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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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enciaga.

1 개요

스페인의 패션 브랜드.

2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

2.1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1895년 스페인의 한 어촌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옷을 만드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탓에, 그가 13세가 되던 해 마드리드에서 휴가로 놀러온 귀족부인의 눈에 띄어 부티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뛰어난 바느질 솜씨와 완벽주의를 고집하는 성격으로 스페인에서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으나,1937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자신의 이름을 딴 '발렌시아가' 부티크를 오픈했다.
17세기 화가 벨라스케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첫 번째 파리 컬렉션으로 하루 만에 파리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프랑스 패션에 공헌한 것이 인정되어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뜨 꾸뛰르보다 프레타 포르테가 패션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꾸뛰리에로서의 자존심을 지닌 발렌시아가는 은퇴를 선언했다. 1972년 사망.

2.2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압도적인 실력의 꾸뛰리에였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죽은 이후 발렌시아가는 예전의 명성을 잃게 된다. 샤넬, 크리스찬 디올과 동시대에 활약하면서 당시에는 그들보다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 일반인들에게 알려져있는 명성이 샤넬이나 디올보다 떨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 발렌시아가를 단숨에 살려놓은 디자이너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다.

1996년 26세(!)의 나이로 발렌시아가를 다시 일으킨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 이후 스타 디자이너를 배출하지 못하고 미국, 영국 등에 밀려났던 프랑스 패션계의 새로운 스타 디자이너다. 일명 '모터백'이라고 불리는 가방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잘생겨서 할리우드 스타들과 친분이 많다. 대표적으로 니콜 키드먼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2013년 발렌시아가를 떠나고 LVMH 산하인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2.3 알렉산더 왕

게스키에르의 후임으로는 영국인 패션 디자이너가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그 자리는 알렉산더 왕이 들어왔다. 이름에서 보이듯 중국계 미국인으로, 2007년 20살이 조금 넘은 나이에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열어 성공을 거둘 만큼 탄탄대로를 걸어온 남자. 게이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알렉산더 왕 X H&M 콜라보레이션 정도로만 알려진 듯 하지만 젊은 나이에 발렌시아가 수석 디자이너를 할 정도면 짬이 좀 부족해도 남다르긴 하다.

그러나, 얼마안가 2016년 봄/여름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2015년 7월 29일 발렌시아가에서 짤렸다.(....) 나가. 텀블러 사람들이건 잡지건 다들 환영 일색이었다

해고 이유를 말하자면 구 시즌에 나왔던 피스 디자인들을 너무나도 우려먹었으며, 무엇보다도 특유의 알왕식 감각으로 발렌시아가라는 느낌(단순히 표현하자면 포르테 포르타에 녹아든 쿠튀르적 디테일)은 싹뺀 군더더기 없는 재미없는 상업적 디자인을 계속 찍어냈다는거.미니멀리즘의 폐해랄까... 발렌시아가 옷들의 본연 80%를 중국산 염가 하청 업체에 맡겨놓고 나머지 20%는 이태리에서 최종 손질을 해서 옷 제작을 하게 만들어버린 주범이기도 하다. 아니, 이태리 레이블도 아니고 완성도를 중요시하는 파리 레이블에서 그딴짓을??? 컬렉션 피스라는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빡센 디자인만 지겹도록 찍어내는 발망과 아주 판박이다. 잡지나 셀럽들이 꼭 둘 중에 하나만 까지않고 둘을 엮어서 까는것도 둘이 요즘 브랜드가 개판으로 가는 가정이 똑같은게 그 이유다. 색도 거의 무채색만 썼으며, 매 컬렉션마다 반응은 암울 그 자체. 이젠 더 이상 쇼가 기대되지 않는 브랜드라는 말이 다수였고, 이구동성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발망은 색이라도 많이 쓰잖아 근데 발망은 색 조합을 엄청 못해서 몇 십년전 컬렉션마냥 촌스럽게 쓰고 그 색조합을 매년 뒷북쳐대니 욕먹어도 싸다.

이로써, 알렉산더 왕은 완전히 거품 낀 디자이너라는 것이 이번에 발렌시아가에서 해고된 계기로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게스키에르가 발렌시아가 재임 시절 너무나도 레전드여서 그가 게스키에르만큼 멋진 옷들을 보여주지 못해 대비되어 제명된게 아니라, 너무나도 발렌시아가와는 동떨어진 옷들을 만들어내서 제명이 된 것이다. 애초에 H&M이랑 콜라보 했을때 터져나왔던 악평들이 그를 해고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지도.(...)

애초에 알렉산더 왕은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를 졸업했으며, 마크 제이콥스처럼 디자인에서 상업성이 확 드러나는 뉴욕 레이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쿠튀르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오트 쿠튀르를 발판으로 시작되었던 발렌시아가는 알왕에게 있어선 메이저 디자이너로써 짊기엔 시작부터 매우 무리였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아직 20대인 디자이너로써 많은 경력이 없었던것도 틀림 없었을것이고.. 무엇보다도 알왕 본인의 스타일을 은근히 스며들게 한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쳐박아두었기 때문에 발렌시아가의 쇼인지 알렉산더 왕 개인브랜드의 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 알렉산더 왕이 발렌시아가를 맡은 이후 자신의 네임을 딴 레이블의 매출도 수도없이 떨어져 나갔고, 발렌시아가도 엄청나게 매출이 떨어져 버렸다. 이젠 해고됐으니 자신만의 레이블 하나에 열심히 몰두해줄 수 있으니, 대중말고도 알왕 자신한테도 나름 축복일지도. 대표적인 예로 꼼데가르송 트리콧 라인의 메이저 디자이너인 구리하라 타오랑 마크 제이콥스는 타오 자신의 네이밍이 들어간 브랜드랑 루이비통에서 퇴직한 이후 트리콧이랑 마크 제이콥스 자신의 브랜드에서만 컬렉션에 온갖 신경을 몰두했는데, 한 브랜드에만 일을 해온 이후로 컬렉션에 대한 완성도가 상당히 훌륭해졌고 호평이 일색이었다.
그래도 첫 데뷔 컬렉션이랑 마지막 컬렉션은 나름 호평이었다. 아무래도 첫 데뷔때는 누구라도 대충으로 만들지는 못하니깐 프로토타입마냥 첫 컬렉션에서는 온갖 주의를 기울여서 만들고 그 이후의 컬렉션들은 양산형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근데 이런건 일본군 특유의 전통인데...

알렉산더 왕 해고 이후 차세대 디자이너는 아직 누구를 데려 올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게스키에르가 생판 모르는 신인으로 데뷔했을때처럼, 다음 디자이너도 잠재력이 엄청난 신인 디자이너로 데려와서 데뷔시켰으면 좋겠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 지금의 패션계는 성공한 자들만의 리그나 다름 없어서[1] 이미 활동중이거나 다른 브랜드도 맡고있는 디자이너를 데려오지 말고 풋풋하고 신선한 신인 디자이너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비좁은 패션계의 폭이 넓혀져 되어야 한다고. 만약에 그런 신인 디자이너를 궁색하게 된다면 발렌시아가와의 아이덴티티가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수많은 까다로운 시험들을 걸어야겠지만 말이다.

+) 그리고 2016년 드디어 알렉산더 왕의 뒤를 이을 후임이 정해졌다 ! 바로 베트멍(Vetements)의 뎀나 바살리아(Demna gvasalie)가 그 주인공.

마르지엘라와 루이비통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는, 마르지엘라의 뒤를 잇는 해체주의로 유명하며,
최근 소매가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괴랄한 룩을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6 F/W 컬렉션으로 발렌시아가 데뷔전을 마쳤으며, 아직 지켜봐야 알겠지만 베트멍의 힙함과 발렌시아가의 유산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평가가 주된 반응이다.
  1. 그 연세에 왕성하게도 자신의 레이블뿐 아니라 샤넬과 펜디라는 굵직한 두 하우스를 맡고 있는 칼 라거펠드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