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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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餘郡 / Buyeo / Soburi / 소부리 (고유어/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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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청사. 주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사비로 33 (舊 동남리 725)

부여군
扶餘郡 / Buyeo County
국가대한민국
면적624.6㎢
광역시도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1 15
시간대UTC+9
인구71,124명
(2015년 11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120.63명/㎢
군수이용우
재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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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청남도에 있는 .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이 있었기에 백제문화단지,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이 지역에 있으며, 공주시(백제 때의 웅진성)와 함께 백제문화제를 1년마다 번갈아가며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에 전군수의 노력으로 공주와 합쳐져서 세계대백제전을 진행하게 되었다.

2 역사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부여가 도시개발이 안 되는 결정적 이유[1] 백제 성왕 때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면서 웅진성(오늘날의 공주시)에서 나와 새 도읍으로 사비성을 지었다. 서기 660년 의자왕 때 백제가 망해 궁성을 비롯한 많은 문물이 소실되었지만, 신라 때 도독부가 설치되고 고려(후고려) 때 감무가 설치되었고 조선 때는 임천군의 부여현으로 재편되는 등 나름대로의 위상이 있었다. 그 무렵에 이미 '부여'로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석성군 일부, 홍산군, 임천군을 흡수하여 현재의 부여군 영역이 되었다. 1960년 부여면이 부여읍으로 승격하였다.

1960~1970년대까지 금강 내륙수운이 원활히 돌아갈 때 인근의 강경과 더불어 상당한 발전을 구가하였다. 하지만 철도 및 고속도로로 대표되는 육상 운송수단의 발달하던 무렵 부여에는 꽤 오랫동안 철도는 물론이거니와 고속도로도 없었던데다 1990년 금강하구둑의 완공으로 금강 내륙수운이 완전히 정지됨에 따라, 부여의 발전 역시 정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아직 부여읍이 인구 2만선은 유지하고 있고, 규암면도 인구 1만이 넘는 등 군치고는 그래도 아직 심각하게 몰락한 상황은 아니다.나머지 면들이 죄다 5000명도 못 넘는다는 점은 함정

3 교통

교통을 살펴보면, 철도는 없다[2].

고도보존특별법에 따라 시내에 들어오려면 꽤 시간이 걸리며 유동인구가 많지는 않다. 도로는 서천공주고속도로, 4번 국도, 29번 국도, 39번 국도, 40번 국도가 있다.

수도권에서 부여를 방문하려면 서천공주고속도로의 부여IC를 이용하는 것보다 논산천안고속도로의 남공주IC-> 40번 국도, 서논산IC-> 4번 국도의 루트를 이용하거나 좀더 일찍 정안IC에서 빠져나와 금강을 따라가는 백제옛길을 거쳐 부여로 진입하는 것이 가깝다. 다만 후자의 경로는 공주시내에서 신호를 조금 받아야 한다.

시외버스 이용 시 부여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해야한다. 상세 사항은 항목 참고.

3.1 농어촌버스

현재 부여여객이 운영 중이다. 농어촌버스 치고 디자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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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일부로 단일요금제를 시행 중이다. 이때 인상된 요금은 성인 1350원, 청소년 1040원, 어린이 880원이다.300원... 군 경계를 벗어나고 1km씩 갈때마다 추가요금이 부과된다.

2015년 4월, KTX 호남선 공주역이 개통함에 따라 공주역 정거장까지 운행한다.

그외 자세한 내용은 부여여객 항목 참고.

4 정치

부여군15대16대부여군-
청양군
17대18대19대공주시-
부여군-
청양군
20대
김종필/7선
자유민주연합
김학원/재선
자유민주연합
김학원/3선
자유민주연합[3]
이진삼/초선
자유선진당
김근태/초선[4]
새누리당
정진석/4선
새누리당
이완구/3선
새누리당

과거 90년대 후반까지는 JP라고 불리는 김종필을 위시한 충청계 정당 텃밭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JP가 총재로 있던 자유민주연합의 최후의 보루라고 불린 적도 있다. 한땐 JP가 이곳에서 81%의 득표율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JP가 17대 총선에서 국회입성에 실패해 은퇴한 이후[5] 지금은 그 영향력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2010년 지방선거로 군수가 교체되기 전까지 8년간 한나라당이 집권하기도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충청정당계보를 이어받은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에서 출마한 경례를 딱했으면 딱! 못해? 이진삼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공천에서 떨어졌고, 새누리당 김근태 후보가 당선되나 얼마못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된다. 그리고 2013년에 실시된 재보선에 전직 충남지사 이완구가 출마해 화제가 되었고 80%에 가까운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뒤통수 2016년 20대 국회 선거구 조정 당시 적정 인구(14만)에 도달하지 못하여 이웃 선거구인 공주시와 통합되었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선 정진석이 당선되었다.

5 하위 행정구역

부여군/행정 항목 참조.

6 행정구역 통합 문제

한창 행정구역 통합 떡밥이 유행할 때 부여군에서 공주시에 합쳐서 '백제시'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공주에서 시크하게 '즐' 날리는 바람에 시도도 못해보고 무산된 적이 있다(...). 여러모로 공주 손해인데다가, 부여에서 공주는 의외로 멀다. 오히려 청양군이나 논산시와 합치는게 적절할 정도. 백제를 의식한다면 익산시도 괜찮은 선택이겠지만...그러면 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1960년대 행정구역 개편 전을 보면 부여와 논산 등 충남의 일부 행정구역은 본래 전라도 소속이었다.

7 경제

느긋한 시골동네답지 않게(?) 인심이 그리 좋은 편은 못된다. 대백제전 반짝특수를 틈타 캔커피 하나에 1,300원, 작은 생수 한 병에 1,000원에 팔아제끼기도 판매하기도 한다. 물론 관광지 주변 노점상이 다 그렇듯 축제특수 받아서 팔아보려고 온 사람들이 많다는걸 감안해야하지만. 이렇게 폭주하는 바가지 요금 때문에 뉴스 한 토막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1,300원 주고 캔커피 사먹느니 좀 더 주고 프렌차이즈 커피 사먹겠다고 부여에 하나뿐인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몰리는 바람에 커피가 떨어져 일찌감치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카더라. 다만 이런 부분을 가지고 지역 전체의 인심을 운운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애초 경제 항목에 왜 이런 내용이..

관광도시로 밀고나가는 이유 때문인지 시내에 모텔이 많다. 중학교 바로 앞에 있기도 한다.

다른 곳에 비해 물가도 비싼 동네. 여기보다 오히려 대전 등이 훨씬 싸다는 말도 있다.

8 특산품

부여8미

  • 수박
  • 멜론 - 부여생산량이 전국 생산량의 30%정도라카더라.
  • 방울토마토
  • 오이
  • 양송이버섯 - 전국생산량의 45%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 - 전국생산량의 12%를 차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윗동네 공주에 묻힌다.(...) 밭이 넓은건 이쪽.
  • 딸기 - 옆동네 논산에 묻혀서 그렇지 재배는 한다.
  • 표고버섯 - 전국생산량 13%를 차지한다고 한다.

모두 굿뜨래 브랜드마크를 달고 팔린다. 대부분 농작물이다.

9 문화

1967년에는 농민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이 곳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올림픽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냥 충남 지역의 16개 면에서 온 농민들이 선수로 참가해 심플하게 하루만에 끝낸 행사였다. 농촌의 번영을 위한 취지로 열렸으며 종목으로는 손수레 빨리 끌기, 쟁기질 빨리 하기, 감자 빨리 까기, 경운기 빨리 몰기 등 농촌 생활을 스포츠화한 종목들이 있었다. 우승 상품으로는 비료가 주어졌으며 대회가 폐막된 후에는 참가상격으로 술과 음식을 나눠주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 올림픽은 1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2000년대 초에 들어서야 롯데리아가 들어올 만큼 열악한 곳이다. 레스토랑의 경우 브랜드 레스토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대부분이 개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분식집 같은 경우도 바로 그집 역시 2000년 초반에 생겼으며, 그전까지 이름 있는 분식집은 신포우리만두 정도였다. 편의점은 96~97년도 경에 들어왔는데, 역시나 브랜드 편의점은 아니었다. 24시를 운영하는 편의점도 역시 2000년 초반에 들어왔다.

그러나 반드시 프랜차이즈가 들어와있는 것이 그 도시의 면모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엔 웬만한 업종의 상점, 요식점이 들어서 있으며 이러한 곳에서 판매되는 재화나 서비스의 질은 프랜차이즈 계열보다 훨씬 좋다. 실제로도 부여군민들은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가지 않는다. 아니 부여사람들 프렌차이즈에 환장하는데 이건 옛날 이야기. 뚜레쥬르,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베스킨라빈스31, 미스터피자 등이 부여 시내에 입점해 있다. 그리고 도시에 비해는 매우 적은 수준이지만 인지도 높은 카페가 속속히 들어오고 있다 카페베네, 커피베이, 투썸플레이스, 이디야커피 그리고 LG베스트샵, 삼성디지털프라자, 롯데하이마트도 모두 입점완료.

이런 도시지만, 그래도 극장은 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며 지하에 주차장도 있다. 다만, 2관까지 있고 1층은 은행이다. 덕분에 영화를 개봉하면 기간 동안 2개 또는 요상한 시간대에 끼워넣어서3개나 4개의 작품만을 상영한다. 술집 같은 경우는 딱히 밀집지역 같은게 없다. 대부분이 동네술집. 술자리 게임 같은거 하기도 힘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대학생은 어디에?일단 읍내로 나가야지...음식점 같은 경우는 의외로 괜찮은 편. 처음부터 관광도시여서인지 몇몇 유명한 음식점들이 포진해있다. 다만, 대백제전 이후로 맛이 옛날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감들이 있다.

2013년 9월 8일 규암면에 롯데 아울렛이 새로 생겼다. 롯데 아울렛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 땅값을 무료로 해줬다는 카더라가 있다. 꽤 많은 브랜드가 들어왔으며 뷔페식 샐러드 바엘레나가든도 입점하였다. 이제 유명 브랜드를 사러 타지로 나가지 않게 된 일반 시민들은 환영이지만 부여 읍내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반대 운동도 벌였었다....만 오픈빨인지 매우 성업 중에 있다. 오픈 4년째인 현재도 매우 성업 중이다.

축구팀은 부여군 FC가 새로 K3리그 2016 시즌 부터 참가한다.

10 관광

유명 관광지로는

  •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정림사지 - 후기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 정림사지 5층석탑이 여기에 있다. 다만 정림사지 5층 석탑 외에는 허허벌판에 가까우니 기대하고 찾아가면 금물...이었지만 2008년경 정림사지박물관이 생겼다.
  •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
  • 연꽃축제로 사람들이 찾으면 모기뜯기고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궁남지
  • 국립부여박물관
  • 백제문화단지
  • 그 밖에 무량사, 대조사, 구드래...
  • 경찰 대간첩 전적지

(부여군 석성리에 위치하지만 부여군이라 포함)
등이 있다. 거의 하루만에 구경이 다가능하다.하지만 롯데리조트와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이 있다면 어떨까?

2013년에 신동엽 생가 옆에 신동엽문학관이 생겼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관북리 유적,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1 음식

대표적으로는 구드래 돌쌈밥이라는 곳이 있는데 구드래에 위치하고 20년이 넘게 성업중이다. 돌솥밥에 여러가지 쌈들이 같이 나오는데 반찬들이 대부분 괜찮은편이다. 전라북도와 가까운 탓에 전라도와 충청도가 혼합해 있는 듯한 음식들이 대부분. 이외에도 구드레 쪽에 역시 장원막국수라는 막국수집이 있는데, 족발을 시키면 나오는 막국수가 아니라 물막국수로, 냉면과 비슷한다. 여름에 가면 자리가 없을 지경. 냉면의 경우는 구드레 입구 쪽에 함흥냉면이 유명하다. 다만 가서 말을 하지 않으면 물 대신 육수를 주기 때문에 물은 따로 달라고 할 것. 부소산 입구 쪽에 있는 고참반점이라는 중국집은 약 6월부터 9월까지만 장사를 하는 곳으로 콩국수와 짜장면, 만두만을 판다. 물론 사람들은 대부분 콩국수를 먹으러 온다.

중국집의 경우는, 부여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만다린이라는 중국집이 가장 오래되고 성업중이며 부소산 입구 옆에 위치해있는 상하이도 가볼만하다. 분식집으로는 진미당이라는 집이 있는데, 특이한 건 넣지 않고 평범하고 깔끔한 칼국수와 손으로 빚은 만두가 일품이다. 공장제 만두가 아니라 직접 손으로 빚은 만두로 매우 훌륭한 퀄리티의 군만두를 맛볼 수 있다.

12 언어

지역 특성상 바로 아래 전라북도 익산과 붙어 있어서 그런지, 익산쪽에서 유입되어 오던 사람들이 있다. 먼 과거 부여와 익산이 백제 중후기의 핵심 지역인데다, 가까운 과거 경제 발전기에는 충남에서 가장 발전한 동네였던 강경과 맞붙어 있어서 전북에서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어있다. 실제로도 충청도 사투리에 약간의 전북 사투리가 섞여서, 구분하기 어려운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충청도 토박이가 전북 사투리 그러나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인 '거시기'의 사용은 드물고 '시방'을 자주 쓴다.

13 기타

백제의 고도가 마케팅의 중심. 큰 돈을 들여 백제문화단지를 짓기도 했고 그 말처럼 이 동네 땅은 개발을 하려고 파다보면 유물이 나와서 개발이 중지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다 부여읍에는 고도제한도 있어서 일정층 이상 높이(부소산 높이)의 건물은 짓지도 못하는 등, 발전하기 힘든 동네다. 경주는?집을 지으려고 토대 공사를 하면 유물이 나와서 보상금 받고 터를 옮겨야 하는 수준. 게다가 부여여자고등학교 아래에서 유적이 발견되 학교 이전 준비중이다. 1962년에 현 위치로 이주한 뒤로 50년이 넘도록 있었던 곳에서 유적이 발견되는 클라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매우 빈약한 것이 문제. 부여 읍내에는 고작해야 정림사지 5층석탑 정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화암을 포함한 부소산성이나 궁남지에서 백제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뭐가 남아 있어야 말이지... 같은 삼국시대의 고도를 주장하는 경주와 비교해 봤을 때 매우 안습하기 그지없다.[6] 거기다 토대 공사를 하면 유물이 튀어나온다고도 하지만 도시화 역시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지층교란이 심하다. 실제 부여 문화재연구소 바로 앞의 관북리 백제왕궁터 발굴조사당시 백제시대 추정 지층 하부에서 언제 공사됐는지도 모르는 콘크리트 기초부가 튀어나오는 아스트랄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물론 지표면에 건물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본격 백제시대 오버테크놀러지 이러다보니 백제의 고도라고 광고하면서 관광객 유치에 안간힘을 쓰지만 실제 와서 볼 만한 것이 없고 그나마도 하루 정도면 전부 둘러볼 수 있는 만큼, 관광객이 숙박하면서 장기적으로 돈을 쓰게 만들기도 어려운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다.

일제시대 말기인 1939년에, 일본이 '내선일체'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기 위한 일환으로 부여 부소산 일대(지금의 삼충사 위치)에 일본의 메이지신궁과 동급인 신토 '신궁'을 세우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완공되기 전에 일본이 패전하고 해방이 되어 부여청년동맹원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 신궁 건설 여파로 부여 내의 시가지 정비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영향이 지금도 남아있다. 당시 인구 920명에 불과했던 부여에 거대한 규모의 신궁을 지으려 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하다. 그 몇해 전 충남도청 이전에 든 비용이 당시 돈으로 16만원이었는데, 부여신궁의 총 공사비는 24만원이었다. 더군다나 덴노가 직접 공사 계획을 발표했다. ('충청남도 인터넷 신문' 인용.) 당시 신궁에 모시려던 이가 '임나일본부 설'에도 나오는 진구 황후 등이었던 점과 부여가 옛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란 점 등을 드는 얘기가 있다. 지금도 있었으면 논란은 될 것이나, 관광지로는 큰 힘이 됐을텐데. 조선총독부 꼴 나지 않았을까?

14 출신인물

  1. 이건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시도 마찬가지이다. 좋은거냐나쁜거냐
  2. 논산역에서 부여읍까지 택시요금은 약 2만원 + a(시외할증), 25~30분 소요. 그냥 논산역에서 논산터미널로 와서 부여가는 버스를 타자. 자주있기도 하고, 훨씬 싸다
  3. 2006년에 한나라당으로 이적
  4. 13.2.28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5. 이때 김종필은 지역구 선거구가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비례대표 1번으로 나왔음에도 정당 득표율 3%도 못받은 채 낙선하고 만다.(...) 그리고 이런 쪽팔린 결과에 충격받은 김종필은 그대로 정계은퇴한다. 여담으로 이때 김종필이 당선되었다면 9선으로 동률이었던 YS를 제치고 한국 국회 역사상 최다선인 10선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낙선하면서 망했어요.
  6. 사실 경주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천 년 동안 수도였고 사비는 성왕(백제)부터 멸망까지 100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수도였다. 같은 옛 수도라고 해도 백제는 수도를 여러 번 옮겼고 기간 차이가 커서 남아있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