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문(풍종호)

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 『지존록(至尊錄)』에 등장하는 귀문신투(鬼門神偸)로부터 시작된 문파로, 제자인 무영객(無影客)이 더욱 유명하여 무영문(無影門)이라 불린다. 무영문은 백 년 전의 절대자라는 지존마(至尊魔)가 남긴 절대지존환(絶對至尊環)과 관련하여 깊은 원한으로 얽혀 있고, 그 시작이 무영객이 지존환을 얻고자 오십여인을 참살한 일이다.

『지존록』에서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풍현의 생각을 따라 무영객이 무고한 누명을 쓴 것처럼 보인다. 귀문신투가 말하는 제자인 무영객은 자신이 전수받은 절기의 살상력은 약화시키고 호신력은 강화시킬 것이라 하는데, 실제로 그러했다. 그래서 무영객의 제자들인 귀영자(鬼影子)와 귀혼도(鬼魂刀) 풍영휘는 무영객의 성향으로는 절대 그런 사달을 일으킬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영객은 결국 비명횡사하고, 두 제자도 쫓기게 된다.[1]

귀영자는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사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지존환을 계속하여 추적한다. 그리하여 사제인 풍영휘와 헤어진 지 십오년 만에 귀영자는 지존환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그 상황은 음모의 덫이었다. 귀영자가 지존환을 얻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퍼지면서 그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고, 마지못해 송가촌으로 풍영휘를 찾아온다. 이로 인해 귀영자를 쫓아온 무림인들이 송가촌으로 들이닥치고, 무고한 양민들까지 모조리 살해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이는 섭혼루(攝魂樓)의 잔악한 일당들과 미망산에 당한 무림인들의 잔인한 행동 때문이다. 결국, 귀영자와 풍영휘는 죽고, 풍영휘의 두 아들 풍현과 풍기만이 살아남는다.[2]

이후 풍현이 제세칠성(濟世七聖)의 유적에 들어가 귀문신투의 유세비전을 이어받음으로써 다시금 귀문(鬼門)을 넘나드는 진정한 신투(神偸)의 기예가 세상에 드러난다.

2 무공

  • 음부귀장신법(陰府歸藏身法) : 일찍이 은형술(隱形術)에도 일가를 이뤘던 귀문신투는 은형술과 신법을 결합하여 음부귀장신법을 창안한다. 그래서 빠르기도 빠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면 사람의 눈에 띄이지 않기에 귀문신투의 성명절기가 된다.
  • 무상장(無相掌) : 귀문신투가 여기저기서 빌려와 멋대로 끼워맞춘 장법이다. 본래 무상장은 음부귀장신법과 별개였으나, 무영객이 통합한다. 그는 아무 제한 없는 음부귀장신법이 무영문의 심법과 동떨어져 잘못 전해질까 우려했고, 이를 막기 위해 심법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무상장과 통합한 것이다. 제자가 편히 익혀 일찌감치 좋지 못한 일에 눈뜨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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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고로 무영객이 오십여 인을 참살한 사건이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 무적신마(無敵神魔)가 개봉 전 찾아낸 세 개의 지존환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개봉이 되었다고 한 만큼 무영객이 지존환을 개봉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혈(魔血)로 인하여 거의 미쳐 있었다면 오십여 명을 실제 참살했을 수도 있으며, 단마애에서 천랑칠살도 무찌를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이런 무영객을 상대하기 위한 검맹(劍盟)이 설립된다. 이 검맹과 검왕(劍王)이 실제 연관이 있다면 검왕의 정대한 성격으로 봤을 때, 무영객이 일으킨 사건이 누명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2. 무영객이 오십여인을 참살한 사건이 송가촌의 혈사까지 이어진다. 여기에 전(殿)과 섭혼루의 음모가 가미되어 어디부터가 사실인지 아직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