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줌

Burzum
(1973년생, 버줌이란 이름은 1991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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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유로니무스 살인사건과 교회 방화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카운트 그리쉬나크의 모습.



당시 선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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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네오 나치 사상에 빠져 있을 당시(2000년대 초반) 카운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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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모습. 2015년 현재 나이는 만 42세.

1973년 2월 11일생, 노르웨이의 블랙 메탈 뮤지션이자 범죄자. 매드 아티스트

1 소개

메이헴베이시스트였던 카운트 그리쉬나크[1]원맨 밴드. 주 장르는 블랙 메탈의 계열 중 더더욱 음침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로우블랙메탈. 이런 쪽 장르에서는 가히 전설로 꼽히는 인물.

Burzum은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J. R. R. 톨킨이 가공한 '어둠의 언어'에서 '암흑'을 뜻하는 단어이며, 모든 연주와 보컬은 물론 작사와 작곡, 녹음과 편집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작업을 Varg Vikernes 혼자서 담당해왔다.

2 음악적 특징

카운트 본인이 광적인 우루크-하이[2] 빠돌이라서 그런지 가사도 주로 그런 쪽의 가사가 많다. 단순한 악마숭배나 악마주의 보다는 좀더 판타지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3]

곡 중에서는 이게 블랙 메탈인가라고 의심갈 정도로 War와 같은 건전한(?) 가사의 곡도 있기도 하다.[4]

특히 그의 정규앨범중 Filosofem은 버줌의 최고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음침하고 둔탁하며, 깨끗함과 희망이라고는 눈씻고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의 어둠의 결정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버줌이 감옥에 들어가 복역하기 전 앨범들은 후대의 블랙메탈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아니 버줌이 없었더라면 현재 블랙메탈이 이렇게까지 풍부해지진 않았을 것이다.[5]

게다가 감옥 수감 중에 다크 앰비언트 성향의 앨범을 2장 냈는데 이 앨범들 또한 다크 앰비언트의 명반으로 꼽힌다.

음악적인 부분만 보면 이렇게 좋은 평들이 많다.

그러나 음악외적인 면을 보면 극우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로 인간임을 포기한 놈이다.

3 생애

본명은 크리스티안 비커네스(Kristian Vikernes)로 1973년 2월 11일 21시 58분 노르웨이 베르겐(Bergen)에서 출생했다.

카운트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카운트의 아버지는 당시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전기기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와 그의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고 한다. 카운트는 부모님을 따라서 이라크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동료 아이들로부터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집단괴롭힘을 겪는 한편 그를 가르치는 선생은 카운트가 어떠한 사고를 일으켜도 그의 아버지가 사담 후세인 밑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고 한다. 1987년, 부모가 이혼하고 노르웨이의 베르겐으로 돌아온 카운트는 재혼한 어머니와 살면서 노르웨이의 중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네오 나치에 심취하기 시작하면서 스킨헤드 패션을 하고 다니다가 학교는 자신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자퇴하고 어머니가 마련해 준 집에 틀여박혀서 반지의 제왕을 읽거나 기타 연습을 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1989년 블랙 메탈 밴드 Immortal의 멤버로 유명한 Abbath와 함께 Satanel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시작한 카운트는 Abbath의 소개로 Old Funeral이라는 밴드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1990년, Old Funeral의 앨범 발매 건으로 오슬로로 건너가서 유로니무스를 처음 만난 카운트는 곧, 유로니무스와 그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게 되고 카운트가 오슬로에 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Old Funeral 멤버들과의 사이는 멀어진다. 결국 1991년 드러머이자 리더 Padden와의 싸움 끝에 밴드에서 해고된 카운트는 유로니무스가 이끄는 사타닉 서클에 들어가서 각종 방화나 테러활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유로니무스 또한 어린 카운트를 마음에 들어했다.

1992년 유로니무스의 후원으로 버줌의 앨범들이 녹음되었고 (버줌 1집에 수록된 <War>의 후반부 기타솔로는 유로니무스의 연주이다.) 메이헴의 데뷔 앨범인 De Mysteriis Dom Sathanas의 레코딩에도 참여하였다. 1993년 1월, 메이헴의 데뷔 앨범 녹음이 완료되자 카운트는 유로니무스의 지시를 받고 블랙 메탈과 메이헴의 앨범을 홍보하러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되는데 인터뷰 도중, "1993년 4월에 앨범을 발표한 뒤, 앨범 표지처럼 노르웨이의 국보인 니다로스 대성당 (Nidaros Cathedral)을 폭파시킬 것"이라고 떠벌렸고 이 내용을 들은 기자가 깜짝 놀라서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경찰에 카운트를 신고하였다. 결국 카운트는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 6주간 갇히게 된다.

감옥에서 풀려난 카운트는 갑자기 몸을 사리는 유로니무스의 모습을 보고 본명을 크리스티안에서 Varg Qisling Larssøn Vikernes[6]로 개명한 뒤, '나는 범죄행위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고 동료 뮤지션들에게 범죄를 지시하기만 하는 유로니무스와는 다르다. 나는 행동파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하고 서클의 각종 범죄 활동을 재개시키며 새로운 레이블 Cymophane Productions까지 창설하여 그동안 블랙 메탈 밴드들을 그의 새 레이블로 옮기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유로니무스는 협박 전화와 편지들을 통해서 카운트를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로니무스가 자신을 협박하자 카운트는 1993년 8월 10일, 핼헤머와 같이 메이헴의 데뷔 앨범 작곡에 참여했던 Blackthorn라는 기타리스트에게 부탁하여 유로니무스가 살고있는 Tøyen가(街)에 위치한 공동주택에 찾아갔고 유로니무스를 무참히 살해한 후[7] 도망치다가 노르웨이 경찰에게 붙잡혀서 살인, 방화, 강도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노르웨이 사법부는 범행의 잔혹성을 고려하여 징역 21년을 선고했는데 21년은 노르웨이 법정 유기징역 최고형량이며 훗날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범인 브레이빅 또한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카운트가 잡혔을 당시에는 무기징역이 있었기 때문에 예방적 구금 처분은 받지 않았다.

카운트는 블랙 메탈 2세대 파벌싸움의 선두주자[8]로도 뽑힐 정도였으며 대표적인 예로 유로니무스 살인사건이 있다. 카운트가 유로니무스를 죽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로니무스는 말로만 떠드는 위선자라고 생각했기 때문. 카운트가 경찰 등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주로 교회 방화 및 폭력 사건으로 경찰조사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유로니무스를 죽이기 전까진 미수처리) 유로니무스는 단지 입으로만 블랙 메탈의 정신을 떠들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없는 사이비라고했다. 하지만 카운트는 이 후 자신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유로니무스는 이전부터 인간성이 개차반으로 악명 높았기에 그를 동정하는 사람은 죽은 뒤에도 거의 없었다. 당장 전 멤버가 고인드립을 시전했을 정도니.]

초창기 그의 반기독교적인 사상을 뒷받침하는 한 예로, 버줌은 앨범을 발매하면서 CD와 함께 케이스에 라이터를 동봉해 발매하기도 했다. 그 라이터로 교회 불태우라고.(…) 실제로 그는 1993년 교회에 불을 질러서 앨범자켓으로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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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버줌이 방화했었던 판토프트 목조교회(Fantoft Stavkirke). 12세기 노르웨이 건축물로 세계대전의 화염구덩이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교회였지만 이 사람이 불을 질렀다.[9]


이런 모습으로 불지르고 자켓으로 썼다(...)

카운트는 살인과 방화 혐의가 인정되어 노르웨이의 유기징역의 법정 최고형인 21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탈옥을 하려고 그의 어머니가 극우단체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출소일을 하루 남겨두고 탈옥을 하다가 결국 잡히기도(…) 했다. 2009년 가석방되어 노르웨이의 집에서 계속 음악을 만들고 있다.

4 최근

2010년 새 앨범인 belus를 발매했는데, 극우주의와 인종주의를 버렸다고 한다.정말? 카운트는 블랙메탈씬에서 Graveland와 함께 유명한 극우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였다. 새 앨범의 컨셉은 북유럽의 주신 오딘의 부활. 2012년에 발매되는 Umskiptar에서는 모든 가사를 노르웨이 시집인 Völuspá에서 따 왔으며, 새로운 빙하기에 의해 대격변을 맞이하는 유럽의 모습이 컨셉.

버줌의 팬들 중에서는 수감 생활 이후 발매된 앨범에 대해 혹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타가 자글거리지 않아서 버줌같지 않다'라든지, '감옥에 다녀오더니 음악이 변했다'라든지. 버줌도 이런 평이 짜증났는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나는 단지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내 옛날 음악을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데 내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던 적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라며 쿨하게 씹는 모습을 보였다. 돈이 아쉬워서 음악을 하는 양반은 아니다.

북유럽, 정확히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종교와 신화에 관심이 많았는지 수감 생활 동안 모은 자료를 토대로 2011년 Sorcery And Religion In Ancient Scandinavia(고대 스칸디나비아의 마법과 종교)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책을 보면 여전히 기독교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유럽 세계가 마음에 안 드는 듯. 현재 43세인 걸 보면 죽을 때까지 생각이 바뀔 일은 없을 듯 하다.

2012년 인터뷰에서 그의 아내는 Marie Cachet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조각가이며 프랑스야 말로 사상과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며 극찬하면서 자신도 그녀와 같이 프랑스로 이민가고 싶으나 범죄자라는 신분 때문에 해외로 나갈 수 없으며[10] 다른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운둔 중이라고 자신의 근황에 대해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에 먹칠을 하지 않게 명예로운 방법으로 자결하여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게다가 요즘은 음악 작업보다 자신이 만든 세계관으로 TRPG를 만드는데 빠져있다고 한다.(...)

2013년 3월 그의 아내와 함께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유적을 탐사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편집작업은 프랑스에 위치한 아내의 작업실에서 행해졌으며 다큐멘터리의 음악은 버줌이 담당했다.

2013년 7월 16일 현재 프랑스에서 아내가 총기 4정을 산 이후 테러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있는 상태. 실제로 테러를 한 건 아니고 카운트의 과거 행적 등을 보아서 총기 구매 직후 잡힌 것이라고 한다.[11]# 그리고 풀려났다.

2014년부터 가족들과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5 총평

재능과 인격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이자 신촌 살인사건의 가해자들과 함께 덕후가 잘못된 길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노르웨이 사회가 사적 보복을 좋게 보지 않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까지 피살자인 유로니무스의 가족들에게 보복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은 듯. 사실 유로니무스도 굳이 말하자면 건실한 청년은 아니었고 이 인간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죄값을 다 받은 상태이다. 보복을 당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대신 사회적으로는 살인마로 낙인찍혀 반쯤 매장당했다.

6 기타

밭소리로 어떤 의미에서는 유명한 개그 패러디 전문 인디 레이블 '비싼트로피'에서는 Core Nation 등의 명의를 쓰는 이동규라는 록커가 'BBULZUM'(뻘쭘;;)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한 바가 있다.

당연하게도(?) 단 한 번도 라이브 공연을 한 적이 없다. 원맨 밴드도 더러 게스트 멤버를 초청하여 공연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밴드 활동의 대부분이 교도소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만 한 사정이다.

다만 공연을 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실제로 Ulver의 드러머였던 AiwarikiaR가 버줌의 드러머로 가입하려고 했었고, Darkthrone의 Fenriz와 Mayhem의 Hellhammer도 버줌의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1집 정규 앨범인 Burzum (1992)의 5번 트랙 "War"의 리드 기타 파트를 유로니무스가 연주했었다.

7 앨범 목록

1991 - Demo I/Demo II
1992 - Burzum : Raw Black의 교과서적인 앨범. 1992년 1월 녹음.
1993 - Aske (EP) : 위에 나오는 불타는 교회를 앨범 커버로 한 앨범으로 훗날 Burzum앨범과 통합하여 재발매되었다. 1992년 8월 녹음.
1993 - Det som Engang var : 카운트가 감옥에 수감되기 전에 나온 마지막 앨범. 후에 나온 앨범들은 모두 카운트가 감옥에 수감 중이었을 때 발매된 것이다. 1992년 4월 녹음.
1994 - Hvis Lyset Tar Oss : Atmospheric black metal을 사실상 창조한 앨범. 버줌 앨범들 중 유일하게 카운트의 원맨 레코딩이 아닌 밴드 라인업(엠퍼러의 멤버들)으로 녹음된 앨범이기도 하다. 1992년 9월 녹음.
1996 - Filosofem : 카운트가 감옥에 수감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 (1993년 3월 녹음). 자살 블랙메탈(DSBM)의 사운드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완성한 앨범. 거의 모든 DSBM 밴드들이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앨범으로 Filosofem 앨범을 꼽는다.
1997 - Daudi Baldrs : 카운트가 감옥에서 만든 다크 앰비언트 앨범(1). 예전 자신의 곡들을 신디사이저를 이용하여 리메이크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1999 - Hlidskjalf : 카운트가 감옥에서 만든 다크 앰비언트 앨범(2).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의 왕좌를 뜻한다.]
2010 - Belus
2011 - Fallen
2012 - Umskiptar
2013 - Sôl austan, Mâni vestan : Varg가 그의 아내 Marie와 찍은 다큐멘터리의 사운드트랙 앨범]
2014 - The Ways of Yore

  1. 본명은 Kristian "Varg" Vikernes. 자신의 이름이 너무 순둥이처럼 들린다며 Varg로 개명. 실제로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서양인들 중에는 기독교식 이름을 버리고 이렇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2.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그 오크의 개량형들.
  3. 반지의 제왕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과 던전 앤 드래곤도 자주 플레이 했다고 하며 특히 버줌 1집에 그러한 영향이 많이 드러난다.(Dungeon of Darkness라는 제목의 곡도 있다.)
  4. War와 같은 경우는 일반적인 블랙 메탈의 가사가 아닌 단순한 헤비메탈 가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반전 곡이다. 물론 사운드와 창법은 블랙 메탈의 그것.
  5. 블랙 메탈 밴드들의 항목들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소위 초기 노르웨이 블랙 메탈 씬을 탄생시켰다고 하는 밴드들에(메이헴, 버줌, 다크쓰론, 이모탈) 모두 카운트가 관련되어 있다. 참고로 이 모든 활동이 다 10대 시절에 이루어졌다.
  6. 참고로 Varg는 늑대(Wolf)라는 뜻을 가지며, Qisling은 비드쿤 크비슬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7.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유로니무스의 시체에는 칼로 찌른 자국이 23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카운트의 증언에 따르면 살려달라며 도망치는 유로니무스를 계속 찌르고 또 찔렀다고도 한다.
  8. 블랙메탈 2세대란 노르웨이 블랙 메탈 무브먼트를 칭하는 다른 말이다. 자세한 것은 블랙 메탈 항목 참조. 대표적인 인물로 유로니무스와 카운트가 있다.
  9. 다행히도 1997년에 복원되어서 사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0. 당연한 일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떤 나라가 그냥 범죄자도 아니고 살인범의 입국을 허가하겠는가?
  11. 아직 유럽 전역에서 노르웨이 연쇄테러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카운트가 한창 네오나치 사상에 몰두해 있을 즈음에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가해자가 자신의 사상이 담긴 성명서를 카운트의 감옥으로 보낸 사실도 있다고 한다.(용의자인 브레이빅이 평소 버줌의 팬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