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손

傅巽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 위나라의 문관이다.

자는 공제(公悌)로 체모가 크고 통달하였으며 사람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한다.

본래 공부에 상서랑으로 있었는데 후에 형주의 빈객으로 가서 유표를 섬기고 있었다. 그러다 209년 조조가 쳐들어 오기 직전 유표가 죽고 유종이 그 뒤를 잇자 괴월,한숭,부손은 유종에게 항복을 권하는데 유종이 계속 거부하자 부손이 말하길

거스르고 순응함은 마음에 있고, 강함과 약함은 세상을 정하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신하로서 군주를 막는 것은 반역이며, 새로 초나라를 건설하여 국가를 통제함으로 조조의 세력을 막을 수 없으며, 유비가 조조의 적수가 된다 하나 또한 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 세가지 모두 단점이어서 조조의 군대를 막으려 한다면 반드시 패망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도 유종이 반대를 하자 부손이 다시

진실로 유비가 조조를 막아낼 수 없으면 비록 초땅을 보존한다 할지라도 스스로 존립할 수 없으며, 진실로 유비가 조조를 막아낸다고 한다면 유비는 장군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장군께서는 의심하지 마소서.

라고 말하자 유종은 그제야 포기하며 조조가 양양에 도착하니 그에게 항복한다. 그 공으로 부손은 관내후에 봉해진다.

220년 조비가 즉위하자 시중이 되는데 여기서 소칙이 조비의 함정 카드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하자 눈짓으로 겨우 말려 그를 살려 놓는다. 227~233년 사이에 죽었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 봉추 방통을 보고는 "재지(재주와 지략)가 뛰어난 영웅이지만 기량(재능과 도량)이 불완전하다." 는 평을 남겼고 배잠을 보고는 "그의 청렴한 행실이 곧 그에게 보답을 할 것" 이라고 하였고 당시 기대주로 이름을 모았던 위풍을 보고는 "결코 큰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이며 훗날 위나라에 반기를 들 것" 이라고 하였다.

2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는 내정형 문관으로 등장한다. 특별히 까일 게 없었는데 능력치가 박한 것은 유종을 설득하여 조조에게 항복한 것을 촉빠 코에이에게 밉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6/무력 13/지력 70/정치력 71. 전장에서 써먹을 병법은 매도 하나뿐이다. 내정이나 시키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3/무력 10/지력 70/정치력 71/매력 45에 특기는 겨우 3개. 간신히 70을 찍는 지력, 정치는 그렇다쳐도 매력이 45인 건 역시 코에이의 촉빠심을 보여준다고밖에.... 상업 특기가 있어 그나마 내정용으로 쓸 만 하다. 나머지 특기로 유인과 명사를 가지고 있다.

시리즈 내내 성품이 '탐욕/사욕'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 사실 정사든 연의든 딱히 그가 사욕적이라거나 욕심 때문에 항복을 권했다고 보긴 힘든 상황인데, 단지 항복을 권했다는 이유로 이런 성향을 받는다는 건 부당하다는 평가가 있다. 다만 똑같이 항복을 권한 장소도 성격이 탐욕으로 설정된 적이 있고 청렴하기로 유명한 주연도 탐욕으로 설정되어 있는 거 보면 그냥 코에이가 개판.

삼국전투기에서는 위의 유종에게 항복을 건의한 일화를 언급할 때 이름만 살짝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