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군

(북한군에서 넘어옴)
동아시아의 군대
대한민국 국군조선인민군중국 인민해방군
중화민국군자위대몽골군
조선인민군
조선인민군 육군조선인민군 전략군조선인민군 해군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조선인민군 특수부대조선인민군 준군사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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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세계 군사력 순위25위 (2016년 4월)
상비군120만 명##[1]
예비군450만[2][3] GFP순위
육군력
3세대 전차0대
2세대 전차2,350 대
1세대 전차2,400 대[4]
그 밖의 구형 전차800+ 대[5]
수륙양용 전차460+ 대
전차 총합4,200 대 (2011년)
장갑차(APCs/IFVs)2,582 대 (2011년)
견인포1,500 문 (2011년)
자주포1,600 대 (2011년)
다연장로켓600 대 (2011년)
수송 차량8,000 대
공군력
헬리콥터328기 (2011년)
4세대 전투기[6]40기
3세대 전투기[7]206기
2세대 전투기[8]238기
항공기 총합약 1,650 기[9]
해군력
4,000톤급 호위함[10]0척
3,000톤급 호위함1척
2,000톤급 호위함[11]1척
초계함, 고속정473척[12]
잠수함70척
전투함 총합708척

한자 : 朝鮮人民軍 / 北韓軍 / 北傀軍
영어 : Korean People's Army

1 개요

대한민국 국군주적
스스로를 인민군이라고 하지만 전~혀 인민을 위하지 않는데다 오히려 그 인민을 착취하고 등쳐먹으려 하는 김씨조선의 개인 무장집단

조선로동당 조로당 의 군대. 소련이나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이 국가가 아닌 당에 소속된 당군이다.

북한에서의 호칭 : 조선인민군
남한에서의 호칭 : 북한군, 북괴군, 인민군 [13]

2 설명

정식 뜻은 조선노동당군대이지만 사실상 김씨조선의 사병. 북한에서는 인민군으로 줄여부른다. 그런데 아래 3번의 하위 항목과 같은 사유로 현재 북한 사회에서는 인민군이 아니라 공산군이라는 아스트랄한 별명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한민국에서 한국전쟁을 다룰 때 조선인민군을 인민군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 전쟁 당시에는 공산군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냉전 시기에는 소련 혹은 중국의 꼭두각시 군대라는 혐칭으로 북한괴뢰군(北韓傀儡軍), 줄여서 북괴(北傀軍)이나 괴뢰군이라고 주로 불렀다.

1948년 2월 8일 창설되었으나 1978년부터는 항일 빨치산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강조하기 위해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창설했다는 날인 1932년 4월 25일로 창설 시기를 앞당겼고, 해당 날짜를 '건군절'로 지정해 공식화한다.

옆나라군대와 마찬가지로, 북한이라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다. 조선인민군은 북한의 노동당인 조선노동당의 군대다. 다만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인민해방군은 말 그대로 중국 공산당을 위해 복무하는 군대이지만 조선인민군은 그냥 김돼지네 집안을 위해 복무하는 군대일 뿐이다. 인민해방군은 당병(黨兵)이지만 조선인민군은 사병(私兵)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조선인민군에만 존재하는 여군 장교들로만 구성된 특수부대가 있는 것이다.[14]

즉, 조선인민군의 실질적 존재의미는 대한민국 국군 같은 정규군보다는 나치 독일SS에 더 가깝다. 이러한 특징은 사실 공산주의 국가의 특징인데, 공산주의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에 속한 군대'가 없다. 다만 인민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인민군이 있을 뿐이고, 이는 각 나라의 공산당에 속하는 당군(黨軍)일 뿐이다. 국가에 속한 군대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지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압제의 도구에 속한다는 마르크스의 오랜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15]

사실 공산권이라고 '인민의 군대'라는 표어가 완전히 허상은 아니었던 것이, 동독 국가인민군독일 통일 직전 서독 국경으로 몰려오는 동독 주민들을 차마 쏘지 못하여 국경을 개방했고[16], 루마니아 인민군은 차우셰스쿠 처단에 앞장섰다.[17] 심지어 악명 높은 소련군마저도 적어도 2차대전 후반기에는 독일군의 공격에 맞서 자국 영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군대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이후가 문제지만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김씨 일족 독재정권의 주구라 인민을 탄압하는 데 전력을 쏟아부으니, '인민의 군대'이기는커녕 '김씨 일가의 사병'이라고 불러야 할 존재다.[18]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국정운영은 전반적으로 당의 권한이 강하고, 내각을 필두로 하는 국가기관은 그냥 실무기관 정도의 위상이다. 이를테면 김일성 시기의 북한 내각은 아예 이름까지 정무원으로 바뀌었고, 당기구를 근간으로 하는 중앙인민위원회가 국정을 다 해먹었다. 김정일 집권 이후로 괜히 북한의 내각 권한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게 아니다.

또한 군 자체에서 "조선인민군"이라는 신문을 발행한다. 한국군으로 치면 국방일보와 같은 격.

3 역사

북한이 세워지기 전부터 역사를 지닌 조직이다. 지금은 매우 안습한 군대이지만 그래도 1950년대에는 미군이 한국 전쟁에 참전하자마자 몇 차례 패배시키며 경남까지 쫓아내는 등 위력은 있었다. 일본군, 중국 국민당군과 싸우며 나름 실전경험도 있던데다 북한군이 쓰던 무기는 소련에서 지원받은 강력한 무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미국도 2차대전 때까진 아군이었던 러시아의 T-34 탱크들을 적군으로 만나게 되자 연패했다.

1945년 10월 21일 소련 제25군 사령부의 명령으로 보안대가 창설되고 이 과정에서 조선의용군이 배제된다. 보안대의 임무가 철도안전을 포함한 형태의 임무확대가 되어서 철도보안대가 추가로 창설되는 1946년 1월 16일에 철도보안대에 합류하게 됨으로서 북한군의 기초가 된다. 현재도 북한군 군인들의 신분은 철도보안원을 겸임할정도로 이 철도보안대가 조선인민군의 전신이다. 그리고 군내 정치사상 교육과 군사분야의 간부양성을 위해 1946년 2월 평양학원[19]과 6월 중앙 보안간부학교[20]등의 군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46년 8월 15일 규모가 확대된 보안대를 통합·지도하기 위해 평양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창설했고, 9월에는 인민집단군 총사령부로 개칭했다. 1948년 2월 4일에는 민족보위국이 설립되었고, 마침내 북한 정부수립 7개월 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조선의용군은 1949년 7~8월에 2만명이 북한으로 들어옴으로써 북한군에 최초로 합류하게 되며 1950년 5월에 추가로 약 2만명 가량이 입북한다. 이로 인하여 중국 공산당과 함께 활동한 군대 출신인 경우가 많게 된다. 먼저 김원봉조선의용대에서 이탈해 중국 연안지방으로 간 군대인 조선의용군이 있다. 또 조선의용군과 함께 태항산에서 결성된 화북조선독립동맹의 일부 인원도 포함된다.

그리고 만주에서 활동했던 동북항일연군도 조선인민군에 포함되는데, 이 동북항일연군은 완벽히 통일된 군대는 아니었고 만주 일대의 공산주의 계열 유격대들을 공산당 주도로 통합한 일종의 통일전선 연합체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 김일성이 제1로군 2군 6사의 대장이었다. 김일성은 이후 만주에서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탄압을 받자, 소련으로 넘어가서 소련 극동군 제 88 국제여단에 합류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소련에서 활동하던 소련 유학파 등이 모여서 형성되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부대의 모태가 되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선인민군의 뿌리로 소급하기도 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느슨한 분위기의 군사조직 연합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점을 두고 북한에서는 "민족적 단결을 통한 인민의 군대 창설"로 평가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점령되고 나서, 북한군이 서울에 주둔할 당시, 야전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한 간호사나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연안파, 다시 말해 조선의용대 출신 인원들이 김일성과 그의 직통 라인인 소련 극동군 88여단 출신 인물들에 비해 상당히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연안파 군인들은 공공연히 이러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정규군 약 119만명, 예비전력 총합 약 950만명을 보유하고 있어 병력규모상은 세계 3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수와 대비하면 군사국가라고 해도 될 정도로 군인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그 인원도 그저 부족한 전투력을 메꾸기 위한 조치로 생각될 정도로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다. 참고로 세계에서 3위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그 북한군의 군사력 순위는 기껏해야 20위 후반는데... 40여 개의 나라가 추가되면서 35위로 또 떨어졌다. 사실 평가된 나라가 68개국에서 106개국으로 늘었다. 다만 세계 최상위권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포함되어 있었기에 나라 비율만큼 순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6.25 전쟁 당시의 조선인민군과 조선의용군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민군은 북한의 정식 군대고 의용군한국전쟁 당시 남한 지역에서 자원 또는 징집된 인원으로 편성된 군대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김원봉 장군이 이끌던 조선의용대를 뿌리로 하는 조선의용군이 존재했지만, 이건 다른 군대다. 물론 이들이 광복 후 북한에 돌아와서 연안파를 형성한다. 조선의용군의 주요 인물들이 바로 김두봉김무정 장군이다.

당연하게도 이 의용군은 북한 정규군에 비해 차별을 받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 포로 교환을 할 때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라고 한다.

4 수뇌부

대한민국 헌법상 조선인민군은 간단히 말해 반국가단체, 군벌이다. 다만 남북한은 실제로는 상대방을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하고 간간히 장성급 회담이나 대령급 회담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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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21]인민무력부장[22]총참모장총정치국장
김정은박영식 대장리명수 차수황병서 차수
해군사령관항공 및 반항공군사령관전략군사령관인민보안부
리용주 대장최영호 대장김락겸 대장최부일 대장

당군인 인민군의 특성상 인민무력부장의 지위는 그리 크지 않다. 중국은 북한과 달리 국방부장이 한국의 국방장관과 비슷한 직무를 수행한다. 국방부장이 제복군인 가운데 최선임 대우도 받는다. 정치군인화가 심한 북한이라 총정치국장이 강할 뿐이지 다른 공산권에서는 기본적으로는 군대는 국방장관이 관리했다.

파일:Attachment/조선인민군/North Korean high-ranking officials.png

상단 사진 앞줄의 왼쪽부터 4.5번째가 총참모장 리영길이다. 안경 쓴 양반. 출처.

사진 인물들을 면면을 보면, 왼쪽의 어깨만 나온 자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며 그 다음은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의장, 박도춘 조선노동당 서기(군수 담당),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최룡해 총정치국장이다. 맨 앞의 둘은 리설주김정은이며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의 뒤에 선 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23], 그의 오른쪽에 박봉주 총리다. 박 총리의 오른쪽은 김기남 선전선동부장, 최태복 조선노동당 서기(외교), 양형섭 최고인민회의[24] 부의장, 강석주 내각 부총리다. 상단 사진은 2013년 12월 17일에 김정일 추도식에 모인 사진이다.

하단 사진은 상단 사진의 1년 전인 2012년 12월 17일 추도식 사진이다. 하단의 인물들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화살표가 붙은 인물을 따라 최태복 조선노동당 서기(외교), 김기남 선전선동부장, 김경희, 최영림 전 총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설주, 김정은, 최춘식 제2자연과학원장[25], 최룡해 총정치국장, 장성택, 현영철[26], 김격식 전 총참모장,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이다.

사진 두 개를 대조해 보면 알겠지만, 2012년에 추도에 참석했던 김격식, 김경희, 장성택, 최춘식이 2013년에는 불참했다. 또한 2012년에는 미묘한 앞뒤 차이는 있을지언정 김정은-리설주 부부와 다른 간부들이 한 줄에 비슷하게 나란히 섰으나, 2013년에는 김정은-리설주 부부만 확실하게 앞으로 한 걸음 나와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참고 영상.

또한 사진을 보면 죄 육군밖에 안 보이는데, 실제 쪽수가 육군만 많은 구조 탓이긴 하지만, 인민무력부 근무자는 해공군도 육군 피복을 착용케 하는 규정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점은 북한이 본으로 삼은 소련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외 군 간부들은 조선인민군/장관급 장교 항목 참조.

5 안습한 내부 사정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 문서 참조.

이런 열악한 현실을 들어 한국이나 한국군에 전혀 위협이 안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냥 북한군을 무시하기만 하면 곤란하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펴내는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이 현실의 위협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이 패망하더라도 한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에 경제력과 인구가 밀집된 한국의 특성상 민간인 대량살상을 유발할 수 있는, 혹은 한국군에게 최대한의 출혈을 강요할 수 있는 수단은 특수부대, 방사포장사정포, 잠수함[27], 그리고 핵무기를 포함한 생화학무기인데 해당 무기 체계들은 장사정포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대칭전력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전력을 운용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한국군을 정규전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것을 자신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북한군은 개전시 승리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대한민국에 최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도록 전략을 짬으로서 전쟁억지력을 갖추려는 속셈이다.

6 해외 참전 / 지원 경력

6.1 직접적인 참전

베트남을 소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북한의 슬로건은 '월남에서 미군이 100명 죽으면 남조선에 있는 미군이 100놈 죽는 것이나 같으므로 월남을 도와주어야 한다'였다. 1967년에는 전투기 조종사(비행연대 2개), 1972년에는 공작원을 베트남에 파견해 게릴라 활동을 지원하였다. 기타 수송병, 화학병 등의 형태로 소규모 참전하였다. 북베트남은 훗날 북한군이 요구한 서방진영 군수품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은 중국과 사이가 벌어졌는데, 이때 친중국 정책을 취하던 북한과도 사이가 벌어졌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후 베트남은 철천지 원수였던 미국과 베프를 먹을 정도로 반중 국가가 된다[28]

다만 F-5A-37 등의 공군 항공기와 M48 전차, M16 소총 등 각종 육군 무기가 북베트남군에 노획되었고, 이 중 일부는 공산국가로 흘러들어간 점 등을 봤을 때[29] 소량이라도 노획품을 제공했을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 북베트남에게 인계받은 F-5와 A-37을 국영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96년에 귀순한 북한 조종사는 F-5를 조종한 선임을 맞이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전투기 조종사 지원 말고도 추정적으로 북한군 심리전 요원 등이 활동한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1973년 10월에 발발한 제4차 중동전(욤 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에 미사일 요원 30명과 전투기 조종사 및 정비사 50명을 파견했다. 이때 파견된 사람 중 하나가 클린턴 대통령 시절 북한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당시 대좌). 이때 북한 조종사와 군사고문단들은 큰 활약을 했다고 한다. 당시 공군 사령관이었던 무바라크는 대통령이 된 후 은혜를 갚기 위해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를 끝까지 지켰다.[30]
다수의 특수부대원과 군사고문단이 파병되어 있다. 일부는 전투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다만 서방의 극단적인 어그로를 끌지 않기 위해 IS를 적대시하는 바샤르 알 아사드의 군대 편을 들고 있다. 물론 이 점은 다른 반미 국가들도 마찬가지.[31]
비동맹회의에 가입한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 80년대부터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리비아에도 북한의 군사고문단이 파견되었다. 프란스 알버트 레네 대통령 치하의 세이셸에 전투기 조종사를 파견했다. 동남아시아 브루나이캄보디아에서 저격여단 요원들이 경호 업무를 수행했다. 파나마그레나다에서도 북한 군사고문관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미확인.

6.2 무기 수출

아 장사하자

북한은 1960년대부터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 전세계적으로 무기를 수출(내지 밀매)하고 있다. 1980년대의 전성기 때는 연간 5억 달러 가량을 벌었으나, 2000년대부터 국제 사회의 감시가 심해지자 연간 1억 달러 정도로 수입이 줄어들었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의 무기는 저렴하면서도 위력적이기에 경제가 어려운 제3세계 국가들에게 딱 맞다"고 평하였다. 러시아제도 싸지 않냐는 말이 있지만 이런 것은 러시아군 감축의 부산물인 폐기병기를 밀수한 것이 대부분이다. 제대로 규격에 맞춰 생산한 러시아/소련제 무기들은 절대 생각만큼 저렴하지 않다. 러시아도 알고 보면 미국, 중화인민공화국과 더불어 세계 3강에 해당되는 국가이니만큼 제대로 만들면 절대 허접하지 않다. 소련 시절에 혁명수출 차원에서 싸게 넘겨준 사례가 많았을 뿐...

일각에서 북한제 무기들을 폐기물 수준이라고 저평가하고는 하지만, 북한이 수출하고 있는 무기들은 딱히 첨단 기술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동구권의 지원을 받던 60~80년대에 제작된 것들은 의외로 쓸 만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적어도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에게 판매할 정도의 성능은 되는 듯 하다. 하긴 어느 정도 성능은 나오니까 인민군에서 채용해서 사용했을 테고 어쨌든 북한제 무기도 맞으면 죽는 건 마찬가지이니. 하지만 구 일본군 무기라면?[32]

아프리카에서는, 디디에 라치라카 대통령 치하의 마다가스카르에 고사기관총 등의 무기들을 대여하거나 수출했다. 2007년 1월 비로봉호를 통해 3,400여t의 무기를 콩고 민주 공화국에 수출했다. 2009년콩고를 향하던 화물선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임검당해 T-55 전차 부품 등을 압류당했다.

중동에서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스커드 미사일, 곡산형 자주포(M-1978, M-1989)를 이란에 수출했다. 곡산형 자주포 중 일부는 이라크군에 노획되어 이라크 전쟁에 사용되었으며, 최소 2문 이상이 밀수를 통해 한국군에게 넘어갔다. 1987년 4월 이란에 차호급 경비정(80t대) 3척을 수출하였다. 1990년 11월경 타막골호를 통해 시리아에 스커드 C 미사일 80여기를 수출했다. 레바논팔레스타인에 M-1985 240mm 다연장로켓을 수출하였으며, 이는 이스라엘군과의 전쟁에 사용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군이 북한제 140mm 다연장로켓 BM-14를 사용했다. 2009년 미얀마에 M-1991 240mm 다연장로켓을 최소 14문 이상 수출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알려진' 수출 행위 외에도 비밀리에 '수출'을 행하는 경우도 빈번히 있다. 2009년 무기를 수출하려다가 태국군에 의해 압수되었다. 목적지는 이란, 스리랑카, 우크라이나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RPG-7, 맨패즈, M-1985 240mm 다연장로켓, 대포동 2호의 부품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당시 벌어진 리비아 내전 도중 리비아 정부군이 퇴각하면서 놓고 간 북한산 무기가 잔뜩 발견되었다. 불도저 부품이라는 식으로 위장 포장을 해서 들여온 건데 포장지에 당당하게 북한의 국명이 영문으로 적혀있는 데다가(...) 완제품 무기에도 한글이 적혀있어서(...)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한글 망신

또한 북한이 헤즈볼라, 하마스를 대상으로 무기 장사를 한다는 게 확인됐다. 기사.

6.3 군사 훈련

디디에 라치라카 대통령 치하의 마다가스카르에서 대통령경호여단을 훈련시켰다.

1983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치하의 짐바브웨에 교관 130명을 파견해 대통령경호여단[33]을 훈련시켰다. 이 여단이 무가베의 반대 정파에 대한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전과 때문에, 2010년에는 일부 짐바브웨 국민들은 북한을 증오하고 있다. 무가베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2위)와 김정일(3위)보다 더한 세계 최고의 독재자로 선정된 인물로, 물론 2012년엔 김정일이 세계 최고의 독재자에 선정됐지만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을 세계 1위로 만들었다. 짐바브웨는 끝내주는 친북 국가로, 관공서에는 주체사상 전집이 놓여 있다든가 무가베의 사진과 김일성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든가라는 흠좀무한 국가다. 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부통령을 위원장에 임명하여 추모위원회를 만들었고, 심지어 매년 김일성이 사망한 달을 애도 기간으로 지정해놓고 행사를 연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일은 무시

IRA, 하마스헤즈볼라, 소말리아 군벌 등의 무장단체를 훈련시켰다. 역시 끼리끼리 뭉쳐다닌다니까?

2007년 5월 콩고 민주 공화국의 정부군을 훈련시켰다.

6.4 기술 이전

1994년~1998년경 이란은 북한의 '노동 1호' 개발비 전액과 부품을 제공했다. 그 대가로 기술 이전을 통해 이란의 탄도미사일 'Shahab-3', 파키스탄의 탄도미사일 'Gauri'가 만들어졌다. 다른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미사일 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6.5 외국과의 조약/관계

조-중 우호협력 및 호상원조조약은 전쟁 상태에 놓일 때 중국이 자동개입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중국으로서도 미국과의 전면적 대립은 피하고 싶은 상황인 만큼 북한이 핵이나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시에는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이 조약에 의거하여 중국 인민해방군의 교육기관에서 북한군 장교들이 교육 이수를 받는등 인적교류를 하고 있으며 공공연한 비밀로서 중국의 비공식적인 군사원조 혹은 지원을 받고있다.

기타로 모잠비크, 리비아, 쿠바, 몽골 등과 협력 조약을 체결했다.

그 외에도 미얀마 군사정부와 모종의 관계를 설립했다. 두 국가 모두 서방권과는 왕따된 형편.

7 계급

조선인민군/계급 문서를 참조.

8 편제

조선인민군/편제 문서를 참조.

8.1 육군

조선인민군 육군 문서를 참조.

8.2 해군

조선인민군 해군 문서를 참조.

8.3 항공 및 반항공군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문서를 참조.

8.4 전략미사일군

조선인민군 전략군 문서를 참조.

8.5 특수부대

조선인민군 특수부대 문서를 참조.

8.6 여군

조선인민군/여군 문서를 참조.

8.7 준군사조직

조선인민군 준군사조직 문서를 참조.

8.8 예술단

9 관련 문서

10 출처 목록

  • 단행본
    • 이정연, 2007,『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플래닛미디어.[35]
    • 강명도, 1995,『평양은 망명을 꿈꾼다』, 중앙M&B.[36]
    • 2012 국방백서
  • 논문
    • 함택영, 1997,「남북한의 군사력 - 사실과 평가방법」, 국제정치논총.
  • 최성빈 외, 2005. <북한 군수 산업 개황 보러가기

11 대중매체에서의 북한군

대부분 악의 축으로 등장하며, 높으신 분들의 사정으로 인해 중국군이 북한군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37]

11.1 영화 및 드라마

11.2 게임

  1. 절대수량으로는 순위가 3~4위로 떨어지나, 인구 대비로 따지면 주장이 다른 모든 나라조차 1등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약 4.5~5.0%. 상비군이 이 정도나 되는데도 나라경제가 버틸 수 있었다는 게 기적은 아니고 미라클 수준. 근데 북한 경제가 버티는 걸로 보인다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닌가? 그러나 최근에 북한의 총병력 수가 부풀려졌다는 보도가 떴다. 한 일본의 연구자는 실제 북한군 병력은 70만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기사.
  2. 다 긁어모으면 770만이라지만, 인구가 두 배인 남한은 그렇게 따지면 1500만은 끌어모을 수 있다. 제2위의 예비군 수이나, 품질은 그냥 일벌레 수준.
  3. 1위는 베트남이지만 여기 예비군도 그냥 등록한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현지인이 말한다. 순수 징집병 출신만 끌어모은 한국군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베트남 인구는 남한의 2배 정도 되는 9000만이다. 이웃 나라가 중국인 걸 생각하면 인구 대비 적정 수준인지도 모른다.
  4. T-54/55, 59식 전차 등 현대 주력전차의 개념을 가진 것들만 포함한다.
  5. T-34 시리즈 등 예비로 돌려지는 전차들이다.
  6. 4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7. 3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8. 2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9. 북한 항공기 보유수량 출처.
  10. 다른 국가와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광개토대왕급을 4,000톤급 호위함으로 분류함. 구축함급은 최하 만재배수량이 5,000톤급 이상인 군함으로 구축함으로 분류하며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적용함.
  11. 2,000톤급은 전후 300톤까지는 융통성 있게 분류함. 예: 2300톤~1700톤이면 2,000톤 호위함으로 분류. 4,000톤급은 전후 400톤 까지는 융통성 있게 분류함. 3,600톤 이상부터 4,000톤급으로 분류함. 이렇게 분류하는 이유는 만재 배수량에서 오차가 있고 상당수의 군함들이 이 오차 내에서 몰려있기에 그러함.
  12. 초계함이나 고속정은 대규모 함대전에서 유효한 전력이 아니다. 이것들은 특작부대를 막을 때 한정적으로 유효하다.
  13. '인민군' 이란 표현은 웬만해선 잘 쓰지 않고, 보통 한국전쟁사에서 언급될 때 주로 쓰이는 표현이며, '북괴군' 은 20년이 조금 안되는 옛날까지만 해도 주로 쓰였으며, 여전히 군에서 쓰이고 있는 호칭이다. 간혹 공식문서나 학술논문등에서 점잖게 일컬을 때 '조선인민군' 이라는 명칭을 써주긴 하지만 잘 쓰이지 않는다.
  14. 아무리 봐도 농담 같은데 절대 농담이 아니다. 특수부대의 정의라는 게 일반부대와 수행하는 임무가 다르면 특수부대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말하는 특수부대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는 그런 개념의 특수부대가 아니다.
  15. 다만, 마르크스의 이론은 정확히 말하면 군대란 본질적으로 권력을 지키고 사회를 억압하는 도구이므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군대가 필요 없다'는 것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국가 체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의 자경단쯤인 조직(이걸 중국이나 북한이 '당군'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지만)이 군대를 대체하고, 종국적으로는 이 조직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 말하자면 영구평화론에 기반한 군대 무용론으로써 주장했지, 그냥 군대를 만들어서 이름만 당의 군대라고 바꿔놓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핵폭탄과 각종 5세대 전투기로 무장한 10년 의무복무 자경단
  16. 사실 냉전 시기에도 가급적 사살하지 말고 제압한 뒤 체포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었고 대부분의 동독군은 규정을 준수했지만, 부대 내 분위기에 따라 사살해도 포상을 주는 등의 막장 상황이 벌어지거나 어차피 제압해도 떨어져 죽을 상황이면 그냥 사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탈주자를 사살한 사병이나 이를 방관한 장교가 처벌받을 때 동독군들이 의외로 크게 반발하지 않은건 이렇게 부대마다 사정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상당한 수가 사살된 것만큼은 틀림없다.
  17. 사실 진짜 사병인 보안군에 비해 차별받은 것도 한 몫 하지만.
  18. 다만 북한 내부에서 이들 대우를 보자면 사병보다는 무장한 노예로 불러야 더 적당할 것이다. 맘루크?뭐, 그나마 평양 쪽 북한군들은 다른 지역의 군대보단 대우를 잘 받는 편이긴 하니까 사병이라 불러줘도 되겠지만. 그럼 나머지는 노예 맞네
  19. 1949년 1월 인민군 제2 군관학교로 개편되었다.
  20. 1948년 12월제1 군관학교로 개편되었다.
  21.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북한 정부 소속이다. 조선인민군은 조선노동당 소속이기 때문에 국방위원회와 관련 없다. 조선인민군에 김정은이 갔다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간 것이다.
  22. 인민무력부도 북한 정부 소속이다. 조선인민군은 조선노동당 소속이기 때문에 인민무력부와 조선인민군은 아무 상관이 없다.
  23. 명색은 북한의 허수아비 국가원수다.
  24. 북한의 국회로 687석인데 601석이 조선노동당이고 나머지는 관제야당인 사회민주당이 51석, 천도교정우회가 21석, 무소속 13석 규모다.
  25. 한국의 국방연구소에 상당하는 기관이다.
  26. 사진에는 'Hyong Yong-chol(형영철)'로 오타가 나 있다.
  27. 북한의 1950년대 기술로 만들어진 잠수함-잠수정들은 한국 해군에 전혀 위협이 안된다는 게 밀덕 뿐만 아니라 해군 전문가들도 마찬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이런 주장은 쏙 들어갔다. 현재 한국군은 중일 해군을 의식한 대규모 함정에 경도되어 대잠 능력을 소홀히 했던 것을 반성하는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잠수함은이런 괴물아닌이상 성능에 따라 크게 전력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핵잠수함 같이 하루에 한 번씩 물 밖으로 나올 필요 없는 첨단 잠수함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일반 잠수함끼리는 큰 전력 차이를 기대할 순 없다. 북한이 잠수함 전력이 척수로는(70척) 세계 2위다. 대부분은 경량급이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한국에 피해를 주기엔 충분하 숫자다.
  28. 원래 수백 년 전부터 베트남과 중국은 원수지간이었다.
  29. M16 소총은 입수 루트가 워낙 다양하긴 하지만 북한도 상당량을 가지고 있다. 국군으로 위장해 침투했다가 703 연대와 조우했을 때 위장한 부대가 갖고 있지 않은 M16으로 무장했던 탓에 공비라는 것이 들통나 실패했던 적도 있을 정도...
  30. 김일성이 죽고 다음해인 95년 수교 협정에 서명한다.
  31. 그만큼 IS가 답이 없는 쓰레기 집단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32. 구 일본 제국 시절 무기들도 급조된 대전 말기품이나 전후 개조품의 조악한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과소평가돼서 그렇지, 제대로 만들어진 대전 초기나 전쟁 이전 무기들은 의외로 높게 평가되는 편이다. 실제로 미국 등지에서는 구 일본군 무기들이 수렵용이나 스포츠용 및 수집용으로 아직도 거래되고 있으며, 11년식 경기관총과 같은 실패작들도 설계나 개념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재평가받기도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애초에 그렇게 조악했다면 일본은 태평양 전쟁 일으키기도 전에 중일전쟁에서 패배했어야 했고, 해외에 수출하거나 타국의 무기를 대신 만들어줬던 이력도 설명되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그따위로 만들면 최종 검사공정에서 폐기처분 당했을 것이고(총은 조립하자마자 바로 납품시키는 게 아니다) 당시 일본도 바보는 아니라서 실패작들은 얼마 안 가서 빠꾸시켰다.
  33. 폭풍여단 또는 짐바브웨 제 5 여단.
  34. 그 외에 해군과 공군의 사령부 직속인 해군사령부협주단과 공군사령부협주단이 있으며, 준군사조직 중에서도 인민보안부와 조선인민내무군 직속의 협주단과 취주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기타 군단, 사단급 부대에도 약간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예술소조-한국의 동아리 개념-활동을 겸하는 공연 단체를 두고 있으며, 각 단위의 경비소대/중대에는 소규모 군악대가 조직되어 의장대 역할도 겸하고 있다.
  35. 문제는 '폭풍호' 떡밥 등을 볼 때 이 책에 대한 신빙성이 0에 가깝다. 일단 저자부터가 사기 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양반. 따라서 포병, 기갑 부분의 상당 부분은 제외했으며, 북한군 내에서 상식적일 것 같은 부분만 게재했다.
  36. 김정일 유모이던 강보비의 조카. 김일성의 외사촌 친척이며 강성산 정무원 총리의 사위이기도 했다. 이 작자는 북한에서도 쓰레기급으로 거짓말 일삼고 횡포가 심하던 자(김정일 수하들도 저 새낀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하소연했을 정도)였는데 강보비를 친엄마처럼 여기던 김정일이 그나마 봐주었기에 살았다고. 그럼에도 김정일 들먹이며 사기 저지르다가 드디어 김정일이 처벌하려는 걸 눈치 채고 남한으로 달아나서 지가 반공투사인 양 뻥쳤지만 연이은 탈북자들에게 진실이 드러나고 결국 남한에서도 사기 및 달러 밀반출로 구속된 뒤로 잊혀졌기에 이 자의 증언은 신빙성이 매우 적다. 그런데 김정일 사망 후에 경민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직함을 달고 TV 인터뷰를 했다! 장성택 실각설 이후에 교수 직함으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비롯한 종편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 출처 추가바람.
  37. 중국을 악당으로 묘사하면 중국시장 수출길에 아예 닫혀버리기 때문에 홈프론트처럼 무리수를 둬서라도 바꾸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