고.(...) 물론 메탈리카가 이젠 왕년에 잘 나가던 메탈 키드지만 이는 루 리드와 메탈리카와의 근본적인 스타일 차이에서 기인한다. 루 리드의 '읊조리는 듯한' 보컬 방식은 메탈리카의 헤비한 사운드에서는 묻히기 쉬워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Pumping Blood라는 곡을 들어보면 육중한 드럼 사운드 밑에 깔려 애처롭게 "피가 솟네~"를 외치는 루 리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강한 사운드와 약한 보컬의 조화라면 사실 다른 쪽에서 나름 개념 있게 소화했었다. 포스트락/포스트하드코어는 물론 심지어 브루탈 이모코어 같은 괴상한 장르까지. 스타일 차이 문제는 핑계에 가깝고, 그냥 허접한 앨범이었을 뿐이다. 이 멤버의 메탈리카는 세인트 앵거를 만들었었다는 걸 기억하자(...)[47]

2012년 가을의 인터뷰에서 메탈리카 멤버들은 10번째 정규 앨범을 제작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컨셉이나, 곡에 대한 구성 같은 것은 아직 확실하진 않다고. 최근 신보를 5년에 하나 꼴로 내는 메탈리카인 만큼, 2013년 하반기나 혹은 2014년까지도(...)기약해봐야하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 [48]

2014년 4월 10집이 발매가 된다면에 들어갈 신곡, Lords of Summer가 공개되었다!
물론 유튜브에서 감상 가능

2015년 4월 인터뷰에서 커크는 10집이 4집과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레시브한 앨범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얼마 후 커크의 아이폰이 분실되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250여개 가량의 기타 리프도 같이 사라져버렸다. 기억나는 리프는 8개 정도 뿐이라고... 사라진 리프 중에 명곡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리프가 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아무래도 10집 발매는 더 멀어질 것만 같다. 예끼 Lords of summer니까 아무리 빨라도 2016년 여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카더라

결국 신곡(?) Lords of summer가 나온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신보 소식은 아직 많이 먼 것 같다.

메탈리카 사이트에서 로그인 한 뒤, 곡의 녹음 현장(매우 약간의 리프를 들어 볼 수 있다)과 곡의 일부분을 재생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가입하기 귀찮으면 유투브에 'Metallica new'를 검색하자. 친절한 팬들이 알아서 올려주신다

빌보드 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라스 울리히가 밴드의 새 앨범은 곧 발매될 예정이지만, 올해 안에는 발매가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 했다.
라스는 메탈리카가 레코드 스토어 데이에 대사 자격으로서 여러 일을 해야 하며, 그 외에도 과거 발매된 ‘Kill ’EM All’과 ‘Ride The Lightning’의 디럭스 에디션 관련 작업 및 해당 앨범에 대한 홍보, 그리고 AT&T 파크 및 그 외 다른 장소에서 가질 대형 공연들 때문에 올해안에 신보를 발매하는 것은 무리일 거라고 이야기 했다. (...) 이미 팬들은 해탈했다. 라스는 또한 새 앨범은 전작 ‘Death Magnetic’보다 ‘빠른’ 앨범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얼마 후의 라스 울리히의 인터뷰에 따르면 올 여름 새 앨범 작업이 완료될 거라고 했으며, 올해안에 발매를 희망한다고 했는데, 최근 타이틀곡 Hardwired의 공개와 함께 2016년 11월 18일에 신보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Hardwired... to Self-Destruct참고.

7 내한

대한민국에서는 1998년 4월 24일, 25일, 2006년 8월 15일, 2013년 8월 18일에 내한공연을 한 바가 있다.

1998년 4월 24일, 25일 양일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하여 총 3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엄청난 흥행을 하였는데, 이 첫 내한공연이 성사되기 까지의 이면에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비화들이 있었다. 1997년에 내한공연이 기획되어 계약이 성사되었다가 IMF 외환위기 사태로 환율이 배 이상으로 급등하는 바람에 계약금도 배로 껑충 뛰어 공연기획사가 엄청난 손실을 볼 상황이어서 내한공연 자체가 흑역사가 될 뻔 했으나, 기획사 측에서 메탈리카 측에 한국 환율상황 기사 스크랩을 보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메탈리카가 자신들의 개런티를 25만 달러나 깎아주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다행히 순조롭게 첫 내한공연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대문시장 관광 중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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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설 아닌 레전드가 된 돼지머리와 헷필드.

파일:Attachment/메탈리카/4.jpg
뽕삘 제대로 받은(...) 해밋.

첫 내한공연에서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떼창에 감동 먹은 메탈리카는 다시 한 번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겼고, 8년 뒤인 2006년 8월 15일 광복절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두 번째 내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며 그 약속을 지켰다.

2006 메탈리카 내한공연 당시 MBC의 공연실황. 이 영상은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편인 데다가, 전세계 메탈리카 팬들에게는 거의 '필시청' 급이 되어버렸다. 이 공연을 두고 항상 회자되는 Master of Puppets 기타솔로 떼창 역시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생생히 잘 들린다.

하지만 이 공연의 오프닝을 섰던 밴드 TOOL에게는 악몽 같은 공연이었을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다가 공연주최측의 병크로 관객 입장도 안된 시간에 갑자기 공연이 시작되었고 일부 무개념 메탈빠들은 달리는 곡이 없다며 밴드에게 물병을 집어 던지는 만행을 보였다. 결국 참다못한 밴드의 보컬 Maynard James Keanen은 마지막 곡 시작전에 "This is the first time in Korea and it will be the last time in Korea" 라는 멘트를 했다...[49] 참고로 TOOL은 해외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밴드이며 미국 언론에서는 "어떻게 툴이 단독이 아닌 서포트 공연을 하는 취급을 받아야 하나?" 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연을 끝으로 툴 팬이 많이 생겼으며 더불어 메탈리카의 안티가 급증하기도 했다.(한국에서만이다.)

오는 2017년 1월에 내한공연이 확정되었다!

8 기타

최근에 메탈리카 멤버들이 최고급 남성정장 브랜드인 브리오니의 모델이 되었다.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간지 작살. 링크


너 고소

라스 울리히의 주도로 2000년도에 냅스터와 이용자 30만명을 불법 다운로드고소미먹인 일이 있었다.[50] 결국 냅스터는 서비스를 중지했지만 당시 리스너들은 메탈리카를 좋게 보지 않았다. 저작권 개념을 설명하는 책에는 이 이야기가 예시로 들어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일에 대해 림프 비즈킷는 메탈리카를 비꼬았고 RATM의 탐 모델로는 냅스터를 홍보하였다. 슬레이어의 게리 킹은 고소할 시간에 드럼 연습을 더 하라며 충고를 시전하였다.
백괴사전에서도 이걸 비꼬고 있는데, 라스 울리히와 미국음반산업협회가 무슨 매카시 급의 인간말종으로 묘사되어 있다.(...)

비틀즈의 노래와 메탈리카의 음악 스타일을 적절히 커버한 밀워키 출신 카피밴드 비탈리카가 그들을 카피한 대표 밴드다. 메탈리카가 소송을 걸 법도 한데 오히려 비탈리카가 자신들의 음악을 커버해줘서 무척이나 고마워했다고. 심지어 비틀즈 앨범 판권을 가지고 있는 소니뮤직에서 비탈리카에게 소송을 걸었는데 메탈리카가 비탈리카 측의 입장을 변호해줘서 이 역시 원만하게 넘어갔다. 역시 대인배 메탈리카. 오오오. 잠깐만 앞의 냅스터 이야기와는 다르잖아 뭐 이래[51]

왠지는 몰라도, 스래쉬 메탈 BIG 4중에서 커버를 가장 맛깔나게 잘한다는 인식이 있다(...) Garage.inc 앨범 때문에 그런 듯.

의 BGM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비단 메탈리카뿐만 아니라 당대 미국 헤비메탈 넘버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것에 가깝지만). 가령 둠1에서 유명한 곡인 1에피소드 맵1 BGM의 메인 기타리프는 No Remorse 혹은 Master of Puppets의 기타리프를 차용했다는 설이 중론이다. 둠의 미디 BGM 작곡자는 바비 프린스라는 사람이지만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의 쌍두마차였던 존 로메로가 메탈 리스너였기 때문에 그의 입김이 미쳤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

80년대 초반에 부른 Seek & Destroy와 2009년에 부른 Seek & Destroy를 비교해보면 사람 목소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 수 있다. (2005년이라고 나오는 것은 'We are scanning the scene in the Seoul tonight' 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2006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에 내한 왔을 때의 공연인 듯 하다. Seek & Destroy는 라이브에서 부를 때마다 원 가사의 'City' 부분을 공연하는 도시의 이름으로 바꿔서 부른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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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1년 12월 5일부터 10일까지 30주년 기념 공연을 열었다. 그것도 81년 데뷔때의 입장 가격 그대로 티켓 값 6달러에ㅎㄷㄷ 이 공연에는 루 리드, 오지 오스본, 데이브 머스테인,(!!) 제이슨 뉴스테드, 롭 핼포드, 그리고 초창기 멤버 론 맥거브니까지 수많은 게스트들이 나와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기념공연 사진

4대 스래쉬 메탈밴드보다 아이유가 위대하다고 한 이들이 있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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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유럽에서 2012 European Black Album Tour라는 투어를 돌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셋리스트 도중 5집을 통째로 다 연주한다. 마지막 트랙 'The Struggle Within'으로 시작해서, 첫 트랙 'Enter Sandman'으로 끝나는 그야말로 5집의, 5집에 의한, 5집을 위한 투어.[53] 놀랍게도 제임스는 정변했고 라스는 역변했다 제임스의 보컬이 예전 전성기때로 돌아갔다. 91년의 맷돌 가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로드, 리로드때의 기량을 회복하여 2000년 이후 최상의 컨디션인듯. 라스의 드럼도 차츰 돌아가는 기미가 보인다.[54]

메탈리카가 헤드라이너가 되어 직접 여는 락페스티벌이 있다. 이름하여 Orion Festival. 메탈리카가 오리온 페스티벌을 개최하게 된 취지는 후배 밴드들을 소개하고 양성함과 동시에, 팬들에게 새로운 메탈리카의 도전과, 락페스티벌의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그리고 돈도 필요하다

2013년 8월 17~18일에 열리는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에 둘째날 헤드라이너로 공연했다.메탈리카 내한 7년주기설 공연 셋리스트 제임스의 입국문제 및 그날이 생일이었던 스탭에게 깜짝파티를 해준다는 이유로(...) 30분이나 늦게 무대에 올랐지만 대신 예정시간 2시간을 훌쩍 넘겨 공연했다.

항상 메탈리카의 공연때마다 등장하는 오프닝 음악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참여한 석양의 무법자OST 'Ecstasy of Gold' 라는 곡


음악은 47초부터
시티브레이크때는 그냥 이 영상이 스크린에 나오기도 했다.

2013년 12월 8일에는 남극(!)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사진 공연영상
남극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메탈리카는 지구상의 모든 일곱 대륙에서 공연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오디오슬레이브처럼 쿠바에서는 아직 공연을 못 하는 듯 하다.

2014년 글라스톤베리의 헤드라이너로 참여하였다 공연영상

# 모에탈리카 이들도 부녀자들의 모에선을 피할 수 없었다... 캐릭터를 상당히 잘 살려서 그렸다. 왼쪽부터 클리프 버튼, 커크 해밋, 라스 울리히, 제임스 헷필드.

메가데스의 리더 데이브 머스테인은 메탈리카에서 해고 당한 이후 자기가 만든 곡의 리프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The Four Horsemen과 The Call of Ktulu등에서 머스테인이 쓴 리프를 그대로 썼다.[55] 이후 열받은 머스테인이 쓴 곡들이 Mechanix[56][57]와 Hanger 18. 그 외에도 2집의 Ride The Lightning에도 데이브 특유의 스파이더 코드가 사용된 리프가 그대로 쓰였다. 이렇게 리프들을 메탈리카 앨범에 심어버려서 이후 20년 이상 둘 사이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고 메가데스가 Mechanix를 연주할 때 The Four Horsemen의 인트로를 연주하고 욕하면서 엿을 먹였다.. 참고로 인터뷰에서 제임스 헷필드는 자신의 보컬 스타일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에게 리프 메이킹은 데이브 머스테인에게 회성학 이론은 클리프 버튼에게 각각 배웠다고 했다. 좋은 것만 쏙쏙 섭취

멤버들도 나름 야빠들이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경기에서 가끔 볼 수 있다. 근데 메탈리카는 LA 출신인데 라이벌팀을 응원한다는 게(...)[58] 그리고 2013년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시즌 때 리베라가 Enter Sandman을 등장음악으로 쓰는 인연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vs 뉴욕 양키스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리베라가 9회초에 등판할 때 라이브로 Enter Sandman을 부르기도 했다.

  1. 다만 '메탈리카가 정말 스레쉬 메탈 밴드냐?'라는 논쟁이 존재할 정도로 장르가 많이 모호한 편이다. 분명 1집~2집 시절의 메탈리카는 스레쉬 메탈 밴드가 맞지만, 3집 이후로 메탈리카는 좀 더 대중적인 헤비메탈의 곡을 썼고, 그것으로서 지금의 위상을 차지했다. 90년대 이후로 가장 많이 팔인 앨범인 5집 Black Album은 아예 스레쉬가 아닌데다가 8집 Death Magentic을 발매하기 전까지 얼터너티브 메탈, 뉴메탈 등 온갖 뽕짝을 실험했다.
  2. Sweet Savage의 곡이며 메탈리카가 강하게 영향받은 여러 곡 중 하나.
  3. 메탈리카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앨범 중 최고의 레어 아이템으로 한 때 30만원을 호가하기도. 물론 지금은 'Garage Inc.' 발표로 가치가 하락하기는 했다. 팬 서비스 차원이자, 198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을 대신해 새롭게 영입된 제이슨 뉴스테드와의 호홉을 맞추는 차원으로 전세계 3000장만 찍어냄. 노래는 대부분 데뷔 전 차고에서 연습하던(Garage Days) 옛날 락음악을 메탈리카식으로 리메이크한 곡들이다.
  4. 'The $5.98 E.P.: Garage Days Re-Revisited'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 앨범을 추가로 찍어달라는 메탈리카 팬들의 요청이 쇄도. 결국 이 앨범에다 각종 싱글의 B-side로 발표되었던 곡들, 그리고 그 전에 발표한 적이 없는 리메이크 곡들을 2CD로 묶어 발표한 앨범이다. 공식 스튜디오 앨범은 아니지만 Load, ReLoad로 살짝 녹아내렸던 그들의 위상이 다시금 소폭 반등하기도 했다. 메탈리카의 앨범들중 고평가 받는 앨범들중 하나다. (Master of Puppets의 경우 곡도 괜찮고 메탈리카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나있지만, 녹음 퀄리티나 재해석의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다. 애초에 리메이크 앨범인 만큼 멜로디의 완성도가 높고 그걸 상당히 뛰어나게 재해석한 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물론 St. Anger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wiki:"지못미"
  5. 한국판 음반에는 Clean Version이라는 딱지가 별도로 붙어있으며 수록곡 So What의 가사 중 욕설 부분이 비프 음 처리 되어있다. 뭐가 클린이야?
  6. 9집 Death Magnetic에 수록되지 못한 곡들 네 곡이 러프 믹스로 수록되어 있다.
  7. 클리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발매 됐다. 초기 메탈리카의 클리프의 절륜한 연주를 여과 없이 들어 볼 수 있다.
  8. 그 유명한 1989년 시애틀 라이브와 1992년 샌 디에고 라이브, 1993년 멕시코 시티 라이브가 수록되어 있다.
  9. 새디스트 & 마조히스트?? Symphony and Metallica의 줄임말이다. 메탈리카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협연해 클래식의 장엄함과 메탈의 날카로움을 한데 묶어 만든 라이브 앨범이다. 라이브 앨범이지만 신곡도 두 곡 포함되어 있다.
  10. 영어로 번역하자면 French for One Night. 실황 DVD/블루레이/Death Magnetic 앨범 포함 디럭스 에디션 세가지 형태로 프랑스에서만 발매되었다. 그런데 뭐 수입판매되서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11.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 슬레이어의 합동 공연 실황이다.
  12. 2009년 캐나다 퀘벡 시 공연 실황이다.
  13. 오지와 함께 낸 앨범은 2000년에 발표된 Down to Earth. (잭 와일드와 함께 당시 오지 오스본 밴드의 사운드의 주축이었다. (2002년 일본 부도칸 라이브 중에서 Mr. Crowley. 4분 25초부터의 연주가 아주 찰지구나 아름답다.)
  14. 오디션 당시의 영상을 보면 특히 드러머 라스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티가 난다.
  15. 특히 메탈리카의 경우 드럼, 기타의 사운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라이브에서 베이스의 역할은 어느 밴드보다 중요하고 전임 베이시스트 둘과 로버트는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16. 이 무렵부터 라이브로 연주하기 시작한 건 맞지만 서울 공연이 최초 해금은 아니라고 한다.
  17. Lars라는 이름의 발음은 '라즈'이나 한국에서 죄다 라스로 발음해서 문제. 그리고 성인 Ulich도 미국식 발음으로는 "유리크"나 "유릭"에 가깝다.
  18. 제임스 헷필드와 처음 만났을 때 제임스는 라스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같이 밴드를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록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여 리더로 삼기 좋겠다 하여 결국 들어온다.
  19. 특히 Scott Travis 등과 같이 체력을 바탕으로 정주행하는 드러머들과 라이브 영상을 비교하면 라스의 드러밍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 수 있다. 주다스 프리스트 Hellrider 라이브 영상으로 5분 넘는 곡에서 20초 가량을 빼고 쉬지 않고 베이스를 밟아주신다.
  20. 그냥 유투브에서 For whom the bell tolls 라이브를 보자. 라스의 이상한 박자를 메꾸려고 커크의 연주가 왔다리 갔다리 한다.
  21. 'Lars Ulrich failes at Guitar hero drums'
  22. 라스의 드러밍은 언제나 비판받지만, 그가 유일하게 호평받는 것이 파워였다. 전성기 시절엔 연주가 아니라 걍 드럼을 때려 패는 수준(...). 물론 전성기 시절 조차 박자감이 엉성했지만 파워로 커버했다.
  23. 지금이야 데이브 롬바르도의 스피드를 상회하는 드러머가 넘쳐나지만 그 시대에는 거의 최고의 스래시메탈 드럼 테크니션이었고 많은 익스트림 메탈 드러머가 롬바르도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롬바르도는 슬레이어 합류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다닐 나이였다.
  24. 이후에도 기술되지만 프로 드러머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여러 가지 연주를 잘 해야한다. 그리고 방향성 문제를 떠나서 불안정한 드러밍은 메탈리카 초기부터 항상 제기됐던 문제들이다.
  25. 당장 96~99년 라이브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더블 베이스 사운드가 명확하게 들린다.
  26. 곡을 같이 작곡하는 제임스에게 연대책임을 물리기에는 메탈리카 자체가 (역량과는 논외로) 라스의 독재 밴드에 가깝다.
  27. 메탈리카는 가장 팝적인 스래쉬 메탈을 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28. 드럼의 리듬과 박자가 엉성하면 어떤 명곡이라도 라이브에서 막장이 되어버린다.
  29. 갤러거 형제가 마약을 끊은 것을 계기로 자신도 마약을 그만두었다고. 2010년엔 호주 인터뷰에서 노엘이 자기네 찍은 다큐멘터리 잘 봤다고 문자 보낸 거 가지고 '최근 몇 년간 음악인생에서 최고의 날이다'라고 말 그대로 날뛰었다...
  30. 노엘 갤러거도 메탈리카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고 한다. 단, 음악은 빼고... 그럼 뭘 좋아한다는 거야 라스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31. Load 녹음시 라스가 붙여둔 오아시스 포스터를 다트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32. 제임스 헷필드의 친구로(둘은 같은 룸메이트였다고 한다.) 같이 메탈리카에 들어온 멤버다. 밴드의 매니저를 도맡아했고 메탈리카의 초기 데모도 그의 지하실에서 녹음될 정도로 밴드의 물주 역할을 했지만 라스와 댁이 하실 말씀은 아닌데요. 데이브가 그의 베이스 실력을 문제삼기 시작하면서 멤버들과 충돌이 생기기 시작, 라스 울리히가 새 베이시스트로 클리프 버튼을 영입하기 위해 밴드의 연고지를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긴다고 하자 당연히 이에 반발하며 탈퇴했다. 이후 론은 베이스 기타와 앰프를 팔고 음악계를 떠났다가 제임스와의 친분으로 메탈리카 30주년 라이브에 출연하였다.
  33. 모터해드의 트리뷰트 밴드로 활동하던 메탈리카가 본격적인 프로 활동을 하기 위해 영입한 리드 기타리스트다. 라스 울리히의 말대로 처음 보는 오디션장에서 제임스 햇필드가 샘을 낼 정도로 출중한 기타와 작곡 실력 및 특유의 카리스마를 멤버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실제로 메탈리카의 초기 라이브 영상에서 데이브 머스테인과 제임스 햇필드가 서로 더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아마추어틱하고 유치한 싸움이 대놓고 보일 정도로 두 사람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 치열했다고 한다. (데이브 머스테인 퇴출운동의 선두주자가 제임스 헷필드였다.) 물론 단순한 밴드 내 힘싸움의 희생양일 뿐인 것은 아니다. 데이브의 술버릇과 마약복용 등으로 인한 불성실함 등도 문제가 되었다. 근데 데이브는 당시 메탈리카 멤버들 모두가 매일 술과 약에 쩔어 연습을 제대로 안 했다고 한다. 그냥 당시 메탈리카는 술과 약에 쩔어있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오죽하면 당시 메탈리카의 별명이 알콜리카였다.) 결국 데이브가 짤린 건 그나마 유한 성격의 제임스와 함께 가는 것이 나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듯하다. 이후 데이브는 메가데스를 결성한다.
  34. 제이슨이 탈퇴한 후로 메탈리카의 배킹 보컬이 많이 약해졌다. 제이슨은 리드 보컬로 나서도 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라이브 때 몇 곡의 일부분은 제이슨이 부르기도 했다. 80년대 후반 제이슨의 Creeping Death를 보면 악마적인 성량을 보여준다. 단적인 예시로, 시에틀을 봐보자. 여기에 제임스는 제이슨이 몇 곡(주로 Creeping Death나 Whiplash 같은)을 대신 부르는 이유가, 자기가 부르기 귀찮아서(...) 혹은 제이슨이 보컬과 베이스를 같이 할 수 있는 노래가 그것들 뿐이라서(...)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35. 제임스는 '본인의 색깔이 너무 강하여 메탈리카를 덮고도 남을 컬러다'라며 레스를 최종 선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탈락한 레스가 만든 밴드가 바로 프라이머스...
  36. 레미는 밴드에서 베이시스트가 나간 이후 직접 베이스를 연주하기로 했는데, 기타에 익숙한 손인지라 베이스 역시 피킹을 선호했다.
  37. 당시 다른 멤버들이 알콜중독 등의 일을 겪고 있었다.
  38. 공교롭게도 제이슨의 메탈리카 탈퇴로 인해 오지 오스본의 베이시스트 로버트 트루히요가 메탈리카로 빠져나갔는데, 제이슨은 로버트의 공석을 메우는 알바를 한 셈이 되었다.
  39. 메탈리카 앨범에서 등장했다면 상당히 팬들이 좋아했을 만한 곡들도 있다.
  40. 클리프 버튼의 알렘빅 스포일러는 2집 투어 중이었던 1985년 도둑 맞았다. 참고로 알렘빅의 모든 베이스는 수공업 한정판으로 제작되며 베이스마다 일련 번호가 세겨져있으니 어떤 놈인지 간이 무지 컸던 것 같다.
  41. 블랙 앨범부터 시작된 '반 스래쉬적 정서'를 근거로 이때부터라고 하기도 하나, 블랙 앨범은 얼터너티브한 성격의 음악은 단 한 곡도 없다. 다만 그들의 음악적 전성기를 함께 했던 스래쉬 메탈의 색채가 많이 사라져, '하드하지 못하다' '강하지 못하다' 라는 비판이 있었을 뿐이다
  42. 당시 락 매니아들에게 수많은 논쟁거리였는데 변화 속에서도 메탈리카 특유의 힘과 기승전결식 음악전개가 살아있다는 평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 '변절자' 라는 다소 강한 비판이 대세였다.
  43. 이것은 당시 비단 빅 4의 큰형님격인 메탈리카 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개의 밴드들도 비슷하거나 똑같은 문제를 겪었다. 메가데스는 그나마 당시 미국대중에게 친숙한 하드록과 정통 헤비메탈의 조합으로 어느정도 이러한 광풍속에서 어느정도 버텨나가나 싶더니 마티 프리드먼과 데이브 머스테인의 음악적 방향성에 관한 다툼과 갈등으로 인해 Risk라는 함정 앨범이 탄생했고. 앤스렉스는 밴드의 특징이나 다름없던 조이 벨라도나가 탈퇴하면서 음악적 하락세를 겪기 시작하면서 이들도 어줍잖게 얼터너티브 록의 요소와 힙합적인 요소를 넣으려다 대차게 망했던 적이 있다.그나마 멀쩡했던게 슬레이어였지만 이들도 기량하락으로 예전의 Reign of Blood의 시절이나 그에 근접하는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44. 물론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앨범으로 평가받는 1986년작 Master of Puppets와 완전히 같은 스타일은 아니다. 기본적인 뼈대는 그 시절과 동일하지만 악곡 스타일이나 편곡은 모던하다고 볼 수 있다.
  45. 참고로 이들은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처음 협연을 하였다. 그때 연주한 곡은 대부분이 벨벳 시절의 곡들이라 유튜브의 평이 괜찮았다.
  46. 참고로 영문판 위키에 기재된 이 앨범의 장르는 아방가르드 메탈, 노이즈록, 익스퍼리멘탈(실험음악), 스포큰 워드(독백). 아방가르드 메탈을 제외한(메탈리카가 참여했으니까) 나머지 장르들은 거의 현재 루 리드의 음악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듣는 사람만 듣는 음악 근데 벨벳 언더그라운드 시절 팬도 이 앨범은 안 듣는다. 뭐지(...)
  47. 로버트 트루히요는 예외. 로버트는 St. Anger 작업이 끝날 무렵에 들어왔기 때문에 작곡에도 참여 안했고, 연주도 안했다. St. Anger 녹음 시작할 즈음에 제이슨 뉴스테드가 밴드를 탈퇴해서 결국 앨범 프로듀서인 밥 락이 베이스를 연주했다. 흠좀무
  48. 인터뷰에 따르면, 메탈리카는 어디를 가든 합주와 녹음이 가능한 장소를 마련해두고 일을 시작하고, 그런 곳에서 조금씩 만들어진 리프가 1000여 개가 넘어가는 관계로 그것들을 추려내느라 앨범이 늦고 있다고 한다.
  49. 공연을 본 관객에 따르면 키넌은 "not last"라고 말했다고 한다. 툴 팬들이여 희망을 가지자
  50. 메탈리카 쪽에서 만든 영상이 있는데 냅스터로 다운로드 받은 음악을 듣는 이용자의 방에 들어가서 물건들에 냅스터 마크를 붙이고 점령해버린다던가, 심지어 그 이용자의 여자친구의 엉덩이에 냅스터 마크를 붙이고 여자친구를 데려가는 내용이다
  51. 음악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52. 이 곡은 사실 에서 활동하는 아재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자신들이 젊은 시절 메탈리카를 좋아했던 정도로 아이유가 좋다'라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본의아니게 노래 제목이 어그로를 끌어 댓글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53. 블랙 앨범 수록곡만 연주하진 않는다. 주로 Hit the Lights로 스타트를 끊고, 4~5곡을 선보이고 블랙 앨범 인트로 영상과 함께 시작되며, Enter Sandman 이후엔 3곡 정도 더 하며 마무리를 한다. 물론 공연의 끝은 Seek & Destroy
  54. 그러나, 제임스는 투어 중후반이 되면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고, 라스의 200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묵직하게 들렸던 베이스 드럼 사운드는 이제 틱틱거리는 개미소리로 들리는 것으로 보아, 결국, 나이에 따른 체력 저하는 이겨내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
  55. 앨범을 보면 작곡에 머스테인이 들어가 있다.
  56. 사실은 가사만 다른 The Four Horsemen과 동일한 곡. 템포가 더 빠르다.
  57. 사실 데이브 머스테인이 메탈리카를 나오기 전에 쓴 곡이다. 데모 테잎인 No Life 'Till Leather의 곡 목록을 보면 Mechanix가 있다
  58. 메탈리카의 출신지는 LA지만, 클리프 버튼이 합류조건으로 샌프란시스코를 활동거점으로 삼게 된 후 쭉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됬는데, 당시 스래쉬 메틀의 메카로 불리던 베이 에이리어 지역이 바로 이 곳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쟁쟁한 이곳 출신 스래쉬 밴드들과의 교류도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