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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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U.S 여자오픈 당시 물에 빠지기 일보 직전의 공을 치기 위해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리던 모습. 그리고 이 모습은 박세리의 상징이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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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리우 올림픽 대표팀 코치로서, 박인비 등 후배 선수들과 함께.

골프의 요술공주[2]

대한민국 여자 골프의 선구자이자, 1990년대~2000년대 탑 클래스 여성 프로골퍼

1 약력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자 프로골퍼.

1977년 9월 28일 대전광역시 유성구(당시에는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읍)에서 아버지 박준철의 3녀 중 둘째로 출생.[3]

어렸을 때 육상을 시작으로 스포츠에 입문했다. 1989년, 초등학교 6년 때 싱글 핸디캐퍼였던 골프아버지 박준철 씨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훈련장에서 새벽 2시까지 혼자 남아 훈련을 하는 등 쉬는 날 없이 엄격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당시 언론에서는 박세리를 "무서운 10대"로 불렀다. 1998년부터 LPGA 투어에 참가하여 투어 참가 첫 해에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신인상을 받았다.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성적이 좋지 않아서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계속 활약하면서, 그 해에만 4승을 거두었다.

1998년 LPGA 데뷔 첫 해에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 우승. 다른 메이저 대회인 'U.S.여자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를 살아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히지 않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위의 사진의 그 경기가 바로 이것.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갔을 때 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비되는 하얀 발 역시 레전드급 장면으로 화제가 되었다.[4] 특히 1997년 12월에 대한민국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IMF 사건으로 큰 실의에 빠진 대한민국의 온 국민들에게 악전고투 끝에 우승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박찬호와 함께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특히 당시에 만들어진 공익광고[5]에 이 장면이 들어갔고, 상록수와 함께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워낙 전설적인 장면인지라 예능 등지에서 골프가 소재일 때 기본적으로 양말을 벗으면서 그 장면을 패러디 하는 걸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상록수는 덤 그리고 그해 LPGA '올해의 신인왕'을 수상했다.

2001년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 2002년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써 최연소 메이저 4승을 기록했다.

2006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07년 6월에는 꿈에도 그리던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입회 자격은 2004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 우승으로 회득) 또 7월에는 K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였다.

2011년 6월 스태이트팜클래식 오픈에서 5위에 오르며 아직 박세리는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2012년 9월 23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 2012 KDB대우증권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9년 만에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어깨 부상의 여파로 2015년에는 거의 플레이하지 못하였고, 2016년 미국 애리조나피닉스에서 열린 LPGA JTBC 파운더스컵에 출전, 모처럼 만의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12언더파 공동 4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은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실질적인 은퇴 기자회견'을 가지며 그 간의 파란 만장했던 선수생활의 종지부를 선언한 점.

이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는 등, 은퇴 후의 활약이 더 주목받는 입장이고 본인도 더 이상 부상 등의 이유로 결과를 내기 쉽지 않음을 알았기에 아쉽지만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듯. 명전 멤버이므로 원하는 대회는 다 출전할 수 있으나, 메이저 대회는 '전년도에 10경기 이상 출전'이라는 기준을 달성하지 못 한 탓에 출전 불가. 이로써 우승하지 못 한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前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의 우승, 그리고 그에 따른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꿈은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은 우승에도 불구하고 여자 골프의 먼치킨급 레전드인 아니카 소렌스탐캐리 웹과 전성기를 같이하는 바람에 자신의 전성기에도 LPGA 공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라본 적이 없다. 참고로 한국인 골퍼로서 최초의 세계 랭킹 1위는 신지애이고, 2016년 현재까지 박인비만 세계랭킹 1위를 기록해 본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훌륭했던 커리어였음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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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 국가대표팀의 여성 팀 감독으로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6][7] 그리고 박인비의 금메달이 확정된 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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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오션코스에서 열린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에서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역시 1990년대말~2000년대 한국 스포츠의 개척자로서 함께 국민적 성원을 받았던 전(前) 메이저리거 야구선수 투머치토커 박찬호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2 여담

박세리의 미국 진출 이후 대한민국 선수들의 LPGA 진출이 본격화됐다. 박세리의 영원한 라이벌 김미현은 물론이고, KLPGA 출신의 상위 랭커들이 LPGA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또한, 1998년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을 보고 수많은 여자 어린이들이 그녀를 동경하여 골프클럽을 잡았는데, 이들은 박세리 키즈 또는 줄여서 세리 키즈로 불리며 각종 골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들이 신지애, 최나연, 박인비. 그리고 박세리 또한 LPGA에 진출한 대한민국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본인이 주도하여 모임을 한다.

대한민국 여자 골프에서 박세리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은 누구보다도 크다. LPGA 25승, 메이저 투어 5승, 연장전 6전 6승의 기록은 아직 후배들이 근접하지 못 했다.[8] 다만, 메이저 5승 중에서 이상하게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약한 탓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이루지 못했다.

박세리의 이름 영문 표기는 Pak Se Ri이다. 당시 유행했던 음담패설로 '박찬호는 Park인데 박세리는 왜 Pak일까? 정답은 (R)이 없어서'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때 사용하던 문교부안 로마자표기법에 따르면 '박'은 박세리처럼 Pak으로 적는 것이 옳다. 박 씨의 99%가 사용하는 Park은 관용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 사이에선 "여권을 처음 만들 때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 씨가 영어를 잘 몰라서 딸 이름을 박세리가 아니라 팩세리 만들어 버렸다."라고 놀리듯 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아마도 어린 딸을 공동묘지에 내려놓고 담력훈련아동학대 돋네을 시켰다는 소문 등, 뭔가 막무가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 참고로 공동묘지에서 담력훈련으로 대표되는 '박세리 아버지의 스파르타식 훈련'은 뜬소문이었다.[9] 박세리 아버지는 훗날 인터뷰에서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골프에 취미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1998년 성균관대학교 체육특기생으로 합격하여 1999년 입학을 앞둔 상태였으나 미국에서 프로 활동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입학을 포기하였고, 2007년에 와서야 숙명여자대학교 2007학년도 정시모집 ‘숙명글로벌리더' 전형에 지원해 10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합격하여, 정치행정학부에서 4년간 장학금을 받고 학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4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Korean Heritage Night 행사차 시구를 했는데,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노란 리본을 달고 시구를 했다.

2015년 9월 2일부터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데, 아버지 박준철씨와 연탄불고기 5인분을 먹어 치우는 먹방을 선보였다![10]
  1. 공주문예회관 앞에는 이 모습으로 박세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2. 만화 요술공주 세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름이 박세리라는 점 때문에 붙은 별명이라고.
  3. 북대전IC에서 나오면 큰 입간판에 박세리 전신 사진이 있다. 대전/충남에서는 박찬호와 함께 몇 안 되는 전세계적인 유명인.
  4. 박인비는 이 발을 보고 본격적으로 골프클럽을 잡았다고 한다.
  5. 국정홍보처의 전신이었던 공보실에서 만든 공익광고다.
  6. 남성 팀 감독은 최경주.
  7. 올림픽을 앞두고 한 기자회견에서 골프 국가대표팀의 목표는 금, 은, 동을 휩쓰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8. 그나마 근접한 신지애가 투어 10승, 메이저 2승, 연장전 2전 2승이다. 하지만 박인비가 이후 무섭게 치고 오면서 2015년 8월 기준 LPGA 16승, 메이저 7승을 달성했다.
  9. 그런데 네이버 매거진 S에서의 대담에서는 딸을 공동묘지에 던져놓고 혼자 왔다는 얘기를 한다. 양자가 다른 말을 하고 있어서 확인이 필요하다. 1998년 즈음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에서도 관련 내용이 나왔었다.
  10. 원래 3인분을 시켰는데 모자라다고 2인분을 더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