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복스/해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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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중국 순회 투어중의 베이비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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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홍콩에서의 베이비복스

Baby V.O.X in the world
베이비복스가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한다.

소속사인 DR뮤직(대표 윤등룡)은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베이비복스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간 해외에서 벌인 공연이 모두 >45회로, 1년 평균 11회의 해외공연을 기록했다.
이 기간의 원정거리는 지구를 20바퀴'나 돈 90만1500㎞(지구 한바퀴를 4만75㎞로 가정)에 달한다'며
'국내 엔터테이너로 가장 먼 해외원>정기록 부문에 도전장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비복스의 이 같은 기록은 국내 연예인으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 개요

1999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해외 활동을 벌였던 베이비복스는 2005년까지 아시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1회 이상의 공연을 가졌던 나라는 중국, 대만, 일본, 호주, 베트남, 홍콩, 말레이시아, 몽골, 태국, 미국, 캄보디아, 라오스등이다. 이 중에서 캄보디아, 라오스에는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공연을 가졌고 태국에 진출한 국내 1호 가수 역시 베이비복스였다. 2000년에는 한국 걸그룹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서 8만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했고, 2003년 5월에는 중국어로 된 신곡 'I'm Still Loving You'로 중국 라디오 차트 1위에 등극했는데 이는 외국인 가수로서는 최초였다. 이 곡은 중국의 중화인민라디오 차트에서 5주 1위, 대만에서는 4위, 홍콩 2위, 태국 1위를 차지하며 아시아 지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관련기사 베이비복스는 유독 해외에서의 업적이 상당히 많은데 이러한 활약때문에 원조 한류돌, 한류의 시초라고 불린다.

여담으로, 한국 가수들도 아무나 못 가는 곳인 북한에서 통일음악회를 가졌고 2001년에는 비무장지대에서도 공연을 가졌었다.

2 주요 활동 연혁

1999.08. 뉴욕 공연
1999.11. 중국 음반 라이센스 체결
1999. 한일합작 애니메이션 '건드레스' 홍보대사 위촉 및 주제가 'Patron' 녹음
1999.12. 중국 북경 TV의 `밀레니엄쇼'에서 데뷔 무대
2000.04. 중국 계림서 'Why' 뮤직비디오 촬영
2000.06. NRG, 클론등과 상해 공연
2000.08. 세계 맥주 페스티벌 한국대표 출전
2000.09. 미국 뉴욕, L.A. 등지 공연
2000.10.22~24 일본 프로모션차 방문, 도쿄 ON AIR WEST LIVE HALL 단독 미니 콘서트 (7백석 규모)
2000.10.28. 중국 계림시 관광사절 위촉 및 감사패 수여
2000.11. 한국 걸그룹 최초 중국 베이징 콘서트
2000.12.02. 일본 Korea Super Expo 2000 슈퍼 라이브
2001.01.01. 중국 상하이 TV 주최 '새천년 쇼'에 해외 아티스트 대표 출전
2001.06.02. MBC 일밤 게릴라 콘서트 포항 해맞이 공원에서 9,364명 (비공식 10,000명 이상) 동원
2001. 중국 연예 잡지의 '한국 여성 연예인 가운데 최고 인기 연예인 1위에 간미연
2001.06.04. 5집 앨범 아시아 4개국 동시 발매
2001.07~12 중국 7개 도시 투어
2001.09.23.~28. 중국 3개 도시 '한중수교 9주년 기념공연'
2001.09.27. 중국 베이징 '베이비복스 전산학교' 설립
2002.04.10. 중국 상하이에서, 라디오 방송국 협회가 뽑은 '최우수 한류가수상'
2002.05. 대만 프로모션
2002.07. 중국 베이비복스 가요제 개최 1차전 4000여명 지원
2002.08.15.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서 국내 첫 단독콘서트
2002.08. 베트남 공연
2002.09. 태국 'GMM'과 음반 계약 정식 진출 대한민국 가수 최초
2002.11.17. 일본 NHK 아시아 드림 라이브 한국 대표 출전
2002.12. 일본 도쿄 TV '플라토닉 체인'에 'Go'가 타이업
2003.01.20. 홍콩 프로모션, 곽부성과 만남 및 중국 신곡 뮤직비디오 촬영
2003.02.09. L.A. 단독 미니 콘서트
2003.03.19~22. 태국 파타야 뮤직 페스티벌 한국 대표로 출전
2003.04. 일본 도쿄 시부야 라이브 홀 미니 콘서트
2003.04.03. 6집 앨범 전세계 7개국 동시 발매
2003.05.20. 'I'm Still Loving You'로 외국인 가수 최초 중국 인민 라디오 차트 1위
2003.05.23. 태국 '채널 V' 차트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돈나 등을 제치고 4위 랭크
2003.07.26. 몽골 대통령 초청 대규모 콘서트
2003.10.06. 평양 남북 합동 축하공연 남한 대표 출전
2003.11.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아시아 가요제’ 출연
2003.11.30. 기네스 북 ‘국내 엔터테이너로 가장 먼 해외원정기록 부문에 도전
2004.03. 대한항공 주최 태국 방콕 팬미팅
2004.04.23. 태국의 명문 골프클럽인 방콕CC에 '베이비복스 홀' 등장
2004.05.28. 베이비복스 대한항공 홍보대사 임명
2004.11.06. 제1회 중국-동맹 박람회의 폐막식 공연 한국 대표 출전
2004.12.18. 중국 베이징올림픽체육관 베이비복스-비 조인트 콘서트

3 활동 상세

3.1 중국

베이비복스 해외 활동의 중심이었던 중국 활동
1999년 음반을 먼저 발표하고 중국 활동에 나섰던 베이비복스는 2000년 1월에 중국 TV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2000년 5월 발표된 4집 뮤직비디오 촬영을 중국 계림에서 하기도 했고 6월에는 NRG 클론등과 상해 공연을 하기도 했고 하반기에는 유승준, 이정현등과 함께 콘서트를 했으며 11월에는 여성그룹 최초 베이징 콘서트를 가지며 중국에서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베이비복스 4집은 중국에서 2001년까지 15만장 가량 팔렸는데, 이는 모조품이 많은 중국에선 거의 밀리언 셀러에 준하는 히트였고 2001년 5집 부터는 아예 중국 활동에 치중하기도 했다. 베이비복스는 중국 팬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희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국에 전산학교를 지어 컴퓨터를 기증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었다.

베이비복스가 중국에서 정상 궤도에 올랐을 당시 순회 공연 개런티는 회당 한화로 대략 6천만원+이었고 (당시 안재욱을 이어 2위였다.), 2000년에 중국 기업체 CF를 시작으로 화장품 광고, 핸드폰 광고 등에 출연하며 광고 모델로도 활약했다. 멤버들이 밝힌 바로는 한국에서 받는 광고 개런티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었다고. 2003년에는 김이지가 삼성 카메라 CF에 출연하며 3억 5천만원의 개런티를 받았고, 2002년에 간미연은 중국의 지면 광고로만 출연하는 조건으로 6개월 단발에 '과일나라'와 2억 5천만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당시 김희선, 안재욱등을 잇는 업계 최고 수준. 또한 김이지와 간미연은 각각 한중합작 드라마와 영화에 캐스팅 됐었는데, 두 작품 모두 제작사의 사정으로 아쉽게 무산됐다.

2003년에는 중국어로 발표한 신곡 'I'm Still Loving You'가 해외 곡이 아닌 중국 곡으로 분류되어 중앙 인민 라디오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외국인 가수로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4 태국

중국에 이어 아시아권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나라
태국의 K-POP 붐을 일으키게 한 최초의 장본인
2002년 8월,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태국의 메이저 음반사 'GMM Grammy'와 음반 한 장당 한화로 약 4,000원의 인세를 받는 최고의 조건으로, 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이후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인기를 한순간에 얻으며 활동 반경을 동남아시아까지 넓히게 되는데 태국 진출 1년도 채 안되어서, 현지 최대 음악 페스티벌 '파타야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했으며 이 무대에서 수백명의 베이비복스 팬들이 응원을 온 게 한국 케이블 채널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 후 태국에서의 인기를 실감한 기획사는 2000년 'WHY' 뮤직비디오를 중국에서 촬영했던 이후로 6집 '나어떡해' 뮤직비디오를 태국에서 촬영한다. 이때 태국 팬들이 이들을 수소문해서 공항에 몰려왔다는 후문. 이 후 발매한 '나 어떡해'가 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으며 태국의 한류 스타로 발돋움한다. 당시 태국 팬들이 한국 월드컵 응원을 본 따 베이비복스가 공항에 올때마다 '베이비복스~(짝짝짝짝짝)' 응원 구호를 외치는게 유행처럼 번져나갔었다.

2004년에는, 2003년 한 해동안 집계한 '인터내셔널 아티스트 [V] 어워즈'에서 파퓰러 아시안 아티스트 부문 1위에 올랐다. 이는 인기그룹 'F4', '주걸륜' 등을 제친 성과였다. 또 2004년 아리랑 TV가 3만여명의 네티즌등을 조사한 '최고 인기의 한국 가수' 부문에서 태국 2위 (여성그룹 1위), 인도네시아에서 2위를 차지했다. 1위와는 근소한 차이. 관련기사 이러한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같은 해 태국의 명문 골프 클럽에 외국인 가수로는 최초로 '베이비복스 홀'이 생기는 등 위업을 달성했다.

2004년 여름에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위해 자선 공연을 펼쳐 큰 환호를 받았고 당시 연예 뉴스에서 취재한 영상을 보면 내로라하는 한국 가수들중 베이비복스의 인기가 가장 폭발적이었던것을 볼 수 있다. 베이비복스가 7집 활동을 중단한 후에도 2005년 태국 쓰나미 피해 복구를 위해 베이비복스가 구호 활동을 가기도 했었고, 해체 직전까지 태국 활동을 했었던것을 보면 베이비복스도 태국팬들을 아주 많이 아꼈었다. 해체 후에 이희진이 개인적으로 태국 쓰나미 구호 기금을 모으기 위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박수를 받았다.

베이비복스가 해체된 후에 베이비복스 리브, 라니아 모두 태국에서 활동을 했었고 멤버 오디션을 태국에서 보는 등 베이비복스의 영향력이 해체 후에도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다.

4.1 일본

미련으로 남은 일본 시장진출
1999년 3집 활동이 끝나고 한일합작 영화 '건드레스'의 주제가를 부르며 홍보대사에 위촉됐던 베이비복스는 2000년 10월에 프로모션 차 일본을 처음 방문하며 일본 시장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비공식적으로 팬클럽도 결성됐었고 소규모 미니 콘서트도 전석 매진되면서 어느정도 가능성을 봤었는지 이후 이후 1~2년 동안 프로모션 방문과 한-일 콘서트 행사 등에만 간간히 참여하며 일본 시장을 탐색했었다.

그러나 당시 베이비복스는 중화권 활동에 올인했었고 소속사에서도 일본은 중국이나 대만과는 완전히 다른 시장이라고 판단하여, 좀처럼 정식 데뷔는 하지 않았었다. 이 후 베이비복스가 중화권에서 정상 궤도에 올랐을 2002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플라토닉 체인' 주제가에 한국에서 발표했던 'Go'를 삽입하며 TV 활동을 시작했고, 이 노래를 일본어로 번안하여 미니 앨범을 발매한다.[1] 2002년에 NHK에서 열렸던 드림 라이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는데 이 날 공연이 끝나고 일본 팬들과 팬미팅을 가지기도 했다.

이 후 2003년에는 태국과 동아시아 활동으로 일본 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2004년 8월 베이비복스는 아시아나 항공과 한국관광공사와 일본 현지 기획사의 후원으로 일본에 정식 데뷔한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몇달 뒤 심은진이 탈퇴하고 그룹 활동이 중단되면서 안타깝게도 일본에서의 날갯짓을 펼치진 못했다. 사실 심은진이 탈퇴하고 나서도 일본 활동의 조짐이 있었지만 결국 소속사는 지니스라는 신인 그룹을 일본에 데뷔시켰다. 그러나 지니스는 음반 데뷔도 못하고 활동을 정리했다. 이 후 같은 소속사의 라니아도 데뷔 초창기에 베이비복스의 2000년~2001년때 처럼 공식 CD 데뷔와 활동은 하지 않고 그외에 활동을 조금씩 했었으나 결국 일본 시장까지 진입하진 못했다. 아마 이후에도 일본 시장에 대한 꿈은 베이비복스 기획사의 큰 미련이 될 듯.

5 사건

5.1 중국 공연 사기 사건

베이비복스는 중국에서 두번의 공연 사기 사건이 있었는데, 2000년 가을 베이비복스는 중국에 클론, 이정현 등과 함께 콘서트를 하러 출국하여 무대에 섰지만 공연 사기를 당하여 개런티를 받지 못해서 호텔비를 내지 못해 호텔에 강금되는 사태가 일어나 비행기 티켓조차 구하지 못하여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뻔한 일이 있었다.

두번째 공연 사기 사건은 2001년 9월 북경, 심양에서 있었던 공연에서 개런티를 받지 못해 공연을 철수하려다 그 날 몰려든 많은 팬들을 위해 콘서트를 취소 없이 진행했다. 중국 정부와 팬들에게 찬사를 받긴했지만 이 이후 베이비복스는 중국에서 '선입금 후공연'이라는 철칙을 세우며 공연 사기에 강경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관련기사

5.2 몽골 국가사기 사건

베이비복스가 아시아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2003년, 몽골측에서 초청을 받아 7월 26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시 나담스타디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 날 공연장을 찾은 몽골인은 약 3만 여명으로, 시민의 10분의 1이 넘는 시민이 베이비복스를 보기위해 스타디움에 운집했다. 공연 후 울란바토르 시는 베이비복스 공연이 단연 화제였다.

이 공연은 시민들의 입과 입을 통해 몽골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급기야 공연 다다음날인 2003년 7월 28일 몽골 대통령이 직접 베이비복스 제작자인 윤등룡 사장을 급히 찾는 상황에 이르렀다. (몽골 대통령은 공연 전에 의례적인 행위로 한국 공연단을 대통령 관저로 초청하여 저녁 만찬을 열어줬으나, 당시 대통령은 고향에서 열리는 지역행사로 인해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이후 베이비복스는 어디를 가나 '베이비복스'를 연호하는 팬들로 둘러싸였고, '블랙로스' 등 몽골의 인기 가수들도 베이비 복스와의 사진 촬영에 열을 올리는 등 한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했다.

베이비복스는 몽골에서 대통령에게 초청을 받아 추가로 콘서트를 열었는데, 여기서 개런티 대신 공로상을 받고 멤버 당 1000평 크기의 땅을 선물받아 총 5000평의 땅을 선물받고 집 다섯 채도 선물 받아 당시 국내에도 보도될만큼 화제가 됐었다. 당시 멤버들은 나중에 이 땅에다가 골프장을 만들자며 매우 기뻐했었다.

하지만 2006년, 멤버 간미연이 MBC 경제야 놀자에 출연해서 해당 땅 문서를 의뢰한 결과, 베이비복스측에게 선물된 땅은 국가 소유의 땅이라 개인이 소유권을 행사 할 수없는 우리나라로 치면 비무장지대와 다를바가 없는 땅이었다. 다시 말해 국가 사기를 당한것이다. 이 사실을 안 간미연은 크게 충격 받았다.

5.3 홍콩 톱스타 곽부성의 초대를 받았던 베이비복스

2003년 2월 현지 프로모션과 중국 신곡 'I'm Still Loving You'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홍콩에 방문했었는데 이때 예상치 않게 베이비복스측으로 홍콩의 톱스타 곽부성(궈푸청)에게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베이비복스의 홍콩 프로모션사는 여명이 소속돼있는 빙고뮤직으로 곽부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지만 워낙 톱스타의 식사 초대라 응하게 됐다. 식사 장소는 구룡반도 중앙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식사 자리를 갖던 중 그들을 알아본 현지인들은 파파라치로 변해 식사 자리를 방해했고 곽부성은 결국 식당 근처 자신의 개인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곽부성은 김이지한테 관심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 모습을 본 현지 기자들이 김이지-곽부성 사이가 수상하다며 열애설을 제기해 홍콩의 여러 매체에 보도됐었다.

첫번째 만남이 끝나고 한달 뒤 곽부성은 베이비복스측에 다시 연락해 듀엣곡을 작업하고 싶다며 내한 의사를 전해왔고, 서울 강남의 '부밍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곽부성의 영화 촬영 스케쥴로 인해 아쉽게도 무산됐다. 이 당시 곽부성은 베이비복스 팬미팅 현장에 올 계획이라고 보도 자료가 났었다. 이때 만남이 무산된 이 후 몇차례 곽부성과 작업을 위해 일정을 조정했으나 사스까지 일어나 듀엣곡 작업도 무산되었고 2003년 상반기 베이비복스 중국 활동 역시 무기한 연기되었다.

두 가수의 듀엣곡은 당시 발표를 두달 정도 앞뒀던 베이비복스의 6집과 곽부성의 앨범에 동시 수록될 예정이었다. 베이비복스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해당 곡의 장르는 댄스로 '데이비드 톰'의 작품이었고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직접 한국말로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 노래는 만다린어와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어로도 녹음할 예정이었고 동아시아권에서 공연을 할 때 궈푸청과 함께 듀엣곡을 부를 계획이었다. 2003년 7월에는 조인트 콘서트도 추진할 생각이었다고..

2013년 김이지와 간미연이 KBS 풀하우스에 출연했을때 곽부성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얘기가 오고 갔다고 하는걸 봐선 두 가수간의 콜라보레이션이 언플이 아닌 실제로 예정에 있던건 맞는 듯.

5.4 베이비복스 가요제와 DR뮤직-SM 장리인과의 법정소송

2002년 5월 중순에는 중국에서 '베이비복스 가요제'가 중국 15개 성에서 개최되었다. DR 뮤직이 중국 내의 우수한 인재 발굴과 한국가요 붐을 조성하기 위해 각 성 방송사들에 제안한 것이 흔쾌히 받아들여져 이뤄진 것이었다. 이는 당시에 이미 한류의 주역이라기보다 중국의 국민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베이비복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가요제는 중국 내 각 성들과 도시들이 한국의 '강변가요제'나 '난영가요제'와 같은 특색 있는 도시 행사로 발전시키겠다는 의견을 내놔 중국 15개성으로 확대됐다.

김이지와 이희진은 2002년 5월 10일 소속사 대표와 함께 강소성 중앙방송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요제의 테이프를 끊었다. 중국 강소성에서 베이비복스 멤버와 강소성 중앙방송사 대표, DR 뮤직 윤등룡 대표가 중국 언론을 대상으로 가진 기자회견 현장에는 '양자만보', '남경 아침일보', '금령만보', '남경시 라디오방송' 등 30개가 넘는 현지 매체가 참석하여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베이비 복스 멤버들은 "단순한 가요제가 아니라 도시의 대표적인 축제로 만들겠다"며 자신들의 이름을 딴 가요제 개최에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강소성의 경우, 한 달 동안 4차에 걸친 예선과 결선을 TV를 통해 생중계 하는 등 당시 가요제에 대대적인 관심을 보였고, 2002년 6월 28일 최종 예선을 치뤘던 남경의 경우 1만 6,000명을 넘어서는 참가자가 몰리는 등 상해 광주 심천 삼성 등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베이비복스의 이름을 내건 행사였던 만큼, 자작곡을 들고 치러지는 한국의 가요제와 달리 참가자들은 베이비 복스의 노래나 한국 가요를 들고 나와 예선을 치뤘고, 2002년 10월에 최종 본선이 열렸다.

한편, 이 가요제에서 입상한 '장리인'은 DR 뮤직에 선발된 후 2003년 1월에 10년의 기간으로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가수 트레이닝을 받아오다가 중간에 DR 뮤직에서 나와 2004년에 'H.O.T. china'를 통해 오디션을 보고 SM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장리인이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직 학생이고 하니 학업을 어느정도 마치면 다시 계약하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장리인의 어머니는 DR 뮤직에 장리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여 계약을 풀어줄 것을 요청해 DR 뮤직과의 10년 전속계약을 일시적으로 풀었다.

그리하여 장리인은 2006년 초에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하게 됐는데, DR 뮤직 측은 이를 모르고 있다가 장리인이 데뷔한 이후 음색이나 창법이 유사하여 찾던 도중에 장리인이 DR 뮤직의 연습생으로 있던 인물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DR 뮤직은 "감쪽같이 속았다"면서 장리인과 SM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불쾌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후 DR 뮤직은 1년 여 간 SM 엔터테인먼트와 장리인을 잇달아 접촉했으나 협상이 원활치 못해 결국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DR 뮤직의 한 관계자는 "당시 계약서에 따르면 장리인은 계약파기시 손실액과 위약금 등 총 500만 위안(약 6억 4,000만 원)을 물어줘야한다"면서 "하지만 한국 음반 기획사 간의 관계를 고려해 기존 장리인에게 투자됐던 비용에 해당하는 2억 원만 돌려받자는 취지에서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1. 안타깝게 오리콘 진입은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