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려

范蠡(생몰연대 미상)

1 소개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정치가, 책략가로 자는 소백(少伯).

원래 출생지는 나라의 완지로 알려졌고 초나라의 완탁 또는 오호의 언덕에서 태어났다고도 하며, 자기 고향에선 미치광이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대부 문종의 눈에 띄어 월나라에서 구천을 섬겼다.

월절서에는 초나라를 섬기던 문종의 눈에 띄어 초나라에 출사했다가 관직을 버리고 오나라에 출사하려고 했는데, 오나라는 오자서가 있기에 월나라로 가서 구천을 섬겼다고 나온다.

2 생애

가장 처음 등장한 것은 와 월이 처음으로 맞붙었을 때인데, 당시 오나라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합려가 즉위한 이후 오자서손무의 활약으로 초나라의 수도까지 강탈해서 멸망 직전까지 몰아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신포서의 간곡한 부탁으로 출병한 진나라의 지원군과 국가가 빈 틈을 노린 월나라 왕 윤상의 기습 및 동생 부개가 일으킨 봉기에 의해 후퇴해야 했으나 춘추오패의 하나였던 초나라를 멸망시킬 뻔하기도 했으니 그 기세만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거기에 자기 나라를 기습했던 윤상이 죽고 구천이 즉위하니 나라가 안정적이지 못한 때에 월나라를 쳐야한다며 전쟁을 일으켰다.

사기에 따르면 이때 범려가 월군 내에서 결사대(死士)를 선발하여 그들을 오군 진영 앞에 보낸 후 일제히 목을 찔러 자살하기를 몇번에 걸쳐 반복하다가 갑자기 오군을 공격하게 하는 기책을 내어 절대 우세에 있던 오군을 격파했다. 삼국지에서 태사자북해의 포위망을 뚫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계책. 이 과정에서 화살에 맞은 오왕 합려는 중상을 입고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한 후 죽음에 이른다.

구천은 이 전쟁에서 오나라를 격파한 것에 자만하여 장작 위에서 누워 자며 구천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있던 오왕 부차를 얕잡아봐 범려의 충고도 듣지 않고 정병 3만으로 오를 공격했다. 그러나 도리어 부초에서 부차에게 대패한 후 회계산에서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에 범려는 구천을 구하기 위해 오의 대부 백비를 뇌물로 매수하고 부차에게 미녀들을 바쳐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 구천은 오로 건너가 부차를 섬기게 되고 범려가 그를 수행했다. 부차는 구천을 석실에 가두고 치욕스러운 마부노릇을 강요했다. 부차는 범려에게 자신의 신하가 될 것을 권유받았지만 범려는 완곡하게 사양하고 구천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러던 중 부차가 병에 걸리자, 범려는 구천을 설득해 부차의 똥(!)을 핥게 하는 엽기적인 행동까지 불사하게 한다. 부차의 병이 쾌차할지의 여부를 알아본다는 명분이었지만 부차의 환심을 사고 구천에 대한 의심을 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부차는 자신의 변까지 핥아가며 아부하는 구천에게 넘어가 버렸고 건강을 회복한 뒤 구천과 범려를 월나라로 돌려보내게 된다.

월로 귀국한 후, 구천은 부차에게 복수할 날만을 다짐하며 쓴 쓸개를 곁에 두고 맛보며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 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한편 범려는 구천에게 각종 부국강병책을 제안했고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월은 점점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범려는 오의 국력을 약화시킬 속셈으로 서시와 정단이라는 미녀를 부차에게 바치고 부차로 하여금 주색에 빠지게 만들었다. 주색에 빠진 부차는 잇단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오의 국력은 갈수록 약화되어갔다.[1]

몇 년 후, 부차가 나라를 공격하러 대군을 이끌고 간 틈을 타 구천은 오를 기습해 부차의 태자를 죽이고 오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부차는 구천에게 전에 살려준 예를 들어 항복했다. 마음 약해진 구천은 순간 망설였지만 "쓸개를 핧으며 복수를 다짐하던 일을 잊으셨습니까!"라며 진언하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에 자신을 살려줬기 때문에 차마 죽일 수가 없었는지 백호의 장[2]으로 봉하겠다고 제안한다. 부차는 자신이 늙어 군왕을 섬길 수 없다며 그 제안을 거절하고 그 제안을 거절하고 저승에서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며 고소산에서 얼굴을 가린채 자결한다. 구천은 부차를 죽인 후 여세를 몰아 북상하여 모든 제후들을 소집해 패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러한 부차가 아버지 합려의 원한을 갚겠노라고 장작위에서 잠들면서 다짐하다가 기어이 성공시킨 것과, 또 구천이 그에 대한 원한을 쓸개를 핥아가며 잊지 않고 이뤄냈다는 복수의 연쇄에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3 말년

모든 것을 다 이룬 후, 범려는 갑자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잠적해 버렸다. 복수심에 불타올랐던 구천이 모든 것을 이룬 후에는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아는 신하들을 죽일 것이라 예상하여 잠적했다고 전해진다.[3] 잠적하기 전 대부 문종[4]에게 "월왕은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어도 부귀를 함께 누릴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니 대부께서도 관직을 버리고 물러나십시오."라고 충고했지만 문종은 그 이야기를 그냥 흘려 버렸다고 한다. 결국 문종은 범려의 예상대로 모반했다는 누명을 쓰고 자결하게 된다. 그리고 몇년 안가 구천도 병으로 죽고 월나라는 쇠약해져 버렸고, 초나라에게 멸망당하면서 구씨 왕족도 거의 절멸당해 구씨의 방계 혈족들은 고씨로 바꾸고 살게 된다.

구천에게서 벗어나 잠적한 범려의 이후 행적은 미스터리이나 사기에 의하면 그가 제로 도망쳐 자신의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고치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거부가 된 범려의 재능을 알아본 제나라 사람들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범려는 모은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서는 또 잠적해 버렸다.[5] 제나라의 상경 벼슬을 얼마간 살다가 높은 자리에 오래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제나라를 떠났다고도 한다. 이후 범려는 도(현재의 산둥성 허쩌시 딩타오현)라는 곳에 갔는데 그곳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범려는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해 거부가 되었고 도주공(陶朱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양생장수지도와 한의학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치이자피나 도주공의 이야기가 과연 범려와 동일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또한 절세 미녀 서시와의 러브스토리도 유명하지만 과연 이게 진실인지도 의문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범려는 초절정 엘리트이자 엄친아가 틀림없지만, 중국인들이 범려와 여타 이야기들을 섞어서 희대의 엄친아를 창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범려가 치이자피나 도주공으로 불린 뒷이야기는 사마천사기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내용이 다소 뜬금없는 기타 전설들과는 달리 당대에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진채 전해내려온 이야기일 수는 있다.

물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더라도 범려가 엄친아인 것은 맞다.

4 기타

범려가 처음으로 월에서 공을 세우는 합려와의 전투에서 언급된 '기책'에 대해서는 사기 등의 역사책에서는 결사대를 자살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틈탔다는 내용을 제외하면 별다른 설명이 없는데, 명대 소설인 열국지진순신의 소설 십팔사략 등에서 이에 대한 극적인 내용을 창작하여 보충한 것이 바로 '사형수 부대' 이야기다.

먼저 사형수들로 이루어진 특공대를 조직해서 그들에게 적 진지 앞에서 자결하면 그들을 전사자로 처리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어차피 죽은 목숨이지만 자신들이 자결한다면 전사자로 처리가 되어서 가족들에게도 전사자의 가족이라는 대우가 돌아간다는 이야기에 사형수들은 앞다투어서 특공대로 가겠다고 했고, 범려는 이러한 특공대를 여럿 만들어서 오나라 진지로 출동시켰다. 오나라 진지에서는 갑자기 적들이 나타나자 경계를 했지만 갑자기 적군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자결을 하자 벙쪘고, 이러한 상황이 수회 반복되자 아예 정신줄을 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게 되자 이번에는 진짜 특공대가 오나라 병사들에게 달려들었고, 그러한 자살 소동을 벌이는 와중에 월나라 병사들이 오나라 군사를 양쪽에서 소리없이 포위해서 들이닥치게 되자 오나라는 혼란에 빠져 대패를 하게 되고 합려는 이때 입은 상처로 죽게 된다. 원전인 사기에서는 평범한 병사였던 이 결사대원들을 소설에서는 사형수로 각색한 것.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에서는, 오나라 멸망 후 서시를 품어볼 생각에 환장한 구천은 그녀를 찾아서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구천이 서시에게 빠져들면 오나라처럼 월나라에게도 해가 될거라 생각한 범려는 서시를 죽일 생각으로 수색에 나섰지만 그녀가 호수 위에서 혼자 배를 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망설인다. 범려도 서시의 미모에 홀렸다기 보단 애초에 그녀를 오나라로 보낸 사람이 자신인데 이제와서 죽이려하니 너무 비정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한 범려의 심중을 눈치챈 서시는 말릴틈도 없이 투신해 버린다. 착찹한 심정으로 돌아온 범려는 서시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구천은 끈질기게 수색지시를 내리고, 이에 정나미가 떨어진 범려는 곧장 대부 문종의 집으로 가서 토사구팽의 이야기를 해준 다음 구천에게는 말도 없이 월나라를 떠난다.

중국에서 와신상담의 설화를 드라마로 여러 차례 만든 바 있는데, 그 중 '쟁패전기'에서는 구천과 부차를 제치고 주인공으로 나온다. 범려를 놓고 구천과 부차가 아웅다웅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범려를 득템한 것은 결국 서시다.

  1. 서시는 범려의 정인이었다고 하며, 오가 멸망한 후에 범려와 함께 잠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 호는 가구를 세는 기본 단위로, 백호는 1백가구. 즉 왕에서 동네 이장으로의 대강등이며, 왕의 자격이 없다고 말한 셈이다.
  3. 구천은 범려에게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는 등 엄청난 대우를 약속했지만 적당히 흘려보낸 뒤 사라졌다고 한다. 고우영의 십팔사략에서는 떠나는 범려가 "어려움을 함께 한 이와는 영광을 누릴 수 없나니..."라고 말하는 장면을 넣었는데 꽤나 인상적이다.
  4. 원래는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그냥 떠나려 했지만, 자신을 천거해줬고 적지 않은 세월동안 어려움을 함께 해왔던 사이인지라 차마 못 본척 할 수는 없었다.
  5. 치이자피라는 말은, 오나라의 공신이었으나 결국 모함에 의해 죽음을 당한 오자서의 시신이 말가죽으로 만든 술부대에 담겨 물에 던져진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