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이름박범계 (朴範界)
출생일1963년 4월 27일
출생지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범계동
본관밀양 박씨 [1]
학력고등학교 검정고시 [2]
연세대학교 법학 학사
한밭대학교 경제학 학사
종교개신교(감리교)
자녀슬하 2남
소속 정당더불어민주당
지역구대전 서구 을
의원 선수2
의원 대수19, 20
소속 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현직제20대 국회의원
약력서울지방법원 판사
대전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사법개혁추진위원회 간사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
민주통합당 원내부대표
민주당 법률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
외부 링크공식 사이트, 블로그

1 개요

대한민국 전직 법조인. 현직 국회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19대, 20대 국회의원(대전 서구 을)으로 활동 중이다.


2 생애

2.1 초년기 ~ 판사 시절

남강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고졸 검정고시 후 연세대학교로 입학하였다. 1991년 사법고시에 붙어 판사가 되었으며, 사법연수원생 시절 자치위원회 잡지편집장으로 있으면서 노무현을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박범계가 정치권에 진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을 시작으로 대전[3],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거치면서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기도 하였다.


2.2 정계 활동

박범계를 정계로 직접적으로 인도한 사건은 2002년 10월 당시 386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지던 김민석(정치인)의 탈당 및 정몽준 진영 합류였다. 4월에 새천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은 6월 지방선거 참패후 지지율이 떨어지자, 당내의 중진의원들의 만든 후보 단일화 협의회 약칭 (후단협)의 후보 사퇴 권고로 코너에 몰려 있었는데,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할 줄 알았던 김민석이 탈당하고 후단협이 은근히 지원하던 정몽준을 지지하자 전 386세대에 충격을 준 것. 박범계는 김민석의 탈당을 보고 분노하여, 판사직을 사직하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2002년 박범계의 노무현 지지선언(오마이뉴스)] [선대위 회의 때 인사하는 모습]

이때가 2002년 10월 말 무렵인데, 판세 자체가 이미 정몽준에게도 밀려 3위로 전락하여 소속당에서조차 거의 외면당하던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 잘 나가는 공직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무리 소신이라도 무모한 것으로 보였으나[4] 기적적으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 넓은 출세길이 열리게 된다. 애초에 판사였기 때문에 정 안되면 변호사 생활이라도 하면 된다지만 그리하여 참여정부 초기에 민정제2비서관, 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2004년의 제17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열린우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기반이 튼튼했던 구논회에 밀려 당내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구논회가 작고하면서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당시 국민중심당 심대평의 당선을 위해 결국 출마를 포기하는 등의 시련이 있었고[5] 이듬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는 3위로 낙선하였다. (...) 그러나 통합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으며 절치부심한 끝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지 8년 만인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이 때 깨알같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후일 코레일의 대표이사로 올라가 코레일 고속철도 자회사 설립 논란의 최전선에서 정부를 비호하는 최연혜 후보도 꺾고 올라오게 된다.

2014년 8월 18일에 임환수 국세청장 청문회 과정에서 송혜교의 탈세사실을 알고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송혜교의 탈세 내용이 드러났다. 처음 언급 당시 송혜교 팬 등 연예계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탈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난여론은 사그라들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재선 후보와 다시 한 번 격돌하여 15% 이상의 격차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충청권의 대표적인 친노 - 친문계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비문계의 대표인 박영선하고도 나름 접점이 있다.


3 선거 이력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 여부비고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대전 서구 을)통합민주당22,448 (26.4%)낙선 (3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대전 서구 을)민주통합당46,908 (43.6%)당선 (1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대전 서구 을)더불어민주당56,819 (49.5%)당선 (1위)재선


4 기타

  • 1992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삼례3인조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였는데, 이때 이 사건의 1심에서 배석판사로 재직하였다. 2016년 10월 28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고 2016년 11월 4일 검찰에서 [항소 포기]하여 최종 무죄 확정된 사건이다.([링크] 삼례사건 참조) 2017년 2월 14일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였다. [#]
  • 파도 파도 미담이라는 유행어를 만든 사람이다.
  • 2016년 12월 15일 열린 청문회에서 진행을 하던 도중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려 박뿜계, 박두꺼비 라는 별명을 얻었다. 푸훕! 푸흐흐흐흐장제원 국조특위원이 김경숙 전 이화여대 체육대학장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김경숙 증인이 교육부 감사 결과를 전면 부인하고 동문서답을 하자, 장제원 위원은 박범계 위원장 대리에게 김경숙 증인의 답변태도에 대해 주의를 줄 것을 요청했다.이 때, 박범계 위원장 대리는 "김경숙 증인, 잠깐만요, 장제원 위원, 불만이 뭐시죠?"라고 한 뒤 장제원 위원의 "혼내주세요!"라는 대답에 웃음을 터뜨려버린 것.[장피셜] 박범계 위원장 대리는 이후 장제원 위원의 지적이 옳다고 하면서 웃음을 터뜨린 것에 대해 [사과]했다. 웃음만 놓고 보면 욕을 먹을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발언시간이 1초 남은 상황에서 시간을 멈추어 달라고 한 장제원 의원과 김경숙 증인의 발뺌 상황, 그리고 그 나이대 사람이 보통 하지 않는 말인 "혼내주세요!"총체적 난국 때문에 갑자기 빵터질 수 있는 상황이였다. 여론은 대체적으로 웃기다는 반응이다. 장제원 의원이 한번도 아니고 이런 모습을 두번째로 보였으니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해도 터질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시당한 윤소하 의원도 그렇고 웃긴 장면이 많은 청문회긴 했다 여담으로 썰전에서 김경진 의원과 함께 출연했을 당시 김성태가 말하길, 판사출신으로 한성격하는 법조계출신 의원이라 웬만하면 웃는걸 본적이 없는데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지는걸 보고 정말 희한했다고 한다.
  • 2016년 12월 22일 열린 청문회에서 자신의 별명인 박뿜계를 직접 언급하였다.[3분부터]
  • 최근 손혜원 의원과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의 증언에 의하면 박범계 외 간사 2명간 [물밑 접촉에 따라 장충기 증인 채택을 취소했다]는 언급이 나왔다. 장충기를 털어도 얻을게 없다고 판단한 건지, 아니면 장충기 증인 채택을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떼쓰기를 시전해서 어쩔수없이 타협을 본 건지 당시 상황에 대한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사실 지난 탄핵 표결때도 민주당이 정권교체 명분 얻어내려고 2일 표결을 강력하게 주장했단 음모론까지 나도는데 이 정도쯤은...
  • 서구에 비해 대전 전체에서는 지역기반이 약한 편이다. 대전 태생도 아니고, 대전고가 아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역대 민선 시장은 모두 대전 출신이고, 염홍철 전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은 모두 대전고 출신이다. 따라서 뒤늦게 한밭대에 편입하는 등 지역기반을 다지기 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범시험 존치법안을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공수처법안과 딜을 시도하여 사시존차론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1]]
  • 보승랑장공파 28세손 '範' 항렬이다.
  • 검정고시 응시 전에는 관악구에 소재한 남강고등학교에 재학했었다.
  • 2001년 소년부 시절 일명 '대덕고등학교 왕따 사건의 주도 학생이었던 해당 학교 졸업생들이 비슷한 내용을 다룬 드라마와 관련해 홈페이지에 왕따 학생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이유로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 오죽하면 민주당 중앙 선대위에서 환영식을 해줬을 정도.
  •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가 어렵지만 그 당시 열린우리당은 엄청나게 인기가 없어서 재보궐선거마다 참패하는 진기록(...)을 거듭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아무 접점이 없던 국민중심당을 돕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 한편 박범계 본인은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까지 고려했지만 10일간 칩거하면서 생각을 정리한 끝에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