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부

司馬孚
(180년 ~ 272년)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문관. 자는 숙달(叔達). 경조윤 사마방삼남, 사마랑사마의의 동생.

맏형인 사마랑이 당대의 명사였고, 둘째 형인 사마의가 모략의 명수였다면 그는 학문과 경전에 해박하여 사마팔달의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2 정사

겸허하고 유순한 성격으로 주변의 공경을 받았으며, 조비가 세자가 되었을 시절부터 중히 쓰여 가 세워지자 상서우복야, 상서령, 사공, 태부 등 요직을 역임했다.[1]

고평릉 사변에서 사마의가 조상과 대립하여 정변을 일으킬 때, 상서령으로 태위 장제(蔣濟)와 함께 군기고를 점령했고 대오전(對吳戰)에서는 제갈각과 교전했으며 대촉한전에서는 등애의 후속 부대로써 교전했다.

260년 조모가 피살되자 태부였던 그는 상서복사 진태와 함께, 죽은 조모의 머리를 무릎에 받치고 대성통곡했다. 265년 종손[2]사마염조환에게서 선양을 받아 서진을 세우자 황제에서 퇴위한 진류왕 조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진의 신하들 모두가 진류왕 조환이 퇴위된 후, 새로 황제가 된 사마염에게 밉보일 수 없었으므로 아무도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마부만이 사마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환을 방문하였다. 사마부는 공신이자 황족 중에서도 큰어른[3]이었기에, 황제인 사마염도 그를 가만히 둘 수밖에 없었다. 사마부는 폐위된 조환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신은 위나라의 신하입니다. 신은 평생 위나라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이후에도 사마부는 조환의 거처를 자주 방문하였다고 한다.

사마염으로부터 안평왕에 봉해지고, 태재·지절·독중외제군사에 임명되어 황족 및 신료들의 최고 원로 대우를 받았다. 비록 황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이를 영광으로 여기지 않고 항상 근심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위나라의 신하였음을 잊지 않았다.

272년 93세의 고령으로 사망했는데, 후한 영제 때 태어나 사마염의 서진 건국까지 사실상 삼국지의 시작과 끝을 모두 살다간 인물이다. 만약 8년만 더 살았으면 오의 멸망과 삼국통일을 보고 진정한 삼국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후손으로 자치통감의 편찬자인 사마광이 유명하다. 정작 그 자치통감 편찬할 때 삼국지-서진-남북조 파트는 자기가 안 했다.

3 평가

정사, 연의를 통틀어 충심을 강조하는 '충신'으로의 행보가 강조되나 행적으로 보면 고평릉 사변부터 일관되게 조위에 대한 충심과는 관련없는 행보를 걸었다. 형인 사마의가 조예 때부터 군권을 손에 쥔 것과 대비되게 재정권을 손에 쥐었으며 이는 사마의 파벌을 위시한 귀족세력에 힘을 몰아주는 행보였다. 사마의의 정변 이후에는 오히려 관직이 빠르게 올라갔기에 사마의로 대표되는 귀족세력과 대립 또한 없었음을 보여준다.

실상 조씨를 위해 나선 것은 전무하다.# 조모가 시해당했을 때 울었다고는 해도 실질적으로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마소도 통곡했는데 최소한 진태가충을 처형해야 한다고 진언하기라도 했다. 하지만 사마부는 그냥 울기만 하고 끝.

그의 열전이 쓰이진 시대가 사마씨의 시대임을 감안하면, 사마씨의 좋은 이미지 정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정객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자기보신과 이전 정권에 대한 충의를 절충한 처세술의 인물(?)인 셈.# 본격 중국판 이방우?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조비가 위왕 자리를 이어 받는 논의 내지 조방을 쫓아내고 조모를 세울 때 개입하는 등 선위하는 자리에서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또 조모가 살해당하자 그 시체를 얼싸안고 통곡하는가 하면 정사와 달리 사마염이 선양받는 자리에서 안평왕 자리를 사양하고 물러나는 등, 사마씨 집안에서 가장 양심적인 인물로 서술되어 있다.

5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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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언제나 고만고만한 능력치를 지닌 내정형 문관이지만, 수명이 긴지라 성장할 여지는 많다. 작은 형인 사마의만은 못하지만, 큰형인 사마랑보단 능력치가 좋은 편. 문관 이미지와 다르게 통솔도 어느정도는 찍어주는데 연의에서의 충절을 반영했는지, 정작 가장 높은 능력치는 지력, 정치가 아닌 매력이다.

삼국지 9에서는 67/49/78/87의 준수한 문관. 혼란과 고무를 가지고 있어서 원한다면 전장에서 써먹을 수도 있다.

삼국지 10에서는 72/35/77/79/87의 좋은 문관으로 등장. 명사특기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전반적으로 조금 너프 당했지만 70/37/76/79/85로 여전히 쓸만하다.

삼국지 12에서는 오비완 케노비마냥 삿대질을 하고 있다.

진삼국무쌍7에서는 형인 사마의와 특수대사가 있는데, 형과 사상적으로 대립한다. 그리고 고평릉 사변에 아군 클론무장으로 참전한다.

반삼국지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나 문관 이미지와는 다르게 무장으로 등장해서 형 사마의를 도와서 싸우다가 허리가 두 동강이 나서 죽는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캐릭터 자체가 원래 나올 예정이 없다가 갑자기 나와서인지 형 사마랑과 더불어 오리지날 캐릭터로 등장한다.
  1. 사마팔달이라곤 하지만 사마부 밑으론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맏형 사마랑은 바로 밑 두 아우에 비해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형제들 중 제대로 출세코스를 달린건 사마의와 사마부 2명이다.
  2. 從孫, 형제의 손자, 조카의 아들. 사마염은 사마부의 조카인 사마소의 장남이다.
  3. 사마염의 작은 할아버지이자 사마의와 그 조카들을 훌륭히 보필하였다는 점에서 공이 크고 게다가 서진이 건국된 시점에서 무려 86세의 고령이기도 했다.