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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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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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준
6대 1기 ~ 7대 2기
이효상

白樂濬
1895년 3월 9일 ~ 1985년 1월 13일

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 그리고 친일파이다. 아호는 용재(庸齋). 창씨개명한 이름은 白原樂濬. 영어이름을 쓸 때는 조지 백(George Paik)을 썼다.

2 일생

1895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10년 봄에 평안북도 선천군의 신성중학교에 입학하였다[1]. 1913년 신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 유학, 톈진 신학서원에서 3년 과정을 거쳤다. 1916년 미국에 건너가 고학으로 파크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역사학, 신학을 공부한 뒤, 1925년 예일대학 대학원에서 종교사 연구를 시작하여 1927년 <조선신교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교수로 후학지도를 하는 한편, 조선기독교서회 이사, 조선어학회 회원, 영국황실아주학회 한국지부 이사, 진단학회와 조선민속학회 발기인, 조선기독교청년회 이사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다.

그 뒤 외국에서 국제적 학술, 교육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내선일체 지지 및 학도병 모집 선동, 신사참배 장려 등 친일파로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특히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엄청나게 많은 기고를 하였다. 태평양 전쟁을 아시아인의 해방을 위한 성전이라고 했으니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1945년 9월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대학 법문학부장, 한국교육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1946년 연희대학교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 5월 제2대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장관을 지냈다. 그 해 11월 국무총리에 잠깐 임명되었으나 단명 국무총리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여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 참의원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윤보선이 아직 대통령으로 취임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입법부 수장의 자격으로 대통령 권한을 닷새 간 대행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계에서 교육계로 돌아와 연세대학교 명예총장으로 일하였다. 이후, 1970년대에는 반(反)유신운동에 뛰어들어 '나름' 민주화운동에 투신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1974년에 민주회복국민선언 서명에 동참하였고, 야당인사들을 지지하기도 했다.

1969년부터 국토통일원 고문, 1980년 국정자문회의 운영위원으로 만년까지 학계·교회·사회·국제관계 전반에 걸쳐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다.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를 받았으며, 1970년 광복절에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90세로 죽었으며, 사회장으로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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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는 그의 이름을 딴 용재관과 동상이 있다. 국제캠퍼스의 기숙사에는 12개의 하우스가 있는데 이 중 하나의 이름도 '용재'이다. 오늘날의 교명으로 초대 총장을 지낸 인물이라는 점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그의 친일행적 때문에 학생들이 철거를 주장한 일이 있다.[2] 라이벌인 고려대에서 인촌 김성수가 받고 있는 논란과 비슷한 셈. 여기에 백낙준의 호를 딴 용재상이라는 상이 있고, 수상자는 용재석좌교수에 임명한다. 그런데 백낙준의 친일행적을 비판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선정되자 이를 문제삼아 번복한 적도 있다.

3 평가

일제강점기 말기의 행적 때문에 이광수, 최남선, 김활란, 김성수, 유진오, 모윤숙 등과 더불어 전시체제기 대표적인 친일파라는 비판을 듣는다.

4 관련 항목

  1. 안양의 신성중, 신성고는 이 학교의 후신을 자처하기도 했다. 설립자가 이 학교 출신이기도 했고. 다만 현재는 학교의 한자표기도 바꾸는 등 현재는 이에 대한 의식은 거의 없다.
  2. 여담으로 연세대에는 똑같은 친일매국노인 유억겸의 이름을 딴 유억겸기념관까지 교내에 있다. 연세대 동문 출신인 저항시인 윤동주 선생이 지하에서 무슨 생각을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