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치

<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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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왕권
사이비 종교라는 설이 있다
범국가적인 답정너

동아시아의 정치
대한민국/정치북한/정치일본/정치중국/정치중화민국/정치몽골/정치
북한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8점2012년, 세계 174위[1]
언론자유지수83.762016년, 세계 179위[2]

1 주요 권력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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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통일부 자료 북한의 기관들

한가지 미리 알아둘 점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씨 일가는 아래 기관들의 수장직들을 반절 정도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예를 들자면 김정일의 직책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조선로동당 대표) + 국방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대표)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인민군 지휘관)으로, '왕'이라는 딱지만 안 붙였지 실제로는 나라의 모든 최고권한을 모두 갖고 있는 왕이나 진배없다. 이는 전근대까지 사용되던 유서깊은 꼼수로, 집권자가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로 왕을 자처할 수 없을 때 왕이라는 호칭 대신 자기가 갖고 있는 권한들을 주욱 늘어놓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 소개를 대신하는 것이다. 따로 왕이 있어서 왕을 참칭할 수 없었던 고려 무신정권의 지도자 최충헌의 경우[3]와 공화정 전통으로 "왕"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이 극심했던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4]의 사례가 유명하다.

  • 김일성 : 조선로동당 총비서 () + 국가주석 ()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
  • 김정일 : 조선로동당 총비서 () + 국방위원장 ()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
  • 김정은 : 조선로동당 위원장 () + 국무위원장 ()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

1.1 조선로동당

절대권력
공산주의 국가로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서 당연하게 당이 제 1의 권력기관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민 대중을 대표하며 선전 및 동원, 사상 사업으로 이념적으로 국가를 영도한다.

그러나 다른 공산당이 당이 우위에 있고 독재자라도 당에 소속되어서 움직이는데 반해서 김일성은 절대권력을 행사하면서 당마저 초월하는 위치에 섰다. 이념적으로 당이 중요시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1인자를 강조하는 주체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 경향은 특히 강해졌다. 8월 종파 사건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당내 반대세력이 사라지자 김일성이 당에 소속된 게 아니라 당이 김일성의 영도를 받는 형태가 되었으며 이는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으로 당연시 되었다.

조선노동당은 특히 당권이 내각보다 더 강해서 공산국가에서 당이 국가 행정부와 일치, 협력, 경쟁, 합의 등 하면서 영역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내각을 우위에서 서고 있다. 심지어 알토란 같은 경제권을 국가에서 분리해서 당이 관리해도 국가(=내각)는 찍소리도 못한다. 한마디로 국가의 사유화

조선로동당 항목 참고

1.2 국무위원회

예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김정일 시대에 핵심 권력기관으로 조선노동당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까지 위상이 있었다. 국가의 국방정책 전반과 군사력을 통제/관리하며 군대를 지휘했다. 무력을 통제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최고권력이었으며 김정일이 국방위원장 직함으로 국가를 다스렸기 때문에 사실상 제 1권력기관이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 이념을 사상적 기반으로하여 국가 운영에 나섰다. 무력의 총집결기관으로써 대단한 위상이지만 고난의 행군 등 비상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비상식적인 통치기구였고비변사? 선군정치에 대한 효과도 떨어지고 해서 김정은 시대에는 위상이 대폭 줄어들었다. 특히나 반쯤 군벌이 된 군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위상도 많이 내려갔다. 특히, 2012년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명시하면서, 김정은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라는 과도기적 직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2016년 6월 29일,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기능 역시 국방위는 "국가주권의 최고국방 지도 기관"이었는데, 국무위원회는 "국가주권의 최고정책적 지도기관"으로 명시되었으며 사실상 국방과 행정, 경제 모두를 통괄 관리하는 초월적 기관이다. 초대 국무위원장은 김정은이다. 중국주석이나 미국대통령과 동격의 직책을 만들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1.3 최고인민회의

의회 아니, 의회 그 이상의 권한을 가지는 명목상 국가 최고 기관이다.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적 이념으로 창시되었지만 주체사상이 국가 유일이념을 독점한 상황에서 의미가 없다. 하는 일은 조선로동당이 뭔가를 결정하면 박수치기, 100% 찬성 투표가 전부. 즉 조선로동당의 결정을 그대로 국가정책으로 결정하고 100% 승인하는 역할이다. 그냥 시체

이론상 인민을 직접 대표하는 인민 위원을 통해서 대의제 정치를 하며 입법권을 가지고 북한의 법을 제정할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국가 주요 직위자에 대한 임명도 실시한다. 김정일도 이곳에서 국방 위원장으로 추대가 되는 절차를 밟아서 국방 위원장에 올랐다. 이념상, 이론상으로 인민의 대표로서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무시되지 못하는 권력기관. 때문에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과 위원들이 미쳐서 김정은을 탄핵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이고 그 외에는 공기에 하는 일 없는 자리. 주요 권력기관을 설명할 때도 항상 말석이다.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이론상 국가 원수이지만 완전히 개무시 당한다.[5] 물론 그래도 인민 대표 정치기구로 정통성 때문에 훨씬 끗발 있는 기관장도 공개 석상에서는 접어준다.

참고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의석수의 90퍼센트 이상이 조선로동당 당원이다. 왜 100퍼센트가 또 아닌고 하니 일단 북한은 자칭 민주주의 국가라서 단일정당을 인정치 않기 때문으로 실제로 북한에는 조선로동당 외에도 천도교청우당조선사회민주당이라는 정당이 두개가 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상은 이 나머지 두개 정당은 사실 조선로동당 일원 일부가 간판만 바꿔 단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명목상 점유율만으로도 조선로동당이 과반수인데다 실질적으로는 점유율 100퍼센트다.

이런 정치형태는 북한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보이는 정치 형태이다. 공산당이 일당독재 해야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따른 결과이다. 소련의 최고 주권.입법기관은 '소비에트 연방 최고 회의' 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련공산당의 결정을 승인하고 박수치는 역할을 했다. 중국 역시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중국의 최고 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공산당의 결정을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6] 라오스, 쿠바, 베트남 등 다른 현존하는 공산국가들도 마찬가지.

1.4 내각

국가를 대표하며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하는 기관이면 좋겠지만

하지만 북한의 내각은 다른 공산권 국가기관보다 매우 안습하다. 공산권에서 당이 우위라도 당 고관이 국가에 참여하거나 관료가 어느 정도 당료와 파워 게임이 되거나 해서 국가를 운영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김일성은 절대 우위의 권력을 가지자 기존의 내각제 수상에서 국가 주석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당과 내각을 자기 밑에 쩌리로 만들었고 1970년대에는 내각에서 정무원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위상까지 내려갔다. 내각으로 복원된 뒤에도 김정일은 국방 위원장, 김정은은 국방 위원회 1위원장 직함으로 통치하고 내각 총리는 그저 딱가리 수준이 되었다. 이래서 그런지 보면 좀 불쌍하다는 느낌도 드는데, 아무래도 직접 국가를 운영하다보니까 현실도 알고 나름 개혁도 좀 해보고 하려는 등 어떻게든 개막장 국가를 운영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문제는 실제 권력이 없다보니까 이런 행동이 효과가 크게 없다. 80~90년 대에 있었던 개혁 바람은 김정일이 해당자들을 대숙청하면서 끝나버렸고, 군대에 갈 자원을 국가 운영에 돌려보려다 역시 박살났고, 심지어 김정은이 주도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까지 지고 숙청을 당했다. 거기다 국가 수입의 7할을 당과 군에 빼앗기고 3할로 근근하게 운영 중이다. 현재 내각의 총리는 박봉주다.

2016년 6월 새 헌법에 국무위원회는 ‘최고정책적 지도기관’, 내각은 ‘행정적 집행기관’으로 명시해 상하관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2 선거

2.1 개요

북한은 자기네 정식 국명에도 나와있듯이 (자칭) 민주주의 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가. 자기네들이 독재국가가 아님을 강조하기라도 하려는 듯 국명에다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그런다고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 같으면 이 세상에 독재국가는 진작에 없어졌겠네…[7]

믿기진 않지만 일단은 북한의 최고권위자인 김정일 총비서, 김정은 제1비서는 북한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의 투표 의결에 의해 선출되었고, 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도 모두 주민들의 직접투표로 뽑았다 카더라. 일당 독재라고 흔히 여겨지지만 놀랍게도 3개씩이나 되는 정당이 북한 국내에서 합법적 승인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카더라.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17세 이상의 공민, 그리고 나이에 관계없이 군대에 복무하는 공민[8]은 선거권을 가지는데 판결에 의한 제한을 받은 자와 정신병자는 선거권/피선거권이 없다.

2.2 현실은 시궁창

한 줄 요약하자면 그냥 투표놀이
국가 단위의 짜고치는 고스톱


묘하게 실사를 베껴서 그렸다
모두 다 찬성투표하자. 여기로 가고 싶지 않다면 북한의 투표 방식은 찬성은 투표용지를 그대로 투표함에 넣는 것이고, 만약에 찬성을 하지 않는다면 투표용지에 있는 후보자의 이름을 펜으로 긋고 넣으면 된다. 근데 익명이 아니여서 문제지. 진정으로 민주주의 국가이면 투표는 비밀투표로 비밀권을 보장해야하고 무조건 찬성투표하라는 저 표어도 없애야만 한다. 진정한 민주국가면 내 마음대로 어떤표를 던지던 상관없는 투표의 자유가 있기 마련이다. 진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저렇게 구체적인 명령식으로 투표 홍보를 하면 당연히 선거법 위반이다! 해당 포스터는 날짜마다 다른 그림인데 "모두다 찬성투표하자!"는 똑같이 나온다. 그것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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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지방 인민의회 대의원 선거에 참가한 김정은. 사실 배고파서 식권 뽑는 중이라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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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투표용지. 껍데기는 멀쩡해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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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사실 이런 식의 투표용지는 여러 나라에서 쓰이고 있다. 일본도 빈 용지에 후보 이름을 적어 내는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후보 이름을 조금만 잘못 써도 무효표 처리가 된다. 통일주체국민회의 투표도 빈 용지였다. 그런데 사진에 나와있다시피 북한은 투표용지에 스탬프로 후보 이름이 찍혀있다.(...) 투표 하라고 했지 적으라고 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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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정일에 대한 투표용지는 스탬프도 아니고 아예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그것도 '위대한 령도자'라는 수식어와 '동지'라는 호칭까지 쓸데없이 붙여서. 엄밀히 따지면 투표를 진행하는 시점에서 김정일은 후보자에 불과할 뿐이므로 이렇게 미리 당선자 취급을 하는 것은 아귀에 맞지 않으므로, 이는 김정일이 최고지도자로 이미 내정되었다고 대놓고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다.[9] 그런데 김정일은 어느 선거구에 출마했을지가 참 궁금하다. 일단 저인간을 의회에 집어넣는다는 발상 자체가 입법부고 행정부고 개념이 없다는 것을 잘 증명해 준다.

김씨 일가의 사적인 독재 권력이 너무나 강력해져서 공적인 내각, 정부, 의회 등의 정치 시스템은 거의 마비 상태에 있으며, 단순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북한의 투표는 아주 간단하다. 일단, 유권자가 투표소에 신분증(북한에서는 '공민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하다)을 지참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선거인명부와 대조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는다. 여기까지는 여느 나라의 투표방식이랑 똑같은데...

사진에 나와있듯 투표용지에 후보 이름이 미리 찍혀있다! 이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으면 자동으로 찬성표로 인정된다. 만약 반대를 하고 싶다면 펜으로 후보자 이름에 엑스표를 써서 투표함에 넣으면 반대표로 인정된다. 물론 코앞에서 인민보안부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훤히 지켜보고 있는 투표소에서 반대표를 던지는게 가능할까?반대표 찍어 넣었다간 바로 아오지 투표를 왜 하는 거야? 본격 국가 레벨 답정너 환경파괴 간혹 드물게 반대에 투표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것을 각오하고 하는 것이다.

지방선거(각 지방 인민위원회), 총선거(최고인민회의. 남한의 국회에 해당)를 정기적으로 행하고 있다.

또한 최고인민회의 및 각 선거의 실상을 열어 보면…

  • 3개의 정당은 실상 한몸으로, 단일 정치집단을 구성하고 있다. 삼위일체
주요 정치집단인 조선노동당 외의 두 개 정당, 즉 자칭 사민주의 정당인 조선사회민주당[10]자칭 천도교 민족정당인 조선천도교청우당실제로는 관제야당이다. 물론 현지에서는 당연히 관제 같은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는 단어를 일체 안쓰고,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의 호구친구 정당이라는 뜻인 우당(友黨)이라고 칭한다.[11][12]
어용화를 위한 합법적 근거로서, 이 세 정당이 연대하여 하나의 정치집단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13]을 구성한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를 배출하는 유일 정치집단으로 군림한다.
  • 투표를 하기는 하는데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
이 점은 몇 가지 실제 사례만 들어도 쉽게 이해가 간다. 2009년 북한 총선거 결과를 통해 살펴보면:
  • 각 지역구별로 후보는 조국통일민주전선이 배출한 후보 단 1명이다. 간혹 조선로동당이 아닌 조선사회민주당 당원이나 천도교 정우당 당원, 심지어는 무소속이 후보로 배출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어차피 조선노동당의 거수기에 불과한지라 조선노동당과 별 차이는 없다(...). 원래 조선로동당원이 뱃지만 바꿔 단다고 보면 된다.
  • 모든 지역구의 유권자 투표율 99.98%. 참고로 투표거부는 바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비어 있는 0.02%는 해외로 파견된 북한인들이다.
  • 모든 지역구의 조국통일민주전선 후보 지지율 100%. 상기한 비정상적인 투표과정을 거쳐 나오니[14] 결과도 당연히 비정상적일밖에.
  • 그렇게 모인 대의원들이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장 임기 연장 투표 결과 찬성률 100%! 이건 선거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것도 아니여 '스스로를 민주주의라고 하는 곳에서 이런 이 형식상 임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집권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당선자는 정해져 있고 유권자는 그걸 그냥 투표함에 넣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의 선거는 말이 선거지 사실상 당에서 지정한 후보를 인민에게 한번 보여주면서 주민들의 당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해보는 행위에 불과하다. 답이 없다 주민들을 감시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선거라는 뜻

아무리 몸이 아파서 하루종일 누워 있다던가, 기타 다른 사정이 있어도 무조건 참여해야 된다. 못 움직인다? 그럼 관계자들이 와서 업어서라도 데리고 간다.

선거 시기가 되면 몰래 탈북한 탈북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북한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투표에 참여 하는 것이 일종의 출석 체크이기 때문에, 만약에 오지 않는다면 연좌제로 가족들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실제 투표현장의 영상. 기표소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것 같다 사실 북조선 인민들의 위대한 예술문화를 뽐내는 레크리라 카더라[15]

2014년 3월 김정은 집권 이후의 첫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원 선거. 13기 최고인민회의 선출된 대의원은 모두 687명선출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차피 단일후보에 찬성 100%인데 그리고 대의원들은 국가 최고지도자로 당연히 김정은을 추대하는 데 100% 찬성했다.

2.3 역사

2.3.1 6.25 전쟁 이전

초기에는 상당히 인민 민주주의적이긴 하나 다양한 정치체제가 혼합된 연립정부 형태를 지녔다. 초기에 벌어진 선거의 방식은 남한식 자유민주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이었다고 한다. 남한에서 북한을 깔때 자주 언급하는 흑백투표함 방식도 당시의 문맹률과 민도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방식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투표 전에 상당한 토론과 지역 인민위원회를 통한 교양활동이 수반되었기에 생각보다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16] 게다가 알려진바와 달리 흑백투표함은 밀폐된 공간에 있었다. 게다가 투표함이 딱 두개만 있던것도 아니고 각 후보마다 두개씩 있는곳도 꽤 있었다고 한다.

일단 당시의 선거 풍경을 보면, 지역마다 다양한 정치단체들이 토론과 협의를 거쳐 북조선민주주의 민족전선과의 협의 하에 한명의 후보를 선출한다. 이러한 협의 과정에서 후보 조정이 안 되면 할수없이 복수후보를 내 놓고 투표를 한다. 이렇게 "투표 전에 지역 민중과 협의하여 후보의 자질과 경력을 심사하고 공개토론하는" 방식은 상당히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이렇게 함으로서 선거 후보에 대한 민중의 판단을 고양시킬 수 있었다.[17] 당시 외신기자들의 눈에도 1946년당시 북한의 인민위원회/최고인민회의 투표는 남한보다 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비춰졌다.

그 결과, 초대 지역 인민위원회 선거는 무소속과 기타 정당이 50.1퍼센트, 노동당이 31.8퍼센트, 그리고 (조선)민주당과 청우당이 그 나머지를 점하는 결과가 나왔다.당시 선거에 관한 이야기다.

2.3.2 6.25 전쟁 이후

물론, 위의 자유선거가 펼처진 것은 김일성이 6.25 전쟁 이후 정적들을 숙청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현재는 한국전쟁 전까진 맘대로였겠지만 전쟁 후엔 아니란다.[18] 한국전쟁 이후에는 전시 체제를 거친 영향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후보자 1명을 먼저 내정하고 승인받는, 위에 쓰여진대로의 짜고치는 고스톱 선거가 진행되었다.[19]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조선로동당이 모든것을 장악한 뒤에는, 조선로동당 내에서 선거에 출마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경쟁하는 형태가 되었고[20], 그나마 8월 종파사건 및 67년 갑산파 대숙청, 수령 유일화 작업을 거친 다음부터는 그냥 정치라는 말이 무색한, 상명 하달로 후보가 선출되고 그 후보를 인민들에게 형식적 인증을 받는 선거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인민 여러분 저에게 투표해주세요!' 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이 구역의 짱이다. 불만 있나?' 라는 거다

물론 북한의 선거에서도 수치상으로 변화가 있던 시기가 있었다. 자세한 바는 아직 확인된 바 없으나, 때로는 조선로동당보다 더 많은 숫자의 기타 정당이 뽑힐 때도 있었고, 재외국민의 투표권이 인정된 후에는 조총련이 원내 정당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조선로동당이 절대 다수당으로 군림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떤 일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키자료#

2.4 역대 선거 결과

역대 최고인민회의 선거 결과
연도투표율찬성 투표율
194899.97%98.49%
195799.99%99.92%
1962100%100%
1967100%100%
1972100%100%
1977100%-
1982100%-
1986100%-
1990100%-
199899.85%100%
200399.9%100%
200999.98%100%

진짜 이쯤되면 답이 없다

3 세습

북한은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볼수 없는 세습제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북한 태조 김일성부터 시작하여 북한 지배층 상당수가 제대로된 공산주의를 공부한 사람이 없고 무엇보다 정통 공산주의자들은 김일성이 모두 숙청하였고 개똥철학인 주체사상과 김씨왕조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독재자들도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였으나 대체적으로 후계자는 혈족이 아닌 다른 건국원로나 2인자에게 세습하는 것에 비해 북한이 유달리 세습에 고집하는 이유는, 세계 최강 독재자 스탈린도 사후 소련내에서 악질분자로 찍여서 흐루시초프로 부터 비판을 받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도 사후 장칭을 비록한 4인방이 숙청되면서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같은 병크로 비판을 받는 것을 본 김일성은 자신이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죽으면 받게 될 비판에 겁을 먹어 자신의 아들 김정일에게 모든 권력을 세습하면서 자신에게 닥칠 비판과 처벌을 피하고자 했고,[21] 이것이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김씨일족과 그 측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세습도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거지같은 투표를 거쳐 이루어지므로 북한 정권은 이를 근거로 '단순히 수령님의 아들이라 된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뽑아준거라 된 것이다'고 주장하지만 그냥 까놓고 말해 약 파는거다.

애초에 북한의 헬게이트를 보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만큼 중국과 소련의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자신의 아들 김정일에게 세습하였고 김정일 역시 중국과 사이가 멀어질것을 알면서도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한 것이다. 북한 지배층들도 북한주민들에게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고 김씨일족에게 아부하여 본인들의 영달을 누린것을 알기에 본인들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하여 이러한 세습체제를 고집하고 있는 이상 북한정권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해괴망측하고 병신같은 세습체제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정권의 파멸은 당연한 것이기에 암 말기 환자에게 진통제를 투여하는 이상의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4 부패인식지수

북한의 부패인식지수 추세[22][23]
연도부패지수
2010년까지집계안함
2011년10
2012년8
2013년8
2014년8
2015년8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24]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 지수는 100점에 가까울수록 청렴하고 0점에 가까울수록 부패한 국가이다. 이 지수는 공무원정치인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국제적으로 판단하는 척도로 자주 활용된다. 국제투명성기구는 1995년 부터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하였으나 북한만은 집계를 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이 되면서 북한에 대해서도 집계를 시작하였다. 처음 집계를 시작한 북한의 투명성지수는 10점이였다. 이것은 최하점으로 세계 꼴찌인 182위를 나타내며 소말리아와 동일한 점수이다. 2012년에도 북한은 꼴찌인 174위를 기록했으며 전년도 점수에서 2점 추락한 8점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지수상으로 북한이 얼마나 정치적 후진국인지 잘 표현한 상황이라 하겠다.전쟁이나 내전으로 개발살된 나라들과 동급이거나 그보다 못한 점을 보면 이미 국가로서의 자격을 탈피 이후 2015년까지 계속 안정적으로 최하위를 기록하는 중.

5 북한의 우익(?)을 비롯한 기타 세력

북한당국이 존재한다고 공식적으로 이야기는 하는데, 사실상 오랜시간을 지나면서 어용집단으로 전락해버렸다. 특히 정당들은, 정당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시/도당이 존재를 해야 하며, 선거를 통해 정권획득이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 북한에서는 이 두가지 모두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지도부만 존재하는 유령정당으로 평가된다. 조선노동당이 아닌 세력은 대략 다음과같이 존재한다.

  • 조선사회민주당 : 위에도 언급된바와 같이 북한의 사민주의정당. 북한 정권이 수립됨과 동시에 당 지도부가 탄압을 받게 됨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지금은 그냥 북한에서 조선로동당이 나서기는 좀 뭣한 저렙 단체를 상대할 때 얼굴마담으로 기능하고 있다.[25]
  • 천도교청우당 : 북한의 천도교 세력들이 규합해서 생긴 정당. 사실상 정권 수립 초기부터 교세 확장을 위해 조선로동당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결국 이들은 나머지 종교가 모두 탄압받은 뒤에 유일한 종교정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 1956년 7월에 평양의 모란봉극장에서 결성되었다. 참가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김일성을 지지하는 재북 인사들로, 주로 한국 전쟁 때 북조선으로 간 사람들이며 한국 전쟁 전에는 김일성을 지지하지 않았던 우익 계열 출신이다. 평양방송에 따르면 이 단체는 대한민국 출신 월북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원적 정치조직이다. 단체의 이름은 1948년에 제1공화국 수립 직전 서울에서 결성된 김구와 김규식 중심의 통일독립촉진회를 이어받는다는 측면에서 따온 것이다. 강령은 평화통일, 전쟁반대, 남북협상의 세 가지이다. 평화통일 운동과 이에 따른 대남 선전이 주요 업무이다. 물론 이들은 사실상 평화통일 협상을 위해 대남 채널 역할을 했을 뿐, 실제로 큰 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다.[26]
  • 조국평화통일위원회 : 공식적으로는 조선노동당에서 운영하지 않는, 순수 민간 차원의 통일촉진/민족협력 위원회. 하지만 사실상 고위 정치인들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실질적으로 조선노동당의 통제를 받는 집단이다. 쉽게 말해 가끔 조선노동당이 직접 나서면 독재국가 티가 너무 나거나, 아니면 국가 체면이 안 살때 대신 내세우는 단체다. 이들이 바로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디씨와의 불꽃관계

6 관련 항목

  1. 점수가 낮을수록 부패한 국가 http://cpi.transparency.org/cpi2012/results/
  2.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https://rsf.org/ranking
  3. 壁上三韓三重大匡開府儀同三司守太師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上將軍上柱國兵部御史臺判事太子太師(벽상삼한/삼중대광/개부의동삼사/수태사/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상장군/상주국/병부어사대판사/태자태사)라는 관직명을 가짐, 이는 각각 벽상삼한(최고 공신) + 삼중대광(문신 대표) + 개부의동삼사(무신 대표) + 수태사(최고 고문) +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총리) + 상장군(최고 사령관) + 상주국(명예직) + 병부어사대판사(최고 판사) + 태자태사(태자 스승) 이라는 뜻. 말 그대로 나라의 중책을 죄다 주욱 늘어놓은 것.
  4. PRINCEPS IMPERATOR IVLIVS CÆSAR AVGVSTVS TRIBVNICIA POTESTAS로 표시되는 직함이며, 해석하자면 "프린켑스(원로원 제일인자)이자 임페라토르(군 총사령관)이신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름) 아우구스투스(최고존엄) 각하, 트리부니키아 포테스타스(호민관 특권: 원로원 결의에 대한 거부권과 민회 소집권, 신변 불가침권)을 가지신"이다.
  5. 이제는 국가원수도 뭣도 아닌 그냥 바지사장이 되버렸다.
  6. 하지만 중국쪽은 전국인민대표자회의의 실질적 권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7. 물론 공화국이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곳이 존재하는 경우는 많다. 이를테면 중국(중국공산당 독재)이나 러시아(블라디미르 푸틴이 사실상 장기 독재)도 있고, 1987년 6.29 선언 이전의 한국도 군사정권 등의 여러 문제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사실 현대에선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선거권을 부여하고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같은 자유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민주주의로 인정하지만, 민주주의의 형태는 사실 다양하고, 민주주의가 반드시 있어야만 공화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북한애들이 자기 나라를 공화국이라고 부르는거구나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스페인, 태국, 네팔,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은 심지어 민주주의이지만 국왕이 있다.
  8. 군대의 상명하복 특성을 이용하여,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지지표를 확보해두기 위함으로 보인다. 찬성 안하면 어째 되는지 알고 있갔디? 사실 17세도 안 된 군인이 버젓이 있는 게 더 문제지만.
  9. 참고로 의외로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재선 도전 당시 트루먼은 이미 이전 임기에서 지지율을 많이 잃었던 상태였고 이에 다들 입을 모아 그의 라이벌인 듀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거라고 얘기를 하던 도중, 원래부터 트루먼을 마뜩찮아 했던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이라는 수구 성향의 지역 신문사는 선거 당일날 대놓고 '듀이가 트루먼을 쓰러뜨렸다!'라는 노골적으로 듀이를 당선자로 내정한 헤드라인을 박은 내일자 신문을 만들어두었다. 그런데 투표가 끝나고 다음날 개표를 마쳐보니 웬걸 오히려 트루먼이 듀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트루먼은 그 날 재선 소감을 발표하는 공개석상에 이 문제의 신문을 가져와 카메라 앞에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인증샷을 찍어주셨다(...).
  10. 원래 조만식선생이 만든 조선민주당이 원형이다. 그러나 만든지 얼마 안되어 최용건이 빼앗아 버렸다. 명목상 공화국의 우익 정당 이랍시고 존재했다. 그들로서는 각 정치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중국본토의 중국 민주당과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조선 사회민주당으로 이름마저 바뀌어 버린다. 안습. 참고로 조선민주당 조직은 1960년대 후반까지 각 지역에 조직이 살아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반정부 운동도 간혹 벌이긴 했지만, 1956년 8월 종파사건과 1970년대 주석체제의 확립으로 이해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만다.
  11. 남한에도 제5공화국 시기에 비슷한 형태의 정당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이 있었다. 이 정당들은 모두 보안사령부가 창당작업을 뒤에서 주도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에 야당이 어디 있습니까? 1,2,3당만 있지요'라고 이야기한적도 있다.
  12. 당시 신군부는 대한민국에 사상의 자유가 있다는걸 보여주기 위해서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내건 통일사회당 김철 총재를 어용입법기관인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으로 포함시키기도 하고, 통일사회당을 계승한 사회민주당 등을 묵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독재정권에서 구체적 액션이 전혀 없는 명망가 집단, 독재정권의 쇼윈도우였기에 당시 반독재민주화운동세력, 좌파집단에선 경멸의 대상이었다.
  13. 통일 정책을 명분으로 구성되었으며 나라의 경영을 독단으로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제4공화국 기간 동안 존재했던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몹시 흡사하다. 역시 동족혐오는 위대하다니까. 당시 남한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 역시 극과 극은 통한다.
  14. 평양에 주재하던 한 독일 기자에 의해 생생한 사진들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링크
  15. 여기서도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영상 40초 쯤에서 각 후보자의 직장과 직위를 보면, 직위가 각각 "기사장"과 "직장장"으로 되어있다. 기사장은 북한의 공장에서 가장 높은 기술자를 뜻하고 직장장은 각 직장의 행정 담당 최고 직위, 그러니까 남한으로 치면 공장장이나 사장을 뜻한다. 북한판 금수저
  16. 까놓고 말해 현재 남한에서 투표에 나올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다가 선거철에 전단지 한 장 달랑 받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심지어 대통령 선거도 유망후보가 아닌 듣보잡들은 티브이 토론도 따로 한다(...). 반면 북한은 1940년대부터 각 지역에서 예비 입후보한 사람들 끼리 계속 공개토론을 하게 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다. 물론 예비 입후보 한 사람이 죄다 조선로동당이라는것도 함정. 그리고 그 예비입후보한 사람들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필터링을 거친 사람들이라는 함정.
  17. 이러한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는 현재까지도 북한의 정치체제를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그때와 현재의 가장 큰 차이는 조선로동당 말고는 후보가 안 나온다(...)는 것. 북한의 선거에서 후보들이 어떻게 배출되는지는 위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관한 언급 참조.
  18. 여담이지만,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다른 사회주의 진영보다 자유롭고 저항세력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야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미 1956년에 반소련 봉기가 있던 헝가리는 사실 한국보다 훨씬 잘살고 자유로운 국가였으며(물론 80년대 후반에 역전되지만.), 폴란드나 체코도 생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양의 문물을 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나라들은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 자유선거를 실시해 본 경험이 있었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바탕으로 전쟁 전부터 내려오던 야당세력이 굳건히 존재했다. 만약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북한이 이러한 1940년대 후반의 정치체제를 계속 유지했다면, 인민위원회의 무소속 위원들과 조선민주당 세력들은 폴란드 자유노조같은 세력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19. 소설 태백산맥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벌교를 점령한 인민군 장교들과 남도 빨치산 지도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인민군 장교들은 시종일관 당 중앙의 지시에 따르도록 강요한다. 그러자 빨치산 지도자들은 지역 인민위원회 구성에 관한 투표 이야기를 꺼내고, 인민군 장교들은 "지금 전시 상황인데 그런걸 하나하나 다 투표를 하고 있을 수 있냐?"라며 알아서 인민위원회를 뽑으라고 지시한다. 물론, 빨치산 지도자들은 생각해오던 민주주의와 전혀 다른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망했어요
  20. 현재 중국 공산당베트남 노동당, 쿠바 공산당이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고, 스탈린 이후의 소련 공산당, 일본 자유민주당55년 체제로 장기집권으로 여당을 해먹을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총리를 뽑았다. 다만, 일본은 부정선거가 아니라 야당에게도 투표를 할 수 있는 민주적인 방식이 보장되어있었다.
  21. 물론 김정일은 김일성이 아직 팔팔할 때부터 북한 권력구도에서 상당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였다. 김일성-김정일 세습이 절대 잘 한 짓은 아니지만,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갑툭튀한 김정은에 비하면 훨씬 권력 승계의 당위성이 있었다.
  22. [1]
  23. [2]
  24. [3]
  25. 참고로 민주노동당이 조선 사회민주당과 제휴하고 있었다.
  26. 결성된지 얼마지나지 않아 8월 종파사건이 터졌고, 이로 인해 김일성 반대파가 대거 숙청되었다. 자연히 위축될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1960년대 말 들어 마지막 남은 사상의 자유마저 제한되면서 제대로 활동하기 힘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