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상(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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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대표 패륜 존속살해범. 이 자가 수십년 후에도 유명한 것은, 한국 내에서 존속살해가 벌어지는 경우는 부모 자식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다 폭발하는 경우나, 막장부모 밑에서 자라는 자식의 고통을 사회가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경우에서 비롯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1차적인 원인이 자식의 비윤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미 상당한 차이점을 보였다.

2 사건 전개

1994년 살인사건 당시 나이 23세.[1] 서울 강남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당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었으며 방위 복무를 마친 뒤 1993년 미국 유학을 떠났으나 도박에 빠져 부모가 대준 유학비용을 죄다 날려 먹고 빚까지 졌다. 귀국하여 이듬해 자신의 아버지가 유학시절 노름과 방탕을 즐겼다는 사실에 질타를 하게 되자 결국에는 원한과 재산상속에 눈이 멀어서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희대의 패륜을 저질렀다.

1994년 5월 1백억대 자산가인 고려한약유통공사(현 고려허브) 대표 겸 대한한약협회 서울시지부장 박순태씨 부부의 집에 불이 나서 부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화재 사고로 처리했으나 형식적으로 실시한 부검에서 화재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이 40여 군데 난자된 상태를 발견하고 살인사건으로 간주, 공식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당시 여러 정황을 봐서 면식범의 소행으로 파악하던 경찰은 "박한상의 머리에 피가 묻었다" 는 간호사의 증언과 박한상의 다리의 이빨자국을 이야기한 친척의 제보로 수사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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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상의 가족사진. 왼쪽의 인물이 박한상이고 가운데 두 부부가 부모님, 오른쪽 얼굴을 가린 이는 박한상의 친동생이다. 이 사진으로만 보면 뭐 그냥 평범한 청년처럼 보이지만...

94년 사건 당시 23세의 박한상은 미국에서 유학중 문자 그대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도박과 향락에 빠져 학업에 제대로 열중하지 않은 채 방탕한 생활을 했다. 하룻밤에 5천 달러를[2]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94년 1월 귀국해 아버지에게 고급 승용차를 사달라고 졸라 1만 8천달러를 받아 출국했지만 그 돈마저 도박으로 잃는다. 94년 4월에는 부모 몰래 귀국해 은행에서 발급받은 카드로 사채업자에게 현금을 빌린 뒤 나이트 클럽을 전전하며 오렌지족 생활을 했다. 그러나 4일만에 부모님께 귀국한 것을 들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여전히 술, 마약, 도박에 빠진 생활을 하던 그는 오히려 빚만 3700만원만 지게 되고 결국 아버지의 반 강제적인 호출을 받아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자신이 원하는 고급 승용차를 사주지 않고[3] 자신의 빚도 안 갚아주고 호되게 꾸짖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던 그는 본격적을 살인 계획을 세우고 5월 13일 세운상가와 주유소 등지를 돌며 등산용 칼, 휘발유 따위의 살인에 필요한 도구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19일,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강도 살해처럼 꾸민다.

사실 화재 당시에도 오줌이 마려워서 나가다가 불이 나자 부모와 이종동생에게 알리지 않고 먼저 도망간 그의 행색이 수상해서 경찰의 수사대상에도 올랐지만 친아들이 부모를 그렇게 살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장례식날 기절까지 한 박한상을 처음부터 범인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

평소에도 돈만 대주면 자식이 잘 자랄거라 생각하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아버지 였지만 이 일로 인해 아버지에게 심한 반감(물론 친모도 살해)을 갖게 된 박한상은 귀국 후 이렇다 할 직업도 갖지 않고 무의미한 생활을 지속하다가 5월 19일 도박빚도 청산하고 빠른 시일 내에 부모의 100억 원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친부모를 살해 할 계획을 짜고 팬티까지 옷을 다 벗어버리고 양손에 칼을 하나씩 쥐고 부모를 40군데나 찔러서 살해했다. 옷을 벗은 것은 살해 후 샤워로 혈흔을 지워버리기 위해서였으나 칼에 난자 당하면서 그의 어머니가 박한상의 종아리를 물어뜯어 결국 그가 체포되는 빌미가 되고 만다. 그러니까 살해 후 샤워를 마친 뒤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한 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박한상만 이렇다 할 상처가 없지만 이빨자국이 종아리에 남아있는 점과 머리에 묻은 타인의 혈흔 등을 근거로 추궁하자 이내 박한상은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자백하였다. 경찰은 그를 그 자리에서 구속하였다. 옷을 모두 벗고 나체인 채로 부모를 살해한 뒤 사워를 해서 몸에 묻은 혈흔을 지워버리기는 했지만 머리에는 피가 묻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머리를 감지 않아서 범행이 발각된 것이다.

3 개인에 대한 이야기

박한상은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박한상은 정신질환자인데다 이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무슨 일을 하면 끝까지 이루지 못하는 성격을 가졌다. 이 때문에 학교와 병원을 옮겨다녀야 했고 왕따였다. 또한 박한상의 친구 말에 따르면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자동차 튜닝 분야로 진로를 정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한상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못마땅히 여겼다는 것이다. 자수성가한 약재상이었던 박한상의 아버지는 아들인 박한상이 한의대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장자라서 기대가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박한상은 관심이 없었다. 박한상의 아버지는 아들을 강압과 폭력으로 통제하려고 했고 박한상은 그로 인해 더욱 엇나갔다. 그리고 원광대학교 경영학과[4]에 입학했으나 대학 생활에는 적응하지 못했고 이미 이 때부터 유흥업소에 들락날락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박한상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회 목사에게 부탁하여 미국 대학에 강제로 도피성 유학을 보낸 것이다. 사실 거두절미하고 말한다면 박한상 아버지의 욕심이다. 애초에 박한상을 유학보낸 것 자체가 장남이라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아버지 본인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사실 이게 당시 부자들의 보편적인 행동이었지만. 당시 박한상과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증언하기를, "한국에서도 공부를 못 쫓아가는 애가 어떻게 미국가서 공부를 하냐, 결국 거기서 놀러다니고, 도박이나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한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한국에서 새는 바가지는 미국에서도 제대로 새고 있었다. 본인이 간절히 원해서 간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정작 본인이 미국에 유학갈 의지가 별로 없는데도 억지로 떠밀리다시피 갔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둘째가 한의대에 입학하게 되면서, 집안에서는 장남이면서 사고나 치고 다니는 박한상이 더 이상 기대의 대상이 아닌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박한상이 3700만원 도박빚을 지게 되면서[5] 아버지한테 갚아줄 것을 부탁했지만 아버지는 거부했고 박한상을 한국으로 호출하게 된다. 그리고 박한상은 한국으로 귀국한 뒤 위와 같이 패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다만 그렇다 하여 동정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친구들도 박한상을 패륜아로 규정하고 그 형량을 집행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박한상에게 주어질 동정표는 그가 재산을 탈취하기 위해 존속살해를 저지른 시점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의 잘못된 교육이 이런 막장행동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긴 했겠지만, 일차적으로 개인이 방탕하고 비윤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게 문제였기에 동정을 받으려야 받을 수 없었다. 완벽하게 막장 부모스러운 부모를 만나고 그 막장 부모의 강압과 폭력을 짊어진 막장스런 삶을 살다가 그 막장스런 삶에 의해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나머지 보복성 살인을 했던 이은석과 달리 사건의 책임을 막장 부모스러운 행동을 한 부모에게 묻기에는 박한상의 죄가 너무 크고 불량했던 것,

4 여담

박한상은 나중에는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나려는데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정신을 잃었고 칼을 누군가가 쥐어주었다' 는 식의 이야기도 했는데 사실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 당시만 해도 유교적 도덕관념의 영향이 강했고, 존속살해가 있어도 대부분 부모자식간의 갈등이 원인이지 이번과 같은 계획적인 재산 상속 목적의 살해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현재도 존속살해 대부분은 갈등이 주원인이 되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짓이지, 박한상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5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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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패륜아에게 법원은 관대할 이유가 없었고 1995년 8월 25일 대법원은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한상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후 사형수의 신분으로 현재도 수감 중이며 현재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 폐지국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기징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박한상의 진술 중에 "미국 영화를 보고 살인 수법을 배웠다." 말 덕분에 많은 영화는 물론이요 애꿎은 애니메이션들이 도매금으로 올라서 탄압받았다. 심지어 '유산을 물려주는 게 범죄의 원인'이라고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도 벌어진 적이 있다.[6]

1년 뒤인 1995년 3월 14일에 일어난 서경대학교 교수 김성복이 부친인 덕원예고 이사장 김형진 씨를 살해한 사건과 연관돼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고 알려졌다.

인터넷상에서 이미 처형되었다[7]느니, 사형수 신분으로 20년 가까이 잘 살고 있다느니, 죄책감도 없어보인다느니, 수용자간에 벌어지는 싸움질에도 빠지지 않는다느니 하는 소리는 사형제 찬반논란 네티즌들이 지어낸 허구다. 출처는 항상 사형수 동을 맡는 교도관이 그랬다 카더라인데 사형수 동에 배치되는 교도관들은 은퇴한 이후라도 사형수들의 근황에 대해 절대 함구하도록 서약서를 쓰며 굳이 서약 때문이 아니더라도 심리적으로 사형수 동에 근무했던 일 자체를 몹시 꺼림직하게 여기기 때문에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형수 근황은 언론에 공개된 것이 아니면 철저하게 가려 듣는 게 필요하다.

언론에서 사형제에 관해 다루면서 나온 그의 근황은, 1997년과 2002년에 동료 수감자와 큰 주먹다짐을 하고 독방으로 보내졌으나 얼마 후 다시 다인실로 복귀했다는 것. 현재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수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경찰청 사람들 2015 7월 16일 방송분에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세월이 흘러 현재는 40대 중반의 장년이 되었는데 본인의 증언을 그대로 신뢰한다면 자신의 죄를 반성하며 살아가는 모양.

영화 공공의 적의 악역 조규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박한상의 범행이 밝혀진 날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 자료.

비슷한 범죄자로 2002년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한 패륜아 김근우[8]가 있으며 미국에는 메넨데즈 형제가 존재한다.[9]
  1. 연도로 치자면 1971년생으로 추정.
  2. 전 세계에서 웬만한 사람들이 버는 월급이 전문직 초봉 기준으로 나라에 따라 1천 달러 ~ 2천 5백 달러 내외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지금 가치로도 상당한 돈이다.
  3. 지가 도박으로 돈을 전부 날려놓고 이랬던 거다.
  4. 전과를 통해서든 아니든 어떻게든 한의대로 보내려고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한의대는 원칙상 타과에서 전과가 불가능하다(의대와 마찬가지다).
  5. 원금 2000만원. 아마 이자를 포함한 액수일 것으로 추정.
  6. 당시 시사만화들을 보면 이홍우는 동아일보에서 돈을 수백억 모은 부자가 이런 사건뉴스를 보고 불안해하자 아들이 걱정 말라더니 병원으로 가면서 "아버님을 위하여 성전환 하러 갑니다"라고 말하는 게 나오고 딸 되면 돈 욕심이 사라지기라도 하나? (진지하게 달자면 2000년대 후반까지도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해서 유산상속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외시키는 분위기인 집들이 많았다.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성전환을 한다는 묘사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 박재동 화백은 한겨레에서 이런 사건을 보고 사람들이 경악할 때 반대편에선 그 무렵 터진 대학교수 임용비리와 맞물려 매수된 대학 교수가 나오면서 "요즘은 돈이면 다 된다는 거 몰라?" 라고 말하고 있었다.
  7. 지존파와 오인돼서 그런 것. 김영삼 정부 시절 벌어진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뒤 집행된 사형수는 지존파, 온보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1997년에 이뤄진 사형 집행도 김영삼 정권 이전부터 사형 집행이 안 되고 대기 상태에 있었던 사형수를 처형한 것으로 김영삼 정부 당시 이뤄진 사형 판결은 집행되지 않았다.
  8. 카드빚을 갚아 주기를 거부한 가족들을 살해하기로 결정하고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했고 아버지와 형도 살해하려다가 실패했으며 역시 사형 선고를 받고 현재도 수감 중이다.
  9.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형제 살인범. 둘 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도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